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6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일하던 권 아무개씨(25)가 숨졌다. 2년간 일곱 번 근로계약서를 쓰고 계약 해지된 뒤 “헌신짝처럼 버려졌다”라고 유서를 남긴 그녀의 사연은, 권씨가 죽은 지 열흘 만에 세상에 드러났다(〈시사IN〉 제370호 ‘정규직 꿈꾸었던 그녀의 죽음’ 참조). 권씨의 유가족은 10월10일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 중소기업중앙회와 소속 직원 두 명, SB-CEO스쿨(Small Business-CEO 과정:중소기업 최고경영자 과정)에 다닌 원우 네 명을 고발했다. 권씨의 어머니는 “경찰이 제대로 수사할지 신뢰할 수 없어서 검찰에 고발장을 냈다”라고 말했다.

권씨 유가족이 이들을 고발한 근거는 권씨가 남긴 이메일과 문자, 음성통화 녹음파일 등이다. 권씨가 SB-CEO스쿨 업무를 맡기 시작한 지난해 1월, 노래방에 같이 가기를 강요하며 대로변에서 권씨를 안은 채 들어올린 원우 신 아무개씨(중소기업연구원)와, 워크숍에서 회식 시간에 권씨의 팔과 어깨에 손을 올리고 “(성행위를 일컫는 속어)가 뭔지 알아?”라고 희롱한 김 아무개씨(ㄷ사 대표) 등 세 명이 강제추행 및 성희롱 혐의로 고발당했다. 또 지난 6월 권씨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하면서 ‘오빠’라고 불러주기를 원한 50대 원우 김 아무개씨(ㅇ사 대표)는 공포심과 불안감을 유발해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고발되었다. 김씨는 해외에 다녀올 때면 극구 선물을 사다주려 했고, 권씨가 카카오톡을 차단했지만 전화와 문자를 계속 보내왔다. 이 때문에 권씨는 휴대전화를 새로 만들기까지 했다. 이 같은 상황을 견디지 못한 권씨는 그간의 성희롱 사건을 직장 상사인 고 아무개 부장에게 이메일로 알렸다. 원우들의 성추행 혐의를 밝혀낼 단서가 될 이메일에는 고 부장의 성추행 의혹도 포함돼 있다. 그는 연말 회식 때 권씨의 옆구리를 찌르며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라고 말했다. 유가족은 고씨도 성추행 등 혐의로 고발했다.

ⓒ시사IN 이명익스스로 목숨을 끊은 권씨가 남긴 유서.
권씨의 유가족은 중소기업중앙회가 성희롱 예방 교육을 하지 않은 점, 성추행 제보 이메일을 받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 성희롱 피해를 당한 권씨에게 불리한 조치를 한 점에 대해 고 부장과 직속 임원인 강 아무개 경영기획본부장 겸 전무이사, 중소기업중앙회를 고발했다. 고 아무개 부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성희롱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정규직 전환에 타격을 받을지도 모른다며 권씨가 조치를 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라고 해명했다. 강 아무개 전무이사는 “계약이 만료되어 해지 통보를 했다. 보복 의도를 가지고 고의적으로 계약 해지를 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중앙회는 내부 감사 등 대책 마련 나섰지만…

중소기업중앙회는 10월8일, 고 부장과 권씨의 직속 상사인 성 아무개 차장, 오 아무개 센터장을 대기 발령했다. 10월22일에는 강 전무이사를 직위 해제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정규직 전환 약속 등과 관련해 내부 감사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추민호 중소기업중앙회 노동조합 위원장은 “성희롱 사실은 (이메일 같은) 단서가 있지만 정규직 전환을 약속한 데 대해서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 내부 감사가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사회적 파장이 커지면서 부랴부랴 관련자를 징계한 중소기업중앙회는 그동안 비정규직에 대해 1개월, 2개월 등 기준 없이 계약 기간을 정하던 관행을 깨고 1년씩 계약하겠다고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들을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할 가능성은 없다고 못 박으면서 미봉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권씨 유가족의 법률대리인을 맡은 류하경 변호사는 “정규직으로 전환될 거라는 사회 초년생의 꿈을 이용해 계약 기간 2년이 만료될 때까지 노동을 착취하고 하루아침에 내쫓아버렸다. 취업대란 문제, 비정규직의 고용 불안정성, 직장 내 보호받지 못하는 여성인권 등 사회 구조의 모순이 집약된 사건이므로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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