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민 아버지 김영오씨(47)는 ‘간장’ 이야기를 하며 모처럼 활짝 웃었다. ‘간장이 이렇게 맛있었다니!’ 연방 감탄사를 쏟아냈다. 곡기를 끊은 지 40일째 그는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병원에서도 단식을 계속했다. 지난 8월28일, 46일 만에 단식을 중단했다. 그는 묽은 미음 200㎖와 간장으로 첫 식사를 했다. 단식용 소금 대신 간장이 놓여 있을 뿐 물병 두어 개가 전부인 그의 살림은 광화문 농성장과 달라진 게 없었다. 8월29일, 병실에서 그를 만났다. 46일 만에 식사를 했다. 울음이 날 것 같았다. 간장이 이렇게까지 맛있는 줄 몰랐다. 침대 옆에 갖다 놓고 찍어먹고 있다.

단식을 중단한 계기는 무엇인가? 둘째 딸 유나 때문이다. 8월22일 병원에 실려오자마자 유민이 동생 유나가 병원에 왔다. 그때 아빠 팔이 너무 가늘다며, 마지막 부탁이라고 단식을 그만하라고 했다. “아빠랑 같이 밥 먹고 싶어” 이 말에 가슴이 미어지더라. 단식하기 전에 언니 몫까지 더해서 유나를 더 사랑하고 예뻐하겠다고 약속했다. 노모는 시골에서 전화를 했다. “너 밥 안 먹고 있다며? 지금까지 안 먹었다며?” 그러고는 우시더라. 며칠을 고민하다 결정했다.

ⓒ시사IN 신선영김영오씨가 단식 전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단식 전에 비해 몸무게가 10㎏ 이상 줄었다.
여러 루머가 돌면서 결정한 거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단식이 길어지고 입원하고 나서부터 악성 댓글이 달렸고 보도되었다. 지금은 페이스북을 보지 못할 정도다. 루머 때문에 단식을 중단한 것은 절대 아니다. 사실이 아닌 루머는 떳떳하게 밝힐 수 있다.

이혼, 양육비, 노조원… 여러 이야기가 돌았다. 사고 났다는 소식을 듣고 팽목항으로 바로 달려갔다. 그동안 유민이랑 유민이 엄마랑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연락이 끊겨서 살았다면 내가 거기를 어떻게 갔겠나. 5월4일 유민이 장례도 유나랑 할머니랑 유민이 엄마랑 같이 지냈다. 장례 뒤에 식구끼리 밥도 먹었다. 가끔 밥을 먹던 것처럼 그때도 똑같았다. 양육비와 관련해서는 통장까지 보여주었는데? 지금까지 25년 정도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급여가 월 180만원 정도였다. 이혼하면서 생긴 마이너스 통장 1800만원을 차근차근 갚았다. 2013년 7월22일,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정규직으로 전환되어 월급 300만원을 받고 생활이 나아졌다. 빚도 300만원만 남기고 갚았다. 월급받으면 전부 이자 갚느라 돈이 없어서 양육비 20만원을 다 주지 못한 때가 있기는 했다. 그래도 아이들 중학교 입학할 때 휴대전화 사주고, 생일 선물로 바꿔주고, 통신요금·보험료도 다 내줬다. 사실이 아닌 부분을 왜곡하니 화가 많이 났다. 2003년 이혼할 때부터 지금까지 양육비 등 입금한 통장 내역을 다 확보했다. 왜 그렇게까지 내가 해야 하는지…. 세월호 참사 이후에 대출 2000만원을 받아서 또다시 빚쟁이가 됐다.

루머가 갑자기 퍼진 게 친인척의 댓글 이후부터다. 그간 악착같이 살았다. 주말마다 특근을 했다. 사고 나기 전주에 ‘아빠 언제 와, 내일모레 올 거야?’라고 유민이가 카카오톡으로 물었는데, 내가 대답을 못해줬다. 그때가 제일 바쁠 때였다. 원래 일요일에 보려고 했는데 특근을 하느라 못 갔다. 카카오톡을 공개했더니, 이번에는 ‘아이가 묻는데 저렇게 답도 없고 매정한 아빠’라고 댓글이 달리더라. 가슴 아프다. 루머를 정면 반박하고 나니 몇몇 언론에서는 나를 과격한 사람으로 몰고 가더라. 유민이와 유나는 계속 만났나? 생일, 명절, 여름휴가 때 만났다. 2∼3년에 한 번은 애들 엄마랑 다 같이 휴가도 갔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카드빚 내고 두 번, 가평과 안산 구룡도를 여행했다.

보상금 때문에 단식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수학여행 간 아이의 모든 부모에게 여행자보험금 1억원씩이 지급됐다. 그건 의무적으로 나오는 거다. 만약 보상금을 노리고 단식했다면 애초에 보험사에서 주는 1억원 중 5000만원도 내가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돈을 유민 엄마에게 줬다. 형제에게도 진 빚이 1500만원 이상이다. 보상금으로 그 빚 갚으면 되는데, 돈 욕심이 났으면 내가 유민 엄마에게 줬겠나. 특별법에 보상이나 의사자 관련한 문구를 넣지 말자고 했다. 제일 중요한 게 진상 규명인데, 왜 죽었는지 알면 되지 않나. 지금까지 유가족은 정부가 지급하는 어떠한 보상금도 받지 않았다. 그런데도 보상금에 대한 루머가 이렇게까지 나오니 억울하다.
ⓒ시사IN 신선영김영오씨가 대통령 면담 신청을 위해 청와대로 가던 중 경찰에 가로막혔다.
김영오씨가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광화문에 관을 갖다 놓으라고 할 정도였다. 목숨을 내놓는 게 무섭지 않았다. 단식 15일 때까지는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20일이 넘어가면서 고통이 없어졌다. 제대로 된 특별법이 마련된다면 단식 후유증으로 위가 구멍 나거나 팔 하나가 없어지는 일은 아무 상관이 없다. 단식을 중단하면서 장기적인 싸움을 준비하겠다고 했는데…. 특별법에 대해서 의견 차이가 있지만 합의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다. 하루바삐 특별법이 제정되어 부모들이 일상으로 돌아가게 해줘야 한다. 명절에 광화문에서 차례상 차리고, 송편 빚기는 하고 싶지 않다. 세월호 일반인 유가족 대책위는 여야 합의안에 동의했다. 얼마나 힘들면 그러셨을까 싶다. ‘조금만 더 참지’ 하는 생각도 든다. 여야 합의안으로는 진상 규명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야당 의원들은 단식을 계속하고 있다. 문재인 의원한테도 그랬다. 단식하지 말고 그 시간에 국회 가서 싸우라고. 같이 앉아 있으면 국회에서 누가 싸우느냐, 그게 국회의원들이 할 일인데 빼먹고 있는 건 아닌지 답답하다. 내가 국회에서 법안 통과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특별법이 마련된다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나? 특별법이 마련된다고 해도 당장 일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유나와 밥을 먹을 수 있고 같이 잠을 잘 수는 있을 거다. 직장 때문에 아산에서 생활하는데, 안산으로 이사할 계획이다. 추모공원 건립 등 남은 과제가 많다. 어떤 특별법을 마련하느냐에 따라 진상 규명이 10년 이상이 걸릴지, 5년이 걸릴지 달라질 것이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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