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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정치 검사가 멸종한 게 아니었나

공기업 민영화, KBS 사장 교체, 광우병 파동 등 사회적으로 중요한 국면마다 검찰이 청와대의 뜻을 받들어 설거지를 하는 모양새를 취하자 ‘정치 검찰’이라는 단어가 부활했다.

주진우 기자 ace@sisain.co.kr 2008년 06월 30일 월요일 제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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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6월24일 국무회의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과 김경한 법무장관.
지난해 여름 유명인 ㄱ씨가 기자를 찾았다. 그는 정치 검사들이 표적 수사를 벌인다고 주장했다. 대구 출신이 진보 진영을 도와주는 것을 트집 잡아 고려대 출신 검사들이 무혐의로 종결된 사건을 다시 들추어서 괴롭힌다는 것이다. ㄱ씨는 “영남권, 고려대 출신 검사들이 조직적이고 지능적으로 이명박 후보의 선거운동을 한다. 정권을 잡으면 공안 정국으로 몰고 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ㄱ씨는 녹음해놓은 검사와의 대화 내용을 들려주었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검사의 목소리는 고압적이었다.
“지금 우리나라가 반만년 역사상 가장 잘사는 시기다. 항상 전쟁에 시달리고 중국에 빌붙어서 …. 여기서 한 번 더 깽판 치면 이제 다시 기회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 때 국민은 검증 안 된 사람을 뽑으면 5년간 피해를 본다는 학습을 했다.”
“정치인한테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절에 가서 고기 찾는 격 아니냐.”
“여자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역학 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이명박이 된다고 했다.”
검찰 조사실에서 검사가 피의자를 상대로 하는 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ㄱ씨에게 청구된 두 차례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그러나 그 검사는 바람대로 서울지검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3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이 검사들과 마주앉았다. ‘검사와의 대화.’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검사들은 거침없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대들었다. 검찰의 정치 중립을 위해 인사권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노 대통령은 얼굴을 붉혔다.

권력의 한 축으로, 독재 정권에 충성을 다하던 검찰이 갑자기 정치 중립 문제를 거론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검새스럽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권력에서 멀어지려는 검찰의 노력이라고 평가하는 이도 있었다. ‘검사와의 대화’는 2004년 현직 대통령에 대한 대선자금 수사와 더불어 검찰 독립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연합뉴스
위는 2007년 10월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고검장 회의.
‘정치 검사’의 시대는, 그리고 검사가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하는 시대는 종언을 고하는 듯 보였다. 참여정부에서 정치 검사라는 말은 자취를 감추었다. 현 정권 인사들도 노무현 정부가 권력기관을 멀리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했다.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정권이 검찰, 경찰, 국정원을 권력의 시녀로 삼지 않겠다고 노력한 점이 돋보인다. 대통령이 권위를 탈피해서 결과적으로 시민 권력의 성장을 가져왔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새 정부 출범과 더불어 사라졌던 ‘정치 검찰’이라는 말이 다시 고개를 든다. 정권 초 검찰 고위직을 임명할 때마다 삼성에서 돈을 받은 것으로 거론된 이른바 ‘떡값 검사’가 요직을 차지했다. 공기업 민영화, KBS 사장 교체, 광우병 파동 등 사회적으로 중요한 국면마다 검찰이 청와대의 뜻을 받들어 설거지를 하는 모양새를 취하자 ‘정치 검찰’이라는 단어가 부활했다. 정치 검찰의 부활로 인권은 후퇴하고, 민주주의의 성과가 훼손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도 많다.

“나를 잡아가라” 누리꾼 자수 행렬


지난 6월20일 김경한 법무장관은 조선·중앙·동아에 광고를 주지 말라는 운동을 중대한 범죄로 규정하고 전면 수사하겠다고 나섰다. 6월17일 이명박 대통령의 “인터넷은 약이 아닌 독이 될 수 있다”라는 발언에 뒤따르는 조처였다. 검찰은 발 빠르게 6월24일 전담수사팀을 꾸렸다. ‘인터넷 신뢰저해 사범 전담수사팀’이라 이름을 짓고, 구본진 첨단범죄수사부장(팀장)과 검사 4명(형사부 2명, 첨단범죄수사부 2명)으로 팀을 꾸렸다.

불공정 보도에 항의하기 위해 네티즌이 자발적으로 그 신문에 광고를 낸 기업에 압력을 가하자고 나섰다. 항의가 다소 거칠었지만 위력을 행사하지 않았고, 고소·고발도 없는데 검찰이 나서는 것은 정치 검사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목소리가 높다. 검찰이 수사 방침을 밝히자 검찰청 게시판에는 ‘나를 잡아가라’는 네티즌의 자수 행렬이 이어졌다.

검찰의 행보는 객관성과 일관성이 결여돼 있다. 2005년 11월 황우석 박사의 연구 결과가 조작됐다는 의혹을 제기한 MBC <PD수첩>은 단 한편의 광고도 없이 방송됐다. 황씨를 지지하는 네티즌이 MBC에 광고를 싣지 말자는 운동을 벌였기 때문이다. MBC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 운동의 파급 효과는 <PD수첩>뿐만 아니라 MBC 모든 프로그램으로 확대됐다. 거의 1년 가까이 타격을 입었다”라고 말했다.

   
ⓒ시사IN 한향란
6월13일 조·중·동 구독 거부 운동을 벌이는 시민들(위).
동일한 상황의 사건에 다르게 대응하는 이유에 검찰은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지난 6월20일 대검 안상돈 형사1과장은 ‘네티즌의 광고주 압박’ 사건에 대해 브리핑했다. 한 기자가 “과거 황우석 교수 사태 때 MBC에 광고하던 기업에 시청자의 압박이 있었는데 그때도 인지 수사가 가능했던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안 과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6월23일 농림수산식품부가 명예훼손 혐의로 <PD수첩>을 수사 의뢰한 사건에 대해서도 검찰은 별도 전담팀을 꾸릴 정도로 열성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 임수빈 부장검사를 팀장으로 하고, 수사 검사 4명을 보강해 전담수사팀을 구성했다. 형사2부 소속 검사 7명 중 5명이 투입되는 초강경 모드다. 명예훼손 사건 수사로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검찰이 정권 코드 맞추기에 나선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까닭이다. 

정연주 한국방송(KBS) 사장에 대한 검찰의 소환 방침은 검찰이 정권을 향한 충성 경쟁에 뛰어든 인상마저 준다. 정 사장에 대한 감사원·국세청의 압박과 맞물려 ‘표적 소환’ 논란을 키운다.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정 사장 사퇴 발언을 한 후 검찰은 소환장을 보냈다.

   
검찰이 단속에 나서자 ‘자수’하는 누리꾼의 글이 검찰 게시판을 도배했다.
2005년 KBS는 세무 당국이 부과한 법인세 2300억원이 부당하다고 소송을 냈다. 그리고 1심에서 승소했다. 항소심에서 KBS는 재판부의 중재로 500여 억원을 환급받기로 합의하고 소송을 취하했다. 그런데 검찰이 이를 배임죄로 문제 삼아 정 사장을 소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렇다면 조정에 나선 법원은 배임죄를 성사시킨 배후가 되는 셈이다. 정 사장의 변호인 측은 “서울고법이 조정을 권하고 KBS와 과세관청이 수락한 조정안은 합리적이었다”라고 말했다.

정 사장이 소환에 불응하자, 검찰은 정 사장을 불구속 기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동안 검찰은 언론사 사주와 사장 등의 의혹에 대해서는 범죄 혐의가 명백해질 때까지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법원의 한 관계자는 “검사들이 조금 오버하는 면이 있다. 정 사장이 유죄면 외환위기의 책임자들은 사형감이다”라고 말했다.

검찰 주변에는 ‘공안’ 소리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검찰 수사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이가 많았다. 특히 공기업 수사가 그랬다. 정부에서 공기업 사장들에게 사표를 요구한 직후 검찰은 산업은행, 증권선물거래소, 자산관리공사, 석유공사 등 20여 개 공기업에 대한 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역량을 총동원했다. 수년 된 첩보까지 끌어모았다. 검찰 내 최고 수사기관인 대검 중수부가 직접 나섰다. 대검 중수부가 수사 역량을 모두 투입한 것은 2006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입 의혹사건 이후 약 2년 만이다. 최재경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은 “비리가 중대하여 국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은 대검 중수부에서 직접 수사할 방침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없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시기와 방법 등이 정치 검찰이라는 오해를 살 만하다. 세련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한 법원 관계자는 “영장을 청구하는 검찰 관계자조차 ‘영장이 떨어지면 안 되는데’라며 공기업 수사가 무리하다고 평가한다”라고 말했다. 검찰의 공기업 수사가 두 달 넘게 진행됐지만 공기업 사장 몇 명이 자진해서 옷 벗은 것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수사의 진정성을 두고 뒷말은 더욱 커진다.

하지만 검찰 주변에서는 ‘공안’ 소리만 들린다. 6월30일 임채진 검찰총장 주재로 전국공안부장 회의가 소집된다. 지난 5월27일 대검찰청 공안부(부장 박한철)는 공안대책협의회를 긴급 소집했다. 5월25일에는 서울중앙지검 차원에서 국가정보원, 경찰 등이 촛불시위에 대해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연 바 있다.

6월19일 특별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뒷산에 올라 촛불을 보며 자책했고 뼈저린 반성을 했다”라고 밝혔다. 6월24일 청와대 대통령실 개편 이후 처음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보니 경찰밖에 없더라”고 말했다고 한다. 경찰은 힘이 났는지 연일 강경 진압에 나선다. 검찰은 힘을 내야 하는지 계속 강경 수사에 앞장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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