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듣고 싶었다. 계획에 없었지만 문득 ‘당사자니까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법원으로 향했다. 재판부가 들어와 한 번 미소를 짓더니 담담하게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경험상 오히려 ‘가볍고 편하게’ 읽는 판사일수록 좋지 않은 판결을 내렸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2014년 6월19일, 서울행정법원 제13부(부장판사 반정우)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고용노동부 장관을 상대로 낸 ‘법외노조 통보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고용노동부가 문제 삼은 해직자 조합원 9명 중 한 명인 박춘배 전교조 인천지부 조직국장(47)은 패소 판결을 직접 법정에서 들었다. 박 국장은 “지금 전교조 뉴스 뜨는데 선생님 괜찮은 거예요?”라는 옛 제자의 전화에 “괜찮다”라고 답했다.

박씨는 대학교 4학년 때까지만 해도 기자를 꿈꿨다. 꿈은 교생실습을 하면서 만난 학생들 덕분에 바뀌었다. “아이들하고 수업하면서 교감하는 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내가 모르던 어떤 게 발현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첫 임용 전화를 받고 그는 함성을 질렀다. 그 학교가 인천외고(당시 영일실업고)다. 1993년 부임한 학교에서 그는 영어를 가르쳤다. .

ⓒ시사IN 신선영박춘배 인천지부 조직국장은 고용노동부가 문제 삼은 해직자 조합원 9명 가운데 한 명이다.

상황은 새 교장이 부임한 2003년 이후 달라졌다. ‘아이들의 체질을 개선해야 명문고가 될 수 있다’던 교장은 간판을 외고로 바꿔 달고 우열반을 편성했다. 그 결과 이 학교에서는 전교 16등까지만 ‘듀오백’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그뿐 아니다. ‘평균 60점이 안 되면 유급’이라는 학교 방침이 생겼다. ‘이성 간에 어깨동무나 손잡고 다니는 행위 등으로 인한 풍기문란’은 벌점 50점, ‘동성 간의 비정상적인 교제’는 벌점 80점 등 인권을 침해하는 선도 규정이 차고 넘쳤다(벌점 100점 이상은 퇴학 처분). 담배 피우는 학생을 잡아내겠다며, 학교는 복도를 지나가는 학생을 불러다 소변검사를 하기도 했다.

이 학교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힘을 모아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려 해도 통하지 않았다. 행정실 직원이 교무회의 장면을 캠코더로 찍는 등 학교 측의 비민주적 학사 운영이 도를 넘었다. 그는 항의 표시로 회의를 거부했다가, 아이들을 하교시키고 난 토요일에 다른 선생님 1명과 함께 ‘파면’ 통보를 받았다. 2004년 4월24일의 일이다.

이틀 뒤인 월요일, 양복을 입고 출근해 농성을 시작했다. 당시 가르치던 고3 학생들이 “선생님, 어떻게 된 거예요”라며 손을 잡고 울었다. 학교 벽에는 온통 ‘선생님을 돌려주세요’라는 쪽지가 나붙었다. 다섯 달을 학교 앞에서 농성했다. ‘업무방해’로 구속되었다가 풀려난 9월 이후에는 전교조에서 상근하며 법으로 싸웠다. 1년 안에는 복직할 줄 알았다.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를 인정받았지만 중앙노동위에서 졌다. 법원이 ‘화해 권고’를 해서 ‘정직 상태인 인천외고 교사’가 되었지만 학교는 2008년 ‘전적할 학교를 통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또 한 번 박씨를 해임했다. 이 해임에 대한 무효확인 소송을 냈으나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2009년 기간제 교사로 인천여상에서 보낸 1년이 해고 이후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자주 꿈에 나오던 인천외고 복도와 계단 입구가 요즘은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런 박씨를 포함한 해직자 9명을 두고 법원 판결문은 “‘부당해고’된 교원이 아니므로” 부당해고된 이를 조합원으로 두는 전교조 규약에 의하더라도 이들은 조합원이 될 수 없다고 했다. 그에겐 생경했다. ‘판결문에 그런 걸 써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받았다든지 부조리한 행동을 해서 학교에서 해고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애초에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두면 노동조합의 자주성·독립성이 훼손된다는 판결 자체를 박씨는 이해할 수 없다. 그 피해는 학생들이 받게 된다는 논리도 “상식적이지 않다”라고 박씨는 말한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가 해고당한 사람이 있으면 그 해고자는 다른 일자리로 옮기지 않는 한 노동조합에서 품어야 하는 게 일반인의 상식 아닌가요? 한 명이라도 그들이 잘못됐을 때 구하는 것이 노동조합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는 해직 교사인 조합원 9명이 학교 현장에 피해를 주거나 노조의 자주성을 훼손한 예가 있는지 재판부에 묻고 싶다고 했다.

“법외 노조가 아니라 헌법상 노조다”

‘전교조가 합법 지위와 맞바꾼 9명’ 따위 제목의 기사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마음에 부담은 없을까. 그는 ‘해고자를 조합원에 포함한 규약을 시정하라’는 고용노동부의 명령을 전교조 조합원들이 거부하기로 결정한 지난해 10월 동료들로부터 “마음고생 많았다”라는 격려를 받았다. 10년을 해직 교사로 살아온 그에게 조합 탈퇴서까지 쓰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이 문제로 조합원들이 갈리는 게 가장 두려웠다. “결의를 모아주신 게 몹시 고마웠어요.” 11월13일 법외노조 통보의 효력을 정지하라는 가처분 인용 판결이 났을 때도 축하와 격려를 많이 받았다.

하지만 1심 판결은 그 통보가 ‘정당했다’고 했다. 9명에 포함된 다른 해직 교사는 ‘숨 쉬는 것조차 죄스럽다’고 하지만, “법외노조가 아니라 ‘헌법상 노조’라고 서로 격려하며 이겨 나가야죠”라고 박씨는 말했다.

ⓒ시사IN 이명익이을재 서울지부 조직국장은 교직 생활 중 세 번이나 해직됐다.
박춘배씨 외 해직자들도 대부분 사학 비리에 맞서거나 노조 활동을 하다가 해직된 이들이다. 전교조 서울지부에서 조직국장으로 일하는 이을재씨(56·전 한천중 교사)는 지부 사무처장으로 일하던 2000년 “불법 찬조금 등 각종 비리로 물러난 상문고 전 이사장의 측근이 학교로 복귀하는 걸 막아달라”는 상문고 교사들의 요청을 받았다. 1월17일부터 27일까지 10박11일 동안 교육청에 들어앉아 농성을 했다. 결국 임원 승인 취소를 얻어냈지만, 그 농성으로 2004년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이씨는 해직됐다. 1986년 교육민주화 선언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1989년 8월 전교조 창립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다른 교직원 1500여 명과 함께 해직된 것까지 합하면 세 번째였다.

이성대 전교조 서울지부 연대사업국장(54) 등 6명은 선관위의 유권해석까지 받은 후 진보 교육감 후보에게 선거자금을 대출해준 것이 문제가 되어 기소됐는데, 이는 무죄였다. 하지만 투표 독려 문자를 보내는 등 조직적 선거운동을 한 것은 유죄판결이 나 해직됐다. 한경숙 전교조 부산지부 수석지부장은 2005년 북한 교과서로 세미나를 진행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유죄판결을 받아 해직됐다. 현재 전교조에는 정부가 문제 삼은 9명 외에도 해고자 조합원이 13명이 더 있는데, 이들의 해고 사유도 비슷하다.

교육부는 전임자들을 대상으로 7월3일까지 현장에 복귀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등 후속 조치를 단행했고, 이로 인해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단식 농성 16일째인 6월24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만난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은 ‘전면 투쟁’ 회의론이 제기되는 데 대해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항의하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겠나. 노동 3권을 인정받지 못하면서 아이들에게 노동 3권을 가르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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