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을 잃은 책상에는 노란 리본을 매단 작은 화분이 놓여 있었다. 친구를 그리며 남겨둔 분홍·노랑 메모도 겹겹이 쌓여 있었다. 무사 귀환을 바라며 칠판에 쓴 글귀, 어버이날 부모가 남긴 편지, 11월11일에 산 막대과자, 빨대가 꽂혀 있지만 마신 흔적 없는 바나나우유….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교실이 위치한 본관 2층 입구에는 ‘유품이 훼손되지 않고 잘 보관될 수 있도록 만지지 않기를 바랍니다’라고 적힌 팻말이 세워져 있다.

수학여행을 떠난 단원고 2학년 생존 학생 75명이 학교로 복귀하면서 7개월여 전에는 들을 수 없었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1∼10반이던 2학년 교실은, 참사 이후 11∼14반으로 재편성해 수업을 진행한다. 고 박예슬양 전시회 포스터는 빛이 바랬지만, 다른 벽면에는 안산청소년밴드 페스티벌에 단원고 동아리의 출전 소식을 알리는 포스터가 부착돼 있었다. 

기자가 단원고를 찾은 11월26일, 한 선생님은 생존 학생 75명을 불러 교실 내 유품을 정리하는 데 대한 의견을 물었다. 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단원고 3학년 학생에 대한 특례입학이 도마 위에 올랐고, 정치권에서는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된 이후 보상과 배상에 대한 여야 간 갑론을박이 뜨거웠다.

ⓒ시사IN 조남진단원고 2학년 오대현군(가명)이 세월호 선내 도면을 보며 사고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살아남은 이’에 대한 배려는 사라지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그들은 점차 지워져간다. 이날 단원고 2학년 생존 학생 오대현군(가명·17)을 만났다. 답변은 짧았고, 단어 사이 공백이 길었다. 자주 머뭇거렸고 애써 눈물을 참았다. ‘할 수 있는 만큼만 말하라’는 기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렇게라도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인터뷰는 대현군 부모의 허락을 받아 단원고 생존 학생 학부모대책위원회 대표 장동원씨가 동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6월25일 학교로 복귀한 이후 오랜만에 수업하는 기분이 어땠나? 처음에는 그냥 하기 싫어서…, 사실 하기 싫다기보다 힘들었어요. 연수원에서도 수업을 하긴 했는데 강제적이지는 않았어요. 학교 왔으니까, 돌아가야 하니까…. 마음이 불편했어요. 수업을 열심히 들으려고 했는데 힘들었어요. 학교로 오는 건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불편했어요. (한동안 뜸을 들였다.) 학교에 처음 돌아왔을 때 몸이 너무 무거웠어요. 요새도 자주 멍하니 있고 그럴 때마다 몸이 무거워요. 친구 생각이 나면 몸이 푹 꺼지죠. 뜬금없이 그런 시간이 찾아와요. 추모 공간으로 바뀐 텅 빈 교실이 어색하지 않았나? 변한 교실 모습은 상관없었어요. 적응하는 데도 오래 걸리진 않았어요. 계속 생활을 했던 곳이니까. 그런데 적응을 하긴 했는데, 뭐라고 해야 할까, 적응을 해도 마음이 불편한 게 똑같아요. 어떤 점이 불편했는지 말할 수 있나? 학교 오고 나서 멍한 시간이 길어졌어요. 멍하니 있다 보면 친구들 생각이 자꾸 나고 친구들 생각에 빠져요. 울고 싶은데… 참는 습관이 생겨가지고. 그런 거 때문에 좀 힘들어요.

친구에 대한 어떤 생각이 떠오르나? 좋은 기억만 떠올라요. 수학여행 가기 일주일 전쯤 친한 친구 두 명이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치킨 시켜서 먹고 놀던 게…. 거의 주말마다 와서 자고 갔어요. 워낙 친하니까 집에 올 때 이야기도 안 하고 올 정도로… 재밌었어요. 수학여행 가기 직전까지 놀았던 게 기억에 남아요.

인터뷰를 하는 동안 대현군은 단짝 친구 고 이수빈, 고 김건호군과 놀았던 이야기를 할 때만 웃었다. 이들의 부모는 국회와 광화문광장 등을 비롯해 전국을 다니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호소하고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친구들이 없는 빈자리를 언제 느끼나? 하교할 때. 늘 건호랑 같이 다녔는데. 수빈이는 주말에 많이 만나고. 바로 집 앞 동네에 살아요. 늘 같이 하교했는데 주말에도 전처럼 집에 오는 친구는 없고….

오후 5시에 하교하면 뭘 하나? 그냥 집에 가거나 친구를 만나요. 거의 대부분 집에 가요. 야자는 안 해요.

하교 후 집에 가면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나? 할머니가 계시지만 대화는 안 해요. 엄마는 밤 10시쯤 퇴근하시고 아빠는 얼굴 보기가 힘들고…. 누나한테도, 친구들한테도 세월호 이야기는 안 해요. 안 하게 돼요. 친구들하고도 다른 이야기만 해요. 집에 가면 주로 텔레비전을 보거나 방에서 문 닫고 휴대전화를 해요.

장동원 대표는 지난 7월 〈시사IN〉과의 인터뷰(제356호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기사)에서 생존 학생이 방치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맞벌이 부모는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은 데다 아이들이 속마음을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아 부모·자식 간 대화가 어렵다고 했다.

말하지 못하는 게 많으니 답답하겠다. 일주일이나 보름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속마음을 이야기하는데도…. 누구 앞에서 감정을 보여주기 싫은 거 같아요. 처음에는 두 달 정도는 마음이, 너무 심하니까(힘드니까) 나도 모르게 많이 울었죠. 지금은 참을 수 있는 만큼 참아야 걱정 안 끼치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모여 있으면 안정감이 더 드나? 아뇨, 저는… 그냥… 저는… 저도 모르게 자꾸 생각이 나니까…. 저는 달라지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사고가 일어난 그때와 지금도 마음이 똑같이 불편해요. 믿기지가 않고…. 극복하라고 하는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친구들은 아픈 티를 안 내요, 거의 다. 겉으로는 티를 안 내지만 화장실 가는 길에 여자 친구들이 원래 교실 자기 자리에 앉아서 울고 있는 걸 자주 봐요. ‘힘들구나’ 그러죠. 매일 봐요. 여자 아이들은 그렇게 표현하는 것 같은데 남자는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저는 제 원래 반에 잘 안 가요.

친구들과 세월호 관련 이야기를 나누나? 각 층, 각 방에서 어떻게 탈출했는지 서로 상황을 맞춰보는 이야기는 해요. 어떻게 살았는지…. 그럴 때마다 또 (죽은) 친구 생각이 나요.

어떻게 탈출했는지 물어봐도 되겠나? 4월16일 아침밥을 먹고 4층 갑판에 나와 놀고 있었어요. 친구들끼리 밀면서 장난치고 놀았어요. 그러다가 배가 너무 출렁거려서 무서워서 선내로 들어갔어요. 4층 홀에 있는데 배가 한쪽으로 쏠렸고 벽을 잡아 통로로 들어갔어요. 여자 숙소 쪽이었어요. 통로 끝에서 어떤 아저씨가 구명조끼를 나눠주시기에 매달려 거기까지 갔는데, 지나가는 길에 있는 여자 화장실에서 지현이를 봤어요. 지현이 구명조끼도 받아서 갖다 줬어요.

황지현양은 세월호 참사 197일째, 295번째 희생자로 발견되었다. 실종자 9명이 남아 있는 현재, 최후에 발견된 희생자다. 대현군은 지현양의 최종 목격 위치를 증언했다. 마침 4층 화장실에서 지현양이 발견됐다. 대현군은 한동안 지현양이 탈출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장동원 대표는 말했다.

ⓒ시사IN 조남진일부 단원고 학부모들이 2학년 교실을 정리하자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4월16일 이후 주인을 잃은 2학년 교실은 희생자들의 유품과 친구들이 무사 귀환을 바라며 남긴 메모가 대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안산 합동분향소에는 종종 가나? 연수원 들어가기 전에 처음… 분향소에 친구들 다 있는 거 보니까, 실감이 안 나요. 내가 겪은 일이 아닌 거 같은데 내가 겪은 일이라는 게…. 많이 슬펐어요. 실감이 안 나는데, 내가 겪은 일이라는 게…. 혼자도 종종 가고 아무 이유 없이 친구들이랑 그냥 ‘갈래?’ 해서 자주 가요.

교실에 유품은 이대로 두는 게 좋은가? 저는 내버려두면 좋겠어요. 저희들 있을 때까지만이라도. 졸업하고 나서는 다른 후배도 써야 하니까 언젠가 치워야겠지만 우리가 있을 때는 그대로 두었으면 좋겠어요. (없어지면) 슬플 것 같아요. 지난 7월, 안산에서 국회까지 도보행진을 할 때는 어떤 마음이었나? 뭔가를 했다는 느낌. 내가 그래도 뭔가를 했구나.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는데 그런 기회라도 있으니까 참여한 거 같아요. 재판에 증인으로 간 거랑 인터뷰도…, 그냥 뭐라도 해야지 싶어서 그랬어요(대현군의 부모는 법정에 증인으로 참석한 대현군의 발언을 통해 아들이 겪은 일을 처음 들었다고 했다). 학교로 복귀할 때나 도보행진을 할 때 생존 학생 대표가 “단원고 2학년을 평범한 학생으로 봐달라”고 했는데. 평범하죠,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고등학생이니까. 어른들이 애써도 할 수 있는 게 없고 우리도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평범하죠. (그래서 슬퍼요?) 예….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씩씩하게 말하는데, 힘들어요.

유가족분들이 광화문이나 국회에서 농성하는 뉴스나 세월호 관련 뉴스를 본 적이 있나? 찾아보지는 않았고 보이는 것만 봤어요. 부모님이 친구들 영정 사진을 들고 밤에 KBS 앞으로 가던 장면…. 기억이 나는데 (고인 눈물을 애써 참다가 닦았다) 모두 구조될 줄 알았고…. 잘못한 게 없는 엄마 아빠가 힘들게 내몰리고 그렇게까지 고생하시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눈물을 닦았다). 대학이나 군대에 가는 데 걱정이 클 것 같다. 우선 졸업하면 지금 친구들과 떨어져야 하니까 싫죠. 사고 나기 전에는 열심히 하고 싶었는데 그게… 무슨 소용 있는지, 꿈이…. 저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었는데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정리가 안 되고 마음이 불편해요. 수능을 치지 않으려고요. 수시로 대학을 가려고…. 마음을 접었어요. 그렇게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아마. 하지만… 걱정이 돼요. 몸은 무겁고. 또 군대에 가야 하면… (마음이) 불편하죠. 솔직히 미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겠어요. 어떻게 살 수 있을지, 살아가야 할지. 생각을 안 해봤어요, 생각이 안 돼요. 제가 지금은 참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숨기고 참을 수 있을지….

누가 제일 미운가? 다 나빠요… 정부…. (사고 초기에 구조하지 않은 점 때문에?) 그것도 그렇고…. (유가족을 외면한 점?) 예… 너무 싫죠. 너무 싫어요.

대현군은 기자에게 모르는 사람이라서 그나마 이야기할 수 있었다고 했다. 여전히 부모님과 친구에게 속마음을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슬픔과 상처를 안고 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벅차 보였다. 그런데도 대현군은 “어른들이, 먼저, 지금까지, 다 보여줬으니까, 아직 계속 싸우고 계시니까 나중에는 언젠가는 (나도 진상 규명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걸 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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