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리스크’가 박근혜 정권을 뒤흔든다. 6월10일 총리 후보 지명 이후 숱한 논란의 중심에 선 문창극 후보자는 6월20일 현재까지 인사청문회 돌파 의지를 되풀이해 밝히고 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문 후보자에게 자진 사퇴 ‘시그널’을 여러 번 보냈다. 6월20일 현재 중앙아시아를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문창극 총리 임명동의안 결재를 귀국(21일) 이후로 미뤘다. 사실상 자진 사퇴 압박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새누리당은 아예 다음 당권 주자들이 직접 나서서 사퇴를 종용했다. 나날이 압박 수위를 높여가던 서청원 의원은 20일 “국민이 원하는 총리 후보가 아니다”라고 대놓고 사퇴를 요구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6월20일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하면서 취재진에게 자신의 심정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6월20일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하면서 취재진에게 자신의 심정을 말하고 있다.

소용없었다. 문창극 후보자는 출퇴근길에서 만나는 취재진에게 20분씩 일장 연설을 하는 등 강행 돌파 의지를 거듭 밝히고 있다. 새누리당에서 이탈표가 발생할 것이 유력한 만큼 국회 임명동의안 통과도 불투명하지만, 인사청문회 무대만이라도 서서 본인의 주장을 펼치겠다는 기류다. 자진 사퇴 시그널이 끝까지 먹혀들지 않으면, 청와대는 제 손으로 지명한 총리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직접 거둬들여야 하는 상황으로 몰릴 수 있다.

문 후보자가 버티는 동안, 정권의 지지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의 주간 정례조사에서, 집권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넘어섰다. 6월 셋째 주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에서 응답자의 48%가 ‘잘못하고 있다’고 답해, ‘잘하고 있다’(43%)보다 많았다. 부정 평가를 내린 응답자 중 39%가 인사 실패를 원인으로 꼽았다.

추세가 나쁘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대체로 50%대 후반을 유지하다가, 세월호 참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40%대 후반으로 10%포인트 정도가 빠진 채 정체되어 있었다. 그러던 것이 문창극 인사 파동으로 다시 40%대 초반까지 주저앉았다. 정권 처지에서 보면 총리 인선은 세월호 국면에서 빠져나오는 국면 전환용 카드가 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안대희·문창극으로 이어지는 인사 실패는 반전의 계기는커녕 지지율 하락세를 고착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딜’이 안 되는 사람이다”

정부·여당에 ‘문창극 리스크’가 더욱 곤혹스러운 이유는, 문 후보자를 설득해 그나마 모양 좋게 상황을 수습할 ‘지렛대’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문 후보자는 1948년생, 66세다. 1975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2013년까지 쭉 몸담았고, 퇴사 이후에는 초빙교수와 석좌교수로 대학 강단에 섰다. 보수색이 강한 칼럼을 주로 썼다지만, 이력만 놓고 보면 정치권 사람이 아니다. 한 새누리당 재선 의원은 “기자를 오래 해서 특유의 고집도 있어 보이고, 어디 출마하던 사람도 아니니 우리한테 아쉬울 것도 별로 없고, 한마디로 ‘딜’이 안 되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정부·여당이 ‘다른 옵션’을 제시하며 주저앉힐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얘기다.

문 후보자는 이미 만신창이가 된 터라 ‘명예로운 퇴각’을 대안으로 제시할 수도 없다. 오히려 본인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라도 통과 여부와 상관없이 인사청문회만은 나서겠다며 전의를 불태우는 실정이다. 논란의 성격이 ‘친일·반민족’ 등 보수층이 더 민감해하는 주제여서, 안대희 전 후보자처럼 ‘전관예우 소득 전액 기부’와 같은 퇴로도 마땅치 않다. 문 후보자는 이번 논란에서 후퇴하면 ‘다음’을 기약할 여지조차 없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박근혜 대통령은 문창극 총리 임명동의안 결재를 두 번이나 미루는 것으로 ‘신호’를 보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은 문창극 총리 임명동의안 결재를 두 번이나 미루는 것으로 ‘신호’를 보냈다.

박 대통령이 그동안 선호해온 총리 후보자들은 상명하복에 익숙한 검찰 출신이거나 ‘무리수’를 극도로 꺼리는 법관 출신이었다. 김용준·안대희 후보자는 논란이 일고 정권에 부담이 될 기미만 보여도 후퇴를 선택했다. 문 후보자는 이 지점에서도 결이 전혀 다르다.

정권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인물이라면,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자진 사퇴를 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 후보자는 박근혜 대통령과 이렇다 할 인연이 없다. 이명박 정권이었던 2011년에는 당시 여당 내 비주류였던 박근혜 의원을 대놓고 비판하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논란이 불거진 이후 행보를 보아도, 정권 보위를 위해 스스로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자세가 안 보인다는 불만이 여당 안에 팽배해 있다.

이렇게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만일의 경우’에 제어할 지렛대가 하나도 없는 인물을 덜컥 총리 후보자로 내세운 셈이다. 자기 고집이 강하고, 정권과 인연도 없고, 주저앉힐 ‘당근’도 마땅치 않고, 무엇보다 정권에 대한 충성심이 불확실했다.

이런 카드라면, 별다른 사고 없이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도록 그저 바라는 것 말고는 청와대가 상황을 통제할 방법이 없다. 리스크 관리 대책이 처음부터 없었다는 얘기가 되는데, 바로 그 리스크가 현실이 되어버리는 순간부터 청와대는 통제력을 상실했다. 위기관리 능력이 유난히 취약한 박근혜 청와대의 속성은 이번에도 어김없었다.

근본적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이 총리직을 가볍게 보아서 생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 가운데 한 인사는 “총리에게 제대로 된 권한을 줄 생각이 애초에 없으니 ‘이 사람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인물인가’를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초의 책임총리제 공약대로 총리에게 실권을 줄 생각이었다면 후보자와 정권의 호흡이 맞는지를 좀 더 꼼꼼히 따져봤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제 기묘한 역전이 일어났다. 지명 당시 “책임총리제는 처음 들어보는 얘기다”라며 몸을 낮추던 문 후보자는, 낙마 위기에 몰리면서부터 청와대와 여당의 신호를 묵살하고 ‘제 목소리를 내는 총리 후보’가 되어버렸다. 위기관리 개념이 부재한 상황에서 ‘안전장치 없는’ 총리 후보자를 인선한 청와대는 ‘문창극 리스크’가 어떤 식으로 정리되든 톡톡히 대가를 치를 전망이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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