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찍은 사람은 당선되지 않았다. 꼭 그 사람이어야 하는 당위는 없었다. 다만 그 사람으로 인해 진보 세력이 조금 더 커지리라 기대했다. 저 사람만 아니었으면 하는 사람은 있었다. 그가 당선됐다. 지금의 대통령이다.
한 달가량 울며 지냈던 거 같다. 실연이라도 당한 것처럼 밥 먹다가 울고 〈무한도전〉 보면서도 울었다. 대통령 사진이나 목소리는 수개월이 지나서도 마주하지 못했다. 대통령 성대모사를 하는 동료 기자의 우스갯소리조차 듣기 싫었다. 인쇄 매체로 간신히 뉴스를 읽는 정도였다. 시간이 한참 흘러서야 현실을 인식할 수 있었다.
안 여사(부산에 사는 어머니)는 그런 나를 위로했다. ‘부자와 황제는 하늘에서 내려준다 안 카더나. 내일이 있잖아.’ 그이는 내가 첫사랑과 헤어지고서 그치지 못하는 울음을 터뜨릴 때도 가만히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었다. ‘많이 아프제. 사랑은 아프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끄야. 시간이 약이다(토닥토닥).’
문득 안 여사의 위로가 생각난 건 내일이 있다는 말도 맞고 시간이 약이기도 한데, 그게 정답은 아닌 거 같아서다.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내일도 행복하지 않다. 하지만 지는 일만 거듭하다 보니 농담에도 웃을 수가 없고, 다음 발걸음을 떼려 해도 앞날은 깜깜하다. 피곤하고 짜증이 나서, ‘여기’ 아닌 다른 데 자꾸 눈길이 간다.
세상을 쌀 한 톨만큼이나마 낫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한동안 거리에 나가던 ‘열정’이나 용돈을 모아 여기저기 단체를 후원하던 ‘기특함’은 전부 과거에나 있었던 일이다. 그러니까 다음 대통령이 또 지금의 대통령이 되어도 나는 울기는커녕 ‘역시’ 하고 말 것 같단 말이지. 나의 무능과 무력이 짜증조차 나지 않는 현재 상황이 사실은 최악 아닌가 싶다.
이런 상황에 치닫고 나니, 져도 이겼다고 확신할 수 있게 ‘정신승리’하는 법이라도 배워야 하나 싶다. 임기는 겨우 절반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