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는 화웨이·ZTE 등 중국의 ‘테크 자이언트’들에게 사실상 스파이 혐의를 거론한 바 있다. 이 업체들이 미국에 구축한 통신시설을 통해 중국으로 정보를 빼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2012년 10월에는 미국 하원이 ‘중국 통신업체 화웨이·ZTE 관련 국가안보 문제 조사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여기서 미국 하원은 ‘미국 정부 및 민간업체들의 중국 통신장비 사용 자제’ ‘화웨이·ZTE 등의 미국 기업 인수·합병 혹은 인프라 사업 참여규제’ 등을 권고하거나 개정 법안을 냈다. 이는 떠오르는 초강대국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국 공산당 정부의 입김을 강하게 받는 화웨이와 ZTE가 미국 국익에 악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실질적 우려도 어느 정도 깔려 있는 듯하다.

화웨이와 ZTE는 둘 다 공식적으로는 ‘민간 기업’이다. 최근 글로벌 기업으로 두 업체가 부상한 것도 국유 기업이 아니라 민간 기업이란 측면에서 더욱 각광을 받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화웨이와 ZTE가 ‘명목상으로만 민간 기업’이라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소유 구조를 보면 그렇다.
 

ⓒAP Photo런청페이 화웨이 회장 지분은 1.4%밖에 안 된다.

화웨이는 비상장기업이다. 이 회사의 주식은 시장에서 사고팔 수 없다. 연간 매출 수백억 달러 규모의 초대형 기업이 비상장인 경우는 세계적으로 유일할 것이다. 소유 구조 역시 독특하다. 화웨이 런청페이 회장의 지분은 전체 주식의 1.4%밖에 안 된다. 나머지 98.6%는 화웨이 노동자들 소유로 되어 있다.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화웨이 주식을 단 한 주도 가지고 있지 않다. 화웨이 노동자들 역시 주식을 매입해서 보유한 것이 아니다. 회사 측에서 작업 실적에 따라 매년 주식을 나눠준다고 한다. 주주인 노동자들은 일종의 성과급으로 배당금을 지급받는다. 퇴사하는 경우에는 회사에 주식을 반환해야 한다. 당연히 팔 수 없다.

공개되지 않는 이사회, 주주 정보는 프라이버시?

화웨이 주주(노동자)를 대표하는 ‘투자지주조합’이 있다. 주주들은 여기서 33명으로 구성된 소위원회를 조직하고, 소위원회는 다시 9명으로 구성된 이사회를 선출한다. 회사의 주인인 주주들(화웨이에서는 노동자들)이 화웨이의 ‘의사결정구조’를 만드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 절차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 중국 정부가 이사들을 지명해놓고 주주들이 결정했다고 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주주들 중 다수가 경영진 교체를 희망한다 해도 가능할지 의문이다.

그래서 상당수 전문가들은 화웨이의 이런 소유 구조가 단지 ‘눈속임’이라고 주장한다. 화웨이는 사실상 중국 정부가 통제하는 기업이며 이를 ‘노동자 소유 기업’이라는 외피로 은폐하고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런청페이 회장은 인민해방군 정보기술학교 출신이며 중국공산당과 관련된 경력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서구 언론에서는 “화웨이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끝없이 제기된다. 이 회사의 최고 재무책임자이며 런청페이 회장의 딸인 캐시 멍은 〈월스트리트 저널〉(1월15일자)의 이 같은 질문에 대해 “노동자 주주들의 프라이버시 때문에 주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다”라고 대답했다.
 

ZTE는 상장회사로 주식 거래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 회사에도 사실상의 국유 기업이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ZTE의 최대 주주는 중싱신(中興新)이라는 업체(전화기, 컴퓨터 시스템 통합, 송배전 제어설비)로 지분은 30.76%다. 나머지 69.24%는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데 중싱신 이외의 대주주는 없다. 즉, 중싱신을 지배하는 자가 ZTE도 움직이는 구조다. 그렇다면 중싱신의 최대 주주는 누구인가? 일단 허우웨이구이 ZTE 회장이 중싱웨이셴퉁(中興維先通)이라는 민간 기업을 통해 중싱신의 지분 49%를 보유하고 있다. 중싱신의 나머지 지분은 시안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34%, 항톈광위(航天廣宇) 17%로 분할되어 있다. 그래서 중싱신의 최대 주주는 단연 허우웨이구이 회장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안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와 항

허우웨이구이 ZTE 회장.

톈광위의 소유 라인을 타고 올라가 보면 중국 국무원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중국 국유 기업 운영을 총괄하는 기관)에 이르게 된다. 중국 정부가 중싱신의 총주식 중 51% (34%+17%)를 가진 지배 주주인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ZTE는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을 통해 성장을 실현해온 업체로, 첨단기술 기업 및 수출 기업으로 지정되어 각종 세금우대 혜택을 부여받아 왔다. 심지어 중싱신의 주주로 중국 국무원 산하 기업인 항톈광위의 경우, ZTE의 주식을 추가 매입한다는 명목으로 8000만 위안을 투자한 뒤 주식도 배당금도 받지 않았다. 사실상 정부가 ZTE에 편법으로 보조금을 지급한 셈이다.

PC 및 스마트폰 글로벌 업체인 레노버 역시 ‘사실상 국유 기업’의 혐의를 받는다. 레노버의 지주회사인 레전드홀딩스의 최대 주주(36%)가 정부기관인 중국과학아카데미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ICT(정보통신 기술) 부문의 글로벌 자이언트로 떠오른 중국 ‘민간 업체’들이 ‘사실상의 국유 기업’일 가능성이 크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중국식 국가자본주의는 서구 세계의 거센 비난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힘과 효율성을 발휘하고 있는 듯하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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