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준비위원회 위원장인 강우일 주교(69·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는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강론에서 “프란치스코 교종의 방한은 잔치나 축제가 아니라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이들, 억압과 미움으로 대결하는 이들, 분쟁과 폭력에 희생돼 눈물 흘리는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한다는 지향이 드러난다”라고 말했다. 그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과 4대강 정비 사업을 반대하는 활동에 앞장서면서 평화·생명의 목소리를 높인 대표적인 그리스도인으로 통한다.

8월6일 제주 중앙성당에서 강우일 주교를 만났다. 그의 가슴에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강 주교는 인터뷰하는 동안 교황(敎皇) 대신 교종(敎宗), 즉 교회의 으뜸 사제라는 단어를 썼다. ‘교종’이라는 표현만으로도 존칭의 구실은 충분하다는 게 그의 뜻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자신도 ‘로마의 주교’라고 칭한다.
 

ⓒ시사IN 조남진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강우일 주교(위)의 가슴에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강 주교는 “교종에게 해답을 기대하기보다 우리 상황에 적용해 해석·실천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1984년, 198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이후 25년 만의 교황 방문이다.
역사상 아시아 대륙의 특정 나라에 교종이 여러 차례 방문하신 일이 드물다. 주교회의 이름으로 초대장을 보내기는 했지만 과연 오실 수 있을까 했다. 온다고 하셔서 나도 놀랐다. 근래에 유럽 사회에서 한국 사회 또 한국 교회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는 것 같다. 아시아의 신흥국인 한국이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또 살아 있다는 신호가 전 세계에 닿고 있다. 다른 국가에서 산업화가 일어나는 동시에 복음화와 선교는 반비례하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 교회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은 그런 현상을 유럽에서도 주의 깊게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관심의 집약이 교종 방문으로 이어진 게 아닌가 싶다.

방한 준비위원장으로서 일정과 장소를 짜면서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교종께서 8월14∼18일 대전에서 열리는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와 시복식, 두 가지를 방문의 목적으로 삼으셨다. 아시아 청년대회에 교종이 직접 참여하는 건 처음이다. 지금까지 아시아 청년대회는 몇 번 개최되었지만 지역 차원에서 진행되었고 주교의 참여도 거의 없었다.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는 천주교 신자 젊은이도 많지 않다. 이번에도 2000명 정도 참석한다. 그런데도 교종께서는 마이너리티인 아시아 젊은이들이 복음적 가치를 선포하는 일꾼으로 활동해주기를 바라는 기대와 격려를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한 축은 8월16일 진행되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이다. 신앙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친 분들을 기억하며 이 시대 사람들에게 신앙으로 산다는 게 무엇인가를 상기하고 깨우치는 가르침을 주실 것이다.

청와대와 충북 음성 꽃동네 방문은 어떻게 일정을 잡게 되었나?
한국 교회 쪽에서도 초대를 했지만 청와대도 여러 번 초대했다. 교종께서는 교회의 수장이시기도 하지만 바티칸 시국의 국가 대표이기도 하다. 어느 나라에 가든 예방 차원에서 국가수반과 만나는 관례가 있었다. 꽃동네는, 굳이 거기를 가셔야 하느냐, 비판의 소리가 많은 걸 나도 듣고 있다. 대규모 장애인 수용시설은 복지의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많은 사람이 알고 또 느끼고 있다. 우리도 그걸 다 알고 있는데…. 정부도 돌보지 않고 아무도 돌보지 않을 때 사람들을 보살핀 시설인 만큼 방문을 결정했다. 교종께서는 어디를 방문하든 가장 어려운 사람들과 장애인을 만나고 싶어했다.

꽃동네 방문을 두고 교회 내부에서는 이견이 없었나?(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 단체는 8월7일 “교황의 꽃동네 방문은 사유화된 거대 복지권력을 더욱 공고하게 하는 의미만을 남길 것”이라며 방문 취소를 요구하는 진정을 국가인권위원회에 내기도 했다.)
방문이 확정되기 전에는 크게 이견이 없었다. 확정되고 나서 이견이 있었다. 하지만 교종 방문에 대한 준비 과정도 많고 로마하고도 끊임없이 협의해야 한다. 교종 방문 일정은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가장 바람직한 곳은 아닐지 몰라도 가장 힘든 시기에 장애인들과 함께했던 곳인 만큼 추진하기로 했다. 시설을 방문한다기보다는 장애인을 만나러 가는 장소로 선택했다고 봐달라. 교황청에서도 처음부터 장애인을 만나러 가시는 것에 초점을 맞춰달라고 요청해왔다.

 

 

ⓒ시사IN 신선영8월6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꽃동네 방문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가장 낮은 곳을 찾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와 방문지가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강정, 밀양, 세월호 등 신부나 수녀들이 적극적으로 함께해온 곳이 제외된 데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아쉽다. 바티칸의 실무 담당자하고도 대화를 여러 차례 나누었는데, ‘일정이 짧다. 연세를 생각해달라’는 답이 왔다. 내가 더 말을 못하겠더라.

주교회의의 보수적인 분위기가 방문지 선택에 영향을 준 건 아닌가?(한국 천주교 최고 의결기구인 주교회의에서 의결권이 있는 25명 중 3분의 2가량이 보수 성향으로 알려졌다.)
그런 건 아니다. 주교회의에서 합의를 해서 교황청 실무진과 일정 조정을 했다.

강정, 밀양 등에 대한 깜짝 행보를 기대할 수 있을까?
잘 아시는 동네라면 충분히 가능할 수 있을 텐데 한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다른 세계라서 교황청 실무자들도 쉽게 계획 수정이나 변경은 하지 못할 듯하다.

7월25일에는 강우일 주교가 광화문광장에서 농성 중인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만났다. 무슨 말을 나눴나?
유가족이 단식이라는 극한 투쟁을 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가족들 건강 다치면 그 다음에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으니 ‘몸 추스르면서 하십시오’라고 말씀드리기는 했는데, 참… 자식들 그렇게 보내고… 먹어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일을 해도 손에 잡히지 않으니, 곡기를 끊지 않더라도 하루하루를 극한 상황에서 보내고 있는 셈이다. 7·30 재보선 끝나고 정부·여당 측은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만 하고 있는데, 안타깝다.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교황의 메시지가 있을 것 같은데.
교종께서 세월호 참사에 대해 함께 아파하시며 기도한다고 하셨다. 8월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성모승천 대축일 미사에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생존 학생 등이 참여한다. 이들을 위한 특별한 자리를 마련해서 만나실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교종이 이들과 특별히 더 가깝게 만나실 수 있도록 할 것이다.

8월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복식이 예정돼 있다. 현재 이곳은 세월호 유가족의 농성장인데, 이들의 이동 등 방안을 마련하고 있나?
제일 큰 고민거리다. 현재로는 해결 방안이 없다. 유가족들도 교회가 힘이 되어달라고 하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이다. 가장 중요한 특별법이 거부되고 있으니 참 안타깝다(인터뷰 다음 날인 8월7일 여야는 특별법에 합의했다. 유가족들은 그동안 요구한 수사권과 기소권이 조사위원회에 부여되지 않았다며 반발했다). 방한에 임박해서 농성장 이동 등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최악의 경우에는 우리가 그들을 끌어안고 미사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연합뉴스세월호 희생자 승현군과 웅기군의 아버지(위)는 도보순례 내내 들고 다녔던 나무 십자가를 교황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단원고에 다니던 세월호 희생자 승현군과 웅기군의 아버지가 팽목항을 거쳐 대전으로 도보 순례하고 있다. 나무 십자가를 교황에게 전달하고 싶다고 한다.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의 마음을 나도 함께 느꼈고 그러면서 같이 걷고 싶었다. 시간이 여의치 못해 같이하지 못했지만 마음은 함께 걸었다. 교종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광화문에서 농성 중인 많은 단체가 교황께 드리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교황의 방한을 기대하는 듯하다.
그분들의 바람이나 기대도 이해는 가지만 구체적인 지역의 문제에 대해 언급하거나 해답을 주실 수는 없을 거다.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하시고. 원론적인 차원의 말씀밖에 못하시리라 생각이 된다. 그렇지만 그의 이야기를 우리의 상황에 적용시켜서 우리가 해석하고 잘 알아들어 실천해야 한다.

남북 화해 메시지도 제시될까?
역대 교종들께서 남북한 관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계셨다. 특히 북한 정부 이야기와는 별도로, 북한 주민들의 어려움에 대해서 굉장히 마음 아파 하신다. 기회 있을 때마다 교황청 차원에서 경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계속 관심을 가져왔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에 냉전 구도, 남북한 대결, 동북아 긴장을 보시면서 평화를 간절히 기원하며 한국에 찾아오시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교종은 5월에 중동을 순방하면서 요르단에서 헬기를 타고 직접 팔레스타인을 방문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봉쇄하는 분리 장벽 앞에서 중동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굉장히 상징적이고 의미가 있는 행보다. 그전에 바오로 6세와 요한 바오로 2세는 성지를 방문하셔도 바로 이스라엘로 들어가셨는데 이분은 일부러 이슬람 지역인 요르단에서 팔레스타인을 거쳐 이스라엘로 가셨다. 유다이즘(유대교)과 이슬람의 격돌을 평화로 이끄시고자 하는 의도가 분명히 있다. 최근에 가자 지구에서 일어나는 참사를 보면서 “(전쟁을) 멈추라. 제발 멈추라”고 기도하시는 행보가 결국 한반도와 연결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방한을 준비하면서 평화에 대한 지향을 보여주셨다. 8월18일 명동성당 미사 때 평화를 위한 미사를 진행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다.
우리도 놀랍다. 선대 교종들이 지켜오시던 관행을 과감하게 깼다. 한마디로 파격이다. 삶의 배경 때문에 그러한 파격이 자꾸 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분은 예수회에 입회해 사제가 되었고,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장, 아르헨티나 주교회의 의장을 거치셨다. 교구장으로 일하면서 가난한 사람, 핍박받는 사람, 독재정권에 잡혀간 사람 중에 평신도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셨다. 그들을 위해 일하신 분이다. 다른 선대 교종들보다 현실 속에 아픔과 죄악과 독재와 정경유착을 피부로 느끼면서 사셨다. 그래서 교종 되시고 난 뒤에도 현실을 도외시한 원리만의 가르침이 아니라 될 수 있는 대로 현실과 연결된 교회의 수장으로서 가르침을 주려고 애를 써오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강 주교가 보기에 가장 ‘파격’이었다고 생각하는 교황의 행보는 무엇인가?
즉위하신 뒤 첫 인사말이 “보나세라(buona sera)”였다. 평범한 사람들이 쓰는 이탈리아어 저녁 인사 ‘안녕하세요’라는 말이다. 교종으로서 거룩한 말씀을 할 만한데 권위를 뺀 모습이다. 또 스스로를 ‘로마의 주교’라고 쓴다. 교황은 아버지라는 뜻으로 라틴어 파파(papa)에서 유래했는데 이분은 교황(papa)이라는 칭호를 처음부터 쓰지 않으셨다. 해마다 사제들의 주소를 적은 주소록이 나오는데, 그 전까지 교황은 여기에 자신의 이름과 함께 파파(p.p 교황의 약자)라고 썼다. 이분은 자기 이름 ‘프란치스코’만 썼다. p.p를 뺐다는 건 당신의 권위를 되도록 벗고 싶다는 뜻이다. 낮은 데로 임하려는 흔적이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시사IN 조남진8월5일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 현장에서 미사를 보던 사제들이 들려 나오고 있다.


강 주교도 제주 해군기지 반대나 세월호 유가족을 위한 활동을 한다. 주교가 생각하는 종교인의 모습은 무엇인가?
종교인의 모습이라기보다 예수님이 가신 길을 비슷하게나마 따라가려고 하는 것뿐이다. 예수님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을 일부러 찾아다니면서 그들과 함께 어울리셨다. 주류 사회에서는 그런 예수님이 눈엣가시이고 껄끄러웠을 것이다.

현재 한국 교회를 두고 양적 성장은 이뤘으나 질적 성장은 이루지 못했다는 평이 나온다.
맞다. 가톨릭교회 내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강정, 밀양, 쌍용자동차 사건에 관심을 갖고 함께하고 있지만 한쪽에서는 정반대의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몇 년씩 가난한 이들을 대변하거나 그들과 함께하는 사제들이 있다. 지난 6월, 마리오 토소 주교(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사무총장)가 한국에 다녀가셨는데, 한 인터뷰에서 ‘한국 교회가 보수적이라는 평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아니다. 한국 교회는 생동감이 있다”라고 답변했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약자들을 위해 열심히 뛰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씀이다. 한국 교회는 여러 문제가 많지만 우리의 부족함을 아는 분들이 현실 속에서 제일 낮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아픔을 함께하려 투신하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한국 교회는 여전히 역동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제들의 시국 미사 등 대외적인 움직임 자체를 비판적으로 보는 교회 내부의 시각도 있는데.
그런 시각은 언제나 있었다. 김수환 추기경이 박정희 정권 때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셨다. 그때도 교회 내에서 많은 성직자들이 찬성하지 않았다. 사제가 사회적 발언을 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들이 꽤 있었다. 그러다가 역사가 흘러가면서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가 서서히 이뤄지면서 그런 분들도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제주교구 내 강정 해군기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7년 전에 이 문제를 거론하고 호소하기 시작했을 때 많은 신부들이 교회가 나서서 국방과 관련된 일을 반대하는 게 옳은 일인지 문제 제기를 했다. 우리 안에서도 여러 번 논의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게 되었다. 이게 단순히 해군기지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평화라는 큰 문제, 아시아의 평화, 세계 평화와 연결된 큰 문제구나 깨닫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매일 강정 공사 현장에서 미사를 보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나는 하나의 기적이라고 본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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