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은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풍성해진 해였다. 먼저 정부의 ‘창조경제’ 드라이브를 타고 창업에 도전하는 젊은이가 많아졌다. 창업을 원하는 사람들이 모여 콘퍼런스, 세미나 등 모임을 열고 함께 일할 공간까지 지원하는 창업지원센터도 속속 생겼다. 서울 강남 테헤란로만 해도 2013년 선릉역 인근에 문을 연 디캠프에 이어 2014년에는 스타트업얼라이언스, 마루180 등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2015년 초에는 구글의 창업지원센터인 캠퍼스서울이 삼성역 인근에 문을 열 예정이어서 2000년의 테헤란밸리 열기를 재현하고 있다.

점점 더 좋은 인재들이 창업에 뛰어들고 있다는 사실도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청신호이다. 이공계 출신 엔지니어는 물론이고 대기업 출신, 컨설팅 출신, 유학파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인재들이 스타트업에 뛰어들고 있다. 아래에 소개하는 업체들은 이런 인재들이 창업한 스타트업 중 2015년 도약이 기대되는 곳이다.

ⓒ드라마앤컴퍼니 제공명함 관리 앱 ‘리멤버’를 내놓은 드라마앤컴퍼니는 보스턴컨설팅에서 6년간 일했던 최재호씨가 대표로 있다. 명함 정보를 사람이 직접 입력해준다는 역발상으로 성공했다.

 드라마앤컴퍼니

명함 관리 애플리케이션 ‘리멤버’를 내놓은 드라마앤컴퍼니는 명함 관리에 골머리를 썩이는 한국의 직장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 회사는 보스턴컨설팅(BCG)에서 6년간 일했던 최재호씨가 대표로 있다.

다른 명함 관리 소프트웨어 제품들이 OCR 같은 문자인식 기술을 이용해 정보를 입력하는 데 비해 리멤버는 명함 정보를 사람이 직접 입력해준다는 역발상으로 성공했다. 문자인식 기술로 명함 내용을 입력하는 방식은 완벽하지 못해 결국 제대로 입력되었는지 사람이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리멤버 앱으로 명함을 사진으로 찍어두면 리멤버에서 고용한 파트타임 직원들이 하나하나 원격으로 명함 사진을 확인해서 정보를 입력해준다. 그리고 리멤버 앱 이용자는 이렇게 클라우드에 올려놓은 명함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필요할 때 자유자재로 검색해서 볼 수 있다.

ⓒ드라마앤컴퍼니 제공명함 관리 앱 ‘리멤버’
개인적으로 필자도 지난 몇 년간 다양한 명함 관리 소프트웨어를 사용해보려 했지만 항상 실패했다. 정확도가 떨어지거나 독특한 양식의 명함은 제대로 읽지 못했다. 명함을 일괄적으로 받아서 입력해주는 서비스도 있었지만, 매번 모아서 보내고 받는 과정이 번거로워서 불편했다. 그런데 리멤버는 명함을 받을 때마다 사진으로 찍어두기만 하면 자동으로 정확하게 입력되어 아주 편리했다. 쌓여 있는 명함 정돈이 골치 아프다는 사람들의 경우는 택배로 명함을 통째로 수거해 한꺼번에 입력해주기도 한다. 필자도 덕분에 명함 2000여 장을 리멤버 앱에 넣어 다니면서 필요할 때 수시로 꺼내서 본다. 업무상 처음 만나면 필수적으로 명함부터 교환하고 보는 한국 비즈니스 문화를 잘 반영한 앱이다.

2014년 초에 선보인 리멤버 앱은 비즈니스맨들 사이에 소문을 타면서 급격히 인기가 높아졌고 현재 600만 장이 넘는 명함이 입력되어 있다. 드라마앤컴퍼니는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 한국과 일본의 벤처캐피털에서 약 30억원을 투자받았다. 리멤버가 한국에서 자리를 잡는다면 비슷한 명함 교환 문화를 가진 일본과 중국 등 주변 국가로 확장해 나가는 것도 어렵지 않으리라 전망된다.

 팀블라인드

블라인드는 팀블라인드라는 스타트업이 만든, 직장인을 위한 폐쇄형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다. 일반 대중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생〉의 장그래 같은 대기업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꽤나 입소문이 난 서비스다. 맛집 정보 서비스인 윙버스를 창업하고 네이버, 티켓몬스터 등에서 일했던 문성욱·정영준 대표가 “직장인들이 회사 눈치 보지 않고 솔직하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라고 의기투합해 2013년 말 처음 선보였다.

ⓒ팀블라인드 제공팀블라인드에서 만든 폐쇄형 SNS ‘블라인드’(위)는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이 처음 알려진 곳으로 유명하다.
블라인드의 서비스 가입과 인증은 모두 소속 회사 이메일로만 가능하다. 그래서 외부인은 그 안에서 어떤 대화가 오가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독특한 익명 커뮤니티다. 하지만 회사에서 운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회사 눈치를 보지 않고 회사 생활의 애환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다. 같은 업종에 근무하는 사람들끼리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라운지’라는 기능도 인기다.

2013년 12월에 서비스가 시작된 이후 네이버, 넥슨, NC소프트 등 IT 기업부터 시작해 이제는 KT, LG전자, 대한항공, 아모레퍼시픽, 신한은행 등 건설·중공업·은행·방송·제조·유통·전자 분야까지 국내 대기업 76곳의 직원들이 블라인드를 사용하고 있다.

블라인드는 특히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는 계기를 제공해 화제를 모았다. 지난 12월5일 뉴욕 JFK공항에서 벌어진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이 발생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내용이 블라인드의 대한항공 게시판에 ‘내려’라는 제목의 글로 올라온 것이다. 직원들은 이 글을 보고 들끓었고 결국 이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는 실마리가 되었다.

문 대표는 “블라인드의 역기능을 우려하는 회사가 많은데 오히려 직원들이 원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해서 빠르게 대응하는 채널로 활용할 수 있다”라고 강조한다. 팀블라인드의 2015년 목표는 미국·일본의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것과 서비스 대상을 대기업보다 작은 기업과 변호사·의사 등 전문인 집단까지 넓히는 것이다.

 직토

스타트업 직토는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사물 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 하드웨어 분야에 도전했다. 손목에 차고 걸으면 잘못된 걸음걸이를 인지하고 교정해주는 웨어러블 밴드 아키(Arki)를 개발한 회사다. 이 회사를 창업한 김경태 CEO는 LG전자에서 3년간 선행 연구를 담당했고, 김성현 CTO는 카이스트에서 바이오메카닉을 공부하고 SK텔레콤에서 헬스케어와 모바일 보안 분야를 담당했던 인재들이다. 이들은 과감하게 안정된 직장에서 나와 하드웨어 스타트업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다.

이들은 지난 반년간 밤낮으로 개발한 아키를 2014년 11월11일 미국의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에 선보였다. 제품에 대한 일반인의 반응을 보고 초기 양산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서였다. 반응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목표를 6만 달러(약 6600만원)로 설정한 아키 프로젝트는 하루 만에 5만 달러를 모금하는 데 성공하더니 40일 동안 16만 달러(약 1억8000만원)를 펀딩하는 좋은 결과를 얻었다. 아키는 〈월스트리트 저널〉을 비롯해 수많은 해외 테크놀로지 매체에 소개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팀이 혼연일체가 되어 제품 개발에 매달리고 킥스타터에서 눈길을 끌 수 있도록 매력적인 제품 홍보 동영상을 만드는 데 매진했기 때문이다.

ⓒZikto 제공스타트업 직토가 내놓은 웨어러블 밴드 아키. 손목에 차고 걸으면 잘못된 걸음걸이를 인지하고 교정해준다.

김경태 대표는 “대기업을 그만두고 스타트업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창업의 길에 나서면서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배우고 즐겁게 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직토는 뜨거운 반응을 얻은 아키를 양산해서 2015년 4월 주문자 수천명에게 배송할 예정이다. 이들의 진짜 도전은 2015년 초에 등장할 애플워치와의 경쟁이다. 김 대표는 “새해에는 다양한 웨어러블 기기와 스마트워치가 손목 위를 선점하기 위한 전쟁이 펼쳐질 것이다. 어렵겠지만 최선을 다해 뛰어볼 작정이다”라고 말했다.


이종대 (트리움 이사)

2012년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 캠프는 빅 데이터를 분석해 선거 전략을 결정하는 데이터 기반 선거를 처음으로 시도했고, 이는 정치 분야뿐 아니라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들에게 큰 시사점을 던졌다. 이들은 대표성 논란에 휩싸이곤 하는 여론조사나 경험을 들어 ‘설’을 푸는 선거 컨설턴트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과거와 달리, 미국 유권자 약 1억9000만명과 관련된 1000여 가지 데이터 항목을 수집했고, 여기서 나오는 정보를 활용해 전략을 수립했다. 오바마 캠프의 선거 전략을 총괄했던 짐 메시나는 “이전까지의 선거를 구석기 시대처럼 보이게 할 것이다”라고 선언했고, 선거 승리 이후 그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종류의 데이터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양으로 쏟아지는 빅 데이터 시대다. 여기에 사물 인터넷(IoT)이나 O2O(Online to Offline) 등 다양한 개념이 차차 현실화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데이터가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많은 분야에서 이러한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그냥 흘려보내면서 감(感)이나 경험에 의존하는, 짐 메시나 식으로 말하면 ‘구석기 시대’ 상태에 머물러 있다.

 조이

이런 구석기 시대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 가운데 주목할 만한 움직임 중 하나가 오프라인 빅 데이터 분석이다. 이미 해외에서는 리테일넥스트, 유클리드어낼리틱스, 노미 같은 업체가 오프라인 빅 데이터 솔루션을 제공한다. 국내에서도 스타트업 ‘조이(ZOYI Corporation)’가 실내외에 설치된 센서로 스마트폰 무선 신호를 감지해 인근 유동인구와 방문객 수, 방문율, 체류 시간, 체류 전환율, 구매 전환율, 재방문율 등을 집계해주는 오프라인 빅 데이터 분석 솔루션 ‘워크인사이트’를 제공하고 있다.

ⓒ조이코퍼레이션 제공최시원 조이 대표(위)는 스마트폰 무선 신호를 이용하는 오프라인 빅 데이터 분석 솔루션 ‘워크인사이트’를 제공한다.

이 회사는 온라인 웹사이트에서 흔히 이루어지는 구매 퍼널 분석(purchase funnel analysis)이 오프라인상에서 이루어지기 어려운 점에 주목했다. 구매 퍼널 분석은 쉽게 말해 웹사이트를 타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어느 사이트를 통해 들어오는지, 이들 중 몇 퍼센트가 회원으로 전환되는지, 그리고 실제 구매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를 분석하는 기법으로, 온라인 리테일 및 마케팅에서는 필수적인 분석이 된 지 오래다. 반면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POS(Point of Sales) 기기에 찍히는 매출 정보 위주로 분석하거나, 심지어는 매장에 들어오는 손님 수를 하나하나 직접 세는 식의 기초적인 분석에 머물러 있다.

워크인사이트는 2014년 론칭 이후 한국과 일본, 중국의 400여 개 매장에서 사용 중이다. 주로 도입된 분야는 뷰티, 패션, F&B 및 가전 브랜드 같은, 주로 소비자와의 접점이 오프라인 상점에 분포되어 있는 업종들이다. 휴대전화 맥어드레스를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므로 더 정확하면서도 개인정보 침해 논란을 비켜갈 수 있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얻을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이나 질도 다르다. 일본의 한 통신 브랜드의 경우, 워크인사이트를 활용해 스마트폰 제조사 점유율을 매장 밖 유동인구와 매장 방문객으로 나누어 추적했는데, 소니 휴대전화 사용 고객에 비해 애플 휴대전화 사용 고객이 상대적으로 매장을 더 많이 방문한다는 것을 확인해 좀 더 공격적인 마케팅 캠페인을 기획했고 좋은 성과를 거뒀다. 영국계 한 패션 브랜드는 인근 상권의 타 매장에 비해 방문율 및 체류 전환율이 낮다는 것을 확인하고 매장 앞에서 옷 착용을 권유하는 등 쇼핑 경험 개선을 시도해, 평균 체류 시간을 8분대에서 13분대로 늘리고 고객당 구매 단가를 약 1.5배 높였다고 한다. 예전 같으면 설문조사 등 제한적인 수단을 활용해, 전수 고객이 아닌 소수 샘플을 대상으로 응답자의 불완전한 기억력에 의존해 비싼 돈을 들여 조사했어야 할 내용들이다.

대형 공공시설, 대형 마트, 재래시장 등 오프라인 빅 데이터 분석을 통해 성과를 개선할 수 있는 곳은 매우 많다. 양질의 데이터를 골라낼 수 있는 안목과, 감이나 경험에 의존하던 종전의 관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춘 조직이 마케팅 구석기 시대를 벗어나는 선두 주자가 될 것이다.

기자명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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