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트램폴린 〈Trampauline〉

음악을 이루는 3대 요소는 멜로디와 비트, 사운드다. 이는 한국 대중음악에서 강조되는 순서의 열거다. 멜로디가 앞에 나서고 비트가 그 뒤를 받치며 사운드는 이들을 감싸 안는 형국이다. 그리고 사운드는 멜로디를 선연하게 드러내기 위한 병풍 구실을 하는 경우가 많다. 사운드 그 자체에 주력했던 시도의 결과물에 그리 만족했던 기억은 별로 없다. 이는 한국 대중음악과 서구·일본 대중음악의 차이이기도 하다. 솔직히 말하건대, 만약 이 앨범을 아무런 정보 없이 들었다면 당연히 유럽 어드메에서 발매된 신인의 음반이라 믿었을 것이다. 트램폴린은 차효선이라는 여성 뮤지션의 원맨 밴드다. 그동안 홍대 앞 라이브 클럽에서 꾸준히 공연을 해오다가 조용히 데뷔 앨범을 냈다. 아날로그 신시사이저를 활용해 디지털로 뽑아내는 최근의 일렉트로니카 음악에서는 좀체 느낄 수 없는 인간적 정취를 내는 이 앨범의 미덕은 앞서 말했듯 사운드에 대한 밀도 있는 집중이다. 다채로운 음원이 적절한 층을 쌓으며 파스텔로 그려낸 점묘화를 만든다. 각각의 소리가 멜로디와 비트의 경계를 넘나들며 유기적 모색의 향연을 펼친다. 여기에 간과할 수 없는 보컬 멜로디가 얹히며 이 앨범은 일렉트로니카 팝의 수작으로 격상된다. 한국 대중음악의 문법책에 또 하나의 챕터가 추가됐다. 트램폴린이라는 저자의 이름이 붙은.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전시오늘의 한국 미술-미술의 표정전5월22일~7월6일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02-580-1300·1257

과천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과 세종로에 있는 세종문화회관이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관과 공연장이라면, 예술의전당은 미술관과 음악당·오페라하우스·서예박물관·자료관 등이 한데 어우러진 서울의 대표 복합 문화공간이다. 재단법인 체제로 운영되는 예술의전당 산하 단체인 미술관의 정식 명칭은 한가람미술관이다. 대규모 전시 공간을 갖춘 한가람미술관에서는 그동안 각종 협회전과 공모전을 비롯한 대형 전시가 주로 열렸다. 해마다 방학 시즌이면 학생들 방학숙제용으로 해외 유명 작가의 이름을 내걸고 열리는 이벤트성 전시 말이다. 한가람미술관이 이렇게 운영될 수밖에 없었던 속내를 들여다보면, 입장 수입과 대관을 통해 수익을 내야만 하는 여건 때문이란 걸 알 수 있다.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부랴부랴 건립된 예술의전당이 올해로 개관 2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열리는 〈오늘의 한국미술-미술의 표정전〉은 한가람미술관에서 오랜만에 자체 기획으로 마련한, 볼만한 전시다. 미술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그 이름이 익숙할 만큼,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 46명은 현재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유명 작가이다. ‘형태’ ‘빛과 색채’ ‘움직임’ ‘공간’으로 나눈 전시 구성은 다소 느슨하고 형식적이지만, 일반인이 보기에 큰 부담이 없다. 

이준희 (월간 미술 기자)


연극
휴먼 코메디9월28일까지 대학로 SM틴틴홀02-766-0570

요즘 대학로에 쏟아지는 희극은 리듬과 템포가 ‘살인적으로’ 빠르다. 인터넷과 텔레비전의 순간 반응에 익숙해진 관객은 자기들을 더 빨리, 더 자주 웃기기를 원하고, 관객의 반응에 민감한 배우들이 이를 따라가면서 본래 희극이 가지고 있던 긴 템포와 호흡은 쉽게 무너져버렸다. 사실 무대 위의 웃음은 눈물보다 지극한 감정이었고, 시대를 풍미한 희극배우들에게는 관객을 깊은 곳까지 끌어내렸다가 끌어올리며 감정의 흐름을 조율할 만한 힘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일명 ‘빨강코’ 연극으로 알려진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휴먼 코메디〉는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진짜’ 희극의 힘을 보여준다. 1999년 초연 이후 꾸준히 무대에 오르며 유행에 민감한 관객에게도 변함없이 사랑받는 작품. 〈휴먼 코메디〉는 애초에 관객을 웃기려고 만든 공연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떤 때 웃고, 왜 웃는지를 연구하고 실험한 결과물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는 웃음의 타이밍과 움직임에 대한 고찰, 그리고 웃음 뒤에 남는 감정에 대한 고민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엉뚱함·기발함으로 승부하고 억지스러운 말장난이 주를 이루는 요즘 개그 연극과는 차원이 다르다. 

김주연 (객석 기자)


뮤지컬쓰릴 미6월28일~10월12일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랙02-744-4337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법대에 진학한 명문가의 두 청년이 끔찍한 살인 사건을 저지른다. 그들은 어린아이를 유괴해서 살해한 후 완전범죄를 위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신체를 훼손했다. 무료한 삶에 좀더 강한 자극을 주기 위해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살해 동기는 그들이 저지른 범행보다 더욱 끔찍하다. 1924년 미국 시카고에서 벌어진 이 실화는 인간의 광적이고 잔인한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어 많은 영화의 소재로 사용되었다. 스티븐 돌기노프 역시 이 사건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뮤지컬 〈쓰릴 미〉에서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살인을 저지른 두 청년의 관계다. 돌기노프는 두 인물의 이름을 버리고 ‘나’와 ‘그’라는 두 인물만을 등장시켜 두 사람의 관계를 중심으로 살인 사건을 재구성한다. 〈쓰릴 미〉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누구를 조종하는가’ 하는 문제다. 더 강한 자극을 위해 범죄의 수위를 높여가는 ‘그’는 자기를 완전히 이해하는 유일한 인물인 ‘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나’는 그런 점을 이용해 ‘그’에게 사랑을 요구한다. 이 작품에서 유일한 악기인 피아노는 제3의 인물 구실을 톡톡히 하며 둘 사이의 심리적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박병성 (더 뮤지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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