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학기 서울 중앙대 인문대학 학생회장 자리는 공석이다. 2013년 11월에 치러졌어야 할 제4대 인문대 학생회장 선거가 중간에 무산됐기 때문이다. 단독 후보로 출마했던 중앙대 철학과 김창인씨(24)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선거 진행 중 학교에서 갑자기 선거지도위원회라는 걸 만들었다. 그러고는 나의 학점과 징계 경력을 거론하며 후보 자격을 문제 삼았다. 선거가 예정대로 치러질 경우 인문대 각 학과 회장들에게 징계를 내리겠다고도 했다. 결국 인문대 학생들은 투표할 권리를 박탈당했다.”

실제로 중앙대학교에는 1997년 제정된 ‘학생자치기구 선거지도 내규’가 있다. 이 내규는 선거 지도의 주무 부서를 학생지원처 학생지원팀으로 정하고 있다. 선거지도위원회는 이 내규에 의거해 구성됐고, 김씨는 ‘전체 이수 학업성적이 평균평점 2.0 이상인 자’라는 피선거권 자격을 충족하지 못했다. 하지만 김씨는 사실상 사문화됐던 이 내규가 왜 하필 본인이 출마한 선거에서 부활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시사IN 신선영고려대 총학생회 신홍규 정책국장(위)이 학칙 개정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학내 게시판에 부착하고 있다.

김씨가 중앙대 학칙에 문제의식을 느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중앙대가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며 학과 통폐합을 추진하던 2010년, 김씨는 한강대교에서 이에 반대하는 고공 시위를 벌였다가 무기정학을 당했다.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였다. 2011년 1월 ‘퇴학처분 등 무효확인 청구소송’에서 승소했지만 김씨는 학교에 돌아갈 수 없었다. 중앙대가 김씨에게 다시 1년6개월 유기정학 처분을 내린 것이다.

결국 김씨는 2010년 5월부터 징계를 소급 적용받아 2011년 2학기까지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김씨는 “명예의 실추는 추상적 개념으로 정확한 측정이 불가능하며 나로 인해 실제로 학교의 명예가 실추됐는지도 판단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학교는 ‘명예 실추는 징계 사유’라는 모호한 학칙을 갑자기 꺼내들었다”라고 비판했다.

학칙이 학교 입맛대로 적용되는 바람에 피해를 봤다는 학생은 김씨만이 아니다. 최근 사례 중에는 지난해 덕성여대 ‘정치 행사’ 불허 논란이 대표적이다. 2013년 4월 덕성여대 총학생회는 ‘진보 2013 강연’을 열기 위해 학교본부에 장소 협조를 요청했다. 강연자로는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 등이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덕성여대는 ‘학생은 학내외를 막론하고 정당 또는 정치적 목적의 사회단체에 가입하거나 기타 정치 활동을 할 수 없다’는 학칙을 들어 장소 협조 불허를 통보했다. 이에 덕성여대 총학생회는 “정치 활동이 아닌 학술행사다”라며 반발했다.

학생들은 학칙을 학교 마음대로 뜯어고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지난겨울 고려대에서 일었던 논란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고려대 교무처는 2013년 12월11일 ‘학칙 전부 개정안’을 내놓았다. 수강 과목을 중도에 포기할 수 있는 ‘드롭제도’를 폐지하고, F학점을 성적표에 표기한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학교는 학생 활동을 적극 지원한다’는 조항을 ‘학교는 학생 활동 지원을 위해 노력한다’로 수정했다. 개정안을 본 학생들로부터 ‘학습권과 학생 자치권을 함께 축소시킨 개악’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시사IN 조남진중앙대의 대학 구조조정을 반대해온 중앙대 학생 노영수씨(위)는 모기업인 두산중공업으로부터 사찰까지 당했다. 중앙대는 2008년 두산그룹에 인수되었다.

살아 숨쉬는 ‘학도호국단 학칙’

고려대 총학생회는 학칙 개정 절차에 문제를 제기했다. 학생회는 “학교는 ‘특별연구위, 교무처, 교육과정위, 법학전공 교원 등으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다’고 자평하지만 여기에 학생들은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라고 비판했다. 겨울 방학 내내 학생들은 항의 방문, 공문 전달, 기자회견 개최 등 문제 제기를 위한 갖가지 수단을 동원하고 교무처장에게 면담도 신청했다. 학칙 개정은 교무처 담당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무처장은 대화에 나서지 않았다. 결국 고려대 학생들은 아무런 답변도 듣지 못한 채 2014학년도 1학기를 맞았고 개정안은 지난 3월2일 예정대로 시행됐다.

학칙 때문에 징계를 받거나 활동이 가로막힌 사례는 이외에도 많다. 2011년 목원대 학생 김 아무개씨는 학교에서 등록금 인하 서명운동을 막았다며 ‘학내 표현의 자유 보장’ 등의 구호를 내걸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1만 배 시위를 벌였다. 2012년에는 서강대가 ‘김제동 토크 콘서트’를 불허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서강대는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행사는 학내에서 열 수 없다”라고 밝혔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접하기 어려웠던 이러한 사례들이 2000년대 후반 들어 자주 목격되는 것은 우연일까. 가령 2013년 덕성여대가 교내 강연을 불허하며 근거로 제시한 ‘정치 활동 금지’ 학칙은 ‘최신판’이 아니다. 국내 상당수 대학은 유신 정권 시절이던 1975년에 제정된 학도호국단 학칙들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덕성여대의 학칙은 이 중 하나였을 뿐이다.

2012년 정의당 정진후 의원실이 대학교육연구소에 의뢰해 작성한 ‘대학 민주화 실태 진단’ 보고서를 보면 학도호국단 학칙의 독소 조항들이 어떻게 명맥을 유지하는지 현황을 알 수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9월을 기준으로 4년제 180개 국·공·사립대학 중 학칙에 집회 사전승인 조항이 있는 학교가 74.4%(134개교), 게시물·광고 사전 승인 조항이 있는 대학은 72.8%(131개교)에 달했다. 대학교육연구소의 연덕원 연구원은 “학생 자치를 제재하기 위해 만들었던 학도호국단 학칙이 대부분 승계된 것이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이들 조항은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였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슬슬 부활하기 시작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박주민 변호사는 이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박 변호사는 “사학들은 학교를 자기 마음대로 운영하고 싶어한다. 최근 몇 년간 대학이 경영·경제연구소 등의 조언을 받아가며 경영자 마인드로 많이 개편했다. 이런 사학들 처지에서는 학내 민주화·자율화 같은 것들이 불편하다. 이명박 대통령 때(2012년 1월)는 대학의 자율화라는 명목으로 헌법에 위배된 학칙에 대해 교과부 장관이 수정을 명령할 수 있게 했던 조항도 없어졌다”라고 말했다.

이전에도 반인권적 학칙에 대한 개정 요구는 학교 안팎에서 꾸준히 있어왔다. 2007년 국가인권위는 국내 60여 대학에 ‘헌법에 위배되는 학칙을 개정하거나 삭제하라’고 권고했다. 이후에도 전국 각 대학 학생들이 교내외에서 학칙 개정을 시도했다. 하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대다수 대학에서 학칙 개정의 최종 승인권자가 결국 총장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2012년 교과부 장관의 학칙 시정 요구권마저 삭제됐던 것이다. 국공립대 학생들은 그나마 헌법소원으로 활로를 모색할 수 있다지만, 사립대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사립대는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2013년 11월11일 민주당 의원 21명(배재정 의원 대표 발의)은 학칙의 제정·개정과 관련한 고등교육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내놓았다. 이 안에는 학교장이 학칙을 제정·개정하고자 할 경우 사전에 공청회 등을 개최하게 하고, 학생 대표가 학칙 개정안을 제출할 수 있게끔 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이 안은 2014년 3월 말 현재 상임위에도 오르지 못한 상태다.

“학생 참여하는 학칙개정위원회 신설해야”

민주당 장하나 의원실은 학칙의 제정·개정과 관련해 새로운 법안을 준비 중이다. 장하나 의원은 “지난해 4월 ‘대학의 자치권 침해와 대학 자치의 필요성’이라는 토론회를 주최했다. 이 토론회에서 군사정권 때의 학칙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걸 알고 경악했다”라며 법안을 발의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시사IN 신선영장하나 의원(왼쪽에서 세 번째)은 ‘위헌 학칙 엔딩’ 기자회견을 열어 각 대학의 학칙 피해 사례를 밝혔다.

장 의원이 준비 중인 법안의 골자는 교육부가 위법적 학칙에 시정명령권을 갖게 하고, 대학에 ‘학칙개정위원회’라는 기구를 신설하는 것이다. 특히 학칙개정위원회를 구성할 때 학생과 학교 당국의 비율이 거의 같도록 했다. 학생들이 학칙 개정에 대한 목소리를 충분히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미 교수·학생·직원 등이 학칙 제정·개정 등 대학 운영의 전반적 내용을 함께 논의하는 대학평의원회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대학평의원회를 두고 학생의 참여 비율이 현저히 낮다는 등의 비판이 꾸준히 있어왔다. 2012년 교육과학기술부 자료에 따르면, 대학평의원회의 인원을 법정 최소 구성 인원인 11명으로 잡을 경우 학생평의원은 1.45명에 불과했다. 대학평의원회 자체가 아예 없는 대학도 있다.

4월7일에는 장하나 의원실 주최로 ‘대학 학칙은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토론회가 열릴 예정이다. 토론회에서는 교육·법 분야 전문가들이 학칙이 가진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논의하게 된다. 특히 학칙으로 인해 기본권을 침해당한 학생들이 참여해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할 예정이다.

기자명 허은선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le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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