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두씨(가명·30)가 출판사 쌤앤파커스에 입사한 때는 2011년 5월. 입사 이전, 직장 세 군데를 옮긴 이력이 있었다. 쌤앤파커스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등 베스트셀러를 낸 유명 출판사다. “수습은 3개월이지만 본인 역량이 부족하면 더 늘어난다.” 직장 상사 이 아무개 상무(47)는 김씨와 동기 5명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말투와 표정, 인성같이 불명확한 기준으로 신입사원에 대한 점수가 매겨졌다. 김씨의 한 동기는 3개월 후 기준을 통과하지 못해 강제 퇴사당했다. 그로부터 3개월 후 두 명이 추가로 회사를 나가야 했다.

이 상무는 여직원에게 스킨십으로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전직 직원의 말을 종합하면, ‘악수하자’면서 잡은 손을 놓지 않거나, 여성 직원 앞에서 이름을 부르며 팔을 벌려 품으로 들어오라는 시늉을 했다. ‘야, 뽀뽀’라며 볼을 갖다 대는 일도 자연스러웠다. 퇴사한 한 직원은 “‘(껴안기) 싫어요’라고 두 번에 걸쳐 말했지만 ‘어쩔 수 없는 거야!’라고 말하며 (이 상무가) 다시 팔을 벌렸다. 세 번째 거절하자 악수만 했다. 한 신입 여직원은 내게 ‘(이 상무와) 껴안지 않아서 좋겠어요. 저는 아직 싫다고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에요’라고 해 말문이 막혔다”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이 상무는 “모두 왜곡되거나 거짓이다”라고 맞섰다.

ⓒ시사IN 신선영9월24일 출판노조 소속 조합원들이 쌤앤파커스 사옥 앞에서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김씨가 정규직 전환을 앞둔 2012년 9월14일, 이 상무는 최종면담 술자리를 요구했다. 김씨는 입사 이후 17개월 동안 수습사원이었다. 이 상무는 인근 오피스텔로 김씨를 데려가 옷을 벗으라고 하고 침대로 끌고 가서 입을 맞췄다. 그는 검찰에서 “명백히 어떤 성추행도 하지 않았다. 취해서 잠들었다가 눈을 떠보니 김씨가 옆에 누워 있었다. 깜짝 놀라 깨워서 돌려보냈다”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이 상무 요구를 거절하면 정식 직원 발령이 취소될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밖으로 뛰쳐나가면서 쓰러졌고, 오피스텔 주민이 그를 발견하여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피해자, 검찰 무혐의 처분에 법원에 재정신청

김씨가 정규직으로 전환된 뒤인 2013년 7월, 이 상무에게 성추행을 당한 동료가 추가로 발생하자 김씨는 피해 사실을 공개했다. 이때 이 상무는 퇴사했다. 2013년 8월12일 박시형 쌤앤파커스 대표는 모든 직원이 모인 자리에서 “충분히 거절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그것을 응한 사람도 징계를 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상황을 견디지 못한 김씨는 그해 9월 사직하면서 서울 마포경찰서에 이 상무를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지난 3월, 검찰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이 상무가 옷을 벗기고 키스한 점은 인정되지만, 고소인의 자유 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을 행사했다고 보지는 않았다.

박 대표는 검찰의 판단을 근거로 이 상무가 퇴사한 지 1년 만인 지난 9월, 그를 복직시켰다. 김씨는 4월 검찰의 무혐의 처분은 잘못이라며 서울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냈다. 상황이 악화되자 박 대표는 9월22일 사과문을 발표하고 수습사원 제도 폐지와 사내 성폭력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김씨와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 출판분회는 이 상무에 대한 법적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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