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이 그림에서 ‘허수아비’만 보입니까?”

‘세월오월’을 둘러싼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홍성담 작가는 그림을 비난하는 쪽도, 옹호하는 쪽도 오독에 머물러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림이 진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뭐였을까. 홍 작가의 목소리로 들어봤다.

고재열 기자 scoop@sisain.co.kr 2014년 09월 03일 수요일 제363호
댓글 0
“어떻게 평론가라는 사람들이 그림을 직접 보지도 않고 인터넷에 나와 있는 사진 쪼가리만 보고 평할 수 있는가? 난 그런 사람들을 평론가로 인정할 수가 없다. 이 그림이 말하는 슬픔의 정서를 읽어내는 평론가가 없다는 것이 슬프다.”

‘세월오월’(가로 10.5m×세로 2.5m)의 작가 홍성담 화백이 가장 슬퍼한 대목은 자신의 그림이 오독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을 비난하는 쪽이나 자신을 옹호하는 쪽 모두 ‘세월오월’을 자신들이 보고 싶은 방향으로만 본다는 것. 단순히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하기 위해서 그린 그림이 아니라 현대사의 아픔을, 상처투성이인 사람이 또 다른 상처 입은 이를 치유하는 현대사의 아이러니를 담은 그림이라고 했다.

미술평론가 김종길씨는 ‘세월오월’을 이렇게 평했다. “현실·비현실·초현실이 맞붙어 있는 그림이다. 사건이 지나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들을 불러오는 샤먼(주술사)과 같은 그림이다. 오월 정신은 당대의 새로운 문제를 찾아가는 정신이다. 홍성담에게 오늘의 오월은 바로 세월호다. 세월호는 우리에게 문명사적 전환을 요구하는 사건이다. 이 그림을 통해 무엇이 행복인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를 묻는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홍성담 제공</font></div>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은 원작(위)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묘사했다.
   
ⓒ홍성담 제공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은 원작(위)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묘사했다.

‘세월오월’은 홍 화백 혼자서 그린 작품이 아니라 시각매체연구회 소속 후배 화가 8명과 공동작업한 작품이다. 그중에는 일부러 독일에서 온 정영창 작가도 있다. 일반 시민들도 공모를 통해 참여했다. 홍 화백의 역할은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조율하면서 이 걸개그림의 전체적인 스케치를 하는 것이었다.

그림 작업은 광주의 대표적인 대안 공간 메이홀 4층에서 이뤄졌다. 이곳에는 완성된 ‘세월오월’을 촬영해서 출력한 프린트 버전(원래 작품의 3분의 1 크기)이 전시되어 있다. 홍 화백은 이 그림이 진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고 그것을 전제로 논의를 진행했으면 한다며 그림을 천천히 설명해주었다. 홍 화백이 말한 내용을 그대로 옮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홍성담 제공</font></div>논란 이후 닭(위)으로 바꿔 그렸지만 광주비엔날레 전시는 유보됐다.  
ⓒ홍성담 제공
논란 이후 닭(위)으로 바꿔 그렸지만 광주비엔날레 전시는 유보됐다.
이 그림은 불교의 ‘감로 탱화’를 응용했다. 감로 탱화란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음식을 공양하는 의식을 그린 불화다. 여기서 감로(甘露)란 ‘달콤한 이슬’로 죽은 사람의 영혼 천도 때 쓰는 음식을 말하는데, 이는 이번 비엔날레 20주년 기념 특별전의 주제이기도 하다.

감로 탱화를 현대적 몽타주 기법으로 재해석해서 그렸다. 색은 조선 후기 민화의 밝고 명랑한 색을 가져와서 그렸지만 슬픔을 도드라지게 하기 위해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봄 햇살처럼 화사한 오방색을 썼지만, 화려할수록 그늘이 더 짙어지듯, 밝음 뒤에 있는 그늘에 슬픔을 담았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치유다. 광주 정신으로 세상의 아픔을 치유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르게 말하고 싶었다. 광주 스스로 치유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은 아직 책임자 규명도 안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화해도 용서도 할 수 없다. 화해하고 싶어도 화해할 상대가 없고,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를 받아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다시 상처받고 있다.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 이용자들이 희생자 사진을 보고 홍어를 말리고 있느니 홍어 택배라느니 하며 모욕한다. 기념식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도 제창하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는 치유를 받아야 할 광주 시민군이 세월호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있다.

시민군이 ‘박근혜 허수아비’와 맞서고 있다. 그런데 왜 시민군은 부러진 총을 들고 있을까? 이것은 총이 아니다. 총의 기능을 상실한 목발이다. 그 목발을 들고 이들은 박근혜 허수아비를 연민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증오의 눈빛이 아니다. 그녀를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구해주려는 것이다. 상처가 많은 여인이기 때문이다. 유신 잔재에 둘러싸여 자기 인생조차도 마음대로 살지 못하는 여인이기 때문이다. 여인의 눈물은 그런 자신을 향한 분노를 보여준다.

박근혜 허수아비 뒤에 유신의 상징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있고 수구의 상징인 김기춘 비서실장이 있다. 문창극과 정성근 같은 신진 우익들도 보인다. 이들 옆에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얼굴색이 창백한 이건희가 있다. 그는 신진 우익으로부터 물고문을 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이 그림에서 정말 저 ‘허수아비’만 보입니까?


댓글 공작을 하고 있는 국정원 여직원과 가스통 할배들이 김정은을 불태우는 모습도 그렸다. 이곳은 지옥을 능가하는 아수라다. 그 근원이 되는 모습으로 전두환을 그렸는데, 사천왕상에 밟힌 악귀처럼 그렸다. 그의 옆에는 3S(섹스·스크린·스포츠)를 상징하는 것들이 그려져 있다. 이들 옆에 광주민주화운동 진상 규명을 위해 애써주었던 윤공희 대주교를 진실의 목격자로 넣었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자본주의의 침몰이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이윤을 추구했으나 무능함만 증명하고 무너진 국가 시스템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림에서 승객들은 무사히 아래로 탈출한다. 바닷길이 열리고 모두 되돌아온다. 그 아래서 물고기와 소년이 유희하며 유영을 즐기고 있다. 이것은 치유와 회복을 뜻한다.

시민군과 함께 세월호를 떠받치는 여인의 광주리에는 주먹밥이 담겨 있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에게 먹였던 주먹밥이다. 그 옆에는 밥 짓는 솥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은 시민이 준 피와 살을 나눠 먹은 밥상 공동체였다. 그 공동체는 점점 커졌다. 위로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있고, 그 옆으로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도 침묵하지 않았던 학생들이 있다. 자세히 보면 윤영규 초대 전교조 위원장, 광주민중항쟁의 마지막 수배자이자 광주민중항쟁 관련 최초의 미국 망명자였던 윤한봉 전 민족미래연구소장, 저항시를 썼던 김남주 시인이 있다.

그림의 배경은 우리 강토인데, 자세히 보면 진도 관제탑도 있고 밀양 송전탑도 있다. 4대강 사업에 유린당하는 강의 모습은 바리데기 공주의 모습으로 그렸다. 이명박 얼굴을 한 로봇물고기가 그 바리데기 공주에게 음험하게 달려든다. 그리고 후쿠시마 세슘을 먹은 아베의 흉악한 모습도 그렸다. 전근대적인 국가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동아시아의 모습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작권자 ⓒ 시사IN (http://www.sisai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전 LiveRe 댓글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