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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의 바람이 분다… 당신을 위한 네 편의 영화

EBS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여름을 닫고,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가을을 끌어안는다. 국내외 다큐멘터리 수작들이 관객과 만나는 계절이 다가왔다. 이 계절에 꼭 보았으면 하는 작품 네 편을 선정했다.

고재열 기자 scoop@sisain.co.kr 2015년 09월 05일 토요일 제4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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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다큐의 바람이 분다… 당신을 위한 네 편의 영화

다큐계의 젊은 거장이 남긴 ‘학살의 재구성’

비무장지대에서 만나는 세계의 분쟁
8월 말에 열린 EBS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EIDF)에서 9월 말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60쪽 기사 참조)까지 한 달은 다큐멘터리의 계절이다. 국내외 다큐멘터리 수작들이 소개되어 관객과 만난다.

크지는 않지만 다큐멘터리 시장도 제법 형성되어 있다. 방송사 VOD 서비스 중에서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를 제외하고는 EBS 다큐멘터리가 가장 많이 다운로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개봉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무려 480만명 넘게 관람했다. 2009년 개봉한 <워낭소리>에도 290여만 관객이 들었다. <북극의 눈물> <아마존의 눈물> 등 시청률 높은 작품이 나오자 방송사들도 대작 다큐멘터리를 꾸준히 제작하고 있다.

다큐멘터리의 계절에 꼭 보았으면 하는 작품 네 편을 선정했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한 임흥순 감독의 <위로공단>(상영 중), 지난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의 <침묵의 시선>(9월3일 개봉), 올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김대현 감독의 <다방의 푸른 꿈>(개봉일 미정), <워낭소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잇는 작품으로 꼽히는 박혁지 감독의 <춘희 막이>(9월30일 개봉 예정)가 주인공이다.
 
  위로공단  
위로공단
<위로공단>

영화제가 아닌 미술제에서 상을 타 화제가 된 <위로공단>은 다큐멘터리로 쓴 한국의 여성 노동운동사라 할 수 있다. 여성 노동운동가들이 증언하는 노동운동사는 ‘무용담’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현실’이어서 마음이 무겁다. 감독은 그 시절 서울 구로공단의 현실이 지금 마트 노동자의 현실이고 동남아에 있는 한국 공장에서 재현되고 있음을, 그래서 아시아의 다른 여성들이 그때 우리 여성들이 겪은 고통을 바로 지금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회사 측이 노동조합 설립을 방해하려고 여성 노동자들에게 똥물을 끼얹었던 동일방직 오물 투척 사건의 주인공부터 삼성 반도체 공장 피해자들까지 두루 망라하며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감독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동남아 한국 기업의 공장까지 찾아가 역사가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위로공단>이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비결은 주제의식을 담은 다양한 이미지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영화에 담긴 이미지를 하나하나 발견하고 거기에 담긴 뜻을 헤아리면서 마치 미술작품을 감상하듯이 관람할 수 있다. 이를테면 흰 천을 얼굴에 두른 여인이 등장한다. 이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 여성 노동자들을 표상한다. 마트 야채 코너에 놓인 잘린 손목 이미지는 노동자의 희생 속에 우리의 일상이 영위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감독은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 열린 ‘수출의 여인상’ 제막식 장면을 거꾸로 돌려서 과거의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위로공단>의 흥행을 위해서 문재인·변영주·김옥빈·유지태 등 정치인과 감독·배우들이 나섰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광장 시사회까지 열어주었다. 영화 배급을 맡은 엣나인필름이 전국을 돌며 ‘부흥회’를 열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8월27일 현재 관객은 8000명 수준이다. <위로공단>은 ‘보아야 하는 영화’가 아니라 ‘보면 좋은 영화’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조용한 위로를 건네는 영화다.



<침묵의 시선> <침묵의 시선>은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의 전작 <액트 오브 킬링>과 쌍을 이루는 영화다. 오펜하이머 감독은 <액트 오브 킬링>에서 1965년 인도네시아 군부의 대학살의 주요 학살자 중 한 명인 안와르 콩고를 중심으로 가해자의 시선을 그렸다. <침묵의 시선>에서는 희생자 람리의 동생인 안경사 아디의 시선으로 피해자들이 침묵했던 시간에 대해 그렸다.

 
   
 


오펜하이머 감독은 원래 실험적인 극영화를 제작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인도네시아 대학살을 다루게 된 계기는, 대규모 농장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 농업인들이 노동조합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영화 제작법을 알려주러 갔다가 대학살에 대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벨기에 회사가 운영하는 농장인데 그곳 여성들은 주로 제초제와 살충제 뿌리는 일을 했다. 그런데 농약 성분이 호흡기로 들어가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가 계속 발생했다. 그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어 회사에 방화복 지급을 요구했다. 그런데 고용주인 벨기에 회사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판체실라 유스’라는 단체에 노동조합을 진압해달라고 의뢰했다. 그러자 노조원들은 노동조합을 곧바로 포기해버렸다. 그들의 부모와 조부모들이 노동조합원이라는 이유로 그 단체에 학살당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감독은 농약의 독성보다 두려움이 더 무섭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이 대학살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해서 제작에 착수했다(58~59쪽 기사 참조).

<침묵의 시선>의 백미는 아디가 가해자들에게 “당신들이 죽인 사람들 중에 내 형이 있었다. 람리를 기억하는가?”라고 묻는 순간이다. 대학살에 대해 “공산주의자를 죽인 것이니까 우리는 좋은 일을 한 것이다”라며 마치 무용담을 늘어놓듯이 학살을 묘사하던 가해자들은 순간 눈빛이 떨린다. 미세한 감정적 동요가 화면을 통해 전달된다. 그러나 그들은 이내 자신을 변호한다. 가해자의 자식들 역시 ‘왜 다 지난 일을 꺼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느냐’고 항의한다.

감독은 가해자들이 학살을 자랑스러워하는 것만큼이나 피해자들이 진상 규명을 포기하고 과거를 묻어두려고만 했던 것에 대해서도 파고든다. 인도네시아인들이 과거를 드러낼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처벌받지 않고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감독은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느낌은 자존감에 대한 문제라며 사람들이 ‘관심 없다’며 무감정 상태로 회피하는 모습을 추적한다. ‘그때 그곳’에서 벌어진 그들의 이야기지만 ‘지금 여기’ 우리의 상황을 환기시킨다.


<다방의 푸른 꿈> <다방의 푸른 꿈>은 한마디로 ‘유행의 고고학’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JYP엔터테인먼트의 걸그룹 원더걸스가 미국 무대를 뚫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벌였는데, 그 반세기 전에 김 시스터즈가 라스베이거스 무대에 오르고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했던 과정을 설명하면서 대중문화의 역사가 어떻게 반복되는지 보여준다.

 
   
 


김 시스터즈는 ‘목포의 눈물’을 부른 가수 이난영과 작곡가 김해송 부부의 두 딸 김애자·김숙자와 조카 김민자로 구성된 ‘원조 걸그룹’이다. 미국에 진출해 <에드 설리번 쇼>에 무려 22회이나 출연하고 ‘찰리 브라운’이라는 곡이 빌보드차트에 오르고 <라이프>지 표지에도 등장했다. 이들의 진출 이후 윤복희·패티김 등도 미국 무대에 진출했다.

인상적인 부분은 김 시스터즈가 미국 활동을 위해 기울인 노력이다. 최근 복귀한 그룹 원더걸스는 밴드로 변신해 화제가 되었는데, 50년 전 김 시스터즈는 각자 10가지 이상의 악기를 다룰 수 있을 만큼 혹독하게 훈련받았다. 스코틀랜드 출신인 에드 설리번을 감동시키기 위해 백파이프를 연습해서 합주하는 장면도 나온다.

이난영씨는 딸들과 조카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올라갈 때는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딛고 올라가야 한다. 그래야 떨어질 때 붙잡을 것이 있다. 그러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 번에 올라가면 떨어질 때 붙잡을 것이 없다.” 이난영씨가 김 시스터즈와 함께 <에드 설리번 쇼> 무대에 오르는 장면은 이 다큐멘터리의 하이라이트다.


<춘희 막이> <춘희 막이>는 <워낭소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흥행을 이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작품이다. ‘내 영감의 두 마누라’라는 부제를 단 이 영화는 전주국제영화제를 비롯해 각종 영화제에서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호평을 받으며 흥행을 예고했다.

 
   
 


<춘희 막이>의 주인공 ‘춘희’와 ‘막이’는 후처와 본처의 관계다. 두 아들을 태풍과 홍역으로 잃은 최막이 할머니는 김춘희를 남편의 후처로 들여 집안의 대를 잇게 한다. 다큐멘터리는 이들이 46년간 함께 살면서 ‘애증의 세월’을 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남편이 죽은 뒤 둘은 서로를 의지하며 모녀처럼 혹은 자매처럼 살아간다. 1남2녀를 낳았지만 정신연령이 어린 춘희 할머니를 막이 할머니가 돌보는 처지다.

박혁지 감독은 두 할머니의 가감 없는 일상을 담기 위해 2년에 걸쳐 560시간을 촬영했다. 2009년 이 휴먼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2주 동안 촬영했던 박 감독은 ‘이들은 왜 같이 살까’ ‘춘희 할머니의 진짜 마음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풀기 위해 두 할머니 집 근처에 월세 8만원짜리 농가를 얻고 재촬영에 나섰다.

박 감독은 둘이 일상을 어떻게 함께하는지 덤덤하게 담아냈다. 둘은 그리 수다스럽지 않다. 조용히 눈빛으로 대화한다. 묘한 긴장감이 흐르기도 하지만 천진하게 웃는 춘희 할머니를 막이 할머니는 늘 근심 가득한 얼굴로 바라본다. 자신을 돌보던 막이 할머니가 외지로 일을 보러 가면 춘희 할머니는 “아이고 보고 싶다. 엄마가 없다”라며 그리워한다. 피아니스트 김광민씨가 서정적인 음악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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