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과 인도에서는 각각 지방선거와 총선이 마무리되었다. 한국에서는 보수 양당 간에 세력 구도가 큰 변화 없이 유지되었다. 인도에서는 보수 양당 사이의 권력 교체가 일어났다. 극우 힌두 근본주의의 대표적 정치인 나렌드라 모디가 이끄는 인도국민당(BJP)이 4대 세습을 노리던 간디 가문의 국민회의당(INC)을 꺾고 과반 의석을 차지하며 압승을 거둔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모디와 인도국민당은 종교적 이미지에서 어느 정도 탈피하면서 세속주의적 색채를 강화했다. 그러나 힌두 근본주의를 정치적으로 동원하는 전통적인 전략을 크게 바꾼 것은 아니었다.

모디는 힌두 근본주의 세력의 근거지인 바라나시(Baranasi)에서 출마했다. 바라나시는 ‘힌두벨트’라고 불리는 힌두 세력 밀집지역의 중심지다. 이는 명백히 힌두 근본주의의 바람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다. 인도국민당은 바라나시가 속한 우타르프라데시 주에서 전체 의석 80석 가운데 무려 71석을 차지했다. 힌두벨트의 다른 지역인 비하르 주에서 22석, 마디아프라데시 주에서 27석, 라자스탄 주에서 25석, 델리 주에서 7석을 얻었다. 라자스탄과 델리에서는 전체 의석을 석권했다. ‘암소벨트(암소를 숭배하는 힌두교인 밀집지역)’로 불리는 구자라트 주에서는 26석, 마하라슈트라 주에서는 23석을 얻었다. 종합하면, 인도국민당은 힌두벨트와 암소벨트에서만 201석을 얻었다. 이는 인도국민당이 차지한 총 283석의 70% 정도다. 인도국민당은 예전에 비해 노골적인 폭력 행위는 자제했지만, 힌두 근본주의를 핵심 선거 전략으로 활용하는 행태에서는 과거와 비슷했던 셈이다.

인도국민당의 총선 슬로건은 ‘새로운 인도’였다. 이 슬로건의 핵심 공약은 경제성장이다. 인도 국민은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당시 집권당인 국민회의당에 돌리며 경제성장 및 일자리 만들기를 약속한 모디에게 기회를 주었다. 특히 인도의 ‘신자유주의 전환기(1991년)’ 이후에 태어난 이른바 ‘개혁 이후 세대’가 인도국민당의 새로운 지지 기반으로 등장했다. 18~23세로 선거에 처음 참여한 이 ‘개혁 이후 세대’의 수는 1억명 정도다. 이 집단은 세계화, 소비 문화 및 서구 문화 친밀도, 영어 사용 능력 등에서 다른 세대보다 탁월하다. 동시에 늘어나지 않는 일자리 때문에 고통받는 세대이기도 하다. 인도국민당은 새로운 일자리 2억5000만 개를 만들겠다는 공약으로 이들을 사로잡았다.

ⓒEPA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왼쪽)가 취임식에 참석한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대외정책에서 모디는 취임 전부터 유화 제스처를 취해왔다. 특히 오랫동안 영토분쟁을 겪어온 파키스탄 및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고 나섰다는 점이 주목된다. 모디는 심지어 파키스탄 총리를 취임식에 초청했다.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그래서 인도와 파키스탄의 대결 구도가 완화되리라는 기대가 많다. 하지만 대등한 관계 증진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파키스탄이 먼저 인도와의 경제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 관계 개선을 제안했고 모디가 이미지 제고를 위해 화답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따라서 모디는 인도에 유리한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파키스탄과의 화해를 모색하려 할 것이다.

6월 초에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인도를 방문해서 모디와 회담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올해 안에 인도를 공식 방문할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인도와 중국의 미래 역시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인도와의 관계 개선에 더 적극적인 쪽은 중국이다. 미국의 포위망을 뚫기 위해서다. 그러나 인도는 외교·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중국에 비해 절박함이 덜하다. 인·중 관계의 개선을 미국이 어느 정도까지 용인할지가 변수다. 인도가 남아시아 지역에서 점유하는 외교·군사적 지위는 미국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목적은 물론 중국 봉쇄다. 더욱이 제조업 기반이 취약한 인도는 가전제품 등에서 엄청난 규모의 ‘대(對)중국 무역적자’를 겪어왔다. 이런 상황에서 인도가 중국과의 경제 교류를 무작정 확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인도국민당이 내세우는 슬로건 ‘새로운 인도’가 진정으로 의미하는 것은 ‘강한 인도’라는 분석도 있다. 인도국민당은 처음 정권을 잡았던 1998년에 핵실험을 단행해 인도를 일약 핵 보유국으로 만들었다. 물론 미국의 사후 승인이 있었지만 말이다. 국민회의당이 집권했던 지난 10년 동안에도 인도는 군사 대국화를 추진해왔다. 미국이 이를 용인하고 부추겼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미 집권한 모디 정부가 국내에서는 힌두 극우주의적 수구 난동을 다소 자제할지 모르겠지만 대외적으로는 강경하고 공격적인 노선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동남아시아 지역이 중요하다. 인도의 동남아 정책은 동방정책(Look East Policy)에 잘 드러난다. 2000년대 초반, 중국이 동남아시아 지역에 대해 적극적인 남진정책을 펼치자 인도는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증진을 추진했다. 이른바 동방정책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2009년 말라카 해협을 위협하는 중국에 대항해서 인도에 해군 지원을 요청한 바 있다. 최근 불거지는 중국과 동남아 간 영토·영해 분쟁에 인도가 2009년처럼 적극 개입한다면 양국 간 긴장관계는 다시 고조될 것이다.

재기하기 힘들 정도로 약해진 진보 정당들

이번 인도 총선에서 나타난 또 한 가지 특징은 진보 정당들의 참패다. 한국의 지방선거와 비슷한 상황이다. 국민회의당과 인도국민당을 대체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정치 세력들이 이번 총선에서 완전히 몰락해버렸다.

인도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좌파 정당 연합 ‘인도 마르크스주의 공산당(CPIM)’은, 2004년 총선 당시까지만 해도 ‘제3세력의 등장’으로 주목받았으나, 그 뒤에는 줄곧 하향세다. 2004년의 44석에서 2009년 총선 때는 16석, 올해는 9석으로, CPIM의 의석수가 10년 전의 20%로 줄어든 것이다. 전국 득표율 역시 3.2%에 그쳤다.

ⓒEPA모디에게 참패한 아르빈드 케즈리왈 AAP당 총재.

인도 사회에 만연한 부패 문제를 직접 거론하며 바람을 일으켰던 보통사람당(AAP·암아드미당)의 기세도 일장춘몽에 불과했다. 특히 AAP의 케즈리왈 대표는 모디를 꺾겠다며 모디의 지역구인 바라나시에서 출마하는 기염을 토했다. 자신의 상징으로는 빗자루를 내걸었다. 부정부패를 쓸어버리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였다. 게다가 케즈리왈이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끌어모으면서 본의 아니게 모디를 두루 선전해주는 바람에 ‘인도국민당 좋은 일만 해줬다’는 비아냥까지 듣고 있다. 달리트(카스트 제도의 최하층 계급)의 정치세력화를 표방한 바후잔사마즈 당(BSP:한때 우타르프라데시 주의 집권당) 역시 지난 총선에서는 21석을 얻었으나 이번엔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다. 이렇게 인도의 진보적 대안 정당들은 당분간 재기가 힘들 정도로 약해졌다.

이번 인도 총선에서 인도국민당의 승리는 경제성장에 대한 대중의 욕구를 자극해 집권에 성공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 저성장의 고착화, 반복되는 금융위기, 높은 실업률, 빈부격차의 확대가 오랜 세월 인도 경제를 억누르는 고질적 폐해로 자리 잡으면서, 인도국민당의 경제성장 슬로건이 어떤 명분이나 정치·도덕적 대의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만 것이다.

암울한 이야기로 그동안의 연재를 끝맺게 되어 유감스럽기 그지없다. 연재 내내 그동안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인도 사회의 전면과 이면에 관심을 보여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 ‘인도 수구 세력 난동사’는 이번 호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수고해주신 이광수·한형식 두 필자께 감사드립니다.

기자명 한형식 (당인리대안정책발전소 부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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