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여느 종교와 마찬가지로 힌두교 또한 자살을 권하지 않는다. 그런데 인도 수구 난동 세력은 힌두교라는 명분으로 자살을 장려하고 심지어 강요하기까지 한다. 이른바 힌두 전통을 보존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가장 대표적이고 끔찍한 사례가 바로 ‘사티(sati)’다. 남편이 사망하는 경우 아내더러 따라 죽으라고 강요하는 ‘전통’ 악습이다.

가장 큰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티는 1987년 9월 라자스탄 주의 데오랄라 마을에서 루프 칸와르라는 18세 과부가 불에 타 죽은 사건이다. 칸와르는 남편이 사망한 다음 날 화장용 장작더미에 올라갔다. 당초 라자스탄 주정부는 사티는 물론 주민들이 그 자리에 모이는 것도 허용하지 않겠다고 엄포했다. 그러나 사티는 결행되었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칸와르는 자발적으로 사티를 행한 것이 아니다. 대다수 마을 사람들은 남편 가족들이 그녀를 마취시킨 뒤 장작더미에 밀어넣었다고 증언했다. 심지어 무장 경호원들이 장작더미를 지키고 있다가 적어도 세 번 이상 탈출하려는 그녀를 불구덩이 속으로 다시 밀어넣었다는 것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P Photo〈/font〉〈/div〉힌두 극우 정당인 시브세나가 당 지도자 발 타레이의 탄생 기념행사에서 여성들에게 칼을 배포했다. 여성 스스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라는 의미였다.
ⓒAP Photo 힌두 극우 정당인 시브세나가 당 지도자 발 타레이의 탄생 기념행사에서 여성들에게 칼을 배포했다. 여성 스스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라는 의미였다.

이후 경찰은 칸와르의 시동생이 장작더미에 불을 붙인 것을 확인하면서 살인죄 등의 혐의로 가족 중 남성들을 구속했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모두 석방되었다. 누구도 그녀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가 처참하게 숨진 장소는 힌두교의 성지로 치장되어 순례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인도의 일부 힌두교도들이 사티를 지지하는 이유가 있다. 인도 힌두 사회의 전통 가치를 수호하는 방법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런 엉뚱한 믿음을 만드는 데 가장 크게 공헌한 집단은 의용단일가(힌두 극우 세력을 총칭) 소속 단체인 ‘전통법수호협회’다. 루프 칸와르 사건 당시 여성 인권단체들은 3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항의 집회를 열었다. 전통법수호협회는 이에 맞서 사티 지지 시위를 벌였는데, 여기 모인 군중은 무려 7만여 명에 달했다. 지난 5월 총선으로 집권한 힌두 극우 정당인 인도국민당이 시위 군중을 모으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당시 집권당인 인도국민회의는 힌두 보수 세력의 표를 의식해서 어정쩡한 자세를 취했다. 라지브 간디 총리는 형식적으로 사티(와 이에 대한 고무·찬양)를 반대하는 발언을 내놓았다. 그러나 사티 지지 집회를 적극적으로 막지는 못했다.

그런데도 수구 단체들은 라지브 간디에 대해 “아버지는 파르시 교도(라지브의 부친인 페로즈는 조로아스트교의 일파인 파르시 교도였음)이고 아내는 이탈리아 사람(소냐 간디는 이탈리아 태생임)인 반(反)힌두 분자가 우리 전통을 모독한다”라고 선동했다. 오로지 종교 갈등을 부추기기 위한 주장이었다.

힌두판 알카에다? “우리는 테러리스트요”

힌두 극우주의자들의 논리는 ‘힌두의 전통법(사티 등)을 위해 여성이 희생하는 아름다운 미풍양속을 수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전통법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살·테러·전쟁까지 모든 폭력 행위를 긍정한다. 심지어 인명을 무기로 문화 활동을 막기도 한다. 한 힌두 극우단체는 2000년 디파 메타의 영화 〈워터(Water)〉가 ‘갠지스 강을 모독하는 내용’이라며 영화 촬영을 계속하는 경우, 갠지스 강에 단체 투신하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이렇게 힌두교는 종교와 민족, 국가를 위해 자살을 권고 혹은 강요하는 종교로 변질해버렸다. 최근 시브세나(Shiv Sena)의 자살특공대 조직 사건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시브세나는 힌두교의 정치 이데올로기인 힌두트바(Hindutva·힌두주의)에 기반한 극우 정당이다. 마하라슈트라 주에서는 집권 여당이다. 시브세나는 ‘시바지(영국의 침략군에 맞서 맹렬히 투쟁한 지역 세력)의 군대’라는 의미이다. 이 시브세나의 대표인 발 타레이는 최근 이슬람 세력의 테러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자살 특공대를 조직하겠다고 밝혔다. “이슬람 테러가 갈수록 격화되고 있는데 이에 승리하려면 힌두 테러 세력을 키워 맞불을 놓아야 한다.” 말하자면 힌두판 알카에다를 창설하겠다는 소리다. 테러리즘이라는 비난이 쏟아지자 시브세나 학생위원회가 나서서 격정에 가득 찬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렇다. 우리는 테러리스트다. 국가를 보호하는 것이 테러리즘이라면, 매국노 응징이 테러리즘이라면, 우리는 테러리스트가 되겠다. 우리 조국과 종교를 모욕하는 자들에게 폭탄 세례를 퍼붓는 것이 테러리즘이라면, (이슬람) 테러리즘에 강력한 맞싸움을 벌이는 것이 테러리즘이라면, 우리 테러리스트들은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다.”

ⓒAP Photo시브세나의 당 대표 발 타레이(왼쪽)와 그의 아들 우더프 타레이.
같은 논리 위에서 이미 자살특공대를 조직했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극우 힌두 조직도 있다. 람세나라는 단체다. 람세나는 2006년 마하라슈트라의 말레가온(Malegaon) 폭발 테러로 희생자 39명을 낸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조직은 2009년 1월24일 망갈로르(Mangalore)의 한 서구식 주점을 습격해서 그곳에 있던 여성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행사했다. 패션쇼나 밸런타인데이 기념식장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런 주점이나 행사가 힌두 전통 문화를 모욕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라시트라 락샤 세나(Rashtra Raksha Sena)’라는 이름의 국가수호군을 창설해 대원 700명을 확보했다고 주장한다. 다만 아직 그 실체가 확인된 바는 없다.

이런 어처구니없고 부조리한 일들이 비단 인도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한국에서도 퇴역 군인들이 백주에 권총을 빼들고 성당 앞마당에서 난동을 부리지 않았던가. 사실 어느 나라에서나 수구 세력들은 ‘여성은 여성답게 아이나 많이 낳고, 학생은 학생답게 공부나 하고, 노동자는 노동자답게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주장한다. 수구 세력들이 말하는 ‘반듯한 사회’다.

그들이 주장하는 반듯한 사회란, 옛날 전통사회에서 통용되던 부조리한 모순이 여전하고 수구 세력이 지배하는 상태일 뿐이다. 그리고 수구 세력은 세상(정권)이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확신할 때 더 난폭하고 더 어처구니없고 더 주저함이 없기 마련이다. 이런 사회에서 여성, 젊은이, 그리고 소수자들은 최소한의 설 자리마저 잃게 된다.

기자명 이광수 (부산외국어대 인도학부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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