특집


팬들한테 외면 받은 김성근의 개입주의


마리한화 김성근이 빠진 6가지 착각


2016년 김성근, 몰락인가 반전인가

 

 

김성근(사진)은 아이콘이다. 프로 야구팀의 감독 한 명이 스포츠 전문지를 넘어 일반 언론매체를 뒤덮는 신드롬을 일으켰다. 김성근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2015년 한화 이글스는 단연 화제를 독점한 팀이었다. 마약 같은 야구를 한다는 의미로 ‘마리한화’라는 별명도 붙었다. 한화그룹은 김 감독을 그룹 이미지 광고 모델로 내세웠다.

김성근은 리더십의 아이콘이다. 약체 팀을 맡아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 성적을 끌어올린다는 이미지야말로 김성근 고유의 캐릭터다. 2011년 SK 와이번스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를 맡으며 이미지는 더 공고해졌다. 김 감독이 낸 책 제목은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이다. 영향력은 야구판을 훌쩍 뛰어넘었다. 2012년 대선 때는 박근혜·문재인 대선후보가 앞다투어 고양 원더스를 찾았다. 한화 이글스 감독 선임 직후 그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리더십 강연을 했다.
 
 

ⓒ연합뉴스


2015년은 김성근식 리더십이 극적인 반전을 겪은 해이기도 하다. 전반기 84경기에서 44승40패(+4)로 돌풍을 일으킨 한화 이글스는, 후반기 60경기에서 24승36패(-12)로 추락했다. 성적보다 내용이 나빴다. 핵심 불펜 투수 권혁은 112이닝을 던졌다. 39세 노장 박정진은 부상으로 마지막 한 달을 쉬고도 96이닝이다. 144경기 리그에서 불펜 투수가 기록해서는 안 되는 수치다. 팔꿈치 수술 경력이 있는 스무 살 유망주 김민우와 혈행장애 이력이 있는 송창식은 선발과 구원을 오가는 하중을 감당했다. 야구팬의 여론은 7월을 고비로 폭발했다. ‘김성근’과 나란히 붙는 단어가 한때는 ‘강훈련’과 ‘성적’이었다. 이제는 ‘혹사’다.

그래서 김성근은 ‘질문’이다. 그를 이 시대 리더의 표상으로 끌어올린 정서는 무엇이었고, 한 시즌 만에 거부 정서가 폭발한 이유는 또 무엇이었나. 우리는 어떤 리더십에 열광하고, 어떨 때 등을 돌리나. 2015년의 김성근은 ‘우리에게 리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김성근의 감독 인생사, 혹은 야구사에는 극적인 요소가 있다. 김성근 감독은 2002년 LG 트윈스에서 경질된 뒤 2007년 SK 와이번스에서 5년 만에 1군 감독으로 복귀한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야구계에서는 ‘김성근은 단기전에 약한 감독’이라는 통념이 있었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은 그해를 포함해 SK 와이번스에서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과 우승 3회라는 위업을 달성한다.


프로 야구에서 가장 불행했던 인천 팬들은 그에게 열광했다. 그리고 2011년의 드라마틱한 해고, 이어진 벤처사업가 허민씨의 투자에 기반한 고양 원더스 감독 취임은 김성근을 ‘야구’ 이상의 인물로 만들었다. 언론은 신화를 만들고, 대중은 기꺼이 소비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문재인 두 유력 후보는 모두 고양 원더스를 찾았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청와대는 그를 불러 강연을 부탁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4월 〈한국일보〉 칼럼에서 “우리 정치는 김 감독의 리더십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라고 썼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한화 신드롬’이 한창이던 지난 7월 김성근 감독을 빗대 박 대통령의 리더십을 비판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손혜원 홍보위원장은 최근 SNS에 “(한화 이글스 구단이) 김 감독님께 뭐라 하면 가만있지 않겠습니다”라는 글을 올려 물의를 빚었다.
 

 

ⓒ연합뉴스OB 베어스를 시작으로 여러 프로야구팀 감독을 지냈던 김성근 감독(현 한화 이글스)은 고양 원더스 감독 취임으로 ‘신화’의 자리에 올랐다.

특히 SK 와이번스에서의 해고 이후 김성근 감독에게는 ‘권위에 저항하는 외골수’ 이미지가 더해졌다. 이른바 ‘진보’ 쪽에서 호감을 느낄 법한 캐릭터다. 하지만 그의 야구 인생을 한국 사회에 대입하면 오히려 반대쪽에 더 가깝다.

감독으로서 김성근이 성공한 이유는 동시대 인물 중 가장 앞섰기 때문이다. 박용민 OB 베어스 초대 단장은 그에게 프로야구 감독 지휘봉을 처음 맡겼고, 처음으로 해고한 인물이다. 그는 “김성근 감독은 ‘이기는 법’을 안다. 노력에서 나왔다. 계속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방법을 찾았다”라고 회고했다. 변변한 한글 야구 교본도 없던 시절, 김 감독은 독학으로 일본 야구책을 파고들며 자신의 야구관을 정립했다.

김성근 감독은 선수들에게 무한 노력을 강조한다. 훈련량은 압도적으로 많다. 그는 언제나 투수를 혹사한 감독이기도 했다. 한 프로야구단 단장이 김 감독에게 스프링캠프 때의 과도한 투구 개수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그의 답은 이랬다. “그 정도를 못 시키면 지도자 자격이 없다.” 단장은 “부상 관리라는 면도 있지 않느냐”라고 재차 물었다. 김 감독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팀에 투수가 수십명이다. 몇 명 다치는 건 어쩔 수 없다.”

가장 선진적인 집단이었던 군부의 쿠데타, 요소투입형 경제성장, 성장 과정에서의 반칙, 타인의 희생을 전제하는 비정한 성공지상주의…. 누군가는 김성근 감독을 소재로 야구판 〈국제시장〉을 찍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는 과거의 연속이다. 지난 현대사를 부정할 필요가 없듯, 지금의 기준으로 과거의 김성근을 비난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 그 시절 선수를 혹사하지 않은 감독은 드물었다. 과거 타이완에도 뒤졌던 한국 야구는 2008년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야구로 성장했다. 이 과정에 김성근 감독도 분명 기여했다. 하지만 김 감독의 야구가 지금 얼마나 유효한지는 다른 문제다. 세상이 변했고, 과거 성공의 방법은 낡은 것이 된다.

한화그룹은 올해 야구단으로 큰 홍보 효과를 얻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성공하는 공연이 드물다’는 연고지 대전·충남에서 홈 관중 만원사례가 21차례나 나왔다. 그럼에도 김성근 감독의 2015년 시즌을 실패로 규정한다면, 이유는 그 자신에게서 찾아야 할 것이다.

김성근 감독은 1984년 OB 감독을 맡은 이후 언제나 프런트와 불화를 일으켰다. 김성근 감독이 추구하는 가치가 있다면 승리, 그리고 성공이다. 1980년대 구단의 프런트 직원이라고 해봐야 15명 안팎, 경험과 전문성도 떨어졌다. 사이가 틀어질 경우, 그에게 프런트란 승리에 걸림돌이거나, 충분한 지원을 하지 못하거나, ‘공을 가로채는’ 존재였다. 올해 한화 이글스는 프로야구 사상 유례없이 감독 1인이 지배하는 구단이었다. 트레이닝, 스카우팅, 전력 분석 등 프런트의 핵심 업무까지 감독이 관장했다.

 

ⓒ연합뉴스김성근 감독은 2007년 SK 와이번스로 1군 감독에 복귀했다. 당시 SK 와이번스는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과 3회 우승을 일궈냈다.

그나마도 기록적인 투수 혹사에 기댄 결과

마침내 원하는 것을 이룬 시즌. 하지만 한화 이글스의 시즌 순위가 6위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구단 관리자로서 감독의 역량이 아니었다. 딱 하나를 꼽으라면 에스밀 로저스 투수의 두 달 고용에 들인 (이적료 포함) 200만 달러에 가까운 지출이었다. 김성근 감독은 늘 ‘혹사’라는 비판을 피하고 싶어 하지만, 올해가 가장 큰 비난을 받은 시즌이었다. 그저 “사람에겐 한계가 없다” “투수 어깨는 쓸수록 강해진다”라는 궤변 아래 몸을 숨길 따름이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훈련에 지친 선수들은 “한계를 극복하라”는 김성근 감독의 말에 좌절을 느껴야 했다. SK 와이번스 시절 범접할 수 없던 권위에도 금이 갔다. 김성근 감독 자신이 시즌 뒤 “선수단에 나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라고 털어놓았다.

김성근 감독은 야구를 보는 눈이 넓고 깊은 사람으로 꼽힌다. 이효봉 스카이스포츠 해설위원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김 감독의 눈에는 플레이의 흐름이 선으로 그려질 것이다”라고 감탄한 적이 있다. 하지만 올 시즌 후반기에는 야구 전문가 사이에서 “예전의 김성근이 아니다”라는 평가가 나왔다. 선수 기용과 작전에서 실패가 많았다.

한 점을 막고, 한 점을 내려는 ‘지키는 야구’는 타고투저(타력 우세, 투수력 열세) 시대에 맞지 않았다. 〈동아일보〉 황규인 기자는 “김성근 감독은 성공했던 시즌엔 상대를 저득점 환경에 몰아넣었다. 그러나 실패한 시즌에는 반대였다”라고 분석했다. 올해 한화 이글스의 팀 평균자책점(5.11)은 지난해(6.35)보다 크게 낮아졌다. 그래도 10개 구단 중 9번째로 높았다. 그나마 기록적인 투수 혹사에 기댄 결과다.

과거 김성근 감독은 누군가의 좋은 방법을 배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올 시즌 후반에는 위기에 빠질수록 과거 자신이 성공했던 방법에 기대려 했다. 하지만 그에겐 조력자가 많지 않았다. 원래부터 코치의 직언을 용납하지 않던 인물이다. 감독에게 권한을 빼앗긴 프런트와의 관계는 구조적 갈등이 잠재돼 있었다. 거장의 몰락을 지켜보는 일은 유쾌하지 않다. 그러나 많은 명장이 그래왔다.

그래도 김성근 감독은 아직 현직이다. 야구의 미덕은 다음 날 경기가 열리고, 기약할 수 있는 다음 시즌이 온다는 데 있다. 김 감독은 2017년, 길게는 2019년까지 한화 이글스 감독을 맡을 수 있다. 여기에서 해야 하는 질문이 있다. 김성근의 2015년은 그의 야구에 처음부터 내재된 필연적인 몰락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달라진 환경에 적응이 늦었거나, 개인과 조직의 기능 저하로 인한 한 시즌의 실패일 뿐일까. 김성근은 이제 시한 만료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올드 타이머’일까, 예전에 그랬듯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는 야구 감독일까.

기자명 최민규 (〈일간스포츠〉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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