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에 다니는 김진규씨(가명·33)는 지난해 3월 결혼을 앞두고 신혼집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밑천은 직장 생활 5년 동안 300만원 남짓한 월급을 쪼개 모은 7000만원과 신부의 저축 3000만원 등을 합친 1억원. 하지만 이 정도의 돈으로는 서울 시내에서 전셋집 한 채 구할 수 없다. 결국 5000만원을 대출해서, 방 두 칸짜리 57㎡(약 17평) 빌라를 전세(모두 1억5000만원)로 얻었다. 대출금 5000만원에 대한 이자는 월 15만원 정도다.

양가 부모에게 한 푼도 지원받지 않고 부부끼리 집 문제를 ‘해결’했다는 자부심을 아주 잠깐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앞으로 집 때문에 필요한 돈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골치가 아프다. 거치 기간(이자만 납부하는 기간)이 끝나 원금까지 상환하게 되면 매달 은행에 상당한 규모의 돈을 갚아야 한다. 게다가 내년 3월에는 2년 계약한 전세마저 만기다.

이미 부동산 중개업체로부터 ‘집주인이 전세금을 2000만원 올려달라고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렇게 되면, 현재 김씨 부부가 사는 빌라의 전세가(1억7000만원)는 현 시세(2억3000만원)의 74%에 이른다. 김씨는 “2년 동안 바짝 벌어서 모은 2000만원을 그대로 전세금에 박아야 할지,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구매해야 할지 고민스럽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11월13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신혼부부에게 집 한 채를’ 포럼을 출범시켰다.

김씨 부부의 합산 월수입은 500만원 정도다. 10월28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맞벌이 신혼부부의 월평균 수입은 425만원. 이를 감안하면 김씨 부부의 살림살이는 상대적으로 괜찮은 편에 속하는데도(더욱이 외벌이 부부도 많다), 서울 시내에서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녀 계획은 먼 미래의 일로 미뤄둔 상태다. 애면글면 벌어봤자 전세금 올려주기도 벅차고, 오랫동안 은행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형편에 아이에게 들어갈 보육·양육비 역시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다. 이에 더해 부인이 임신하는 경우, 일시적으로라도 부부 소득의 절반이 줄어든다. 일자리가 유지된다고 보장하기도 어렵다.

맞벌이를 하는 화이트칼라 계층인 김씨 부부에게도 아이는 ‘사치’다. 한국의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싱가포르나 홍콩 같은 도시국가 제외)인 1.19명이다. 결혼은 기피되고 있다. 혼인율이 1994년 인구 1000명당 8.7건에서 2013년 6.4건으로 하락했다. 이런 가운데 노인(65세 이상) 인구는 급속히 늘고 있다. 4년 뒤인 2018년에는 전체 인구의 14%, 2030년에는 24.3%에 도달한다. 현재 29세 청년이 65세가 되는 2050년, 한국인 100명 중 37명이 노인이다. 현재 출산율이 지속되는 경우,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불과 3년여 뒤 2017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한다. 총인구도 2019년부터 줄어든다.

인구 감소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구 경제가 중장기적으로 회복된다 해도, 한국 경제는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집·컴퓨터·의류 같은 재화는 물론, 교육·식당·금융 등 서비스를 사들일 국내 수요 자체가 절대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수요가 줄어들면 투자도 위축되고 경제성장률도 급전직하할 수 있다.

게다가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내는 젊은 층이 줄어들면 연금을 비롯한 각종 복지급여를 지급하지 못할 수 있다. 사실상 국가 부도 사태다. 지난 11월13일, 새정치민주연합이 발족한 ‘신혼부부에게 집 한 채를’이라는 포럼은 이 같은 위기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일부 보수 언론과 새누리당은 즉각 반격에 나섰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이 재원 문제로 갈등을 빚는 상황에서 ‘신혼부부에게 집 한 채를’은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신혼부부에게 집 한 채를’ 포럼을 주도한 홍종학 의원을, 17대 대선에서 ‘신혼부부 1억원’ 공약을 내세운 허경영씨에 빗대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과 달리, 홍종학 의원의 주장은 그리 파격적이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신혼부부에게 집 한 채를’은 ‘공짜로 주자’가 아닌 ‘빌려주자’이기 때문이다.

ⓒ시사IN 이명익주거 문제가 심각한 가운데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주택 공약은 축소되거나 진척이 없다.

공공 임대주택 비율 5.2%, OECD 평균의 절반

‘신혼부부에게 집 한 채를’의 기본 주장은 10년 동안 임대주택 100만 호 건설이다. 현재 한국의 공공 임대주택은 총 97만5000호로, 전체 주택 중 5.2%(공공 임대주택 비율) 정도다. OECD 평균 11.5% 수치에 비해 절반가량 낮다. 대다수 선진국에서 임대주택은 정부 부동산 정책 및 주거 복지에서 핵심적 수단으로 통한다. 결국 한국에서 임대주택 100만 호를 더 건설하면 OECD 평균 수준에 달할 수 있다.

이렇게 늘어난 임대주택을 ‘신혼부부들에게 초점을 맞춰 공급하자’고 홍종학 의원은 주장한다. 연간 맺어지는 신혼부부는 25만 쌍 정도다. 이 중 ‘자발적 주택 매입자(대개 부모의 지원을 받는 경우가 많다)’를 뺀 40%(10만 쌍)에게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 신혼부부가 자리를 잡을 수 있는 5~10년 동안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집을 싼 임대료로 제공하자는 발상이다. 2013년에 결혼한 신혼부부 25만5000쌍 가운데 임대주택에 입주한 경우는 1만1976건(4.7%)에 불과했다.

임대주택 외에도 신혼부부의 집 마련을 지원하는 방법이 있다. 국민주택기금(주택 건설과 공급을 위해 설립된 공공 기금)의 ‘전세자금 대출’ 제도다. 연소득 5000만원(부부 합산) 이하 가구에게 최대 1억원까지, 연이율 3.3%의 저리로 대출한다. 상환 기간은 2년이지만 3회까지 연장 가능하므로 최장 8년 동안 쓸 수 있는 돈이다. 2013년의 경우, 신혼부부의 13.2%(3만3673건)가 이 자금을 빌렸다. 홍종학 의원은 이 자금의 수혜 대상자 중 신혼부부를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내년(2015년)부터 당장 이 같은 내용의 ‘출산율 높이기’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내년에 임대주택 13만4000호를 건설할 계획이다. 홍 의원은 신혼부부용 3만 호를 더 짓자고 주장한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다가구주택의 경우 매달 20만∼30만원, 소형 아파트의 경우 50만∼60만원의 임대료로 입주할 수 있다. 국민주택기금의 전세자금대출 역시 이자율을 어느 정도 내리면서 신혼부부를 중심으로 2만 건가량 더 확대하자고 했다. 내년에도 25만 쌍이 결혼한다고 가정하면, 4만여 쌍은 임대주택에 입주하고, 5만3000여 쌍은 저리 전세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다. 이 계획이 실현되면, 전체 신혼부부의 40%(9만3000여 쌍)가 공공주택 정책의 혜택을 입는다.

제대로 추진되지 않은 새누리당의 주거 공약

사실 ‘신혼부부에게 집 한 채를’은 한국에서 낯선 제도가 아니다. 새누리당 역시 파격적인 임대주택 공급 계획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워왔다. 제대로 지키지 않았을 뿐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7년 17대 대선 당시, 매년 12만 쌍 신혼부부에게 ‘보금자리 주택’을 제공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의 임기 동안 신혼부부 1만 가구만 입주하는 데 그쳤다. 새누리당은 2012년 19대 총선 당시 ‘2018년까지 임대주택 120만 호를 건설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7년 동안 120만 호는, 홍종학 의원의 제안보다 그릇이 훨씬 크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임기 중 행복주택 20만 호 건설, ‘목돈 들지 않는 전세(집주인이 전세금을 대출해주고 그 이자를 세입자가 내는 제도)’ 등을 주택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1년이 채 되지 않아 행복주택 공급 물량을 14만 호로 축소했다. 이 가운데 신혼부부를 위한 주택 공급 규모는 40%가량인 5만∼6만 채다. 올해까지 4000채 정도에 대한 공사만 이뤄지고 있으며, 입주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목돈 안 드는 전세’는, 신청자가 거의 없어서 사실상 포기했다. 박 대통령은 11월25일 국무회의에서도 “매년 10만 호 이상의 공공 임대주택을 공급해나갈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2013년 12월13일 서울 양천구 주민들이 목동 행복주택 건립을 반대하며 철회를 요구했다.

보금자리 주택이 그린벨트에 세우는 임대주택이라면, 행복주택은 철도 부지에 건설되는 임대주택이다. 대체로 실패했거나 진척이 없다. 양대 정책이 잘 이행되었다면, ‘신혼부부에게 집 한 채를’은 등장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신혼부부에게 집 한 채를’ 역시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임대주택 공약에서 나타난 한계를 탈피하지 못할 수 있다. 지역 주민들이 ‘임대주택 단지로 저소득층이 유입되어 집값이 더 떨어질 수 있다’며 반발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서울의 행복주택 시범지구 7곳 가운데 오류·가좌 지구를 제외한 5곳(공릉·목동·잠실·송파·안산 고잔)이 지자체와 주민들의 반대로 사업이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이에 대해 홍종학 의원은 “공공 임대주택에 대한 인식을 전환해야 하며, 11월13일 ‘신혼부부에게 집 한 채를’ 포럼 발족은 이를 위한 국민운동의 첫걸음이다”라고 말했다. 저출산 문제를 특정 계층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위기로 인식하는 가운데, 정치권에서부터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굳혀나가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는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에 집중되어온 공공 임대주택 정책을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다양한 거주 환경 조성 측면으로 보고, 저렴하면서도 거주 환경이 좋은 임대주택 건설에 국가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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