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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이런 정치인이 절실하다… ‘샌더스 돌풍’

미국 민주당 대통령 예비 후보로 나선 버니 샌더스가 힐러리 클린턴을 맹추격하고 있다. 평론가들은 샌더스의 인기를 거품이라고 평가절하하지만 클린턴 캠프는 지난 선거의 오판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단속에 나섰다.

정승구 (영화감독·작가) webmaster@sisain.co.kr 2015년 07월 23일 목요일 제4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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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민주적 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다. 억만장자들이 정치인과 선거를 돈으로 조종하는 미국은 더 이상 민주주의가 아닌 과두제 독재국가일 뿐이다!” 지난 5월26일 미국 민주당 대통령 예비 후보로 나선 버몬트 주 연방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73)가 ‘기업 지배 국가’로 변한 미국에 던진 선전포고다. 그가 21세기 미국의 최대 위험 요소인 경제적 불평등을 의제로 내걸고 출사표를 던질 때 언론은 침묵했다. 그러나 6월 중순 이후 샌더스는, 차기 대세인 힐러리 클린턴을 맹추격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보수 언론들은 샌더스를 ‘사회주의자’로 부각하고 있다. ‘민주적 사회주의’에서 ‘민주적’을 싹둑 잘라냈다. 공화당은 샌더스를 ‘과격하다’며 애써 외면한다. 그러나 ‘과격’에 대한 샌더스의 생각은 다르다. “과격이란, 부자들에게 감세해준 정치인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것을 가리킨다! 국가에서 새롭게 창출되는 소득의 대부분을 최상위 1%가 가져가는 상황이야말로 과격하다. 또한 한 집안(월마트의 소유주인 월튼 가)의 경제적 부가 하위 1억3000만명의 재산을 합친 것보다 많다는 사실, 이런 미국의 현실이 과격한 것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P Photo</font></div>7월6일 버니 샌더스 예비 후보가 포틀랜드 유세에서 연설을 마친 후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AP Photo
7월6일 버니 샌더스 예비 후보가 포틀랜드 유세에서 연설을 마친 후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버니 샌더스는 1941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집안에서 유일하게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아 미국으로 이민 온 유대인이다. 미국 역사의 격동기인 1960년대에 샌더스는 시카고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운동권 학생으로 시민 평등권 운동(Civil Rights Movement)에도 적극 참여했다. 그가 현실 정치에 몸을 던진 것은 1970년대다. 진보 정당인 자유연합당(Liberty Union Party)의 당원으로, 버몬트 주의 주지사 후보와 상원의원 후보로 각각 두 차례씩 출마해 낙선했다. 1979년에 자유연합당에서 탈당한 그는 목수로 생활을 꾸리며, 역사 기록가이자 다큐멘터리 작가로 활동했다.

당시 샌더스가 젊은이들에게 가장 많이 설파한 인물은 미국 사회주의의 선구자 유진 데브스였다. “미국인들은 프로야구 경기의 기록은 상세히 알지만, 유진 데브스가 누군지는 모른다. 왜 그럴까? 답은 간단하다. 데브스가 죽은 지 반세기를 훨씬 넘긴 지금도, 이 나라의 소수 지배층이 그의 생각을 위험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의 노동운동가인 데브스는 사회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다섯 번 출마했다. 1920년에는 폭동선동죄로 구속된 상태에서 대통령에 출마해 100만 표 가까이 얻기도 했다.

샌더스는 1981년 정치계로 복귀해 버몬트 주 벌링턴 시장을 지낸다. 1990년에는 무소속으로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2006년에는 무당파로 공화당의 갑부 후보를 압도적으로 제압하며 연방 상원에 입성했다. 샌더스가 ‘정치적 거물’로 인식된 계기는 2012년 재선되면서이다. 연방 의회 역사상 가장 장수한 무소속 정치가인 샌더스의 집무실에는 오늘날까지 데브스의 사진이 걸려 있다.

대다수 평론가는, 샌더스를 예전의 ‘반짝 스타’들과 비교하며 ‘거품’이라고 평가절하한다.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의 경우, 2004년 민주당 대통령 예비선거 초기에는 학생과 진보 진영으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예비선거일이 다가오자, 민주당 당원들은 당시 W. 부시 대통령과의 대결에서 경쟁력이 있어 보이는 존 케리 후보를 선택했다. 그래서 ‘샌더스 돌풍’을 가리켜 “미국 정치에 새로운 의제를 던지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라는 식의 고리타분한 논평만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간택’ 미루고 있는 미국 최대 노동자 조직

그런데 대기업과 억만장자들의 선거자금으로 무장한 채 ‘서민 코스프레’ 중인 클린턴 캠프는 7월 초부터 ‘샌더스의 추격이 걱정된다’는 말을 흘리고 있다. 물론 이런 엄살은 예비선거 과정에서 선두주자가 흥행몰이를 위해 부리는 전통적인 술수다. 샌더스의 지지율을 보면, 처음 예비선거가 벌어지는 두 지역인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에서는 나날이 상승 중이나 흑인·라틴계·여성·중도 성향 유권자들이 골고루 분포된 다른 지역에서는 클린턴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8년 전을 기억하는 이들은 클린턴의 우려가 단순한 엄살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2007년 여름, 클린턴은 두 자릿수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오바마와의 격차에 안심하고, 작은 주보다는 선거인단이 많은 큰 주에 집중하는 전략적 오판을 범했다. 똑똑한 클린턴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는 않겠지만, 미국 민주당 역사를 보면 오바마 외에도 카터, 듀카키스같이 존재감이 없던 후보들이 기적 같은 역전승을 이끌어낸 사례가 여럿 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P Photo</font></div>7월6일 버니 샌더스의 지지자들이 포틀랜드 유세장에 모여 있다. 이날 약 7500명이 모였다.  
ⓒAP Photo
7월6일 버니 샌더스의 지지자들이 포틀랜드 유세장에 모여 있다. 이날 약 7500명이 모였다.
샌더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거대 노조들의 지지 선언이다. 샌더스는 ‘경제적 불의와의 전쟁’을 선언했다는 측면에서 ‘친노동’ 후보지만, 아직 노동자 계층에서 인지도가 높지 않다. 그래도 최근에 교원노조인 AFT(미국 교사연맹)가 발표한 클린턴 지지 성명은 샌더스에게 특별히 악재라고 볼 수 없다. 미국의 가장 거대한 노동자 조직인 AFL-CIO(미국 노동총연맹·산업별노동조합회의)가 ‘선택’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조직의 리처드 트럼카 총장은 노조 지도자들에게, 노동계의 주장을 공약에 충분히 반영한 민주당 후보에게만 지지 선언을 하라고 당부해왔다. 클린턴과 긴밀한 관계인 AFT는 이를 무시했지만, 다른 조합들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지켜볼 일이다.

샌더스는 또한 흑인·라틴계 유권자들도 공략해야 한다. 이미 지지를 표명한 인기 흑인 래퍼인 킬러 마이크, 코넬 웨스트 프린스턴 대학 명예교수 등이 그의 원군이다. 민주당 내에서 영향력 있는 명망가들의 지지 역시 절박하다. 2008년 클린턴에게 뒤지고 있던 오바마는 ‘슈퍼 화요일’ 직전에 케네디 가문의 공식적 지지를 얻으며 역전극을 완성할 수 있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국내 일부 언론에서 말하는 것과 달리 샌더스는 ‘제3의 후보’가 아니다. 그는 제도권 정치 내부에 자극을 넘어 충격을 주고 있는 변혁의 구심점이다. 유권자들이 샌더스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따뜻하고 정직한 그의 인품 때문만이 아니다. 샌더스는 풀뿌리 운동의 전통이 강한 미국의 정치 문화에서, 일반 사람들이 정의롭다고 여기는 가치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지도자로 신뢰받고 있다. 그렇게 샌더스는 미국인들에게 싸울 가치가 있는, 참여할 이유가 있는 선거판을 만들어준 것이다.

‘저녁이 있는 삶’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유가 있는 삶’이다. 충격이 필요한 사회는 미국만이 아니다. 한국 역시 싸울 가치와 참여할 ‘이유’를 줄 수 있는 진보 정치인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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