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쌍용자동차는 노동자 2646명에 대한 정리해고안을 발표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포함하면 전체 해고자 수는 3000명가량이다.

ⓒ시사IN 양한모

‘함께 살자’는 외침이 시작됐다. 5월13일, 김을래·김봉민·서맹섭씨가 86일간 70m 상공에서 농성을 했다. 5월22일 노동자 1000여 명은 전기와 식수가 끊어진 공장 안에서 77일을 버텼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조합원 303명 등 625명이 경찰에 연행되어 87명이 구속됐다. 2010년 5월 해고노동자와 무급휴직자는 대리운전 사업을 시작했다. 2011년 7월, ‘희망의 폭풍질주-소금꽃 찾아 천리길 여정’에 나섰다. 두 발로 평택에서 부산 한진중공업까지 걸었다. 평택공장 앞에서 45일간 ‘별의별’ 시위를 다 했다. 한 명이 15시간씩 모두 77차례 돌아가며 1인 시위를 벌였다. 12월 공장 정문 앞에 희망텐트도 쳤다. 2012년 1월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 발걸음을 시작했다. 서울에서 평택까지 걸었다. 4월 평택공장 정문 앞에 억울하게 죽은 동료들을 위한 분향소를 설치하고 농성했다. 서울 대한문 앞에도 분향소를 만들었다. 마이클 샌델 교수와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이곳을 방문했다. 8월 파업을 이끈 한상균 전 지부장이 3년 만기 출소했다. 공지영 작가는 책 〈의자놀이〉를 썼다. 10월 김정우 전 지부장은 41일간 단식을 했다. 대한문에는 ‘함께 살자’ 농성장이 마련됐다. 11월20일 해고노동자 한상균·문기주·복기성씨가 171일간 송전탑에 올라 농성했다. 2013년 4월8일 225일간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위한 미사가 시작되었다. 6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H-20000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2014년 1월 김밥을 말아 공장 안 노동자에게 팔았다. 7월 김득중 지부장은 7·30 재보선에 나섰다. 10월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앞에서 3보1배를 했다. 11월에는 대법원 앞에서 일주일간 2000배를 했다.

지난 6년간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숨 가쁘게 해온 일이다. 이들은 무엇을 더 해야 할까. 이 모든 걸 하는 동안, 쌍용차 노동자와 그의 가족 스물다섯 명이 죽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죽음과 실패한 자살 기도를 합치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사실을, 이보다 확실하게 증명하는 방법이 있을까.

쌍용차 정리해고자 해고무효확인 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온 11월13일,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47억원 손배·가압류 문제를 다룬 ‘우리가 만드는 기적, 4만7000원’ 기사로 〈시사IN〉이 언론노조가 주는 민주언론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상을 받는 게 미안해서 얼굴을 들지 못했다. 상을 받지 않아도 좋다. 이런 기사를 쓰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 살고 싶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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