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부터 진행된 인도 총선의 개표 결과가 5월16일 드디어 발표됐다. 예상한 대로 힌두 극우주의 정당인 인도국민당(BJP)이 승리했다. 그것도 압승이다. 인도국민당은 전체 543석 가운데 283석을 휩쓸었다. 이로써 2002년 구자라트 학살의 책임자로 지목받아온 나렌드라 모디 구자라트 주지사가 5월26일 인도 총리로 취임하게 되었다.

올해 초 야당인 인도국민당이 모디를 총리 후보로 지명하자, 국민회의당 당수 소냐 간디는 “인도국민당 지도부는 민족의용단의 노예다”라고 말했다. 민족의용단은 힌두 근본주의 성향의 대중 단체다.

인도국민당과 민족의용단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민족의용단이 출범한 1920년대는 하층 카스트(계급)의 사회적 상승 욕구가 치열하게 솟구치던 시대였다. 이런 하층 카스트에 대항해 상층 카스트와 지주 세력이 연대한 조직이 바로 민족의용단이었다. 초기 민족의용단의 이데올로그들(대표 인사 골왈카르)은, 평등을 주장하는 ‘달리트(최하층 계급) 운동’에 맞서 ‘각 카스트에겐 고유한 직분이 있다’며 노골적인 사회적 차별을 주장했다.

ⓒAP Photo나렌드라 모디(가운데)는 5월26일 총리로 취임한다. 나렌드라 모디가 인도 아마다바드에서 내각 후보자들과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민족의용단은 당시의 이데올로기를 약간 고쳐 지금도 인도 정치에 활용 중이다. ‘비정치적 문화단체’로 자처하지만 사실은 인도 정치의 실세다. 이들이 문화단체를 자처하는 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민족의용단은 1948년 1월 마하트마 간디를 암살한 주범으로 지목되었다. 이로 인해 당시 네루 수상은 민족의용단의 활동을 금지한다. 그러자 민족의용단은 1949년 정관의 제4조 b항을 “(정치가 아니라) 순수하게 문화적인 일에 몰두한다”라고 고치면서까지 활동 재개를 계속 요청했다.

그러나 정관 4조 b항에 따라 민족의용단이 실제로 정치 활동을 중단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정치 노선을 실행할 새로운 하부 조직을 만들었다. 예컨대 민족의용단은 1954년부터 ‘선전요원 양성’을 위한 정치훈련캠프(자원봉사 의용단)를 운영했다. 또한 이렇게 양성한 선전요원들로 인도국민당의 전신인 국민단(Jana Sangh)을 통제하려 했다.

민족의용단은 자체의 정치 활동은 부인하지만 ‘자원봉사 의용단’이 정당에 들어가는 것은 허용한다. 이런 식으로 ‘대리인’들을 인도국민당 등 여러 정치 조직에 파견해왔던 것이다. 나렌드라 모디는 물론 바즈파이, 아드바니 등 힌두 우익의 대표적 정치인들이 모두 민족의용단의 선전요원으로 활동했던 경력이 있다. 인도국민당 내에서 활동하는 민족의용단 출신들은 겉으로 간디식 사회주의를 표방한다. 하지만 이는 가면일 뿐이고 언제든 ‘라마(Rama) 숭배’라는 본색을 드러낼 준비가 되어 있다.

ⓒAP Photo인도 펀자브 주 최하층 계급의 구성원들이 라마 사원 건설을 요구하며 시위하고 있다.
곧 총리로 취임할 나렌드라 모디 역시 민족의용단의 사람이다. 실제로 올해 초 모디가 총리로 지명되었을 때 인도국민당 내부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 당 간부들에게 “당의 결정을 존중하라”며 ‘모디 지명’을 끝까지 밀어붙인 사람이 바로 민족의용단의 바그와트 대표다. 모디는 민족의용단에 보은이라도 하려는 듯 최근 카스트 문제를 자주 거론한다. 여러 카스트들이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직분을 잘 수행해야 조화로운 힌두 사회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인도국민당과 민족의용단은 이처럼 하층 카스트에 대한 차별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힌두는 하나’라고 주장한다. 이는 물론 하층 카스트 민중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민족의용단은 최근 십수년 동안 힌두계 하층 카스트를 포섭해 무슬림에 대한 폭력 행위에 동원하는 것으로 전략을 바꿨다. 실제로 인도의 여러 지역에는 힌두계의 하층 카스트와 무슬림 사이에 ‘하층의 소수 집단’이라는 연대의식이 형성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런 ‘계급적 연대’는 민족의용단 같은 종교근본주의자들의 선동에 따라 너무도 쉽게 ‘종교적 적대’로 해체되어 버리곤 한다.

혜성같이 등장해 바람같이 사라진 ‘보통사람당’

인도국민당이 집권한 인도는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까? 가장 큰 변수로는 건국 이후 지속된 인도의 정치 지형이 완전히 돌변했다는 점을 짚을 수 있다.

우선 인도국민당은 다른 소수 정당과의 연대가 필요 없는 압도적 절대다수 당으로 단독정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네루의 외증손자로 4대 세습의 당사자인 라훌 간디가 이끄는 현 집권 여당 인도국민회의는 4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인도국민회의로서는 100년 만에 최악의 참패다. 반부패를 기치로 내걸고 2013년에는 인도연방 수도 델리의 주정부를 차지했던 제3 정당인 보통사람당(AAP)은 고작 4석을 얻었다. 보통사람당은 혜성같이 등장하여 바람같이 사라져버린 셈이다. 한때 제3당이었던 인도공산당도 몰락했다.

이로써 인도 국민들의 열망 역시 오직 ‘경제발전’이라는 것이 명확해졌다. 모디는 주지사로서 구자라트 주의 경제발전을 주도해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인도국민회의가 지녔던 가문과 혈통의 ‘아우라’, 보통사람당의 부패 척결이 모디의 경제발전에 패배한 것이다. 심지어 모디는 ‘학살 배후 조종’이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승리했다. 마침 인도국민당은 페이스북의 타이틀을 ‘인도가 이겼다(India Has Won)’로 달았다. 인도국민당이 내세운 ‘강한 인도’와 국가(민족)주의, ‘힌두의 자존심’이 인도 국민들로부터 선택받았다.

그러나 새로운 정부가 이전의 인도국민회의 정부와 그리 다르게 통치할 것 같지는 않다. 인도국민당은 인도국민회의의 부패를 비난해왔지만, 사실은 오십보백보다. 인도국민당이 그동안 공언해온 민영화, 규제 완화 등 신자유주의 개혁을 빠르게 추진할 것이다. 이로 인해 외형적 경제지표는 어느 정도 개선될지 모르겠지만 주변부 민중의 삶은 더욱 피폐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서민들의 삶과 직결된 ‘유통시장 개방’ 등 예민한 부문에서는 속도를 조절하리라 전망된다. 국제적으로는, 제조업 육성을 위해 미국보다 중국과의 관계를 심화해 나갈 것이다.

집권당이 된 인도국민당이 ‘종교 갈등 조장’ 부문에서는 기세를 누그러뜨릴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지금까지 인도국민당과 민족의용단이 힌두근본주의를 부르짖으며 무슬림을 공격해왔던 것은 일종의 득표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집권한 이상 인도국민당 역시 사회가 반(反)무슬림이나 반(反)외국 자본 쪽으로 치닫는 것은 경계할 가능성이 크다.

기자명 이광수 (부산 외국어대 인도학부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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