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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재건도, 변혁도 아니다. 리셋만이 유일하게 상상 가능한 사회가 되었다. 이는 다른 모든 가능성이 봉쇄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엄기호 (덕성여대 문화인류학 강사) webmaster@sisain.co.kr 2015년 02월 11일 수요일 제3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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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한 대학에서 교양과목을 가르칠 때의 일이다. 주로 세상의 부정의와 그 구조적 원인, 그리고 연대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는 강의였다. 수업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학생이 수업이 흥미롭다며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가르치는 처지에서야 수업에 열심히 임해주니 기쁜 일이었지만 그 이유가 다소 독특했다. 그 학생은 내가 하는 말에 하나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세상이 애초부터 정의롭지 않았기 때문에 정의와 부정의를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로지 ‘힘’이라고 말했다.

그가 왜 ‘극우적인’ 사고를 하는지 궁금했다. 그는 매우 솔직하게 이야기해줬다. 학교를 다닐 때 왕따였고 학교폭력 희생자였다. 학교를 다니는 하루하루가 고역이었다. 육체적인 폭력과 모욕과 멸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에게 모욕을 가하는 그들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말을 하면 더 큰 폭력이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는 그들이 아무리 자기를 짓밟아도 결코 짓밟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건 생각이었다. 입을 다물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으면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더라도 그들은 알 수도 없을뿐더러 그것만은 억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맞을 때나 무시당할 때, 그리고 모욕을 당할 때도 늘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생각에 ‘힘’이 있다고 강조했다. 현실에서는 남이 나를 때리거나 무시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고 그저 자기 자리에 유령처럼 가만히 앉아 비실비실 웃지만 머릿속으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세상 자체를 날려버렸다. 한마디로 그는 세상을 리셋(reset)하고 싶어 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박해성 그림</font></div>  
ⓒ박해성 그림

그때서야 그가 말하는 힘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가 세상은 정의가 아니라 힘이라고 했을 때 그 힘은 자기를 괴롭히던 자들이 가지고 있던 그런 자잘한 힘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를 괴롭히던 자들 중의 하나가 되려는 욕망을 보인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힘은 그런 힘마저 없애버리는, 힘 자체를 리셋하고 세상을 원점으로 돌리는, 순수하게 파괴하는 그런 힘이었다. 힘으로부터의 배제는 아예 세상 자체를 리셋하는 힘을 상상하게 했다. 그 힘만이 그가 자유롭게 상상하고 그를 자유롭게 하는 힘이었다.

세상을 리셋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이처럼 명시적인 배제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만은 아닌 것 같다. 이 학생의 이야기를 하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도 그런 생각을 한다고 고백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망치는 것이건 창조하는 것이건, 그 힘으로부터 배제되어 자신은 그저 무력하게 자기 자리에 앉아 있기만 한다고 느끼는 세상이다. 이런 근원적인 무기력감에서 세계를 다루고 싶은 방식이 바뀌었다. 가난과 전쟁의 폐허에서 나라를 다시 만드는 ‘재건’이 아니다. 그렇게 재건한 국가가 부정의하고 불평등하기에 체제의 전환을 꿈꾸는 ‘변혁’도 아니다. 세계 자체를 원점으로 날려버리는 리셋인 것이다.

정치의 무능력을 감추는 알리바이가 된 ‘교육’

배제와 배제에 따른 무력감이 깊어질수록 세상을 리셋하는 것이 차라리 유일한 길처럼 보인다. 그것이 현실적이어서가 아니라 유일하게 상상 가능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제자리에 앉아 온갖 폭력과 모욕을 무기력하게 당하던 그 학생에게 유일하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게 바로 ‘그것’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가장 허무주의적인 것만이 상상된다는 사실은 이미 그 사회의 다른 모든 가능성이 다 봉쇄되었다는 뜻이다. 누군가는 이 상황이 근본적 변혁의 기회라고 환호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것은 그 ‘변혁’의 가능성마저 막히고 포기되어버린, 지극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교육의 역할을 강조한다. 교육을 통해 허무주의적 폭력에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이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전제가 있다. 그것은 세상을 바꾸고 고칠 수 있는 힘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는 것이다. 물론 그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교육의 몫이 아니라 정치의 몫이다. 그렇지 않다면 교육은 끊임없이 반(反)정치로 몰려가고 있는 정치의 무능력을 가리는 알리바이로만 호출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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