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21일 방송된 MBC 인기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카페 밖으로 보이는 부산 광안대교를 배경으로 탤런트 김용건씨가 소파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다. 그는 탤런트 김광규씨, 가수 육중완씨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흐트러진 옷매무새와 자세, 반말 투의 자연스러운 대사…. 아무리 봐도 연예인 선후배들이 모여앉아 수다를 떠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다.

육중완·김광규씨는 요즘 부쩍 인기를 얻으면서 감당하게 된 ‘고된 노동’에 대해 토로한다. 육씨에게 그 소파는 “계속 일하다가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는 자리다(사실 그는 한창 ‘노동’하는 중이다). 김씨는 “일은 많아서 행복한데 매일 새벽에 들어가니… 내가 일하는 기계인가~”라고 한탄한다. 김용건씨는 대안을 제시한다.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 오히려 비능률적이래. 열 몇 시간씩 야근하면 뭐하냐고. 피로가 누적되면 더 비능률적이라는 거지. ‘일가양득’이라는 말이 있잖아. 일과 가정을 둘 다 취한다는 뜻이지. 일할 때는 스마트하게~ 생활은 또 스마일하게 미소 지으면서~.”
 

김용건씨가 언급한 ‘일가(家)양득’은 ‘일과 가정이 조화롭게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자’는 의미다. 그런데 이 일가양득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다른 방송에도 등장한다. 지난해 12월1일 방영된 KBS 2TV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의 ‘직장인 고민 특집’. 개그맨 신동엽씨는 다음과 같은 대사로 방송을 시작한다. “일과 개인의 삶 사이에서 갈등, 고민을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일가양득, 일과 가정이 균형을 이뤄야 우리 모두 행복해진다는 말도 있어요. 직장인들의 고민 사연을 받았죠.” 신동엽씨의 상체 밑으로 ‘일가양득-일과 가정이 균형을 이루어야 우리 모두 행복해진다’ 따위 자막이 흘러간다. 그리고 ‘일만 하는 아빠를 말려달라’는 딸의 메시지 등 일반 국민의 관련 고민과 사연이 뒤를 잇는다.
 

서로 다른 방송사의 서로 다른 성격의 프로그램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모아 ‘일가양득’을 외쳤다. 일家양득은 고용노동부의 캠페인이다. 방송뿐 아니라 신문도 고용노동부 협찬으로 기사를 작성했다. 노동시장 구조개혁 관련 정부 정책을 홍보하는 기사들이다. 
일가양득은 사자성어인 일거양득(一擧兩得)을 조금 비틀어 조립한 신조어다. 이 말을 누가 만들고, 누가 퍼뜨렸을까? 방송사들이 제작자가 표시된 ‘일가양득 광고’를 정식 프로그램 사이에 끼워 송출했다면, 시청자들은 누가 어떤 의도로 그 용어를 전파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방송사의 서로 다른 성격의 프로그램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모아 ‘일가양득’을 부르짖었다.

KBS가 2014년 12월15일 ㄱ홍보대행사에 보낸 공문 〈대한민국 토크쇼 안녕하세요-‘직장인 특집 일가양득’ 편 협찬금 4000만원 지급 요청〉에 따르면, ㄱ대행사는 KBS의 정규 편성 프로그램에 ‘일가양득’의 내용을 녹여 송출해달라고 요청했다. KBS는 요청을 수행한 뒤 그 대가인 4000만원을 지급하라고 ㄱ대행사에 공문을 보냈다.

그런데 ㄱ업체는 홍보‘대행사’일 뿐이다. 다른 누군가의 의지를 ‘대행’했다는 의미다. 바로 고용노동부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2월부터 ‘일가양득’ 캠페인을 전개해왔다. 인기 탤런트·가수·개그맨 등이 자신의 개인 의견인 양 편하게 내놓은 발언 뒤에 고용노동부가 숨어 있었다. 광고가 아닌 것처럼 꾸몄지만 사실상 광고다.

지난해 2월17일 고용노동부와 ㄱ대행사는 총 19억원짜리 계약인 ‘(20)14년 고용노동부 일하는 방식·문화개선 등 주요 정책 통합홍보’를 체결했다. 고용노동부가 ㄱ대행사에 보낸 ‘지시서’에 따르면, 이 홍보대행사의 과업은 ‘고용률 70% 달성 및 창조경제 확산’ ‘장시간 근로 개선 및 비정규직 차별 개선’ ‘일가양득 공감하는 비전·메시지 개발 및 전파’ 등이다. 국민들이 고용노동부의 정책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 과업의 핵심 목표다.

만약 고용노동부가 ㄱ대행사에 지시한 것이 ‘방송이나 신문용 광고의 제작’과 이 광고들을 게재하기 위한 언론 섭외라면 별 문제가 없다. 광고란, 광고주(기업이나 정부)의 의지를 대중에게 관철시키기 위한 ‘홍보물’이고 이 사실을 시청자(독자)도 알고 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의 ‘지시’는 ‘뉴스 보도를 통한 문제 제기, 예능·교양(프로그램)을 통한 메시지 확산’을 겨냥하고 있다. 인쇄매체의 기사나 방송 프로그램을 돈(세금이다) 주고 산다는 의미에서, 사실상 ‘청부 기사·방송’이다.

〈시사IN〉은 새정치민주연합 한정애 의원실을 통해 2014년 고용노동부가 언론사 기사와 프로그램에 ‘협찬’한 내역을 확보했다. 고용노동부와 홍보대행사 간 계약서(2014∼2015년), 홍보 용역 결과 보고서, 해당 기사 리스트, 언론사 내부 공문, 언론사가 대행사에 발행한 세금계산서 등의 내용은 대충 다음과 같다.

2014년 고용노동부는 홍보대행사 10곳과 용역 계약을 맺었다. ‘일가양득 캠페인-고용총괄(11억5000만원)’ ‘노사협력(2억원)’ ‘임금 근로시간(2억5000만원)’ ‘차별 개선(3억원)’ 등 지난해에만 총 61억8700만원을 정책 홍보에 썼다.

정부와 기업은, 이런 기사·방송의 예산을 광고비와 별도인 ‘협찬비’라는 항목으로 기록한다. 사실 협찬은 언론계의 오래된 관행이다. 협찬은 광고와 달리 ‘협찬주’를 위한 내용이 해당 매체의 보도나 프로그램에 포함되지 않는다. 일종의 ‘선의의 기부’에 가깝다. 다만 협찬을 받은 언론사는 보도와 프로그램에 ‘공동기획’이라는 문구나 협찬주의 로고를 넣어 그 사실을 명시해왔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의 이번 ‘협찬’은 ‘일가양득’ 캠페인의 내용을 방송 프로그램에 포함시켰으며 로고도 ‘생략’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은밀한 광고에 가깝다. 아래 〈표〉는 2014년 고용노동부의 기획보도 및 방송 집행 내역을 주요 언론사별로 정리한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여론전에 참여한 언론사는 지상파 3사(KBS·MBC·SBS)를 비롯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같은 종합지, 〈한국경제〉 등 경제지, 인터넷 신문 등 다양했다. 채널A를 제외한 종편은 캠페인 광고에 참여했지만 프로그램에 직접 협찬을 받지는 않았다. 이른바 진보 성향의 매체는 포함되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기획기사 28건에 대해 3억757만원, 〈중앙일보〉는 14건에 대해 1억881만원(자매지 포함), 〈한국경제〉는 25건에 대해 1억7550만원을 받았다. 고용노동부 대변인은 “국민 생활과 밀접하거나 관심이 높은 정책 현안에 대해 국민의 이해를 돕기 위해 홍보기획사를 통해 언론사의 취재 보도를 지원했다. 턴키 방식으로 계약하기 때문에 홍보대행사와 언론사 간에 기사가 설계된다. 고용노동부는 전체 방향만 설정하고 기사 내용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공정해고’ 정책 알리는 세련된 수법?

고용노동부의 광고를 홍보해온 대행사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정책을 홍보할 목적으로 2000년대부터 언론사를 대상으로 기획보도 및 방송 제작을 ‘지원’했다. 매체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언론 환경이 열악해지면서 돈과 기사 또는 방송 ‘바꾸기’가 본격화했다. 돈을 받고 쓴 기사는 대부분 고용노동부 정책 홍보기사다. ‘말로만 듣던 근로시간 저축제 실제로 써보니 너무 좋네요(〈헤럴드경제〉 2014년 11월13일자)’ ‘시간제 일자리의 힘, 고급 여성 인력이 돌아온다(〈중앙일보〉 2014년 3월28일자)’ 따위다. SBS 〈인기가요〉는 가수 악동뮤지션과 위너(WINNER)가 부른 ‘일가양득’ 캠페인송을 송출하면서 2200만원을 받았다. MBC 〈나 혼자 산다〉는 출연진들이 ‘일가양득’에 관해 대화를 나눈 2분30초를 방영한 대가로 2200만원을 받았다.

그나마 ‘일가양득’은 일과 가정의 공존을 겨냥하는 나름 보편적 이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사회적으로 이견이 첨예하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노동시장 유연화’ 의제에서도 공공자금을 비용으로 지출하면서 자신들의 의견을 언론에 관철시켰다.

고용노동부는 노동시장 구조개혁과 관련해 노동계와 마찰을 빚어왔다. 일반해고(공정해고) 요건,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등 행정지침(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저성과자, 업무 부적응자를 해고함으로써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겠다는 것이 고용노동부의 정책 방향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경제〉는 ‘노동 양극화 풀려면 고용 유연성 높이고 대기업 노조 과보호 깨야(2014년 12월2일)’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같은 논조의 기획기사 7건에 대해 고용노동부와 계약을 맺은 ㅁ대행사는 〈한국경제〉에 2200만원을 지급했다. 대행사 내부 자료를 보면, 이 기사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점 진단 및 개선 필요성에 대해 알리고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대국민 공감대 형성’이라는 취지로 작성되었다.
 

2014년 12월8일자 〈중앙일보〉 기사가 나온 과정을 보자(협찬비 5500만원). 먼저 고용노동부와 홍보대행사가 용역 계약을 맺는다(➊). 이후 홍보대행사는 해당 언론사와 약정서(➋)를 쓰고, 언론사는 기획기사(➌)를 내보낸다. 마지막으로 세금계산서가 발행된다(➍).

〈중앙일보〉는 ‘정규직 일 못하면 해고 쉽게…비정규직 퇴직금 설움 없게(2014년 12월8일)’ ‘차별 키운 파견근로법 16년…비정규직 600만 넘어(2014년 12월10일)’ 등의 제목으로 임금체계와 관련된 내용을 보도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서는 업무 성과가 부진한 정규직 해고에 대한 규정이 모호해서 부당해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이에 정부가 업무 성과 부진자 해고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해외 사례를 보탠 이 같은 내용의 기획기사 6건에 대해 〈중앙일보〉는 5500만원을 받았다. 2014년 11월2일 방송된 채널A 〈일요 기획(35회)〉은 3300만원을 받은 대가로 제작된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다.

해당 기획기사를 ‘관리’한 ㅁ대행사는 결과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노사 현안인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고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부각했다. 임금체계 개편,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등 노사 현안에 대한 적극적인 상호 논의가 필요한 상황에서 전문가 대담 및 칼럼, 우수 해외 사례, 기획보도 등 언론 홍보를 강화했다. 중앙 일간지, 경제지, 경제 주간지 등 타깃을 고려한 다양한 매체의 활용으로 노사 현안에 대한 이해도 제고 및 긍정적인 분위기 확산에 기여했다.”

“사실상 정부가 언론사를 매수하는 꼴”

이 같은 방식의 기사 작성에 참여한 한 언론사 기자는 “임금체계 개편, 노동시장 구조 개선 이슈가 한창이던 때라 취재했다. 우리 매체가 이 같은 논조를 유지해온 터라 그런 차원(광고에 대한 의심 없이)에서 썼다. 기사가 광고비와 연계되어 있는 줄은 몰랐다”라고 말했다. 홍보대행사 관계자는 “특별히 언론사에 기사 논조를 언급하지 않는다. 최종적으로 기사 논조에 대한 결정은 해당 매체에서 하는 편이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참고 자료를 주는 정도다”라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 대변인실과 대행사 관계자, 해당 기사를 쓴 기자의 말을 종합하면, 협찬이나 광고 매체를 선별하는 건 대행사의 몫이다. 하지만 언론사에서 먼저 광고를 받고 기사를 주겠다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고용노동부의 돈을 받은 언론사의 경우, 이미지 광고를 ‘서비스’하기도 한다. 〈동아일보〉는 20회에 걸친 기획기사를 내보내면서 2억3000만원을 받았다. 그 대신 550만원짜리 하단 이미지 광고를 7차례 ‘무료 서비스’했다.

심영섭 한국외대 강사(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는 “언론사는 편집과 경영을 분리하는 게 원칙인데 광고성 기사를 거부하기 힘들면 결국 언론의 자유를 침해당하는 일이 생겨도 눈감을 수밖에 없다. 사실상 정부가 언론사를 매수하는 꼴이다”라고 말했다. 한국기자협회 실천요강에는 ‘(기사 작성에서) 광고 강요 행위를 하지 않으며 취재 보도와 연계하지 않는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복수의 관계자 증언에 따르면, 기획보도와 방송 프로그램 제작에 할당된 정부의 ‘협찬비’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일반적인 정책 홍보 방식으로 정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용노동부 대변인은 “기획기사와 방송 제작 지원으로 정책을 홍보하는 건 고용노동부뿐 아니라 모든 부처에서 일반적으로 쓰고 있는 거라서…. 지적된 부분에 대해 더 이상 문제가 불거지지 않도록 조치하겠다”라고 말했다.

한정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해 당사자 간 갈등이 첨예한 노동 분야에서 정부 부처가 설득이나 조정 절차를 무시하고 기업 등 한쪽에 치우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국민 혈세를 집행해왔다. 국민들이 정부 정책과 언론 보도를 믿을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