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 계열의 보수 우익 정당인 국민당은 1977년 처음으로 집권했으나 2년도 못 버티고 퇴출당했다. 이들은 인도국민당으로 재창당해서 20여 년 만인 2002년에 다시 집권한다. 그런데 이 국민당이 두 차례의 집권 초반에 가장 중요한 정치적 이슈로 끌어올린 것이 바로 역사 교과서 문제였다. 교과서 개정을 정권 재창출에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봤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당은 이전 정권의 역사 교과서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왜곡되었다고 규정했다. 한국 수구 세력들이 ‘종북 교과서’ 운운하는 것과 비슷하다. 여기나 저기나 ‘빨갱이’가 문제라고 보는 건가.
인도에서 역사 교과서 문제가 처음 불거진 것은 1977년 국민당의 모라르지 데사이 정부 때였다. 당시 데사이 정부는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인 〈인도 고대사〉 저자인 샤르마에게 ‘학문을 공산주의로 물들게 한 자’라며 신랄한 비난을 퍼부었다. 이듬해 1978년에는 〈인도 고대사〉를 국립교육연수원(NCERT·검인정 체제하에서 교과서를 발행하는 공공기관) 책 목록에서 퇴출해버렸다. 중학교 역사 교과서 저자인 타파르도 무사하지 못했다. 국민당이 그에게 “이슬람 왕조인 무굴에 대해서는 관대하면서 고대 힌두 문명을 적대시한다”라고 덮어씌웠다.
이런 우파 민족주의적 역사 인식이 학술적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학계에서는 거의 용납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뒀다. 의용단일가(민족의용단, 인도국민당, 세계힌두회의 등 정계·사회단체·종교계 등에 포진한 극우 힌두 세력들을 총칭하는 용어)가 이후 종교 공동체 간의 갈등을 고조시키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한 끝에 2002년에는 정권까지 장악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집권한 인도국민당 정권은 역사 교과서 개정에 나선다. 국립교육연수원의 역사 교과서를 새로 집필하게 한 것이다. 국립교육연수원 교과서는 공교육 체제의 대다수 학교에서 채택되기 때문에 매우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학계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교과서 저자들과 이를 지지하는 학자들이 정치권력에 맞서 싸우기로 결의하면서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지게 된다. 인도국민당은 2004년 다시 정권을 잃게 되는데, 새 정부가 역사 교과서를 재개정해 ‘정상화’시킨 이후 이 논란은 다소 잠잠해진 상태다.
교과서 개정, 비극적 사건의 배경이 되다
힌두 민족주의자들의 역사 왜곡에서 가장 두드러진 주장은, 힌두교인만을 인도인으로 규정한 것이다. 무슬림이나 기독교인은 인도를 침략한 자들의 자손이며, ‘민족의 이름’으로 배제되어야 할 대상으로 간주된다. 유사 파시즘 이데올로기다. 이런 역사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자연히 사회의 다원성을 부인하고 신성 국가를 주창하면서 종교 공동체 간의 사회 갈등을 야기하게 된다.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도구로 역사 교과서를 활용(하려)한다는 점에서, 인도와 한국의 수구 세력은 닮았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왜곡된 주장이나마 그 부문(고대사·신화·종교 등)의 전공자들이 나서서 학술적 논전을 벌였다. 하지만 한국의 이른바 우익 역사 교과서에서는 해당 분야의 전문 역사학자가 아닌 사람들이 나서서 친일 행위와 독재 정권을 미화하고 있다.
이쯤에서 인터넷 사이트 ‘일간 베스트 저장소’(일베)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일베는 수구 세력의 역사관을 주입하는 대상이자 이를 확산시키는 통로 노릇을 톡톡히 해왔다.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만 놓고 볼 때, 이에 국정원 같은 정부기관까지 가세한 꼴이다. 인도의 의용단일가가 물질적으로 소외당하고 지식과 정보 측면에서 배제되어 있는 특정 소수 집단을 부추겨 행동대원으로 조직한 것과 비슷한 경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다양한 수구 세력들이 일베와 종합편성채널을 하나의 틀로 묶으면서 역사를 수구 난동 이데올로기로 전락시키는 현상을 보면 인도 역사 교과서 논쟁과 그 사회적 결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