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이브 저녁에 서울 광진구 중곡동 한 술집에서 화재가 났다. 불은 17분 만에 진화되었지만 전동 휠체어를 쓰던 뇌병변장애 3급인 박홍구씨(38·사진 맨 오른쪽)는 출입구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경찰은 일산화탄소 중독이 사인이라고 밝혔다. 화재 당시, 아직 영업 전이던 가게에는 박씨 홀로 있었다. 그는 12월19일부터 술집 안쪽에 딸린 3.3㎡ 남짓한 쪽방에서 숙식을 해결해왔다.

박씨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불편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우체국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모순을 느끼면서 2001년부터 활동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노동당 당원인 그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등에서 장애인 등급제 폐지, 장애인 노동권·이동권 보장 등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4월, 홀로 집 안에 있던 중복장애 3급 송국현씨(53)가 화재로 숨지자 해당 경찰서에 찾아가 장애인 활동보조인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전진호 제공

가족들은 박씨가 의지와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평소 박씨는 어머니와 남동생의 생계를 책임졌다. 그의 동생 박종구씨(37)는 “같은 뇌병변 3급 장애인이지만, 형이 나보다 더 불편했다. 그런데도 형은 처지를 비관하던 나를 위로하곤 했다”라고 말했다.

거동이 불편한 박씨는 활동 지원 서비스가 절실했지만, 그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현재 활동 지원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는 중증장애인 범위는 1∼2급 장애인으로 한정돼 있다. 12월27일 박씨는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벽제추모공원에 안치됐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