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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복고’ 선언?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이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1세기 현대 자본주의가 19세기로 복귀할 조짐이 농후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진보적 세금제도’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2014년 05월 06일 화요일 제3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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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은 19세기 초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중심부 중 하나인 프랑스 파리를 무대로 탐욕에 눈먼 인간 군상을 그린 리얼리즘 소설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야심찬 20대 법학도인 라스티냐크가 정체불명의 사내 보트랭으로부터 출세에 대한 설교를 듣는 장면이 있다. 보트랭은 공부나 재능, 노력 따위로는 성공할 수 없다고 라스티냐크에게 역설한다. “네가 30세에 판사가 되면 연봉 1200프랑이야. 잘해서 검사가 돼도 연봉 5000프랑이고…. 열심히 뛰어다니고 더러운 짓까지 서슴지 않으면 50세엔 파리에서 제일 잘나가는 변호사가 될 수도 있겠지. 그래봤자 연봉은 5만 프랑 정도다.”

보트랭이 잘생긴 라스티냐크에게 권하는 ‘출세 전략’은 지참금 100만 프랑을 가져올 상속녀와 결혼하라는 것이다. 당시 프랑스의 투자수익률은 한 해 5%쯤으로 추정된다. 100만 프랑 규모의 ‘자본’이면 주식·채권·부동산 등에 투자해서 연간 5만 프랑의 ‘소득’을 올릴 수 있다. 결혼만 잘하면 열심히 노력해 검사로 출세한 다음 받는 연봉(5000프랑)의 10배(5만 프랑)를 20대에 벌어들일 수 있는 것이다. 파리 최고 수준의 50대 변호사와 비슷한 소득이기도 하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P Photo</font></div>2012년 5월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퍼싱 광장에서 금융가의 탐욕을 형상화한 피켓과 함께 메이데이(노동절)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AP Photo
2012년 5월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퍼싱 광장에서 금융가의 탐욕을 형상화한 피켓과 함께 메이데이(노동절)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21세기 자본론(Capital in the Twenty- First Century)>의 저자인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이 대목에서 19세기 초의 프랑스가, 스스로 일하기보다 상속받아야 잘살 수 있는 ‘세습 자본주의(patrimonial capitalism)’였다는 사실을 읽어낸다. 21세기 초의 현대 자본주의가 19세기로 복귀할 조짐이 농후하다는 것이 피케티의 견해다.

2013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21세기 자본론>이 지난 3월 미국에서 영역본으로 출간되면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뉴욕 타임스> <뉴요커> 등 진보 성향 언론은 물론 <파이낸셜 타임스> <포브스> <포천> 등 시장주의 노선의 매체들까지 연일 관련 기사와 인터뷰를 쏟아낸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 대학 교수, 마틴 울프 <파이낸셜 타임스> 수석 논설위원,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 대학 교수 등 세계적 석학 역시 이 책에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피케티는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로 경제성장까지 지체된다는 이야기가 간간이 나오던 미국 사회에 제대로 된 의제를 던진 것이다.

<21세기 자본론>이라는 제목은 당연히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흉내 낸 것이다. 피케티는 프랑스 사회당을 지지했던 좌파 경제학자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가장 중요한 지점에서 다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할수록 ‘이윤율(이윤/자본)’이 떨어진다고 주장(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했다. 자본가들은 이윤을 벌어들이기 위해 자본을 투자한다. 이윤율이 계속 떨어진다면 자본 측은 어느 시점에서 더 이상 투자하지 않고 경제성장 역시 중단될 것이다. 이렇게 체제의 동력이 사라지면서 노동자 계급의 혁명이 일어난다는 것이 ‘자본주의 종언’에 대한 마르크스의 유명한 예언이다.

  [21세기 자본론]은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로 경제성장까지 지체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던 미국 사회에 제대로 된 의제를 던졌다.  
[21세기 자본론]은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로 경제성장까지 지체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던 미국 사회에 제대로 된 의제를 던졌다.
그러나 피케티는 <21세기 자본론>에서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은 완전히 틀렸다”라고 단언한다. 오히려 자본주의는 생산성 상승 및 인구 증가(인구가 늘어나면 이에 따른 각종 상품에 대한 수요 역시 늘어나면서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경향이 있다) 덕분에 일정한 성장률을 계속 유지해왔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1700~2012년의 300년 동안 세계경제 성장 중 절반 정도가 인구 증가로 인한 것이다.

그러나 피케티 역시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불평등한 체제라고 믿는다. 경제성장론 부문에서 세계적 대가인 쿠즈네츠나 칼도 등은 경제성장에 따라 자연스럽게 불평등이 완화될 것이라고 생각했다(42~43쪽 딸린 기사 참조). 그러나 피케티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는 불평등 경향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경제학계에서는 1945~ 1975년의 30여 년을 ‘자본주의의 황금기’라고 부른다. 높은 경제성장과 불평등의 완화를 동시에 성취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피케티는 이 30년이 오히려 “자본주의 역사에서 예외적인 시대”였다고 주장한다.

이대로 가면 ‘세습 자본주의’가 온다


그런데 이렇게 불평등이 심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체 소득 가운데 ‘일해서 버는 돈(노동 소득)’보다 ‘주식·채권·예금·주택 등을 소유하기 때문에 들어오는 돈(자본 소득)’이 점점 더 커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P Photo</font></div>토마 피케티(파리 경제대학 교수)  
ⓒAP Photo
토마 피케티(파리 경제대학 교수)
여기서 ‘소득’과 ‘자본’은 아주 다른 개념이다. 개인이나 기업이 그때그때(예컨대 1년 동안) 벌어들이는 돈은 소득이다. 개인과 기업은 소득 중 일부를 소비하지 않고 축적해서 주택이나 증권(개인), 혹은 공장 및 기계설비(기업)를 매입한다. 이처럼 소득 중 소비하지 않은 부분이 쌓여 새로운 소득의 원천으로 전환되는 것을 ‘자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자본은 ‘현재의 돈을 낳는 과거의 돈(마르크스 식으로 표현하면 ‘죽은 노동’)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자본(capital)은 부(wealth)이기도 하다. 피케티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의 소득 순위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25~35%를 점유하고 있다. 그런데 자본(혹은 부)에서는 전체의 60~70%를 소유하고 있다.

피케티가 주목하는 것은, 이처럼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축적된 자본이 현재의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자본/소득 비율)이다. 이 비율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과거가 현재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현 시점의 전체 소득 중 자본에 분배되는 몫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예컨대 500억원 상당의 자본(공장·기계·지적재산권 등)을 가진 기업이 매년 100억원 상당의 상품을 생산한다고 가정하자. 이 기업은 상품을 판매하고 얻은 100억원 중 60억원을 노동자들에게 임금으로 지급하고 나머지 40억원은 이윤으로 챙긴다. 소득이 자본과 노동에 대해 40대60으로 분배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기업의 자본/소득 비율은 500%(500억원/100억원)다. 자본 입장에서는 500억원을 투자해서 40억원을 벌어들인 것이므로 자본수익률은 8%(40억원/500억원)다. 현재의 전체 소득 중 자본이 차지한 몫의 비중은 40% (40억원/100억원)로 나타난다.

피케티는 지난 200여 년에 걸친 서방세계의 관련 자료를 분석해서 시대별·나라별 ‘자본/소득 비율’을 추정해봤는데 그 결과가 매우 이채롭다. 1700년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1914년까지 ‘자본/소득 비율’은 600~ 700%였다. 당시 사회의 전체 자본(부)이 연간 국민소득의 6~7배에 달했던 것이다. 1910년 당시, 유럽의 소득 순위 상위 10%는 총자본(전체 부의 규모)의 90%, 소득의 45%를 장악하고 있었다. 이 중에서도 상위 1%는 총자본의 60~70%를 소유했다. 이런 자본에서 나오는 배당금·이자·임대료 등의 소득이 일부 계층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회적 불평등 정도가 매우 높았던 것이다.

이런 비율이 1914년부터 급격히 변화되기 시작한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과 러시아 등 동구권의 사회주의 혁명, 그리고 ‘예방 혁명’으로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부유층에 중과세를 하면서 복지국가를 건설했기 때문이다. 1950~1960년대에는 선진국들의 ‘자본/소득 비율’이 200~300%까지 떨어진다. 이에 따라 전체 소득 가운데 자본의 몫도 크게 줄어들었다. 영국의 경우, 총소득 가운데 자본 측이 이윤·배당금·임대료 등으로 가져가는 몫이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40%에 달했지만 1970년에는 20% 정도로 떨어졌다. 당시는 경제성장률이 대단히 높았던 ‘자본주의의 황금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경향은 1980년대, 영국과 미국을 진원지로 하는 대처와 레이건의 ‘보수 혁명’ 이후 다시 반전된다.

피케티에 따르면 오늘날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자본/소득 비율은 500~600%로 치솟았다. 소득 상위 10%가 전체 자본(부) 중 60~70%(1%는 20~30%)를 보유하고 있다. 하위 50%는 자본(부)을 전혀 소유하지 못했다. 예컨대 자가 주택도 없거나 혹은 주택의 가치보다 빚이 더 많은 경우다. 그나마 중간층 40%가 전체 자본의 20~30%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운 점이다.

이 자본/소득 비율이 높을수록 ‘전체 소득 중 자본의 몫’도 커지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경우, 소득 상위 10%는 1910~1920년대에는 국민소득의 45~50%를 점유했다. 이 수치는 1950년대부터 35% 내외로 내려갔다가 1980년대 이후 다시 치솟아 100년 전의 수준으로 복귀하는 중이다(왼쪽 표). 피케티는 현재 추세대로라면 21세기가 저물기 전에 중산층이 몰락하고 18~19세기풍의 세습 자본주의가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성장률이 바닥을 기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1700년 이후 세계경제 성장의 절반 정도를 점유해온 인구증가율 역시 지체되는 추세다. 그래서 노인 인구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경제 주체들이 소득 가운데 저축하는 부문을 점점 더 늘려갈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런 저축은 다시 자본으로 전환되어 전체 자본의 규모를 확대시킨다. 이처럼 성장률이 떨어지는 가운데 저축률이 상승하면 자본/소득 비율이 급격히 높아진다고 피케티는 주장한다. 이에 더해 자본을 투자해 얻을 수 있는 돈(자본수익률)이 일해서 버는 돈(임금)이나 전체 소득(GDP)보다 더욱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EPA</font></div>빌 게이츠 MS사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과 멕시코 통신재벌 카를로스 슬림(왼쪽 세 번째)이 국제 옥수수·밀연구소 설립을 위해 기부했다. 둘의 만남은 ‘슈퍼 리치’의 협력으로 눈길을 모았다.  
ⓒEPA
빌 게이츠 MS사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과 멕시코 통신재벌 카를로스 슬림(왼쪽 세 번째)이 국제 옥수수·밀연구소 설립을 위해 기부했다. 둘의 만남은 ‘슈퍼 리치’의 협력으로 눈길을 모았다.

이런 추세에 따라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아지면, 자본 측에서도 힘들게 사업을 운영하고 혁신을 할 필요가 없다. 일하지 않고 ‘과거의 돈이 낳는 돈’에 의탁하려고 할 것이다. 이에 따라 경제성장은 더욱 지체되고, 자본/소득 비율은 더 상승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더욱이 자본의 분배는 소득의 분배보다 더욱 불평등하다. 소득 상위 1%는 19세기의 프랑스처럼 상속을 통해 상류 계급을 형성하면서 정치 영역과 결탁해 사회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재구조화할 것이다. 피케티에 따르면, 이런 1%가 프랑스나 영국의 경우엔 50만~60만명, 미국에서는 300만명에 이른다. ‘세습 자본주의’의 재등장이다.

세습 자본주의는 과거가 현재를 게걸스럽게 집어삼키는 사회다. 카를 마르크스의 표현에 따른다면 ‘죽은 노동’이 ‘산 노동’을 몰아낸다. 상속된 과거의 부가 세상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피케티 혁명’ 성공할 수 있을까?


물론 적절한 불평등은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에 필수적일 수 있다. 그래야 경제 주체들이 부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혁신할 것이며 이에 따라 전체 사회의 부가 증가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았듯이 세습 자본주의는 오히려 사회와 경제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그래서 피케티가 제안하는 대안은 ‘자본(부)에 대한 진보적 세금제도(progressive tax on capital)’를 통해 자본수익률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심지어 소득 상위 1%에 대해서는 최고 80%의 한계세율(초과 수익에 대해 세금으로 지불해야 할 비율)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미국의 경우 1970년대까지 무려 90%의 한계세율을 적용한 적이 있다. 또한 전 세계의 자산(땅·주택·공장·주식·채권·지적재산권 등)에 연간 5~10%까지의 세금을 부과하자고 한다. 이는 국제협력을 통해 글로벌한 차원에서 시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부자들이 돈을 다른 나라나 조세피난처로 빼돌리는 경우를 차단할 수 있다. 피케티에게 진보적 세금제도는, 불평등과 투쟁해서 세계경제의 활력을 다시 살려낼 수 있는 무기다. 피케티는 영국의 유력지인 <가디언>에 낸 기고문에서 “미국과 유럽연합(EU)은 각각 세계 총소득의 4분의 1씩을 점유하고 있다. 두 지역이 힘을 모으면 지구적 차원에서 금융자산의 파악이 가능해진다. 협력을 거부하는 조세피난처를 경제적으로 제재할 수도 있다”

지난 2011년 가을부터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서 전개되었던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의 목표 역시 불평등 완화와 이를 위한 ‘부자 증세’였다.

폴 크루그먼은 <21세기 자본론>에 대한 <뉴욕 타임스> ‘북 리뷰’에서 ‘피케티 혁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우리는 앞으로 부와 불평등에 대해 더 이상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이야기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 책의 아이디어는, 우리 사회가 단지 19세기 수준의 소득 불평등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세습 자본주의’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체제에서는 재능 있는 개인이 아니라 족벌 왕조가 경제 시스템의 사령부를 통제하게 된다.”

피케티는 최근 <뉴레프트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미래에 대해 특별히 낙관적이지 않다. 과거에서 배운 교훈에 따르면, 형식적 민주주의는 불평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과거의 혼란에서 배운 것을 통해 자본주의를 더욱 평화적이고 지속 가능하게 조절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믿고 싶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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