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이명박 정부는 상식적인 대화의 장에 나오기를 거부한다. 수십년 사장 노릇을 할 때의 습관이 국민과의 대화를 더욱 어렵게 한다. 어쩌면 그들은 국민이 대화를 포기하고 자기들을 내버려두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새 정권이 들어선 지 겨우 3개월이지만 벌써 2~3년은 지난 것 같다. 대운하에 영어몰입교육에 0교시에 이중국적 허용에 쇠고기에…. 일 년에 한두 개 터져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만한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진다. 이명박 대통령이 잘한 일을 꼽아보자는 이야기에 “투표의 중요성을 알려주었다”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다” 같은 대답이 우스개로 나돌 정도니 국민이 느끼는 암담함을 짐작할 만하다.

이 정권의 가장 큰 문제는 정권을 이루는 이들이 부자라거나 아파트를 많이 가졌다거나 하는 따위가 아니다. 어느 나라에나 부자 정치인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는 상식을 가진 사람이 나눌 수 있는 정상적인 대화의 틀에 진입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국민을 배제한 채 쇠고기 협상을 진행한 뒤 “싫으면 안 사 먹으면 된다”라거나, 국민을 향해 손자 대하듯 “떼쓴다고 다 되는 것 아니다”라고 말할 리가 없다. 대통령의 측근도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땅 투기 의혹에 “땅을 사랑했을 뿐이다”라거나 “내 나이 11세 때 내 계좌에 있던 돈으로 아버지가 땅을 샀다”느니, 스칼렛 오하라에 워런 버핏이 따로 없을 정도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상적인 패러다임 안에서 살았던 사람이 아니다. 시작은 고학생으로 미약했을지 모르나, 36세에 사장이 된 뒤 그의 인생은 심히 창대했다. 그는 자식을 위장 전입시켜 좋은 학교에 보냈고, 자기도 건축법 위반, 수뢰 의혹, 근로기준법 위반, 범인 도피, 사기 혐의 등으로 여러 사람 바쁘게 만들었다. 그는 또한 한 나라의 최고 공직자이자 동시에 아가씨 나오는 술집에 세를 준 건물 주인이며 교회 장로이기도 하다. 그가 살아온 세계에서는 이런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세계에서 자식을 좋은 학교 보내고 싶은 것이야 애틋한 부정일 터이며, 건축법과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거나 사기 혐의를 받는 것쯤은 사업하다 보면 흔히 겪을 수 있고, 선거법 위반은 정치하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만한 일이리라.

자기가 하는 거짓말을 참말로 믿는 ‘그들’

난 나 그림
훌륭한 거짓말쟁이가 되는 방법은 자신이 하는 거짓말을 참말로 믿는 것이다. ‘그들만의 리그’에 사는 저들이 거짓말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진실로 저들은 자기가 하는 말을 열렬히 믿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난 정말 땅을 사랑했다, 11세 때 내 계좌에는 정말로 돈이 많았다, 광우병 쇠고기가 무서우면 안 사먹으면 된다, 촛불 든 애들 공부하기 싫으니까 괜히 나와서 저런다, 집회 저거 배후 세력이 분명히 있다….

이 정권이 국민과 제대로 대화하지 못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자고로 사장과 직원 간 대화는 잘 안 된다. 사장은 직원을 끌어다 놓고 자기 이야기만 실컷 하고는 “아 오늘 정말 좋은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라며 흐뭇해한다. 그런 사장 노릇을 몇 십년 한 이 대통령이 한순간에 그 습관을 버리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 습관을 반드시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대한민국은 기업이 아니고 국민은 사원이 아니니까.

지금 상태에서 보면 그들을 정상적인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가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우리는 그들을 향한 대화를 포기할 수 없다. 희망이 안 보이면 끈질기게 버티기라도 해야 한다. 그들이 정말로 바라는 것은 우리가 그들과 대화하기를 체념하고 “원래 그런 사람들인가 보다” 하며 그들을 포기해주는 일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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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김현진 (에세이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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