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4일이면, 세월호 침몰 참사가 난 지 100일이 됩니다. 〈시사IN〉은 7월21일부터 7월24일까지, 세월호 참사 100일, 100시간의 농성 현장 기록을 페이스북을 통해 전합니다.’

지난 7월21일부터 7월24일을 넘긴 25일 새벽까지 〈시사IN〉은 유가족들의 농성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유가족들의 염원이 담긴 ‘4·16 참사 진실규명 및 안전사회건설을 위한 특별법’ 채택을 요구하는 행렬을 쫓으며, 유가족들의 마음과 시민들의 목소리를 기록으로 전합니다.


세월호 참사 100일, 100시간의 기록 -7월21일
세월호 참사 100일, 100시간의 기록 -7월22일
세월호 참사 100일, 100시간의 기록 -7월23일
세월호 참사 100일, 100시간의 기록 -7월24일①
세월호 참사 100일, 100시간의 기록 -7월24일②
세월호 참사 100일, 100시간의 기록 -7월25일



 
#세월호 참사 100일, 100시간의 기록 26: 7월24일 오전 10시10분

오전 10시 광명시민체육관에서 가족들이 출발했습니다. 첫날 걸은 거리만큼 오늘 걸어야 합니다. 도보 순례에서 함께 걷기 위해 휴가내고 온 시민도 있습니다. "직장 다니는데 휴가내고 왔다. 100일인데 허탈하고 미안한 마음 들고 화도 나고 오늘 밤 광화문까지 걷겠다(직장인 윤아무개씨)"

부산에서 참여하려고 새벽에 도착한 대학생 등 30명도 있습니다. "오늘 아침 6시30분 도착했다. 부산에서 밤 11시출발했다. 유가족들이 먼저 걷는데 앉아서 보기는 좀 그래서 이렇게나마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 왔다(부산교대 여학생 황선영씨)"

가족들의 도보 순례길에 응원 부탁드립니다.

어제 광화문 현장에는 조은희 인턴기자가, 도보순례 현장에서는 김원진 인턴기자가 취재를 했습니다. 조은희 인턴 기자는, 학생들 도보 순례 날 샌들을 신고 출근했다가 바로 현장에 투입되었습니다. 샌들을 신고 걸은 탓에 새끼발가락은 빨갛게 부풀어 오르기도 했습니다. 김원진 인턴 기자는, 현장 취재를 자주 나간 탓에 점점 얼굴이 팔목이 까맣게 변합니다.

두 기자의 취재 후기를 올립니다. 사진은 이명익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광화문 단식 농성장- 조은희 인턴기자.

7월23일. 아버지들이 곡기를 끊은 지 열흘째입니다. 밤새 거센 비가 내렸습니다. 오전 9시 30분 광화문에 도착하니 반쯤 무너져 내린 천막이 눈에 띕니다. 이 천막은 유가족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 세운 겁니다. 단식농성장에 찾아올 사람들을 위해 “혹시 몰라” 천막을 쳤는데, 비로 망가졌습니다.

그래도 힘겹게 천막을 복구한 보람이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신도들이 광화문을 찾았습니다. 교단 임원부터 한신대학교 학생까지 신도 43명이 일일단식에 동참했습니다. 이들은 유가족이 원하는 특별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예배와 일일단식으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대학생들의 일일단식 참여도 크게 늘었습니다. 경기대, 서울대, 성공회대 등 학생들이 자발적 일일단식에 참여했습니다. 참여연대는 노란색 우산을 쓰고 광화문역 주변에서 피켓시위를 했습니다. 시위 뒤 이들도 일일단식에 참여했습니다. 오후에는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인 이용훈 주교, 김승환 전라북도 교육감, 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인 최영도 변호사,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등 발걸음이 단식농성 천막에 끊이지 않았습니다. 추가로 설치한 천막 두 개가 어느새 사람들로 북적거렸습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서명운동도 활발히 진행됩니다. ‘엄마의 노란 손수건’, ‘세월호와 대한민국을 위한 행동하는 사람들(세대행동)’, ‘어린이도서연구회’ 회원들이 교대로 서명을 받았습니다. 외국어에 능통한 시민은 통역을 자처해 외국인 관광객의 서명을 받았고, 몇 시간씩 목청껏 소리 지르고, 유인물을 나눠주고, 피켓을 들었습니다.

오후 6시, 가늘게 내리던 비가 잠시 그쳤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분주하게 모니터를 설치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남긴 마지막 영상이 흘러나왔습니다. 살아서 만나자, 무섭다, 살고 싶다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울려 광화문에 울려 퍼졌습니다. 사실 유가족들은 이 영상을 매일 보는 게 쉽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지금도 가슴이 울렁거리기 때문입니다.

저녁 9시, 시민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일일단식도 저녁 9시를 기점으로 마무리됩니다. 저마다 돌아갈 채비를 하고, 하루 종일 서명운동에 힘쓴 시민들도 서명대를 정리합니다. 아버지들은 쌀쌀한 날씨에 점퍼를 입었습니다. 단식농성 천막에는 전구가 없어 불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적막하고 어두운 천막 안에 앉아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몇 시에 잠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민우 아버지는 밤엔 잠이 안 오고, 새벽엔 저절로 눈이 뜨여 힘들다고 합니다.

아버지들의 단식 농성이 100일 날에 끝날 수 있을까요?

 

▶가족들 도보 순례 –김원진 인턴기자

지난 12일 토요일 저녁 6시 40분, 어머니, 아버지를 처음 만났습니다. 유가족들이 국회에서 농성을 시작한 날입니다. 집에서 쉬고 있다가 국회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처음 만난 아버지 어머니들은 지쳐 보였습니다.

도보 순례에 나선 부모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때에 비해 더 속이 타들어간 탓인지 얼굴까지 까맣게 변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들은 도보 순례를 출발할 때도 조금 어두워 보였습니다. 발걸음도 조심스러웠습니다. 유가족과 시민들은 차선 하나를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도로를 차지하면 사람들이 싫어할까봐.” 2학년 7반 성복이 아버지 박창국(57)씨는 근심스레 말했습니다. 

부모들은 책잡히는 게 싫어 보였습니다. 도보 순례 내내 쓰레기는 그 자리에서 수거했고, 캔은 발로 밟아 따로 모았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들이 지나간 자리에 쓰레기 하나 남기지 않았습니다.

2학년 7반 한 아버지 만보기를 켜고 걸었습니다.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광명시민체육관까지 4만8000 걸음을 걸었습니다. 20km 남짓한 거리를 처음 걸어보는 어머니, 아버지들은 지쳐보였습니다. 뒤꿈치가 까져 신발을 구겨 신은 아버지도 있었고, 절뚝거리면서 우산을 지팡이 삼아 걷는 어머니도 있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들은 미니버스 탑승 거부한 채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들이 걷는 이유는 팔목을 보면 알 수 있었습니다. 팔목에 ‘remember 416’이라는 노란 팔찌를 찼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들은 아마도 평생 저 팔찌를 빼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도 부모들은 20km를 또 걷습니다. 노란 팔찌를 차고 말입니다. 

 

#세월호 참사 100일, 100시간의 기록 27: 7월24일 오전 11시10분

가족들은 올바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도보 순례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이 청원한 특별법에 오해가 많습니다. 대학 특례입학이나 막대한 배상금이 담겨있다는 따위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대한변호사협회 소속으로 박종운, 김희수 변호사 등과 함께 가족 특별법안을 만든 장완익 변호사를 인터뷰했습니다. 장 변호사는 논란이 되고 있는 수사권 뿐 아니라, 누가 위원장을 맡는지, 위원회 구성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법조계에서 장 변호사는 ‘과거사 전문 변호사’로 통합니다. 2006년부터 4년간 특별법으로 만들어진 친일반민족재산조사위원회 사무처장으로 일하며, 시가 2106억원어치, 여의도 면적 1.3배에 달하는 친일 후손 땅을 찾아 국가에 귀속시킨 주인공입니다.

인터뷰 시점은 지난 7월18일이었습니다.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은, 조사위원회에 특별사법경찰 대신 특별검사를 임명하는 절충안을 낸 상태입니다.

▶장완익 변호사 인터뷰 전문 : “수사권만큼이나 누가 위원장을 맡느냐도 중요하다”

 

#세월호 참사 100일, 100시간의 기록 28: 7월24일 오전 11시45분

도보 순례단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어제 가족 185명이 출발했는데, 지금은 260명이 걷고 있습니다. 시민들도 200여명 이상 참여하고 있습니다(순례단 위치는 페이스북 독자 ▶이유민, ▶윤경희씨가 달아주는 댓글 주목. 독자 두분이 시사IN 일일 통신원으로 댓글로 위치를 알려드립니다).

시민들 가운데 부모와 자녀가 같이 참여한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여름방학을 하면서 참여가 늘었습니다.

아빠 김형욱씨(45)는 월차를 내고 딸 진솔양(16)과 걷고 있습니다. 김씨는 “백일동안 한 게 없고 죄스러워 월차를 냈다”라고 말했습니다. 딸 진솔양도 “제가 걷는 걸로 뭔가 바뀔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덧붙였습니다.

노남희씨(39)는 초등학생 아들 김지원군(13) 성화에 도보에 참여했습니다.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인데 어제 체육관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오늘 아침부터 같이 걷자고 아들이 졸라서 급하게 나왔다.” 지원군은 초등학생답지 않게 야무지게 말합니다. “광화문까지 걷고 싶어요. 처음에 가족들 만났을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슬펐어요.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없도록 특별법이 만들어 졌으면 좋겠어요”

가족들은 어깨나 다리에 거의 모두 파스를 붙였습니다. 휴식 시간에는 발목이나 무릎에 스프레이용 파스를 뿌립니다.

열흘째 곡기를 끊고 농성하는 국회 본관 앞에는 도보 순례단을 맞기 위해 분주합니다. 광화문 농성장에도 서명대가 설치되고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광화문 현장에도 방학을 맞은 이재니양(15)이 엄마와 함께 자원봉사에 나섰습니다.

“방학을 해서 오늘 처음 왔는데, 친구들은 피켓시위를 한다니까 멋있다고 많이 이야기했어요. 특별법이 꼭 재정됐으면 좋겠어요”

재니양 엄마, 김진영씨(44)는 참여한 이유를 묻자 “엄마니까”라고 답했습니다. “그동안은 참여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할 수 있는 게 없어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게 전부였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정말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래야 죄책감이 조금이나마 씻겨날 거 같았다. 오늘은 조카와 딸과 함께 왔다.”

세 사람은 오후 3시 국회로 이동해, 도보순례단에 합류할 예정입니다.

 

#세월호 참사 100일, 100시간의 기록 29: 7월24일 낮 12시30분

팽목항에 있는 송지혜 기자가 두번째 편지를 띄웁니다. 신선영 사진 기자도 현장에 있습니다.



송지혜 기자의 팽목항 편지 2(7월23일)

오전 8시, 오늘도 지현양 어머니는 팽목항 방파제에 아침밥을 차립니다. 평소 등교하기 전 먹던 김과 콩밥을 준비했습니다. 잘 먹던 육포와 초콜릿, 오렌지주스, 방울토마토도 잘 차려둡니다. ‘설마 배가 고파서 못 나오는 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 때문에 밥을 차리기 시작했습니다. 변하지 않은 일상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과입니다.

지현양 아버지는 소조기 동안 바지선에 올랐습니다. 바지선에서 진도체육관으로 돌아온 영인군 어머니와 현철군 어머니는 또 1박2일 간 바지선에 오르려다가 말았습니다. 파고가 높다고 알려진 7월24일, 바지선이 항구로 이동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면 수일 간 수색은 또 중단됩니다.

다윤양 어머니는 오전 9시30분, 처음으로 바지선에 올랐습니다. 사고해역으로 배를 타고 1시간30분 간 들어가면 바지선에 닿습니다. 흔들리는 배 안에서 멀미약을 먹고 견뎌야 합니다. 다윤양 어머니는 신경섬유종을 앓는 환자입니다. 그래도 딸에게 가까이 다가가고픈 엄마의 마음을, 아무도 꺾지 못했습니다. 엄마가 가까이 가 손을 내밀어야 딸이 나올 것 같아서입니다. 다윤양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100일이 무슨 의미가 있어, 49재나 삼우제도 의미 없어. 아직 뼈 하나 찾지 못했잖아...”

진도체육관의 시계는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갑니다. 실종자 가족은 바지선을 타고, 군청과 팽목항에서 열리는 브리핑에 참석하고, 광주에서 열리는 세월호 재판도 방청합니다. 오늘 열린 재판에는, 아이의 주검을 찾고 장례까지 치렀지만 진도에서 함께 지내는 세희 아버지와 동영 아버지가 다녀왔습니다.

7월23일 전국 각지에서 ‘기다림의 버스’가 진도로 향했습니다. 낮 12시, 서울 대한문에서 출발한 버스 두 대는 오후 7시30분께 진도체육관에 도착했습니다. 실종자 가족과 함께 70일 넘게 진도체육관에서 동고동락하는 배의철 변호사가 ‘기다림의 버스’ 참가자 150여 명을 맞이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정부는 사죄하지 않는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는 잘못되었다. 국가가 하지 않는다면, 국민이 하는 게 맞지 않겠나. 그래서 많은 분들께서 실종자 가족을 만나러 왔을 때 한 가지 부탁을 드린다. 국민을 대표해서 마음을 전달 해 달라. 무릎을 꿇고 함께 인사하는 게 어떨까.”

진도체육관에 150명의 참가자가 무릎을 꿇은 채 실종자 가족을 향해 인사를 할 때 실종자 가족 역시, 무릎을 꿇었습니다. 양한웅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은 “기다리는 마음을 함께 하겠다”라며 간절한 마음을 담아 앉은 채 참가자들과 함께 세 번 절했습니다.

현철군 아버지는 “광화문에서 그만하라고 말하는 어르신 말씀에 칼로 찌르는 듯 아팠지만, 나 역시 천안함 사고가 난 몇 개월 이후 ‘아직도 하느냐’는 생각을 했다. ‘이제와 죄를 받는구나’ 한다. 실종자 가족은 오직 뼛조각을 찾아서 발인해 주고픈 마음뿐이다.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하다. 국민이 우리를 져버리지 않았다고, 자부심을 갖겠다”라고 답했습니다.

기다림의 버스 참가자들은 팽목항에서 풍등을 날렸습니다. 실종자 10명의 이름을 목놓아 불렀습니다.

“우리에게 100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한탄했던 다윤양 아버지는 한 시민이 전해 준 ‘꼭 찾을 수 잇을 것’이라는 편지를 읽고 또 읽은 뒤 잠들었습니다.


 

#세월호 100일, 100시간의 기록 30: 7월24일 오후12시50분.

교복과 교복이 만났습니다.
가족 순례단 가운데 교복을 입은 어머니들이 몇몇 보입니다. 지난번 단원고 생존 학생들이 하늘로 떠난 친구들의 명찰을 달고 걸었는데, 이번에는 어머니들이 딸의 교복을 입고 걷습니다.

2학년2반 서우 엄마는 “며칠 전부터 교복이 눈에 밟히더라. 한 번 입고 싶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교복을 입은 서우 엄마는, 지금 서우와 함께 걷고 있습니다.

그 엄마들을, 교복을 입은 영림중학생들이 맞았습니다. “유가족들이 힘드실 것 같고 국회까지 잘 가셨으면 좋겠어요. 오늘 방학식 했는데 맞춰 나왔어요” 홍선미(16)양이 말했습니다. 교복 입은 엄마를 본 길가의 엄마들이 자꾸 눈을 부빕니다. 엄마끼리는, 말을 안 해도 그 마음 다 아니까요.

날이 개었습니다. 우산은 접었습니다. 가족들은 점심 때가 지났지만 곧장 국회로 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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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일정

순례단 위치는 페이스북 독자 ▶이유민, ▶윤경희씨가 달아주는 댓글 주목. 독자 두분이 시사IN 일일 통신원으로 댓글로 위치를 알려드립니다.

- 12시 40분 신도림역 – 영등포역 – 여의도 금융감독원앞 – 국회의사당: 60분
- 13시 40분 국회의사당 도착(점심식사 및 휴식), 환영식 〈너무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 16시 국회에서 출발 – 마포대교 – 공덕오거리: 60분
- 17시 충정로- 파이낸스신문사 앞 – 서울역 앞: 60분
- 18시 30분 서울역 행사: 30분
- 19시 서울역 – 남대문 – 서울광장: 30분
- 19시 30분 7월 24일, 모여라 서울광장!
세월호 참사 100일 시낭송 및 추모 음악회 〈네 눈물을 기억하라〉
- 22시 음악회 후 광화문 광장으로 행진


 

#세월호 100일, 100시간의 기록 31: 7월24일 오후 1시10분

신선영 사진기자는 어제 ‘기다림의 버스’에 동행했습니다. 신 기자는, 지난해 5월 입사한 기자입니다.

2학년8반 고 임현진 학생을 커버스토리로 다룬 ‘놓지 않을게(348호)’, ‘너를 보내고 100일(357호)’ 표지가, 바로 신 기자가 취재한 사진입니다.

기록을 남기기 위해 신 기자는, 먼저 가족들의 마음부터 얻었습니다. 가족들의 동의를 구한 뒤에야 가능한 기록이었습니다. ‘기다림의 버스’에 올라탄 신 기자의 취재 사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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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순례 이후 일정

- 12시 40분 신도림역 – 영등포역 – 여의도 금융감독원앞 – 국회의사당: 60분
- 13시 40분 국회의사당 도착(점심식사 및 휴식), 환영식 〈너무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 16시 국회에서 출발 – 마포대교 – 공덕오거리: 60분
- 17시 충정로- 파이낸스신문사 앞 – 서울역 앞: 60분
- 18시 30분 서울역 행사: 30분
- 19시 서울역 – 남대문 – 서울광장: 30분
- 19시 30분 7월 24일, 모여라 서울광장!
세월호 참사 100일 시낭송 및 추모 음악회 〈네 눈물을 기억하라〉
- 22시 음악회 후 광화문 광장으로 행진

순례단 위치는 페이스북 독자이자 일일 통신원으로 맹활약 중인 ▶이유민 ▶윤경희씨가 댓글로 달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100일, 100시간의 기록 32: 7월24일 오후 1시55분

파스를 바르고 발목과 무릎에 보호대를 찬 엄마 아빠들이 여의도 국회에 진입했습니다.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비를 입고 노란 우산을 쓴 순례단은 걷고 또 걷습니다.

시민들 동참도 계속 이어집니다. 마포에 사는 김미애씨(35)씨는 신도림부터 합류했습니다. 14개월된 ‘이후’를 안고 김씨는 걷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이거 밖에 없어서 애기라도 안고 나왔습니다”

중간 중간에 지난번 학생들 도보 순례 때처럼 시민들은 준비한 간식을 건넸습니다.

국회 본관 앞에서는 순례단을 맞기 위해 아이스박스에 음료수를 준비했습니다. 순례단은 국회에서 점심을 먹은 뒤 다시 광화문을 거쳐 서울광장까지 걸어갑니다.

참사가 난 지 100일째. 오늘도 여야의 특별법 협상은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오전 새누리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야당이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법 체계에도 맞지 않고 조사권과 수사권을 섞을 수도 없다는 입장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야는 오후 2시 '2+2' 회담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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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 순례 이후 일정

- 16시 국회에서 출발 – 마포대교 – 공덕오거리: 60분
- 17시 충정로- 파이낸스신문사 앞 – 서울역 앞: 60분
- 18시 30분 서울역 행사: 30분
- 19시 서울역 – 남대문 – 서울광장: 30분
- 19시 30분 7월 24일, 모여라 서울광장!
세월호 참사 100일 시낭송 및 추모 음악회 〈네 눈물을 기억하라〉
- 22시 음악회 후 광화문 광장으로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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