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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미심쩍어도 총의는 아름답다

문정우 편집국장 mjw21@sisain.co.kr 2008년 06월 17일 화요일 제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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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우 편집국장
많은 사람이 묻는다. 이 촛불시위의 끝은 어디냐고. 노동조합과 운동권 조직이 속속 가세하면서 집회의 순수성이 변질한다고 염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너무 쉽게 ‘MB 퇴진’ 쪽으로 달려가버려 퇴로를 잃었다는 걱정도 나온다. 정부가 재협상과 고시 철회라는, 시위대가 내건 최소한의 요구 조건마저 무시하고 계속 버틴다면 촛불의 수가 점점 줄어들어 지리멸렬해지지 않겠느냐는 비관도 드물지 않다.
 
하지만 걱정을 ‘가불’할 필요는 없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이만큼 성과를 거두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청와대 수석과 내각이 총사퇴를 표명한 상태이다. 재협의를 하기 위해 우리 정부의 대표단이 미국으로 날아갔다. 자신만만하던 이명박 대통령의 얼굴에선 윤기가 가셨다. 촛불이 요동칠 때마다 정부의 자세는 낮아진다. 고백하자면 명색이 시사지의 편집국장이면서도 촛불이 이처럼 연전연승하리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아무리 이순신 장군 동상 밑에서 영감을 받았다지만.

1980년 5월 시민이 신군부의 총칼에 맞서 거리에 뛰쳐나왔을 때도 달걀로 바위치기인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광주에서 귀한 인명을 희생하고 수많은 사람이 투옥되는 호된 대가를 치르고도 군부독재를 종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 응축된 에너지가 1987년 6월 항쟁을 불렀고, 그 뒤 군부는 우리 정치 무대에서 영원히 퇴출당하고 말았다.

1980년이나 1987년 투쟁 때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었다. 누구도 맨주먹뿐인 ‘피플 파워’가 군부를 무릎 꿇릴 수 있으리라고는 믿지 못했다. 다만 사람들은 ‘더 이상 군복 입은 자들이 체육관에서 저희끼리 대통령을 뽑는 꼴은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서울의 봄이나 6월 항쟁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형편이 너무나 좋은 편이다. 조갑제 같은 사람이 아무리 충동해도 누구도 국민 뜻을 거스르는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주권자가 마음을 먹으면 아무도 못 말린다는 뜻이다. 촛불의 미래를 염려한다면 그야말로 ‘걱정도 팔자’이다.

6월 항쟁 때의 핵심 키워드가 ‘체육관 선거’였다면 지금의 키워드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아닐까. 시작은 미국산 쇠고기였지만 지금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바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단순한 진리이다.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이 옳다면 그 구체적인 성과는 알 수 없으되 촛불이 비추는 미래는 밝다.

누가 기자 아니랄까봐 번번이 의심하면서도 결국 총의가 아름답다는 것을 믿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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