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불자도 촛불을 들었다. 이명박 정부가 종교 편향 언행을 자주 하자 불자가 분노했다.

승수 국무총리는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을 만나지 못했다. 꺼져가는 촛불을 종교계가 되살리기 시작한 7월 첫째 주, 한 총리는 종교계 지도자 면담 일정을 급히 잡았다. 7월2일에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엄신형 회장을 만났고 7월3일에는 명동성당을 찾아 천주교 서울대교구 총대리 염수정 주교의 손을 잡았다.

사실 한 총리가 제일 먼저 가려던 곳은 조계사였다. 국무회의에서 “종교 편향 조심하자”라는 자성 발언이 나온 7월1일 오전, 총리실은 급히 지관 스님 면담 약속을 잡았다. 의전팀 비서관들이 약속 시각인 2시40분보다 한 시간쯤 일찍 조계사에 가 있었다. 의전팀과 총리실 간에 여러 번 전화가 오가더니 2시25분쯤 약속이 취소됐다. 뒷말이 무성했다. 총리실은 “조계종 측에서 면담 연기를 요청했다”라고 밝혔지만 조계종 홍보팀 측은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한 총리를 태운 차가 조계사 인근까지 왔다가 돌아갔다고도 하고, 사실상 문전박대를 당한 게 아니냐는 말도 돌았다. 일부는 한 총리가 일방적으로 약속을 취소했다며 괘씸해했다.

어청수 경찰청장, 소망교회로 옮겼다?

불교계가 몸을 움직였다. 지난 6월26일 대한불교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 등 20여 불교 단체가 ‘이명박 정부 종교 편향 종식 불교연석회의’를 꾸렸다. 연석회의는 쇠고기 재협상과 어청수 경찰청장 퇴진도 요구한다. 7월4일에는 전국의 불자가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여 ‘국민주권 수호와 권력의 참회를 위한 시국법회’를 열었다. 흔한 일이 아니다. 조계종 기획실 박정규 홍보팀장은 “이제껏 불교 NGO 단체가 움직인 적은 많았지만 이번처럼 서울 대형 사찰까지 참가한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다. 1987년 스님이 거리에 많이 나섰었는데, 그때 이후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불자들은 이미 ‘개신교’ 이명박 정부에 화가 많이 나 있었다. 취임 후 4개월 동안 우후죽순 일이 터졌다. 조계종에서 정리한 ‘이명박 정부 공직자 종교 편향 일지’ 속에는 굵직한 사례만 10여 가지가 적혀 있다. 지난 3월에는 이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김진홍 목사와 예배를 봤고, 5월12일 부처님 오신 날에는 주요 사찰에 축전 보내는 일을 ‘깜빡’했다. 국토해양부가 제작한 대중교통 안내 시스템 ‘알고가’ 지도에는 서울과 수도권 주요 사찰이 빠져 있다. 어청수 경찰청장은 ‘제4회 전국경찰복음화 금식대성회’ 포스터에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와 함께 나란히 사진을 실었고, 서울 경기여고는 학교 내 불교 문화재 3점을 땅에 묻었다. 불교계는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일어난 일보다 이명박 정부 4개월 내에 생긴 종교 편향 사례가 훨씬 많다”라고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 종교 편향 종식 불교연석회의’가 꾸려졌다. 어청수 경찰청장이 교회 행사 포스터(오른쪽)에 사진을 냈다가 불교계의 반발을 불렀다.

화난 불자들은 이 대통령의 과거까지 끄집어내 얘기한다. 서울시장 재직 시절의 ‘서울 봉헌 발언’이 대표적이다. 청계천 준공식 때 목회자를 불러 준공 예배를 드린 것도 상기했다. 대선 후보 시절 이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가 법명 ‘연화심’을 받아놓고도, 후에 이 대통령이 “승려가 부인에게 얼굴이 연꽃 같다고 말한 것이 와전됐다”라고 거짓말한 사실도 잊지 않았다.

조계종 박 홍보팀장은 “워낙 사례가 많다 보니 불교계가 피해의식이 크다”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이 대통령과 공직자들의 기독교 용어 사용에도 불교계는 발끈한다.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의 ‘사탄 발언’을 조계종은 종교 편향의 한 사례로 봤다. 이 대통령이 자주 쓰는 ‘섬긴다’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법보신문〉 남배현 경영본부장은 “뜻은 좋지만 장로 대통령이 쓰니 왠지 꺼림칙하다”라고 말했다. 불교 신자 사이에서는 최근 가톨릭 신자인 어청수 경찰청장이 소망교회로 옮겼다, 경찰 내부에서 교회 출석을 수시로 체크한다는 식의 확인되지 않은 소문도 돌았다.

불교계, 정부 해명 믿지 않아

불교계가 제기하는 여러 의혹에 대해 정부는 “모두 사실 무근이다”라고 주장한다. 국토해양부는 ‘알고가’ 지도에 사찰이 빠진 것은 실무자의 실수라고 해명했다. 담당자인 국토해양부 도시광역교통과 윤지숙씨는 “잘해보려다가 이런 일이 생겼다. 더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시스템 용역회사(한국공간정보통신)에서 별도의 예산을 받지도 않고 업데이트 작업을 해주다가 실수가 발생했다”라고 말했다.

‘어 청장 개종설’에 대해 경찰청 한 관계자는 “낭설이다. 경찰청장까지 올라간 사람이 무슨 영달이 필요해서 그러겠느냐”라고 부인했다. ‘교회 출석 체크설’을 두고도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런 일이 있으면 ‘무궁화클럽’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당장 말이 오르내린다”라고 말했다. 경찰청 최광화 대변인은 어 청장이 개신교 행사 포스터에 사진을 올린 사건을 보도한 〈법보신문〉에 “예년 행사 때에도 허준영 전 청장 등이 사진을 게재했다. 종교적 편향과는 관련이 없다”라는 해명글을 보냈다. 경찰청 홍보2계 김성식 반장은 “기사 가치도 없는 사안을 보도하는 언론이 이상한 거다. 중요한 일이라면 왜 중앙 일간지 등에서 가만히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불교계는 정부의 해명을 믿지 않는다. 조계종 중앙신도회 이지범 기획실장은 “한국 공무원은 상부 지시 없인 작은 일 하나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포스터에 얼굴을 내민 사건 등 모든 게 대단히 고의적·조직적으로 움직인 결과였다고 판단한다”라고 말했다. ‘알고가’ 사찰 누락이 실무자 실수였다는 해명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계종은 “설사 고의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 책임을 지고 퇴진하라”고 주장한다.

“이 대통령은 ‘역행보살’이다”

7월1일, 총리와 지관스님 면담은 ‘무한 연기’됐다. 총리실에서 다른 날짜를 잡자고 했지만, 조계사 측에선 지관 스님의 스리랑카 방문 일정 등을 내세워 “갔다 와서 다시 얘기하자”라고 미뤘다. 기획실 한 관계자는 “어차피 종교 편향 문제에 대한 대책 하나 없이 시국법회 자제만 요청하러 오는데 불교계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개인적으로, 일정이 안 맞아 면담이 불발된 게 다행이다 싶더라”고 말했다.

‘종교계 달래기’가 면담과 사과 방문으로 해결되기에는 상황이 너무 커졌다. 7월3일, 불교연석회의 기자회견에서 손안식 공동대표는 목소리를 높였다. “앞으로 이 정부가 행하는 민심 이반은 가속될 게 뻔합니다. 아직 임기가 많이 남았습니다. 5년 동안, 우리는 이명박 정부를 감시하겠습니다.”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박광서 공동대표는 뒤늦게나마 불교계가 움직인 것에 대해 “종단 내부 싸움이 10여 년 지속되다가 진정되니 이제야 지도부가 종교 편향 문제의 심각성을 의식했다. 일반 불자는 예전부터 늘 불만이었는데, 지도부가 덩치 큰 바보처럼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대선 때 ‘그래도 민주당보다는 낫다’라며 묻지 마 투표에 가담한 불자들이 요즘 후회를 많이 한다”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 대통령에게 ‘역행 보살’이란 별명을 붙였다. 나를 괴롭게 하지만, 용서할 줄 아는 자비심 또한 키워주는 사람을 일컫는 불교 용어이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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