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과 아름다운재단이 함께한 ‘노란봉투’의 기적을 아시죠? 〈시사IN〉 독자 배춘환씨가 쌍용자동차 손해배상 기사를 읽고 씨앗을 뿌린 ‘4만7000원의 기적’. 그녀가 읽은 기사를 쓴 주인공이 송지혜 기자입니다.

송 기자는 눈물이 많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일 안산 지역을 취재하라고 보냈더니, 취재를 끝내고 돌아와 컴퓨터 화면을 멍하게 쳐다보며, 하염없이 울기만 했습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는 김밥을 같이 말았고, 밀양 송전탑 현장에서는 끌려가는 할머니들을 도우려고 경찰에 맞서 앙칼지게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사회팀장인 저한테 타박을 자주 듣습니다. “취재하러 보냈더니 취재는 안 하고, 울고 싸우냐”라고. 그런데 이제 와 말하면, 송 기자의 눈물과 분노, 그 열정이 부럽기도 합니다. 유가족들의 전국 순회 서명운동에 동행 취재를 보냈는데, 동행했던 학부모들 사이에 ‘〈시사IN〉은 몰라도 송지혜 기자는 모두 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눈물 많은 송지혜 기자가 팽목항에 있습니다. 2주 동안 매일 팽목항에서 편지를 보냅니다. 그 첫 번째 편지.



송지혜 기자의 팽목항 편지 1(7월22일 팽목항에서)

7월22일 오후 5시30분. 현철이 엄마, 인영이 엄마, 지현이 엄마가 나란히 팽목항 등대 길로 나왔습니다. 엄마들의 손에는 튀김우동 컵라면이 각각 들려 있습니다. 돌아오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주는 저녁밥입니다. 밥을 주며 현철이 엄마가 한참을 웁니다. 그 곁에 선 지현 엄마가 라면 몇 가닥을 바다에 뿌립니다. “지현아, 친구들 손잡고 그만 나와. 이제 집에 가자 지현아. 아버지 손잡고 집에 가자. 라면 먹고 집에 가자 지현아! 응. 라면을 좋아했는데 엄마가 못 먹게 해서 미안하다. 3월에 먹고 처음이네.” 지현 엄마는 ‘돌아오라 지현아’라는 글씨가 적힌 노란 플래카드를 한참 만지작거리다 체육관으로 돌아왔습니다. 98일. 플래카드도 빛이 바랬습니다. 팽목항에는 돌아오지 못하는 10명의 이름이 적힌 노란 깃발이 펄럭이고 있습니다.

팽목항을 2주 전에 찾았습니다. 취재를 끝나고 서울로 올라가며 조만간 다시 오겠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가족들은 손사래를 쳤습니다. “우리는 그때 여기 없을 거야.” 서울에서, 안산에서, 국회에서 만나자고 인사를 했습니다.

서울에서, 안산에서, 국회에서, 광화문에서 만나자던 약속은 바람이었습니다. 이루어지기 힘든 바람이란 걸 알지만 간절히 이뤄지길 기원했습니다. 그사이 294번째 주검이 올라왔습니다. 이제 10명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원고 2학년 학생 황지현, 박영인, 허다윤, 남현철, 조은화
단원고 교사 고창석, 양승진
일반인 이영숙씨
그리고 권재근씨와 그 아들 혁규군

그동안 썰렁했던 진도 체육관과 팽목항에는 참사 100일을 앞두고 기자들이 하나둘 오기 시작했습니다. 기자들을 맞는 유가족들 마음은 편치 않아 보입니다. 한 방송기자가 잇달아 질문을 하자, 유가족은 “백일잔치 났느냐”라고 쏘아붙였습니다. 저녁 8시 야당 의원들 방문한다는 소식이 퍼지자, 또 다른 유가족도 볼멘소리를 했습니다. “그간 뭐 하다가 이제야 티내러 오느냐? 자리 피할란다.”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다윤양 아버지는 기자들을 피하기 위해 체육관을 떠났습니다. 저녁 식사 뒤 국회의원 방문이 있다며 방송 차량과 기자들이 몰려들자, 몇몇 가족은 체육관을 벗어나 진도시내로 나왔습니다.

어제부터 실종자 가족은 임시주택을 아예 비우고 체육관에서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시신을 찾은 가족들은 떠났지만, 이부자리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4월에 쓰던 봄 이불은 30℃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는 솜이불과 비슷합니다. 체육관에는 모기장도 펼쳐졌습니다.

7월20일부터 물살이 잠잠해지는 소조기였습니다. 수색이 재개되자, 영인이 외삼촌과 지현이 아버지가 수색을 하는 바지선에서 머뭅니다. 아예 짐을 싸가지고 그곳에서 잠수사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영인이 엄마와 현철 엄마도 바지선에 있다가 오늘 오전에 나왔습니다. 소조기라 희망을 걸었지만 아직 성과는 없습니다. 가족들은 잠수사도, 지원에 나선 소방관들도 더 이상 희생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약 없는 기다림에 가족들도 지쳐갑니다. 실종자 이영숙씨 동생 영호씨는 결국 입원하고 말았습니다. 2주 전 입원한 현철이 아빠는 사흘 전에 퇴원했습니다. 퇴원 뒤에 다시 감기 몸살에 걸려 오늘도 누워 지냈습니다. 가수 김장훈씨가 하루 한 끼 밥이 넘어가지 않으면 먹으라고 약을 선물해주고 갔습니다. 그 약을 지현이 엄마가 영인이 엄마에게 전해주었습니다. 팽목항의 기다림은 언제 끝날지, 가족들은 100일 전에 끝나기를 바랍니다.


송지혜 기자의 팽목항 편지 2(7월23일)

오전 8시, 오늘도 지현양 어머니는 팽목항 방파제에 아침밥을 차립니다. 평소 등교하기 전 먹던 김과 콩밥을 준비했습니다. 잘 먹던 육포와 초콜릿, 오렌지주스, 방울토마토도 잘 차려둡니다. ‘설마 배가 고파서 못 나오는 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 때문에 밥을 차리기 시작했습니다. 변하지 않은 일상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과입니다.

지현양 아버지는 소조기 동안 바지선에 올랐습니다. 바지선에서 진도체육관으로 돌아온 영인군 어머니와 현철군 어머니는 또 1박2일간 바지선에 오르려다가 말았습니다. 파고가 높다고 알려진 7월24일, 바지선이 항구로 이동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면 수일간 수색은 또 중단됩니다.  

다윤양 어머니는 오전 9시30분, 처음으로 바지선에 올랐습니다. 사고 해역으로 배를 타고 1시간30분간 들어가면 바지선에 닿습니다. 흔들리는 배 안에서 멀미약을 먹고 견뎌야 합니다. 다윤양 어머니는 신경섬유종을 앓는 환자입니다. 그래도 딸에게 가까이 다가가고픈 엄마의 마음을, 아무도 꺾지 못했습니다. 엄마가 가까이 가서 손을 내밀어야 딸이 나올 것 같아서입니다. 다윤양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100일이 무슨 의미가 있어, 49재나 삼우제도 의미 없어. 아직 뼈 하나 찾지 못했잖아….”

진도체육관의 시계는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갑니다. 실종자 가족은 바지선을 타고, 군청과 팽목항에서 열리는 브리핑에 참석하고, 광주에서 열리는 세월호 재판도 방청합니다. 오늘 열린 재판에는, 아이의 주검을 찾고 장례까지 치렀지만 진도에서 함께 지내는 세희 아버지와 동영이 아버지가 다녀왔습니다.

7월23일 전국 각지에서 ‘기다림의 버스’가 진도로 향했습니다. 낮 12시, 서울 대한문에서 출발한 버스 두 대는 오후 7시30분께 진도체육관에 도착했습니다. 실종자 가족과 함께 70일 넘게 진도체육관에서 동고동락하는 배의철 변호사가 ‘기다림의 버스’ 참가자 150여 명을 맞이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정부는 사죄하지 않는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는 잘못되었다. 국가가 하지 않는다면, 국민이 하는 게 맞지 않겠나. 그래서 많은 분들께서 실종자 가족을 만나러 왔을 때 한 가지 부탁을 드린다. 국민을 대표해서 마음을 전달해달라. 무릎을 꿇고 함께 인사하는 게 어떨까.”

진도체육관에 150명의 참가자가 무릎을 꿇은 채 실종자 가족을 향해 인사를 할 때 실종자 가족 역시, 무릎을 꿇었습니다. 양한웅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은 “기다리는 마음을 함께하겠다”라며 간절한 마음을 담아 앉은 채 참가자들과 함께 세 번 절했습니다.

현철군 아버지는 “광화문에서 그만하라고 말하는 어르신 말씀에 칼로 찌르는 듯 아팠지만, 나 역시 천안함 사고가 난 몇 개월 이후 ‘아직도 하느냐’는 생각을 했다. ‘이제와 죄를 받는구나’ 한다. 실종자 가족은 오직 뼛조각을 찾아서 발인해주고픈 마음뿐이다.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하다. 국민이 우리를 저버리지 않았다고, 자부심을 갖겠다”라고 답했습니다.

기다림의 버스 참가자들은 팽목항에서 풍등을 날렸습니다. 실종자 10명의 이름을 목 놓아 불렀습니다.

“우리에게 100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라며 한탄했던 다윤양 아버지는 한 시민이 전해준 ‘꼭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편지를 읽고 또 읽은 뒤 잠들었습니다.


송지혜 기자의 팽목항 편지 3(7월24일)

‘안녕히 주무세요’라는 인사말을 건네기 힘든 밤이었습니다. 이곳 팽목항 가족들도 마음은 서울광장에, 광화문에 있었습니다. 폭우 속에 청와대로 가려던 가족들을 막는 경찰을 인터넷 방송으로 보았습니다.

세월호 참사 100일째였던 7월24일, 이곳 진도체육관의 공기도 무거웠습니다. 많은 이들이 한꺼번에 다녀갔습니다. 실종자 가족에게는 갑자기 많은 사람을 맞이하는 일 자체가 버겁습니다.

오전 10시30분, 정홍원 국무총리와 이주영 해수부 장관, 김석균 해경청장이 이곳을 찾았습니다. 30분 남짓한 짧은 만남이었지만 가족들의 부탁은 절절합니다.

“겪지 말아야 할 100일입니다. 총리께서 오시니 그나마 기자들도 왔습니다. 여기서 두세 명 나가면 또 심리적 압박을 느끼겠지요. 한 명만 남더라도 정부가 실종자 가족을 마지막까지 지켜주시기를….”

ⓒ시사IN 신선영

오후 2시30분, 진도고등학교 학생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00일의 기다림’ 행사가 팽목항 방파제에서 열렸습니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실종자 가족은 한쪽에서 아빠, 아들, 딸, 남편, 동생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다섯 살 권 아무개 양은 고모의 손을 빌려 노란 풍선에 글을 씁니다. 권양은 제주도로 이사를 가다가 참사를 당해 아빠, 엄마, 오빠를 잃었습니다. 엄마는 주검이라도 찾았지만, 아빠와 오빠는 아직 실종 상태입니다. ‘아빠, 오빠, 빨리 돌아와. 너무나도 보고 싶어. 아빠, 오빠, 사랑해.’ 가족은 노란 풍선에 바람을 담았습니다. 풍선이 하늘 높이 오르는 동안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팽목항을 채웠습니다.

ⓒ시사IN 신선영

가족의 마음을 하늘은 알기나 하는 것일까요. 궂은 날씨 탓에 수색은 중단됐습니다. 오전 7시 바지선에서 나온 지현양 아버지는 걱정하는 가족들을 향해 “허탕 쳤다”라며 쓴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체육관에 도착하기 전 배를 타고 나올 때는 본심을 숨기지 못한 채 울고 말았습니다.

정부 관계자와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가 빠져나간 참사 100일째 밤. 진도체육관에는 실종자 가족 15명만 남았습니다. 몇몇은 링거를 맞고, 몇몇은 작은 휴대전화에 의지해 광화문 시위 현장 생중계 방송을 지켜보았습니다. 100일째 밤이 또 이렇게 지나갔습니다.

*사진들은 팽목항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신선영 기자의 취재 사진입니다.

ⓒ시사IN 신선영

송지혜 기자의 팽목항 편지 4 (7월25일)

주말입니다. 쉬는 날이죠. 하지만 이곳은 월요일이나 토요일이나, 또 화요일이나 일요일이나 똑같습니다. 이곳에 있으면 요일 개념이 사라집니다. 일상이 똑같습니다. 이곳에서 의미 있는 요일은, 수색을 하는 날입니다.

진도 하늘에는 구름이 빠르게 흘러갑니다. 바람이 많이 붑니다. 팽목항에 걸린 돌아오지 못한 10명의 이름이 쓰인 노란 깃발도 펄럭입니다.

ⓒ시사IN 신선영

태풍과 장마의 영향으로 수색이 중단되자 몇몇 가족은 안산에 잠시 다니러 갔습니다. 사나흘 뒤 돌아올 텐데 남아 있는 가족은 아쉬움을 숨기지 못합니다.

오랜만에 집으로 향하는 지현양 아버지는 “이제 안 내려올 거야. 지현이가 체육관에 있겠어? 집에 있겠지”라며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합니다.

수색이 중단되면, 가족들은 바다를 지켜보거나,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추억할 수밖에 없습니다.

잠시 집으로 다니러 떠난 가족 외에 진도체육관에 남은 실종자 가족은 네 가족입니다. 세월호 참사 100일이라며 이곳을 찾았던 기자와 정치인, 정부 관계자들도 모두 떠났습니다.

진도체육관은, 팽목항은 다시 하염없이 기다리는 가족들만 남았습니다.

ⓒ시사IN 신선영

팽목항에 머물렀던 신선영 사진기자가 주말에 편집국으로 복귀했습니다. 송지혜 기자는 팽목항에, 진도체육관에 그대로 머물고 있습니다. 신 기자는 이번 주 재·보궐 선거도 있어서 사진팀 손이 부족해 복귀했습니다.


신선영 기자의 취재기와 취재 사진 올립니다.

신선영 사진기자의 팽목항 편지

7월26일 토요일 아침부터 진도체육관에서는 제습기 물이 쏟아지는 바람에 분주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쏟아진 물을 닦으려다, 체육관 바닥에 깔린 은색 비닐을 들춰보다 놀랐습니다. 곰팡이가 잔뜩 생겼고 벌레들이 기어 다녀 ‘대공사’에 들어갔습니다.

주검을 찾은 가족들이 떠나도 은박지 비닐을 그대로 뒀는데, 그사이 안에서는 곰팡이가 생기고, 벌레가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양승진 교사의 아내는 청소해준 자원봉사자들을 안고 고맙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시사IN 신선영

오후에는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진도체육관을 다녀갔고, 그 후 실종자 가족들은 다 같이 등산을 다녀왔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은 매일매일 비슷한 일상으로 보이고, 기다림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일상처럼 보이지만, 매우 치열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시사IN 신선영

송지혜 기자의 팽목항 편지 5 (7월27일)

손님이 오셨습니다. 웅기군 아버지 김학일씨와 승현군 아버지 이호진씨와 누나 아름씨가 7월27일 오전 11시, 실종자 가족에 머물고 있는 진도체육관에 도착했습니다. 이들은 5kg의 나무십자가를 어깨에 짊어지고 아들의 사진을 목에 걸었습니다. 시민 100여 명은 전날 숙소인 우수영성당에서 진도체육관까지 17㎞에 이르는 길을 동행했습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84일째인 7월8일부터 안산 단원고를 출발해 진도체육관을 거쳐 팽목항을 향해 걷고 있습니다. 20일 간 500㎞를 걸어서 진도체육관에 도착했습니다. 팽목항을 거쳐 이들은 다시 대전으로 향합니다.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15일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집전하는 미사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아버지들은 “십자가에는 304명의 혼과 고통, 그리고 전 국민의 바람이 담겨 있다. 이 십자가를 교황께 전해드리는 꿈이 이뤄졌으면 좋겠다”라고 소망합니다.

실종자 가족을 만난 김학일씨는 “배 안에 아직 아이들이 있습니다”라고 짧게 말했습니다. 실종자 가족과 마음을 나누며 꼭 껴안았습니다. 그리고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실종자 가족인 현철군 아버지는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다”라며 이호진씨의 신발을 직접 벗겨드렸습니다. 그의 발에는 붕대가 친친 감겨 있었습니다.

물집이 잡힌 발, 검게 그을린 얼굴. 한눈에 보기에도 피곤에 절어 있던 이들에게 진도 주민 정성주씨(39)가 웅기와 승현군 초상화를 준비했습니다. 아들의 얼굴을 본 이들의 얼굴빛이 잠시 밝아졌습니다. “똑같네, 우리 아들….”

태풍의 영향권을 벗어나면서 세월호 수중 작업도 재개되었습니다. 다시 희망을 말합니다. 다윤이 어머니는 떠나는 시민에게 인사합니다. “안산에서 만나요. 우리 안산에서. 이번엔 진짜.”

도보 순례단은 진도체육관에서 하루 머문 뒤인 7월28일 오전 5시, 팽목항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그날 저녁 6시30분 이들은 팽목항에서 실종자와 희생자를 위한 미사를 올립니다. 미사를 올리는 제대에 웅기와 승현이의 초상이 놓여집니다.


송지혜 기자의 팽목항 편지 6 (7월28일)

7월28일 저녁 6시 진도 팽목항 앞에 차려진 거리 성당에서 두 아버지는 정성스럽게 미사를 드렸습니다. 제대에는 승현군과 웅기군의 초상화가 놓였습니다. 지칠 대로 지친 가족은 머리를 숙였습니다. 천주교 광주대교구 김관수 신부가 두 아버지를 살포시 껴안았습니다.

웅기군 아버지 김학일씨와 승현군 아버지 이호진씨, 누나 아름씨는 진도체육관에서 팽목항까지 수십 번을 다녀갔던 길을 또 걸었습니다. 걷는 8시간 동안 장대비가 내려서 운동화가 완전히 젖어버렸습니다.

팽목항에 도착한 아름씨는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승현군 아버지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듣고 304명이 몰살당한 장소에 왔다. 하루를 쉼 없이 걸었다. 걷는 동안 실종자 가족이 모두 나오기를 바랐는데 한 명밖에 나오지 않았다. 기도가 부족했나 보다. 실종자 가족에게 미안하다. 새 일정이 시작되니 아직 끝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진도 주민이자 한국화 화가로 활동 중인 김영주씨는 승현군과 웅기군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세 살배기 그의 아들 수현이가 초상화를 아버지께 전달했습니다. 승현군 아버지는 울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다시 왔던 길을 거슬러 대전까지 걸어서 올라갑니다.

전국에 폭염이 기승을 부린다는데 진도는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칩니다. 세월호 구조 수색작업이 재개된 지 하루 만에 수색은 또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새누리당 의원들 입에서 오늘도 ‘교통사고였다’는 발언이 이어집니다. 보수 신문은,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실종자 가족들에게도 해양수산부 장관을 이제는 놓아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실종자 가족은 진도체육관에서 하루 종일 갇혀 있는 듯 지냅니다. 할 말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지만 기다리고 기다리며, 또 그렇게 버티고 있습니다.


송지혜 기자의 팽목항 편지 7 (7월29일)

단원고 양승진 교사의 부인 유백형씨(53)는 바쁜 하루를 보냈습니다. 유씨는 진도체육관에서 일어나자마자 인근 주택으로 향했습니다. 쓸고 닦기를 세 시간, 105일간 체육관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모습입니다.

유씨는 “30년 경력의 주부가 체육관에서 갇혀 있었다”라면서 걸레를 빨고 청소를 했습니다. 그녀가 청소하는 주택은 김진명 전 단원고 교장이 묵을 숙소입니다. 경기도 교육청은 지난 6월17일 사고 책임을 물어 김 교장을 직위 해제시켰습니다. 사고 직후부터 김 교장은 진도에 머물렀습니다. 불교 신자인 그는 인근 절에서 자거나, 진도읍에 나가서 한뎃잠을 자며 현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실종자 부모들이 묵고 있는 진도체육관 1층에는 가급적 얼굴을 비치지 않습니다. 가족들의 애타는 마음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는 오늘도 체육관 옆에 붙어 있는 천막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제자와 후배 교사들을 기다립니다. ‘죄인’인 교사의 마음을 아는 유씨가 그런 김 전 교장을 위해, 머물 만한 인근 주택을 찾아 청소를 한 것입니다.

다윤이의 단짝이었던 2학년2반 민지 아버지가 진도로 내려왔다가, 안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민지는 참사 70여 일 만인 지난 6월24일에야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 기다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알기에, 민지 부모는 일부러 진도까지 다시 찾아왔습니다. 다윤이 부모는 민지 부모에게 “우리도 내일 갈 거야”라고 작별 인사를 건넸습니다. 떠나는 민지 아빠는 다윤이 아빠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수색은 재개되었지만, 성과는 없습니다. 매일 오후 5시면 팽목항에서 진행되는 수색 결과 브리핑을 기대하지 않은 지 오래입니다. 지현양 어머니는 또 팽목항 방파제에 밥을 차리고 영인군과 현철군 부모는 바지선에 올랐습니다. ‘또 이렇게 하루가 가는구나.’ 9시 뉴스가 끝나자, 유백형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습니다. 이곳은 시간이 멈춰 있습니다.



송지혜 기자의 팽목항 편지 8 (7월30일)

세월호 참사 106일째 7월30일, 전국 15곳에서 치러진 재보선 투표가 있던 날이었지만, 가족들에게는 수색이 계속된 날이라 더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곳 달력은 수색하는 날과 수색하지 못하는 날로만 구분됩니다.

현철이, 영인이 부모와 지현이 아버지는 수색 상황을 지켜보기 위해 바지선에 또 올랐습니다. 수중 수색은 1시간30분씩 한 번 혹은 두 번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오늘도 성과는 없었습니다.

오후 1시 수색마저 중단되었습니다. 12호 태풍 나크리 영향권에 들면서 진도 앞바다가 출렁였습니다. 바지선은 인근 항구로 대피했습니다. 8월4일까지 수색은 또 중단된다고 합니다. 바지선에 올랐던 가족들은, 오후 3시 고개를 푹 숙인 채 다시 체육관으로 돌아왔습니다. 기다림의 시간은 속절없이 길어집니다. 

이날 저녁 실종자 가족들은 재·보궐 선거 결과를 말없이 지켜보았습니다. 양승진 교사의 아내 유백형씨는 “여당이 승리했네”라는 말만 남긴 채 뉴스 화면에서 눈길을 돌렸습니다. 평소 자정 넘어서까지 뉴스를 보던 실종자 재근씨의 형 권오복씨는, 보지도 않던 드라마로 채널을 돌려버렸습니다.

‘배가 인양되기 전에 가족을 찾을 수 있을까’ ‘세월호 참사는 진상규명이 될 수 있을까’ 재보선 결과를 지켜보던 가족들이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말을, 몇몇 자원봉사자들이 혼잣말하듯 내뱉었습니다.

* 7월31일 현재 국회와 광화문에는 예은이 아빠 유경근씨와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가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되는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18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송지혜 기자의 팽목항 편지 9 (7월31일)

-진도체육관을 나 홀로 찾은 이정현 의원

예정에 없던 편지를 이 밤에 띄웁니다. 이정현 의원 때문입니다.

7·30 재보선 순천·곡성 지역에서 당선한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오늘 저녁 6시께 진도체육관을 찾았습니다. 이날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돌며 당선 인사를 했던 이 의원은, 수행 보좌관 없이 홀로 진도를 방문했습니다. 노란색 윗옷을 입고 얼굴이 새까맣게 탄 채, 예고 없이 방문한 탓에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시골 주민 같았습니다. 실종자 가족들도 진도군청 직원한테 이정현 의원이 왔다는 귀띔을 받고서야 알아보았습니다.

태풍 탓에 어제부터 수색이 중단되면서 몇몇 가족은 안산에 가거나 자리를 비웠습니다. 남은 실종자 가족 8명이 이 의원과 20여 분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 의원은 먼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가족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 그는 지난 5월 대통령의 진도 방문 때 수행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인 셈입니다.

ⓒ연합뉴스

단원고 2학년9반 세희 아버지 임종호씨는 “가족을 찾는 게 중요한데 진도에 경제가 어렵다고도 한다. 소상공인의 불만이 실종자 가족을 향한다. 이런 부분까지 실종자 가족이 신경 쓰지 않도록 힘써달라”고 말했습니다.

이 의원은 “전라도가 지역적으로 낙후되어 국회의원 출마를 결심했다. 화성 기아차 공장에 가보니 연 50만 대를 생산하더라. 그 부품을 만드는 회사가 전라도에는 없다. 부품회사를 인근에 만드는 게 내 공약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의원이 공약을 설명하자, 임종호씨는 공약보다는 세월호 문제에 집중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임씨는 “여야를 떠나서 세월호 진상규명에 매달리는 정치인이 필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임종호씨는 또 “새누리당이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특별법을 안 받아들이는데, 국회 가면 이런 부분을 시정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의원은 어떤 부분이 모자라는지 되물었습니다.

이 의원은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고개를 푹 숙인 채 수첩에 가족들의 요구 사항을 적었습니다. 이렇게 이 의원은 20여 분간 가족들을 만난 뒤 떠났습니다.

지역주의 벽을 허물며, 재보선 최대 이변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이정현 의원.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한 그는 새누리당 지명직 최고위원으로까지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정현 의원이 수첩에 적어간 가족들의 요청을 새누리당에, 그리고 청와대에 전달할까요?



지난 2주간 팽목항에 머물렀던 송지혜 기자가 마지막 편지를 띄웁니다.

 

송지혜 기자의 팽목항 마지막 편지 (8월1일)

가수 김장훈씨가 팽목항을 찾았습니다.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은 김장훈씨를 “형” “장훈이”라고 편하게 불렀습니다. 김씨의 진도 방문은 이번이 10번째입니다.

저녁 7시30분께 도착한 그는 실종자 가족을 보자마자 끌어안았습니다. 7·30 재보선 결과를 지켜본 뒤 가족들이 겪을 참담함이 떠올라 이곳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그가 준비한 생선회 3kg와 함께 술상이 차려졌습니다. 실종자 가족, 자원봉사자, 조리팀과 심리치유지원단 등 30여 명이 함께 소주잔을 비웠습니다. 평소 술을 잘 하지 못하는 김장훈씨도 가족들이 주는 술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얼큰하게 취해 붉어진 얼굴로 그는 “평범한 사람들이 참담하고 부당하게, 억울하게 참사를 겪었다. 언론도 정치인도 이미 잊은 것처럼 보인다. 팽목항을 잊고 세월호를 잊는다면 정의롭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마침표를 찍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음은 김장훈씨와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태어나서 사명감을 느껴본 건 처음이다. 내가 시절을 바꾸겠다고 생각해 본 적 없다. 요새는 내가 영향력이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다. 최근 드라마 정도전을 세 번 보았다. 정도전은 대단한 혁명가지만 비참한 종말을 맞는다. 그런 결과를 얻고 싶지 않다. 이번만큼은 이기는 싸움을 하고 싶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99%를 끌어안고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안전한 대한민국은 나 혼자서 만들 수도 없고,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보미와 함께 한 거위의 꿈 클릭수가 300만에 육박한다. 사람들이 다 같은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유가족은 거리로 나와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다. 울다 지쳐 더 이상 울 힘도 없는 가족들이 직접 나서서 다시 안전한 대한민국 만들자고 거리로 나왔다. 유가족도 국민이고 국민도 유가족이라는 마음이 모아져야한다.

가수가 노래나 하지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가수가 노래만 하는 세상, 그게 바로 내가 꿈꾸는 세상이다. 가수는 세상 속에서 노래하는데 세상을 등지고 무대에 올라가면 그것도 참담한 일이다.

박근혜대통령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안전한 대한민국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유가족도 똑같은 걸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 보좌관 등 여러 압박 전화를 많이 받는다. 세월호 관련해 더 이상 발언하지 말라는 뉘앙스다.

월요일부터 수위를 높인 싸움을 시작할 것이다. 세 가지 버전의 싸움 중 한 가지를 선택할 것이다. 무엇이 최선의 방식인지 고민하고 있다. 과격하거나 법에 어긋나는 활동은 하지 않겠다. 유가족이 나로 인해 훼손되어서는 안 되어서다.

7월29일 트라우마 교육을 받기 위해 일본에 다녀왔다. 앞으로 10년 동안 전 세계를 다니며 트라우마 교육을 받고 조직을 세우고 싶다. 씨랜드 참사, 대구 지하철 참사, 경주 마우나 리조트 참사, 태안 해병대 캠프 참사 등 국가적 재난이 이어지고 있다. 어느 누가 내 일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국민 1000만 명이 트라우마와 관련한 교육을 받고 이러한 사고가 일어났을 때 잘 대처할 수 있는 기량을 가졌으면 좋겠다.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그만한 일을 하고 싶다.”

반가운 사람은 또 있습니다. 매주 금요일, 서울에서 출발하는 ‘기다림의 버스’가 밤 8시 진도체육관에 도착했습니다. 서울과 광주에서 온 시민 60명이 팽목항을 찾았습니다. 기다림의 버스에 타기 위해 부산에서 서울까지 가서, 다시 진도로 온 참가자도 있었습니다. 그 참가자는 실종자 가족에게 세 통의 편지를 전했습니다.

태풍 나크리의 영향으로 수색은 전면 중단되었습니다. 팽목항에는 우박과 같은 비가 내리고 칼바람이 붑니다. 천막은 모조리 철수되었습니다.

현철네, 영인네가 안산으로 잠시 떠난 빈 자리를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이 채웠습니다. 2학년3반 고 김초원 교사 아버지 김성욱씨가 같은 반 제자 지현양의 부모를 만나기 위해 진도를 찾았습니다. 딸을 잃은 아버지가, 돌아오지 못한 제자의 아버지를 찾아 진도에 다녀간 지 사흘 만에 또 왔습니다. 2학년3반에는 희생된 26명 중 지현이만 아직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다윤이가 수학여행을 떠나면서도 걱정했던 강아지 깜비도 팽목항을 찾았습니다. 다윤이는 강아지 깜비를 무척 아꼈습니다. 깜비는 지난해 여름 부산 이모가 선물한 귀와 눈이 큰 강아지입니다.

다윤이는 외식하러 나갈 때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뒤에도 깜비가 혼자 있는 게 걱정돼 후다닥 집에 온 적이 많았다고 합니다. 세월호가 출발한 날 다윤이는 언니에게 ‘깜비를 잘 보살펴 달라’는 문자는 남기기도 했습니다. 깜비가 오면 다윤이가 나오지 않을까 해서, 다윤네 부모가 안산에서 진도체육관까지 데려왔습니다.

100여일간 다윤이를 보지 못한 깜비도 아나 봅니다. 깜비가 맑고 큰 눈으로 마치 다윤이를 찾는 듯 팽목항과 체육관 이곳저곳을 왔다 갔다 합니다. 다윤이 엄마 아빠는 수색이 재개되기만을 기다립니다.

진도체육관에서 생활한 지 2주가 지났습니다.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었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은 음식을 나누어 먹고 대화를 하고 자주 웃었습니다. 하지만 뒤돌아서서, 홀로 남아서 눈물짓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습니다.

실종자 가족에게 세상은 진도체육관과 팽목항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참사 이후 멈춘 시간은 아이가 나올 때 다시 흐를 것입니다. 하지만 태풍과 장마의 영향으로 수색이 자주 중단됩니다. 속절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광화문과 국회에서 단식 중인 유가족은 곡기를 끊은 지 8월1일 현재 19일째입니다.

잠시 이곳을 떠나며 제 휴대폰 메인 화면에 진도군의 날씨 보기를 설정해 두었습니다. 마지막 한 사람이 돌아올 때까지 함께 기다리겠습니다. 또 오겠습니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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