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하나 없는 작은 마을이었다. 경기도 연천군 중면 삼곶리에 위치한 중면사무소 뒤편 직원식당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면사무소 직원뿐 아니라 횡산리 교회 목사 은금홍씨, 지나가던 우체부까지 수저를 쥐었다. 인근 주민 전 아무개씨(46)가 밥을 차리고 삼겹살과 돼지껍질을 구웠다. ‘큰일’을 치른 뒤 처음 가지는 만찬이다. ‘탕탕탕’ 북한 접경지역을 알리는 듯, 밥을 먹는 사이에도 인근 부대 내 사격장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오지 중의 오지인 한적한 시골 마을에 북한군의 총성이 들린 건 지난 10월10일 오후 3시55분. 28사단 GOP에서 근무 중인 병사가 북쪽에서 포성을 들었다고 보고했다. 28사단은 자주포 등 모든 화기에 실탄을 넣고 비상대기에 들어갔다. 북측의 포탄이 남방한계선을 넘으면 즉시 대응사격하려고 했다. 자칫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피해를 확인하던 차에 중면사무실에서 불발탄이 떨어졌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오후 4시50분, 근무 중이던 최병남 주무관은 중면사무소 내에 위치한 민간인 대피소 옆에서 작은 불꽃이 튀는 것을 보았다. 콘크리트 바닥에 지름 5㎝가량 땅이 파였다. 북한군이 쏜 고사총이었다. 북한군은 14.5㎜ 총탄 10여 발을 남한 상공으로 쐈다. 군은 기관총 40여 발을 발사하며 대응사격했다. 총격전은 2시간 동안 반복됐다. 오후 5시30분께 남방한계선에서 1.5㎞가량 떨어진 중면 횡산리 주민 25명은 대피 방송을 듣고 방공호로 대피했다. 오후 6시10분께 우리 군은 추가 도발에 대비해 5사단과 28사단에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다가 저녁 9시께 해제했다.

ⓒ시사IN 이명익대북 전단에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사진은 물론 임수경, 조명철 의원 등의 사진이 담겨 있다. 1달러, 소책자 등도 함께 날린다.

총격전의 불씨는 ‘대북 전단 살포’였다. 10월10일은, 1997년 탈북해 북한 독재정권 반대 활동을 하다 생을 마감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4주기이자 북한 노동당 창건 69주년 기념일이다. 교전이 있기 직전인 오전 11시, 탈북자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박상학 대표는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대북 전단 20만 장을 풍선 7개에 띄워 보냈다. 이어서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북풍선단장 이민복씨가 경기도 연천군 중면 합수리 일대에서 전단 132만 장을 풍선 23개에 실어 북한으로 날려 보냈다. 이씨는 교전이 진행되는 중에도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로 이동해 대북 전단 살포를 계속했다.

트랙터와 화물차로 마을 입구를 막기도

그동안 탈북자 단체와 보수 단체 등은 천안함 침몰일, 김일성 전 주석의 생일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생일 등에 맞춰 전단을 대량으로 띄워왔다.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이민복씨는 2003년 10월 남한 내 민간단체로는 최초로 대북 전단을 풍선에 실어 보냈다. 2000년 6월, 북한이 남한에 대북방송 중단을 요구하는 것을 본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2005년 비닐하우스용 비닐에 수소를 넣은 대형 풍선을 개발한 뒤부터 더 많은 대북 선전물을 보낼 수 있게 됐다. 길이 12m, 폭 2m인 대형 풍선을 1년에 1000개가량 날린다. 한 개에 평균 3만 장씩, 1년에 총 3000만 장을 북한으로 띄운다. 그 외의 다른 단체가 뿌리는 대북 전단까지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많다.

대북 전단 살포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건 민간인 통제선 인근 주민들이다. 교전 다음 날인 10월11일, 돌무지무덤 입구를 주민 김태준씨(64)가 트랙터로 막았다. 이곳은 대북 전단용 풍선을 띄우는 거점지역이다. 또 다른 거점지역인 능골주차장 길목도 주민들이 트럭으로 막았다. 김씨는 “정부에 기대하거나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날도 삐라를 살포하려던 이민복씨는 주민과 경찰의 제지에 막혔지만, 방향을 바꿔 경기도 포천시 산정호수 인근에서 풍선 1개를 날렸다. 이씨는 “북한 주민의 알권리를 위해서 비공개로 전단을 계속 날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삼곶리 주민들은 “지금껏 신사적으로 막았지만 이제는 곡괭이나 낫을 이용해서 얼씬도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사IN 조남진경기도 연천군 삼곶리 곳곳에 대북 전단 살포 중단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삼곶리에서 만난 주민들은 전단을 살포하는 단체와 정부가 주민의 안전과 생업을 도외시한다고 성토했다. 최씨는 “전쟁의 불씨가 되는 일인데도 정부는 방관만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허화일씨(72)는 “단체 사람들은 전단을 뿌리고 가면 그만이지만, 우리는 이곳에서 생계를 꾸리고 살아야 한다. 마을 주민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강제적으로 제한할 법적 근거나 관련 규정이 없는 데다, 신고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내용을 파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남한 주민과 남한 단체 간 마찰이 심해지고 있다. 2011년 3월, 천안함 침몰사건 1주기를 앞두고 북한 접경지역 주민과 탈북자·보수 단체의 충돌은 극에 달했다. 당시 북한은 “임진각 등 심리전 발원지를 조준사격하겠다”라고 경고해 북한 접경 마을에 긴장감이 감돌던 터였다. 보수 단체인 국민행동본부는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백마고지 위령탑 광장에서 대북 전단 600만 장을 날리기로 했지만 주민들의 저항에 부딪혔다. 마을 주민이 트랙터와 화물차로 마을 입구를 막으면서 접근조차 못하도록 봉쇄했다. 남북 간에 긴장 국면이 조성되면 군부대 장병의 외출, 외박이 통제돼 지역경제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같은 시기, 경기도 파주시 주민들도 대북 전단 날리기 행사가 임진각에서 이뤄지지 않도록 해달라고 자유북한운동연합에 요청했다. 개성공단기업협의회의 대북 전단 살포 중지 호소 역시 매년 반복돼왔다. 이들은 지난 10월9일 보도자료를 통해 ‘장기간 공단 폐쇄로 어려움에 있는 입주 기업은 남북관계 개선을 간절히 소망한다. 한국 정부는 전단 살포가 남북관계 개선에 미치는 악영향을 고려해 자제될 수 있도록 나서달라’고 요구했다. 한 업체 관계자는 “개성공단 옥상에 대북 전단이 떨어지자 공단 직원이 뿌렸다고 오해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대북 전단 살포가 남북 사이뿐 아니라 남한 내 갈등 수위까지 높이고 있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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