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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참사마다 발간된 백서, 먼지만 쌓여있었다

대형 참사가 발생하면 다시는 이런 재난을 반복하지 말자고 백서를 발간한다. 1993년 서해훼리호 사건 이후 발간된 대형 재난 백서 5권을 입수해 분석했다.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2014년 05월 16일 금요일 제3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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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을 무시한 출항, 과적, 승선 인원 번복.’ 세월호 얘기가 아니다. 1993년 10월10일 전북 위도 앞바다에서 110t급 여객선 서해훼리호가 침몰한 뒤 지적된 문제점이다. 서해훼리호는 북서풍이 초당 10~14m로 불고 파고가 2~3m여서 출항해서는 안 되는 기상인데도 출발을 머뭇거리다 예정 시각 오전 9시를 넘긴 9시40분에 출항했다. 정원 221명보다 141명을 초과 승선시키고 멸치액젓 9t, 자갈 7.3t을 싣는 등 최대 적재 기준보다 6.5t을 더 실었다. 무게중심이 갑판 쪽에 쏠리면서 복원력이 크게 떨어진 배는 파도를 맞아 변침하다 순식간에 전복됐다. 이 사고로 승객 362명 중 292명(80.7%)이 사망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1993년 10월10일 서해훼리호 침몰-292명 사망  
ⓒ연합뉴스
1993년 10월10일 서해훼리호 침몰-292명 사망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1994년 10월21일 성수대교 붕괴-32명 사망  
ⓒ연합뉴스
1994년 10월21일 성수대교 붕괴-32명 사망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1995년 6월29일 삼풍백화점 붕괴-502명 사망  
ⓒ연합뉴스
1995년 6월29일 삼풍백화점 붕괴-502명 사망

이번 세월호 참사는 20년 전 서해훼리호 사건을 연상케 한다. 둘 다 인재다. 인재가 발생하면, 다시는 똑같은 재난을 반복하지 말자는 차원에서 지방자치단체나 관련 기관에서는 백서를 발간한다. 서해훼리호 사건 때도 1994년 전라북도에서 백서를 발간했다. 백서에는 사고 원인뿐 아니라 대책도 담겨야 하지만 서해훼리호 백서에는 ‘하나로 뭉친 도민 의지’ ‘기민한 초동조처’ 따위 내용이 포함되었다. 재난안전 백서가 아닌, 홍보 백서에 가까웠다.

<시사IN>은 1993년 서해훼리호 사건 이후 현재까지 발간된 대형 재난 백서를 입수해 분석했다. △서해훼리호 침몰(1993년) △성수대교 붕괴(1994년)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씨랜드 청소년수련의 집 화재(1999년) △대구지하철 화재(2003년) 등 대형 참사 5개에 대한 백서다(2010년 천안함 사건에 대한 백서는 군 관련 사건이어서 제외). 백서가 짚은 사고 원인을 살펴봤다. 1993년 목포 아시아나 여객기 추락 사건, 1995년 대구지하철 공사장 도시가스 폭발 사건 등 아예 백서를 발간하지 않은 대형 참사도 적지 않았다(재해 담당 공무원, “백서를 꼭 봐야 하느냐?” 기사 참조).

무너진 안전점검 시스템


1994년 전라북도가 발간한 <위도 앞바다 서해훼리호> 백서는 점검 시스템 부실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사고 선박은 침몰 직전까지도 구명조끼함이 열려 있지 않았고, 여객선이 침몰하면 자동적으로 펼쳐지게 되어 있는 구명보트도 4개 중 1개만 펴지는 등 안전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24쪽), “사고 발생 당시는 몇 명이 승선했는지 몰라 희생자가 정확히 몇 명인지도 파악할 수가 없었다. 이는 사고 선박의 승선지인 벌금, 식도, 파장금에 매표소가 없어 선상에서 표를 판 데다 출항 시 관제소에 승선 인원과 명단을 통보하도록 되어 있는 규정을 이행치 않았기 때문이다”(29쪽), “초과 승선이 상습화되어 있었는데도 이의 지도·감독을 소홀히 하고 운항 횟수를 늘리지 않은 당국과 선박회사도 과실이 크다”(152쪽).

서해훼리호 백서가 지적한 문제점은 20년 뒤 세월호 침몰 참사에서 그대로 반복되었다. 컨트롤타워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사고가 난 지 3주가 지나도록 승선 인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또 세월호 역시 안개 속에서 2시간30분 늦게 출항했고 상습 과적 혐의를 받고 있다. 안전점검 부실로, 구비된 구명보트 44개 중 단 1개만 펼쳐진 것도 판박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1999년 6월30일 씨랜드 청소년수련의 집 화재-23명 사망  
ⓒ연합뉴스
1999년 6월30일 씨랜드 청소년수련의 집 화재-23명 사망

1990년대에 일어난 주요 대형 참사들의 백서는 공통적으로 안전점검 시스템 부재를 사고 원인으로 꼽았다. 성수대교 백서도 마찬가지다. 1994년 10월21일 성수대교 붕괴 뒤 서울시와 수사를 맡은 서울지방검찰청이 각각 백서를 펴냈다. 1995년 서울지검이 펴낸 <성수대교 붕괴사건 원인규명감정단 활동백서>를 보면, 붕괴의 1차적 원인을 핀 연결 수직재의 용접 불량 및 제작 결함으로 꼽았다. 여기에다 중차량 통행으로 발생한 피로균열을 안전진단이나 육안 점검조차 없이 그대로 방치하고, 붕괴 위험에 영향을 주는 보수 행위를 하는 등 교량 안전관리에 소홀한 점도 지적됐다. 백서는 붕괴의 간접적 원인으로 △전문 경험이나 지식이 없는 부실 하도급 업자에게 실행원가에 못 미치게 하도급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던 점 △설계도면과 특별시방서에 부합하도록 공사가 수행되는지 기술적으로 감독하는 감리제도가 없었던 점 △유지 보수를 전문성이 없는 일반 기술직 공무원이 담당한 점 △1970년대의 하향식 건설 프로젝트와 비리 만연 등을 꼽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백서는 성수대교 붕괴에 대해 부실 용접과 유지관리 부실, 과적 트럭 통행을 모두 고려할 경우 “붕괴 위험도는 100%로서 성수대교의 붕괴는 불가피”(329쪽)했다고까지 적었다.

1999년 화재 사고가 난 씨랜드 청소년수련의 집도 안전점검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었다. 숙소 자체가 무허가 건물이었다. 1999년 경기도는 <씨랜드 청소년수련의 집 화재사고 백서>를 펴냈다. 백서에 따르면 건축이나 수련시설 운영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검은돈이 오갔다. 시설 운영자는 뇌물뿐 아니라 친분을 이용하거나 협박을 하는 등의 방법으로 안전점검 시스템을 무력화했다. 이번에도 세월호를 운영하는 청해진해운과 관리감독 기관인 한국해운조합·한국선급 사이 유착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씨랜드 참사 때는 설계기사 자격이 없는 사람이 설계를 담당하고 구조 계산을 하지 않았으며 공사감리 완료 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하는 등 불과 4년 전 삼풍백화점 백서에서 지적된 것과 유사한 문제가 반복되었다. 이렇게 감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결과 철판 컨테이너·실리콘·스티로폼·합판·샌드위치 패널 등 인화성 자재로 뒤덮인 건물에서 유치원생 19명과 인솔 교사 4명이 빠져나오지 못했다.

  2003년 2월18일 대구지하철  화재-192명 사망  
2003년 2월18일 대구지하철 화재-192명 사망

소방 관련 규제 자체가 없거나 미흡한 것도 사고를 키운 요인이라고 씨랜드 참사 백서는 꼽았다. 당시 소방법 시행령에는 청소년 수련시설의 경우 소화기만 설치하도록 돼 있었다. 또 방염시설 적용 범위에 청소년 수련시설은 포함돼 있지 않았다. 씨랜드 청소년수련의 집에 비치된 소화기 16개 중 9개는 소화액이 없는 상태였고, 나머지는 건물 밖 관리사무실에 보관되어 있었다. 4개월 전인 2월 정기 소방점검에서 씨랜드 소방시설은 ‘적법’ 판정을 받았다. 백서는 “범정부 차원의 행정규제 완화 방침 등에 따라 규제가 완화된 법규와 자율적인 임의규정 악용 행위”(119쪽)도 사고를 키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세월호 침몰 참사의 원인으로 꼽히는, 이명박 정부가 여객선의 선령 제한을 30년으로 완화한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부실한 안전교육

세월호 사고에서 선장과 선원들은 “선실에서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을 하고 먼저 탈출하는 등 사고 초기에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아 사고를 키웠다는 비판을 받았다. 많은 대형 참사에서 이 같은 ‘책임자의 초기대응 실패’는 결정적이었다.

2003년 2월18일 오전 9시53분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 하행선 승강장에 정차한 1079호 전동차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는 평소 안전교육과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대구광역시가 2005년 펴낸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화재사고 백서>를 보면, 백서는 ‘사고 원인 반성’ 항목에서 첫 번째로 “지하철공사와 소방관서 등 외부 대응기관 직원들의 위기대처 능력 부족”(473쪽)을 꼽았다.

실제로 화재가 발생한 1079호 기관사는 운전사령(철도 관제사)에게 화재 발생 사실을 보고하지 않은 채 화재를 진화하려다 실패하고 당황해서 사고 보고를 누락했다. 화재 발생을 최초로 보고한 중앙로역 역무원도 전동차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자세히 보고하지 않고 단순히 중앙로역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보고했다. 종합사령실 근무자는 화재 경보가 울렸는데도 이를 운전사령에게 통보해주지 않고 원인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기계설비사령은 평소에 자주 일어나는 오작동일 것으로 판단했다. 운전사령은 역무원에게 화재 발생 보고를 받고도 확인 절차 없이 열차무선 전체 호출을 통해 기관사들에게 ‘주의 운전’만 지시했다. 사고 발생 4분 뒤인 9시56분 중앙로역 승강장에 도착한 1080호 전동차 기관사는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한 운전사령의 말을 듣고 “잠시 후 출발할 것이니 기다려달라”고 안내방송을 해서 대피 시기를 놓쳤다.

   
 

백서는 “관련 담당자 대부분이 규정을 무시하거나 안일하게 대처함으로써 대형 사고로 이어졌다”(474쪽)라고 짚으며 그 원인으로 지하철공사가 행정자치부의 공기업 구조조정 지시에 따라 1999년 자체 교육원을 폐지해 안전훈련을 제대로 실시하지 못한 점, 안전관리 전담 부서가 별도로 조직돼 있지 않은 점을 들었다. 안전에 비용을 아낀 결과가 초동대응 실패를 불러 고스란히 인재로 이어진 셈이다.

씨랜드 참사에서도 위기 신호 무시와 책임 실종은 반복됐다. 인솔 교사들은 아이들끼리만 취침시킨 채 다른 방에 모여 있었고, 초기 화재 진압과 인명 대피 유도에 실패했다.

반복되는 지휘체계 혼선


세월호 침몰 사고 뒤 관련 기관과 정부의 대응은 ‘혼선’ 그 자체였다. 침몰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해경 123정은 선내에 진입하는 대신 어선들과 함께 바다에 뛰어든 승객만 구했다. 특공대원이 아니라서 유리창을 깰 장비가 없었다는 게 해경의 변명이다. 사고 당일 의미 있는 구조작업을 하지 못하면서 ‘골든타임을 허비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또 사고 당일 밤까지도 안전행정부와 해양수산부 간에 역할 분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18년 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백서에서도 지휘체계 혼선이 똑같이 지적됐다. 서울시는 사고 발생 뒤 기존 도시방재종합대책본부를 ‘서울특별시 사고대책본부’로 전환했지만, 사고 처리 초반 서울시 대책본부의 업무 범위는 명확하게 확정되지 않았고, 대책본부의 반별 업무 한계도 불분명했다. 그 결과 사고 수습에 필요한 신속한 의사결정 등 종합적인 대책 수립에 미흡했다. “소방, 군부대, 경찰, 자원봉사자 등에 대한 통합 지휘체계도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 역할 분담이나 책임 한계가 불분명하였으며, 이러한 현장 지휘체계 혼선은 사고 수습에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614쪽) 그 결과 사전 시나리오 없는 구조 지휘로 토목, 구조, 기술, 땅굴 탐지 등 전문 기술지원팀뿐 아니라 현장 설계도면조차 조기에 확보하지 못해 신속하고 정확하게 구조활동을 하지 못했다고 백서는 평가했다. 또 전기드릴, 산소용접기, 절단기 등 붕괴 사고 수습에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장비도 제때 구비되지 못했으며 기초 장비의 여유분조차 부족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1993년 7월26일 목포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백서 없음)-66명 사망  
ⓒ연합뉴스
1993년 7월26일 목포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백서 없음)-66명 사망

대구지하철 화재 백서에서도 같은 문제가 지적됐다. “지하철공사 종합상황실은 사고 현장에 전동차 두 대가 정차해 있다는 사실을 소방본부 119 종합상황실에 통보해주지 않았고, 119 종합상황실에서는 승객들이 전동차의 출입문을 열지 못해 갇혀 있는 사실을 현장 지휘본부에 알려주지 않는 등 부서 간, 기관 간 화재 상황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화재 발생 초기에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활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476쪽)라고 백서는 적었다. 백서는 또 “소방, 군부대, 경찰, 자원봉사자 등에 대한 통합 지휘체계도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 역할 분담이나 책임 한계가 분명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현장 지휘체계 혼선은 사고 수습에 있어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487쪽)라며 “대형 재난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긴급구조 종합훈련 및 비상연락체계 정비 등 재난 관련 기관 간의 공조체계를 구축해 실제 상황 발생 시 재난 수습 능력을 배양하여야 하겠다”(488쪽)라고 평가했다. 인명 구조에 필요한 전문 인력과 장비가 부족했던 점도 앞선 사고와 같았다.

개선되지 않는 문제점, ‘페이퍼 대책’ 남발

대형 참사의 또 다른 공통점이자 악순환이 계속되는 핵심은 사고 당시 지적된 문제점들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씨랜드 참사 4개월 뒤 인천 호프집 화재로 30여 분 만에 55명이 숨졌다. 불이 난 현장은 업자들이 공사에 방해가 되는 스프링클러를 제거한 상태였고 소화기도 제대로 비치돼 있지 않았다. 대피로도 막혔다. 성수대교 붕괴 전인 1992년 제2 신행주대교 붕괴 사고가 있었다. 교량 상판의 이음새 부분에 대한 설계 및 시공상의 잘못 때문으로 밝혀졌지만 2년 뒤 비슷한 이유로 성수대교가 붕괴됐다. 2013년 사상자 3명을 낸 방화대교 상판 붕괴 사고 역시 설계도를 무시하고 공사하다 교량의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치우쳤기 때문이었다. 2014년 2월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때도 설계도면 임의 변경, 인허가 과정에서의 서류 변조, 부실시공 감독 부재가 수사 결과 드러났다.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는 관리가 전혀 되지 않던 연안여객선 운항 실태를 드러냈지만, 유사한 이유로 2014년 세월호는 침몰했다. 그리고 세월호 침몰 사고 16일 만인 5월2일 서울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 전동차 추돌 사고가 일어났다. 대구지하철 참사 때 지적된 위기대처 능력 부족, 안전시설 미비 등 문제점이 그대로 반복됐다. ‘막을 수 있던 인재’라는 딱지가 또 붙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1995년 4월28일 대구지하철 공사장 도시가스 폭발 (백서 없음)-101명 사망  
ⓒ연합뉴스
1995년 4월28일 대구지하철 공사장 도시가스 폭발 (백서 없음)-101명 사망

이쯤 되면 백서를 만드는 목적이 무엇인지 의문이 들기에 충분하다. 백서 5권을 분석한 결과, 정부는 과거 재난 사례로부터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음이 확인됐다. 세월호 사고에서도 패턴은 정확히 반복됐다. 대형 참사를 다룬 백서 5권의 쪽수를 모두 합치면 2075쪽이다. 백서가 다룬 참사에서 사망한 사람만 1041명이다. 과거 재난 중 단 한 가지 교훈만 얻었더라도 참사를 막았거나 희생자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재난 대비용’으로 백서를 활용하지 않는 나라에서 언제 또 아무도 읽지 않을 백서를 만들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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