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국가부도 사태를 앞둔 아르헨티나 경제 관료들은 채무 조정 협상을 위해 미국계 헤지펀드 간부들을 만났다. 협상 결렬 직후, 아르헨티나 관료들은 헤지펀드들을 ‘인간쓰레기(scum)’로 지칭했다. “썩어가는 시체나 쪼아 먹는 독수리(vulture)들에게 강탈당할 수는 없다.” 그 헤지펀드의 회장 폴 싱어는 동료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아르헨티나인들을 ‘시장 규칙도 거부하는 허풍선이 녀석들(charlatans)’이라고 불렀다(〈블룸버그 비즈니스〉 2014년 8월7일). 헤지펀드의 이름은 엘리엇(Elliott)이다. 오는 7월17일, 삼성물산 임시 주주총회에서 삼성그룹의 미래를 둘러싸고 이건희 회장 일가와 격돌할 것이다.

 

ⓒ사진합성 이정현7월17일 삼성물산 임시 주주총회에서 삼성그룹의 미래를 둘러싸고 이재용 부회장(사진) 등 이건희 회장 일가와 헤지펀드 엘리엇의 일전이 펼쳐진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배력’의 가장 약한 고리

핵심은 삼성전자였다. 삼성의 경영권 상속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삼성전자에 대한 ‘삼성 일가’의 지배력을 이건희 회장 사후에도 유지하는 것이다. 삼성 일가가 직접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4.7%에 불과하다. 다만 삼성 일가가 지배하는 기업들(삼성생명·삼성물산·삼성화재)이 다시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하게 만드는 것으로 ‘지배력’을 유지해왔다. 모두 합치면 17.4%다.

삼성전자는 비싼 회사다. 시가총액이 대충 190조원에 이른다. 그래서 17.4%(시가총액 190조원 기준으로 33조600억원)로도 안정적 지배가 가능했다. 삼성 일가에 도전하려면 수십조원(수백억 달러)이 들기 때문이다. 다만 중요한 제약 조건이 있다. 일가로부터 계열사들을 거쳐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력의 고리’가 끊어지면 안 된다.

가장 약한 고리는 삼성물산이다. 이건희 일가가 직접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은 고작 1.4%다. 계열사의 지분을 모두 합쳐도 13.99%다. 이런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을 4.1%나 갖고 있다. 그들로서는 어떻게든 삼성물산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삼성그룹이 지난 5월26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선언한 이유다.

왜 제일모직인가? 제일모직은 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다. 삼성 일가가 제일모직에 직접 가진 지분만 42%(계열사 합치면 50.7%)다. 누가 덤벼도 끄떡없다. 더욱이 합병 선언 당시(5월26일), 제일모직 주가는 삼성물산의 3배에 이르렀다. 합병은, 이런 제일모직에 대한 지배력을 삼성물산(과 그 자산인 삼성전자 지분)으로 확산시키려는 시도다. 빨간색 물감 9g과 노란색 물감 3g을 섞은 물감의 색은 빨간색에 좀 더 가까울 터이다.
 

ⓒEPA엘리엇의 창립자는 변호사 출신인 폴 싱어 회장(사진)이다. 엘리엇은 ‘벌처(시체를 뜯어 먹는 탐욕스러운 독수리)’라 불리기도 한다. 이윤을 위해 전 세계를 넘나드는 헤지펀드다.

예컨대 기업가치 20억원(주주 10명이 시가 2000만원짜리 주식을 각각 10장씩 보유한 것으로 가정. 총주식수 100주)인 A사가 기업가치 10억원(주주 10명이 시가 1000만원짜리 주식을 각각 10장씩 보유. 총주식수 100주)인 B사와 합병해서 30억원짜리 C사를 설립한다고 치자. C사는 새로 주식을 발행해서 옛 A사와 B사의 주주들에게 배분해야 한다. 그런데 양사의 주주들을 동등하게 취급할 수는 없다. 그들이 가졌던 기업(=주식)의 가치가 달랐으니까. 그래서 A사와 B사의 이전 기업가치를 기준으로 신생 기업 C사의 주식을 나눠준다. 예컨대 A사의 기업가치가 B사의 2배였다면 ‘합병 비율’을 ‘1(A사) 대 0.5(B사)’로 설정한다. 이에 따르면, A사 주식 10주는 C사 주식 10주로 교환된다. 그러나 B사 주식 10주는 C사 주식 5주와 바꿔야 한다. 계산해보면, C사 주식은 모두 150장(A사 기존 주주 100장, B사 주주 50장)이다. 그리고 C사에서 A사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은 66.7%(100/150)에 이른다. A사의 기업가치가 B사보다 높았던 덕분이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은 ‘1대0.35’다. 제일모직 주주는 주식 100주를 신생 합병회사 주식 100주로 바꾸게 된다. 삼성물산 주주는 100주로 합병회사 주식 35주를 받을 수 있을 뿐이다. 결국 제일모직의 절대적 대주주인 삼성 일가는 합병회사(와 그 자산인 삼성전자 지분)에 대한 지배력을 안전하게 간직할 수 있다.

그러나 6월4일, 복병이 나타났다. 바로 엘리엇이다. 삼성물산 지분 7.12%를 매입했다고 통보했다. ‘합병 조건이 공정하지 않아 주주이익에 배치된다’며 합병 반대 의사도 밝혔다. ‘합병 비율’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엘리엇은 양사의 ‘자산(assets)’으로 시비를 걸었다. 자산총액(기업이 보유한 토지, 공장, 시설, 증권 등의 가치)으로 보면, 삼성물산(29조5000억원)의 덩치가 제일모직(9조5000억원)보다 훨씬 크다. 이런데도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이 0.35밖에 안 된다는 것은 불공정하며,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친다고 했다. 한편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등 계열사 주식을 현물배당(배당금을 현금이 아니라 예컨대 삼성전자 주식으로 주주에게 지급)하자며 정관 개정도 요구했다. 사실상 삼성그룹을 해체하자는 소리다. 삼성물산에서 외국인 주주들의 지분은 26.63%다. 한국인 소액주주들 중에도 엘리엇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 삼성물산 임시 주총의 승패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국내 언론에서도 이 합병 비율(1대0.35)을 비판한다. 해외에서는 자산가치가 기준인데 유독 삼성만 어떤 ‘음모’로 시가총액(주가) 기반의 기업가치 산정을 해 삼성물산을 거저먹으려 한다고 암시하는 식이다. 이를 허용한 ‘자본시장통합법’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은 해외에서도 기본적으로 주식가치에 따라 기업가치를 산정한다. 주주에게 중요한 것은 ‘기업이 얼마나 많은 땅과 시설, 증권 등을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느냐’가 아니다. 회사가 그 자산들을 잘 활용해서 많은 수익을 올리고 주주에게 돌려줄 것인가가 핵심이다. 자산이 많아도 수익을 올리지 못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적은 자산으로도 큰 수익을 내는 기업도 있다. 금융시장이 기업평가에서 주가를 중시하는 이유다. 물론 특정 기업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수익을 올릴지 추정하기 힘들 때도 있다. 이 경우에는 자산이나 다른 비슷한 회사의 시세 등을 참조해서 해당 기업의 가치를 산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업가치 평가의 기본은 주식가치다. 자본시장통합법은 나름 글로벌 금융시장의 추세를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은 누구에게 표를 던질까? 국민연금은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9.92%)로서 ‘삼성 대 엘리엇’ 전투의 승패를 좌우할 수 있다. 재벌개혁을 주도해온 일부 시민단체들은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가치 제고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는 등의 성명서를 내고 있다. 엘리엇의 주장과 상당 부분 겹친다. 재벌개혁 운동을 주도해온 김상조 교수(한성대)는 〈경향신문〉 칼럼(6월17일)에서 “엘리엇이 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한국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삼성물산만이 아니라 삼성그룹의 미래에 대해서도 자신의 구상을 밝힐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엘리엇은 삼성그룹의 미래나 한국의 기업지배구조 개선 따위에는 별로 흥미가 없다.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엘리엇의 투자 행태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놀랄 만한 엘리엇의 투자 행태

엘리엇의 창립자는 변호사 출신인 폴 싱어 회장이다. 엘리엇은 ‘벌처(vulture:시체를 뜯어 먹는 탐욕스러운 독수리)’라 불리기도 한다.

아르헨티나는 지난해 국가부도 사태를 맞았다. 엘리엇 등 헤지펀드들이 사들인 아르헨티나 국채 때문이었다. 국채란 국가가 돈을 빌릴 때 발행하는 증서다. 지금 5만원을 국가에 빌려주면, 만기(예컨대 10년 뒤) 때 국채에 기입된 액면가 10만원을 지급한다. 국채에도 가격이 있고 상황에 따라 변동한다. 발행 국가의 재정이 악화되어 상환 가능성이 줄어들면, 국채 가격 역시 급락한다. 아르헨티나는 2001년에 950억 달러 규모의 국가부도를 냈다. 국채 가격이 바닥을 쳤다. 대다수 국가에는 채무자가 빚을 도저히 갚을 수 없는 경우 일부 금액을 탕감해주는 제도가 있다. 국제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자국의 국채를 매입한 해외 투자자들과 여러 차례 국제 협상을 벌여 채무의 70% 내외를 탕감받았다. 아르헨티나로부터 10만원을 받아야 하는 채권자가 3만원 정도만 받기로 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끝까지 버티는 채권자들이 있었다. 엘리엇 등 헤지펀드들이었다. 이들은 아르헨티나 국가부도 전후의 폭락한 가격으로 국채를 매입했다. 엘리엇은 액면가 6억3000만 달러(만기에 6억3000만 달러를 지급한다는 의미) 상당의 아르헨티나 국채를 불과 4800만 달러에 샀다. 그러나 ‘전액 상환’을 요구했다. 미국 법원에 소송도 제기했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헤지펀드들이 요구하는 15억 달러를 갚기 전에는 채무 조정된 다른 빚들도 상환할 수 없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일종의 ‘알박기’다. 지난해 6월, 미국 대법원은 엘리엇 등 헤지펀드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아르헨티나 처지에서는 헤지펀드들에게 상환금(액면가) 전액을 돌려주면, 이미 채무 조정을 약속한 다른 채권자들에게도 그래야 한다. 결국 2001년 이후 13년 만에 아르헨티나는 다시 국가부도를 당했다.

엘리엇은 더 허약한 국가들도 같은 방법으로 압박해왔다. 국가부도 상태인 가난한 나라의 국채를 싸게 사들인 후 해당 국가가 국제기구나 부자 나라의 원조금(물품)을 받기까지 기다린다. 불쑥 국채의 액면가 전액을 상환해달라고 요청하고 관련 소송을 낸다. 가난한 나라가 거부하면, 채권자 자격으로 그 나라의 무역 및 금융거래를 동결시킨다. 국가경제 시스템 전체가 ‘인질’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각종 동결을 풀어주는 조건으로 ‘전액 상환’을 요구하면 버티기 힘들다. 엘리엇은 콩고, 페루 등의 국채로 수백%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2000년 말 반정부 시위의 격화로 탈출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 전용기가 엘리엇에 압류된 상태였다. 후지모리가 마지막 내린 대통령 명령은 엘리엇에 5800만 달러(1140만 달러에 매입)를 상환하는 것이었다.

기업도 엘리엇의 좋은 사냥감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 백혈병 집단 발병 사태’를 떠올리게 하는 사건이 있다. 탐사보도 전문 기자인 그레그 팰러스트는 미국의 대표적 거부인 폴 싱어 엘리엇 회장이 10억 달러를 어떻게 벌어들였는지 생생하게 취재했다.

2000년대 초반 미국의 석면 기업인 오웬스코닝, USG 등에서는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석면증 증세를 호소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와 관련된 소송이 잇따르자, 석면 기업들은 내부 자금을 동원해 사망한 노동자나 환자들에게 배상하기로 했다. 사실상 파산 상태였다. 폴 싱어는 공짜나 다름없는 가격으로 오웬스코닝을 사들였다. 그는 오웬스코닝의 기업가치를 올릴 방법을 알고 있었다. 배상금을 줄이면 된다. 팰러스트는 싱어가 ‘석면증 환자들이 꾀병을 부리고 있다’는 캠페인을 일으켰다고 주장한다.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도 가세했다. 대통령이 직접 관련 법률 개정을 요구하거나 심지어 텔레비전에 출연해 ‘꾀병설’을 퍼뜨렸다. 폴 싱어 회장은 선거 때마다 공화당에 거액을 기부하는 열혈 지지자다. 석면 기업들의 배상금 액수는 계속 줄었다. 반비례해서 기업가치는 줄곧 올랐다. 싱어 회장은 오웬스코닝을 팔아 10억 달러 정도의 수익을 올렸다.
 

ⓒAP Photo2014년 7월 아르헨티나 디폴트 당시 한 신문에 ‘아르헨티나 아니면 벌처펀드’라고 적혀 있다.

글로벌 자동차 부품업체인 ‘델파이 사례’도 유명하다. GM과 크라이슬러 등에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델파이는 2005년 ‘파산 보호’를 신청한다. 이 무렵부터 엘리엇 등 헤지펀드들은 델파이의 회사채를 싼값으로 매집했다. 회사채는 회사가 발행하는 채권이다. 발행 기업의 재정 악화로 상환 가능성이 낮아지면 가격이 폭락한다. 팰러스트에 따르면, 엘리엇은 델파이 회사채 중 대다수를 액면가의 20% 정도로 사들였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GM과 크라이슬러가 파산 위기에 몰렸다. 2009년 취임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자동차 산업 구조 프로젝트’를 세우고 거액의 대출금을 지원하기로 한다.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는 사모펀드 운영자인 스티븐 레트너. 그가 구해야 하는 기업에는 델파이도 포함되었다. 델파이의 부품이 없으면 GM과 크라이슬러까지 망한다.

사실상 파산 상태였던 델파이의 실권자는 이 기업의 회사채를 대량 매집해둔 채권자들이었다. 엘리엇 등 헤지펀드들은 채권자로서 경영진도 장악하고 있었다. 레트너가 델파이를 살리려면, 채무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채권자(헤지펀드)들과 협상을 벌였다. 그레그 팰러스트는 저서(〈Billionaires & Ballot Bandits〉)에서 레트너의 회고록, 당시 델파이 CFO인 존 시언의 청문회 증언록 등을 통해 협상 과정에서 일어났던 일을 서술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엘리엇 등 헤지펀드들은 미국 자동차 산업을 인질로 수억 달러 규모의 공공자금(자동차 산업 구조 자금)을 요구했다. 수틀리면 델파이의 문을 닫겠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GM과 크라이슬러도 파산할 것이었다. 〈뉴욕 타임스〉 기자 마이클 콜커리는 이를 빗대어 ‘헤지펀드들에게 델파이는 또 하나의 제3세계인가?’라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제3세계 국가의 국채를 싸게 산 뒤 그 나라의 경제 시스템을 인질로 삼아 거액을 뜯어내는 행태를 델파이에게도 반복하고 있다는 풍자다. 심지어 사모펀드 운영자인 레트너마저 국가경제를 인질로 삼은 헤지펀드들에게 경악했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헤지펀드들은 자신들이 가진 델파이의 회사채를 주식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엘리엇 등은 델파이 회사채를 엄청나게 싼 가격으로 매입했다. 이런 회사채의 가치를 좀 더 높게 산정하는 반면 델파이 주식의 발행가를 낮게 책정한 뒤 교환하는 방식이다. 헤지펀드들은 델파이 주식을 1주당 불과 67센트로 사들여(회사채와 바꿔) 경영권을 장악했다. 채권자에서 주인(대주주)으로 변신한 것이다.

노조 무력화하고 본사를 ‘저세율 국가’에 등록

이후 엘리엇 등 헤지펀드들은 델파이의 노동조합을 무력화했다. 더욱이 헤지펀드들은 델파이 본사를 저세율의 영국에 등록했다. 이처럼 채무 없고, 노동비용 적고, 세금 안 내는 기업이니만큼 ‘기업가치’는 상승할 수밖에 없다. 헤지펀드들은 2011년 11월 델파이의 주식을 주당 22달러에 상장해서 각각 수억~수십억 달러 규모의 이익을 거둬들였다. 수익률이 무려 3000%다. 미국 정부가 델파이를 정상화하기 위해 퍼부은 공공자금은 모두 129억 달러로 추정된다. 이 돈이 헤지펀드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더욱이 이렇게 살려놓은 기업의 세금은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EPA2013년 상하이 모터쇼의 델파이 부스. 헤지펀드들은 델파이 회사채를 매집해 큰 이익을 거두었다.

엘리엇은 최근에도 미국의 거대 IT 기업 EMC, 주니퍼 네트웍스 등에 대한 투자로 화제가 되고 있다. 주가가 낮게 형성된 기업을 골라 그 지분을 매입하고, 언론 플레이를 통해 ‘주주이익을 위해 주가를 올리겠다’고 홍보한다. ‘기업 분리’ ‘다른 거대 기업과 합병’ ‘자사주 매입’ ‘비용 삭감’ 따위 방법이 있다. 기업의 주요 사업부를 독립 기업으로 만들어 분사시키거나, 심지어 해당 기업 전체가 다른 기업과 합병하면 들뜬 분위기를 통해 단기적으로 주가를 크게 올릴 수 있다. 그러나 해당 기업이 장기적으로 건강한 경영을 지속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또한 기업이 내부 유보금으로 시중에 풀려 있는 자사주를 사들이면 그만큼 해당 기업의 총주식수는 줄고 이에 따라 주가가 오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기업의 투자는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고, ‘비용 삭감’의 주요 대상은 노동자들이다.

엘리엇의 ‘명성’은 다른 주주들을 결집해서 경영진을 타격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실제 확보한 지분보다 훨씬 큰 힘을 행사할 수 있다. 엘리엇은 단지 2%의 지분으로 EMC 경영진에 분사, 합병, 비용 삭감 등을 압박하다가 결국에는 이사 두 명을 경영진으로 집어넣는 데 성공했다. 그 대가로 EMC 경영진과 오는 9월까지 ‘평화협정’을 맺은 상태다. 한동안 EMC를 휘젓지 않겠다는 의미다. 주니퍼 네트웍스 역시 엘리엇(지분 8.3%) 측의 이사를 받아들이면서 비용 삭감, 30억 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 조직 축소 등에 동의했다.

오는 7월17일, 삼성 이건희 가문과 일전을 벌일 엘리엇은 이런 조직이다. 삼성이 그동안 국내에서 사용해온 ‘정·경·언 유착’ ‘삼성 장학생’ ‘국민경제를 위해 삼성을 살리자는 식의 호소’가 통하지 않는 상대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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