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단원고 2학년3반 지현양 어머니 신명섭씨(49)는 팽목항 방파제에 밥을 차린다. 지현양은 라면을 좋아했지만, 살이 찐다며 한 달에 한 번만 먹었다. 지난 3월 이후 신씨는 4개월 만에 딸에게 라면을 끓여주었다. 7월22일 오후 5시30분, 그는 잘 익은 라면 몇 가닥을 바다에 뿌렸다. “지현아, 친구들 손잡고 나와라. 이제 집에 가자, 응? 라면 먹고 집에 가자.” ‘혹시나 배가 고파서 못 나오는 건 아닐까’ 싶어 태풍 너구리가 지나간 이후 매일 밥을 차렸다. 신씨는 방파제에 내건 ‘지현아, 돌아와’라고 적힌 빛바랜 플래카드를 한참 어루만지다 진도체육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이 가까워 오자 기자들과 정부 관계자, 국회의원들이 진도를 찾았다. 어느새 주차장을 언론사 차량이 반 이상 채웠다. 실종자 가족은 반기지만은 않는 눈치였다. 한 방송기자는 ‘실종자 가족의 이름이 뭐예요?’ ‘심정이 어떤가요?’라는 질문을 던지다 옆에 있던 자원봉사자한테 타박을 듣기도 했다. “50m 바다 속에 100일씩이나 가족을 묻은 심정이 어떨 것 같으냐? 100일 잔치 하러 온 건가?” 다윤양 아버지 허 아무개씨는 기자와 국회의원을 피해 아예 체육관 밖으로 나가버리기도 했다.

ⓒ시사IN 신선영세월호 참사 100일째인 7월24일 새벽 팽목항을 찾은 시민들이 실종자의 귀환을 기원하는 풍등을 날리고 있다.

실종자 가족에게 참사 100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였다. 유가족이 되어야만 치를 수 있는 49재나 삼우제도 의미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참사 100일이든, 99일이나 101일이든 실종자 가족에게는 같은 날이었다.

참사 100일째인 7월24일에도 진도체육관에 남은 가족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색 상황을 공유했다. 태풍 마트모와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파도가 높아 수색을 중단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바지선은 인근 항구에 정박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만 봐도 수색 여부를 가늠할 수 있었다. 다윤양 어머니는 “구름이 이렇게 빠르다는 건 바람이 빨라서겠지? 파도가 높겠구나”라고 중얼거렸다.

7월24일 오전 9시, 바다가 잠잠한 소조기에 맞춰 바지선에 올랐던 지현이 아버지, 영인이 외삼촌, 다윤이 외삼촌, 현철이 이모부는 닷새 만에 돌아왔다. 지현양 아버지 황 아무개씨는 진도체육관에 돌아와 “허탕쳤다”라고 말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기대를 품고 갔다가 아무 성과도 얻지 못한 황씨는 돌아오는 배 안에서 속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말없이 한참 눈물만 흘렸다.

‘엄마가 바지선을 타면 아이가 나온다’는 이야기 때문에 현철이·영인이·다윤이·지현이 어머니도 바지선에 오른 적이 있다. 참사 99일째였던 7월23일, 다윤양 어머니는 처음으로 바지선에 올랐다. 그녀는 신경섬유종을 앓고 있는 환자다. 바지선에 오르기 위해서는 사고 해역까지 1시간30분간 배를 타고 나가야 한다. 멀미약을 들이켜며 몇 시간씩 소음을 견뎌야 하는데도, ‘혹시나 엄마가 와서 다윤이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배에 올라탔다.

이날 안산에서 국회까지 유가족이 도보 행진을 시작한 후, 전국 각지에서 팽목항을 향한 ‘기다림의 버스’가 출발했다. 저녁 7시30분께 진도체육관에 도착한 참가자 150여 명은 미안한 마음을 담아 숨죽여 가족들 앞에 앉았다. 현철군 아버지는 “이제 그만 (인양)하라는 이야기들이, 칼로 찌르는 듯 아프다. 하지만 예상치도 않은 여러분의 방문에 힘이 난다. 국민이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는 자부심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7월24일 참사 100일째, 실종자 가족과 진도고등학교 학생 100여 명, 진도 주민과 기다림의 버스 참가자는 팽목항 방파제에서 열린 ‘100일의 기다림’ 행사에 참여했다. 외부 행사에 실종자 가족이 참여하기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을 차마 쳐다보지 못하는 몇몇 가족은 “또래 학생들만 봐도 눈물이 나는데, 교복 입은 모습까지 어떻게 보라고…”라며 진도체육관에 머물렀다.

ⓒ시사IN 신선영지현양 어머니 신명섭씨가 교복을 입고 팽목항을 찾은 딸 또래의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다.

실종자 가족은 팽목항에서 아빠·아들·딸·남편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제주도로 이사를 가다 아빠와 엄마, 오빠를 잃은 권 아무개양(5)은 고모의 손을 빌려 노란 풍선에 글을 썼다. ‘아빠 오빠, 빨리 돌아와. 너무나도 보고 싶어. 아빠 오빠 사랑해.’ ‘영인아, 사랑해. 돌아와줘. 보고 싶다.’ ‘다윤아, 사랑해. 천국에서 만나자.’ ‘양승진 선생님, 하루 속히 돌아와 주세요. 보고 싶습니다. 당신의 아내.’ 노란 풍선에 담긴 바람이 하늘로 높이 오르는 동안 가족들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팽목항을 가득 채웠다. 7월18일 조리장 이묘희씨가 수습된 이후 295번째 희생자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7월25일 현재 실종자는 10명(학생 5명, 교사 2명, 일반인 3명)이다.

초상화 속 지현양이 겨울 외투를 입은 이유

많은 이들이 한꺼번에 다녀간 이날 밤, 진도 실내체육관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실종자 가족은 15명 남짓 남았다. 다른 날과 달리 잠에 들기 직전 링거를 맞는 가족이 많았다. 몇몇은 작은 휴대전화에 의지해 폭우 속에 진행되던 광화문 시위 현장 생중계 방송을 지켜보며 잠들었다.

기자, 국무총리, 해양수산부 장관, 해경청장, 국회의원이 ‘훑고’ 간 빈자리는 늘 그랬듯이 자원봉사자들이 채웠다. 구호물품 담당 장길환씨(50), 요리사 박영규씨(60)는 세월호 참사 이후 집 대신 진도체육관에서 생활하고 있어 실종자 가족들이 형이나 오빠처럼 따른다. 또 진도 주민 정성주씨(39)는 실종자 가족을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다 초상화를 전했다. 오랜 시간 거리의 화가로 지낸 남편 김영주씨(48)를 설득해 시작한 일이었다. 현철군, 지현양, 다윤양, 양승진 선생님 등 가족에게 초상화를 선물한 이후 유가족의 신청도 늘었다. 초상화 속 지현양은 겨울 외투를 입었다. 지현양 아버지는 “추운 바다 속에 있을 딸을 생각하며 일부러 따뜻한 옷을 입은 사진을 골랐다”라고 말했다.

7월25일 수색이 중단되자 지현양 부모와 영인군 어머니는 잠시 안산 집으로 돌아갔다. “집이 있는 안산까지 가는 건 금방인데, 내려오는 마음은 너무 무겁다”라고 지현양 아버지는 말했다. 그는 농담 섞인 말로 “이제는 안 올 거야. 우리 딸, 집에 있겠지”라고 말했다. 실종자 가족은 비워진 체육관에 홀로 남는 일이 두렵다. 그래서인지 남겨진 사람들은 사나흘 집에 다녀오는 가족을 향해서도 아쉬움을 내비쳤다. “단 한 명만 남더라도 실종자 가족을 지켜주세요.” 진도체육관을 다녀간 사람들에게 전한 가족의 바람은 오직 하나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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