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이 두툼한 패딩 점퍼를 뚫고 들어왔다. 체감온도는 영하 7℃까지 떨어졌다. 11월13일 새벽 5시, 김득중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은 땅바닥을 침대 삼아 누웠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옆에 누웠던 복기성 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도 눈을 떴다. 추위에 떨어서만은 아니다. 이날, 6년 동안 기다려온 공장 복직이 결정된다. 누운 지 세 시간이 지나도록 초조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쌍용차 정리해고자 153명이 쌍용차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 소송에 대한 대법원 선고가 오후 2시에 예정돼 있었다.

이들은 판결을 앞두고 일주일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매일 2000배를 올렸다. ‘대법원의 공정한 판결을 호소’하며 2000번 몸을 숙였다가 폈다. 일어서면 대법원 건물에 적힌 자유·평등·정의 글귀가 보였다. 판결을 이틀 앞둔 11월11일은 정리해고의 법적 효력이 시작된 2009년 6월8일로부터 2000일째였다. 경건하게 판결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구호조차 외치지 않았다. 오로지 바닥에 몸을 웅크렸다가 일어설 뿐이었다. “2000일 동안 바라던 내일, 하지만 닿지 않았던 내일을 만나고 싶다”라고 이창근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은 말했다.

ⓒ시사IN 신선영11월13일 ‘파기환송’ 소식을 접한 쌍용차 해고자들이 대법원 앞에서 울고 있다.

11월13일 오전 10시, 김득중 지부장과 김정운 수석부지부장, 이창근 실장은 ‘희망’을 이야기했다. “이기면 다리 힘이 풀려서 주저앉겠지.” “승소하면 머리를 스치는 말이 있을 거야. 한마디 준비해야지.” “전태일 열사 44주기인 만큼 우리도 배가 고프다, 배가 고팠다고 할까?” 대화는 항소심이 열린 지난 2월7일을 회상하며 기분 좋게 이어졌다. 서울고등법원은 해고 무효를 판결하며 원고인 쌍용차지부 정리해고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때 정리해고자 153명의 대리인인 김태욱 변호사(법무법인 여는)는 판결문을 듣는 내내 울었다. 어려운 법률 용어 탓에 진 건지 이긴 건지 분간할 수 없었던 조합원은 그의 눈물을 보며 결과를 알아챘다. “그때처럼 우리 이기면 문화제 사회로 김제동씨를 부를까? 평택에 사람이 엄청 모이겠지?” 이창근 실장이 말했다. 그는 승소했던 그날을 떠올리며, 그때 입었던 위아래 옷을 또 차려입었다. “부정 탈까 봐” ‘패소’나 ‘파기환송’ 따위는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이내 대화 사이에는 공백이 생겼다.

오후 1시, 법정에 들어가기 전 기자가 김득중 지부장에게 “가장 안 좋은 결과가 무엇인지” 물었다. “파기환송.” 법정 앞에서 김 지부장은 평택에서 온 조합원 50여 명을 향해 말했다. “저도 사실 어젯밤 잠을 못 잤습니다. 많이 긴장되고 그랬어요. 자, 웃으세요, 다들.” 그 역시 웃지 못했다. 재판사무국의 요청에 따라 법정 참관은 조합원 10명으로 한정되었다. 경비는 삼엄했다. 입고 있던 금속노조 조끼를 벗기고, 법정 안 경위는 캠코더로 조합원을 찍고, 경찰 병력 300명이 법정 주변을 에워쌌다. 10명이 법정 안으로 들어갔다. 선고가 나는 대로, 밖에서 기다리던 김정운 부지부장에게 연락하기로 했다. 하지만 판결이 진행되는 동안 그는 문자를 받지 못했다. “이겼다면 연락이 왔겠지….” 김 부지부장이 결과를 예상이라도 한 듯 체념했다.

“2014다20875호20882호 해고무효확인 등 사건….” 이창근 실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원고 노석주 외 152명. 피고 쌍용자동차 주식회사.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딱 20초가 걸렸다. 이 실장은 수첩을 꽉 쥐었다. 거기에는 정리해고자, 징계해고자, 비정규직 해고자로 분류해둔 인원과 사건번호가 적혀 있었다.

ⓒ시사IN 신선영쌍용차 해고자들은 판결을 앞두고 대법원 앞에서 일주일간 매일 2000배를 올렸다.

양형근 조직실장은 간신히 걸음을 뗐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금속노조 조끼를 다시 입었다. 지난 6년간 낡고 해진 조끼에는 ‘공장으로 돌아가자. 쌍용차 해고자 복직! 비정규직 정규직화!’라고 적혀 있었다. 선고를 앞두고 “오늘 40대, 50대 아저씨가 우는 거 아니냐”라며 농을 건네던 고동민 대외협력실장도 눈물을 터뜨렸다. 한때 연장을 들었던 투박한 손으로, 다 큰 사내들은 연방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이창근 실장의 아내 이자영씨는 아들 주강군에게 탄식하듯 말했다. “아빠는 집에 못 들어오실 거야. 더 싸워야 하니까….”

‘억 소리’ 나는 줄소송만 남았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당시 정리해고를 할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었고, 회사가 해고를 회피하려는 노력을 다했다고 판결했다. “국내외 금융위기 사태에 봉착해 자력으로 유동성 위기를 해결할 수 없었고, 필요한 인력 규모에 대해서는 경영진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사측이 제시한 인원 감축 규모가 비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다”라는 것이다.

가장 핵심이 되었던 부채 규모에 대한 유형자산 손상차손의 과다계상 문제에 대해서는 “신차 출시 여부가 불확실한 상태였고 단종이 계획된 기존 차종은 경쟁력이 약화된 상태였던 점 등을 고려하면, 회사의 예상 매출수량 추정이 합리성을 결여하지 않았다”라고 판시했다. 이에 대해 김경율 회계사는 “2009년 삼정KPMG가 작성한 경영정상화 검토 보고서에는 2009~2019년간 모든 신차종의 추정매출액이 제시돼 있다. 이는 회사가 2009년 2월 이전에 수립한 계획에 근거한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법원이 내용을 숙지하지 않은 채 쌍용차와 안진회계법인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수용했다는 지적이다.

장밋빛 결과를 예상할 수만은 없었다. 지난 2월 2심 재판부는 재무제표상 유형자산 손상차손이 과다계상되었다고 판단하면서, 해고 회피 노력을 회사 측이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시했다. 이 판단을 근거로 쌍용차지부는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에 ‘근로자 지위보전 및 임금지급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10월13일 기각되었다. 회계법인 보고서, 금융감독위원회, 검찰의 쌍용차 무혐의 처분까지, 쌍용차지부가 제기한 ‘회계 조작’ 주장은 무시돼온 터였다.

현재 공장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는 노동자는 187명. 대법원 원고였던 153명 외에 파업에 참여한 이유로 징계해고된 19명과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8명이 있다. 47억원에 달하는 손배·가압류 소송도 2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연이자만 9억8000만원에 이른다. 12월에는 메리츠화재가 제기한 110억원 구상권 청구 소송도 시작된다.

이창근 실장은 대법원 판결 직후 이렇게 말했다. “노동자 3000명을 자르고, 국가 폭력으로 제압하고, 25명 희생자를 낸 이 마당에… 솔직한 얘기로 6년 동안 싸워보니까, 별의별 것 다 싸워봤는데 잘 모르겠어요! 남은 해고자들, 어떻게 보듬어야 할지 모르겠고! 어떤 말로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김정욱 사무국장은 승소하면 갈기갈기 찢어버리려던 정리해고 노동자 153명 명단을, 그저 날려버렸다. 평택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는 엔진 소리만 들렸다. “힘내자” “더 노력하자”라는 말조차 사치스러운 하루가 저물었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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