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무소 아백제(a0100z)의 성상우 소장은 요즘 몸에 없던 근육이 붙었다. 산에서 직접 나무를 해오기 때문이다. 성 소장은 아내, 두 아들과 함께 지난해 12월 직접 설계하고 시공한 집으로 이사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두창리에 위치한 ‘문턱이 닳는 집’이다. 중정이 있는 ㄷ자형 2층 가옥이다. 성 소장은 집 한쪽에 구태여 황토방을 하나 만들었다. 아궁이에 땔감을 넣어서 구들장을 데우면 아랫목부터 서서히 뜨거워지는 구식 황토방이다.

황토방을 온전히 데우려면 하루 종일 걸린다. 산에서 나무를 해온다. 장작을 팬다. 불을 땐다. 불도 한꺼번에 지르면 안 된다. 두세 시간 간격으로 조금씩 장작을 넣어줘야 새벽까지 온기가 유지되는 은근한 불길이 된다. 성 소장은 거의 매일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온다. 온종일 황토방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시사IN 조남진위치:경기도 용인시 원삼면 두창리 / 대지 면적:504㎡(152.46평) / 건축 면적:114.47㎡(34.63평) / 건폐율:22.71% / 연면적:114.47㎡(34.63평) / 용적률:22.71% / 규모:지상 1층, 다락층 / 용도:단독주택 / 구조:중목 구조 / 마감:1층 외벽-스타코, 아연도 골강판, 전벽돌, 낙엽송 판재, 폴리카보네이트, 지붕-아연도골강판, 폴리카보네이트, 내부-미송합판, 합판마루, 콩댐 장판, 벽지, 삼나무 루버 등 / 시공사:건축주 직영 / 설계 및 감리:아백제(a0100z) / 건축가 성상우·오혜정:성상우는 ‘a0100z’ 소장으로서 일본 와세다 대학 건축학 전공, 2000년 귀국 후 문화시설, 아파트, 타운하우스 ‘판교 월든힐스’ 등을 설계했다. 파트너이자 아내인 오혜정과 강촌 공방집, 동백동 층층집 등을 함께 설계했다.

건축가가 나무꾼이 다 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 때문이다. 황토방은 손님들을 위한 사랑방이다. 성 소장 부부와 두 아들은 본채 2층에 마련된 침실에서 나란히 잔다. 매트리스 네 개만 놓아둔 소박한 침실이다. 황토방에 모시는 손님들은 대부분 성 소장의 예전 고객이다. 성 소장은 여러 주택을 설계해왔다. 강촌 당림리 공방집과 동백 삼각계단 층층집, 안양 강재정사와 가평 오빗하우스는 집을 짓고 싶어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집들이다. 모두가 도시 근교에 위치한 친환경 주택이다.

성상우 소장은 집을 짓기 전에 반드시 건축주와 친구가 되려고 애쓴다. 건축주와 건축가라는 갑을 관계만 가지고는 일을 시작하지 않는다. 계약을 맺으면 일단 여행을 함께 간다. 집 얘기보다 인생 얘기를 더 많이 나눈다. 인간적 교감을 바탕으로 설계에 들어간다. 성 소장은 말한다. “이렇게 저렇게 집을 짓고 싶어 하는 이유는 이런저런 인생을 살고 싶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어떻게 집을 짓는지 묻기보다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묻는 게 맞아요.” 같이 여행하고 술 마시다 보면 자연스럽게 평면도가 그려질 때가 많다. 건축주가 원하는 삶의 구조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성 소장은 한학에 조예가 깊다. 문턱이 닳는 집에 있는 성 소장의 작업실만 해도 건축 관련 책보다 〈명심보감〉과 사서삼경으로 빼곡하다. 예전 살던 소도시에서는 서당을 열고 훈장도 했다. 건축주와 함께 집을 설계하는 과정은 종종 동양철학을 바탕으로 한 인생 상담과 비슷해진다.

짓고 싶은 집의 원형이 들어 있는 책, 〈월든〉

남의 집만 지어주던 성 소장이 자기 집을 짓겠다고 나서자 예전 건축주들이 앞 다퉈 도와주러 나섰다. 집이 다 지어졌다고 끊기는 비즈니스 관계가 아니다. 문턱이 닳는 집은 땅값에 공사비까지 꼬박 3억원이 들었다. 그나마 설계비가 안 들어서 그 정도였다. 돈이 많지 않은 성 소장 부부에게는 그것도 무리한 액수였다. 입주할 때쯤에는 정말로 집의 쌀독이 비었다. 그때 예전 건축주들이 먹을거리를 싸들고 응원을 오곤 했다. 대신 성 소장은 황토방에 불을 지폈다. 정성을 들여 손님을 맞았다.

그렇게 성상우의 건축 공동체 같은 게 만들어졌다. 비슷한 삶을 꿈꾸다 이제는 같은 건축가가 지은 일맥상통하는 주택에서 사는 닮은꼴 사람들이 매주 문턱이 닳는 집에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원래 건축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공간을 설계하는 일이다. 공간을 공유하다 보면 생각을 공유하고 삶을 공유하고 결국 문화를 공유하게 된다. 배타적인 건물투성이인 도시에서는 건축 공동체가 해체된 지 오래다. 문턱이 닳는 집은 단순한 주택이 아니다. 건축 공동체의 사랑방이다.

성상우 소장은 건축가 승효상의 이로재에서 일했다. 승효상이 말한 빈자의 미학을 성 소장은 자기 방식으로 승화시킨다. 매일 아침 사서삼경을 강독하며 찾아낸 화두는 겸손이다. 겸손을 화두로 지은 집이 문턱이 닳는 집이다.

문턱이 닳는 집은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런 건 고관대작의 집이다. 문턱은 집 안도 밖도 아니다. 문턱 위에 앉아서 문턱이 닳도록 집사람과 바깥사람이 대화할 수 있는 집을 만들고 싶어 했다. 집의 황토방이 문턱인 셈이다. 오늘밤 황토방에 머물 귀한 손님을 위해 나무를 해오고 불을 올리다 보면 겸손해진다. “겸손한 집을 지으려면 저부터가 겸손한 집에서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없는 살림에 이 집을 지었죠.”

 

ⓒ시사IN 조남진문턱이 닳는 집의 1층은 단순하게, 2층은 복잡하게 지어졌다. 성상우씨는 아이들에게 ‘캠핑하는 집’을 선물하고 싶었다고 한다.

문턱이 닳는 집은 1층은 단순하게 2층은 복잡하게 지어졌다. 1층은 크게 부엌과 아이들 공부방과 작업실로 이뤄져 있다. 2층은 미로 같다. 계단을 오르면 작은 문들이 연달아 나온다. 문을 열 때마다 비밀 다락방이 나타난다. 아직 쓰임새가 정해지지 않은 방도 있다. 그건 자라날 두 아들의 몫이다. 당장은 동네 아이들의 비밀 아지트로 쓰이고 있다.

사실 두창리라는 마을 자체가 독특한 교육공동체다. 두창초등학교라는 혁신학교를 중심으로 산과 들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어 하는 부모들이 모여들었다. 집 인근에도 한창 작은 주택들이 지어지고 있다. “마을의 어원은 모으다는 뜻의 모을이에요. 몸도 모으고 집도 모으는 거죠.” 두창리에 학부모들이 모여들고 두창리집 다락방에 동네 아이들이 모여들고 두창리집 황토방에 건축주들이 모여든다.

성상우 소장이 사서삼경 말고 읽고 또 읽는 책이 한 권 더 있다. 헨리 제임스 소로의 〈월든〉이다. 〈숲속의 생활〉이라는 제목의 옛날 문고판도 가지고 있다. 〈월든〉에는 성상우가 꿈꾸는 삶과 짓고 싶은 집의 원형이 들어 있다. 안빈낙도다. 문턱이 닳는 집은 딱 〈월든〉처럼 지어졌다. “건축이 삶의 길을 제시할 수 있다고 믿어요. 집으로 인해 삶이 바뀔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성 소장은 공황장애를 오래 앓았다. 일본 와세다 대학 건축학과를 나온 엘리트가 한학에 빠져든 것도, 집에서 건축 설계를 하게 된 것도 마음의 병 때문이었다. 지금은 많이 치유됐다. 삶 앞에서 겸손해지는 법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문턱이 닳는 집은 살면서 깨달은 겸손의 철학이 배어 있는 집이다. 집 짓는 나무꾼 성상우는 오늘도 산으로 나무하러 간다.

기자명 신기주 (〈에스콰이어〉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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