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중국 후진타오 주석(왼쪽)과 일본 후쿠다 총리가 5월7일 공동 기자회견을 가진 뒤 악수하고 있다.
중·일 관계를 보면, 외교에도 역시 인문 소양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2006년 10월 아베 총리의 방중은 파빙지려(破氷之旅)라 했다. 중·일간 냉랭한 얼음장을 깨는 여행이라는 뜻이다. 얼음을 깼으니 이제 녹여야 할 터이다. 그래서 다음 해 4월 원자바오 총리 방일은 ‘융빙지려(融氷之旅, 얼음을 녹이는 여행)’였다, 그해 11월 후쿠다 총리 방중은 ‘영춘지려(迎春之旅)’ 즉 봄맞이 여행이고, 5월6일부터 시작된 후진타오 주석 방일은 난춘지려(暖春之旅)다. 봄 맞이는 이미 했으니 이제 따뜻한 봄날을 만끽해보자는 것이다. ‘실용외교’ ‘자원외교’ ‘21세기 한·미 전략동맹’ 등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말들 에 비해 ‘동양적 인문’이 느껴진다.

말 그대로, 지금 베이징과 도쿄는 때 아닌 봄바람이다. 방일 다음 날인 5월7일, 후진타오 주석은 후쿠다 총리와 21세기를 맞는 ‘전략적 호혜관계 강화’에 합의했고, 양국 간 첨예한 마찰을 빚던 동중국해 가스전 공동 개발에 대해서도 일본 측에 대폭 양보할 기세다.

일본과는 봄바람, 한국에는 찬바람

반면, 서울에 대한 베이징의 기류는 냉랭하기 이를 데 없다. ‘춘풍’에 대비되는 ‘대륙풍’이 몰아칠 기세다. 요즘 베이징에서는 ‘서울 사람’이 주관하는 행사는 연예인 공연, 유학생 행사 할 것 없이 취소 사태를 겪는다고 한다. 중국 측의 ‘실력 행사’ 때문이다. 서울에서 있었던 성화봉송 사태에 대한 보복 차원이 아닌, 좀더 깊은 내막이 있다고 한다. 바로 이명박 정부의 그동안 행보를 면밀히 주시해온 베이징이 최종적으로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그에 따른 행동에 들어갈 태세라는 얘기다.

베이징이 어떤 얼굴로 서울을 대할지, 과연 ‘대륙풍’의 실체가 뭘지 드러날 시점도 멀지 않았다. 5월 말로 예정된 이명박 대통령 중국 방문이 그 시점이다. 한·중 관계 전문가들은 이 대통령 방중 때 중국이 과연 현재의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그보다 한 단계 위인 ‘전략적 관계’로 격상할지 여부에 관전 포인트를 둔다. 그동안의 흐름으로 볼 때 격상돼야 마땅하고 그렇지 않으면 ‘사건’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해 4월 한국이 미국과 FTA 협상을 시작하자 한·중 관계를 전략적 호혜관계로 격상하자고 먼저 제의했다. 그리고 친미 보수의 기치를 내건 이명박 후보가 지난해 대선에서 승리하자 중국 특사로 방중한 박근혜 대표에게 후진타오 주석이 또한 전략적 관계로의 격상을 또다시 제의하기도 했다. 당시 중국은 그 구체적 내용으로 총리급 회담의 정례화와 양국 청소년 교류 등을 제시했다고 한다.

ⓒ연합뉴스캠프 데이비드에서 마중 나온 조지 부시 대통령의 안내로 골프카에 옮겨 타고 숙소로 향하는 이명박 대통령.
이때까지만 해도 중국은 한국이 친미로 경사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당근을 꺼내들 태세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런 당근책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이명박 정부가 보인 태도를 보았을 때, 중국에 대한 태도가 매우 부정적이라고 결론을 내렸다는 얘기이다. 그래서 전략적 관계로의 격상도 없었던 얘기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중국의 원래 생각은 일본에 대해서는 현상 유지에 그친다는 것이었으나 한국을 전략적 관계로 끌어올린다는 방침이 철회되면서 반대로, 이번에 후 주석이 일본과의 관계를 격상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베이징의 정통한 소식통은 “일본과는 동중국해 문제, 농약만두 사건, 티베트 문제 등 현안이 많아 관계 격상이 어려웠다. 그런데 한국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으로 바뀌면서, 할 수 없이 일본에 양보하게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베이징 일각에서는 “일본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전략적 호혜관계 강화’라 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몇 걸음 더 나아간 ‘전략동맹’까지 염두에 둔다”는 말까지 나온다. 미국이 최근 북한과의 핵 신고 협의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를 거론하겠다며, 일본을 배려하고 나온 것도 후 주석의 방일 행보가 심상치 않은 데 따른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후 주석의 분노

그렇다면 중국은 왜 이명박 정부에 불만을 품게 됐을까. 최근 베이징에서 중국의 유력 인사를 만난 국내의 한 전문가는 불신의 벽이 이렇게까지 두꺼울 줄 몰랐다며 당혹감을 토로했다. 한·미 동맹 강화를 외치던 이명박 정부가 최근 미국산 쇠고기 파동에 고초를 겪는 모습을 본 중국 측 인사는 ‘미국을 믿다니, 바보’라며 거의 비웃는 듯한 태도 일색이란다. 그러면서 “중국은 쇠고기 문제를 절대 그런 식으로 다루지 않는다. 미국이 광우병 통제가 안 되는 나라라는 걸 몰랐나?”라며 고소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고 한다. 그동안 미·일을 중시하고 중국을 홀대하는 듯한 서울의 태도에 쌓였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지는 듯하다는 것이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감정이 나빠지는 과정에서도 예외 없이 ‘점층법’이 적용된다. 한국에 대해 호감을 가졌던 중국 당·정의 고위 관계자나 전문가 중에는, 좋은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놓쳤다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인사들이 있다. 이들이 말하는 기회란 바로 후진타오 주석이 박근혜 특사를 만난 그 즈음에 대한 얘기다. 그때 후 주석은 전략적 관계로의 격상 외에도 한·중 관계 미래에 대해 여러 가지로 좋은 얘기를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후 이명박 당선자 측에서 후 주석의 호의에 대한 답례나 반응은 없이 미·일과의 관계 강화로만 치달았다는 게 중국 측의 인식이다. “이 당선자가 물 밑으로라도, 후 주석에게 한국이 앞으로 친미 일변도로 가지는 않는다고 메시지만 전했더라도 이렇게까지 악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당선자 측에서는 했는지 모르나 적어도 후 주석에게 통하는 라인으로는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라고 앞의 베이징 소식통은 전했다.

그 다음, 이 대통령이 첫 해외 순방지로 미국 다음에 일본을 택함으로써, 후 주석의 자존심을 결정적으로 상하게 만들었다. 중국 측은 이 대통령이 첫 순방지로 미국을 택하는 것까지는 이해하지만 두 번째는 당연히 중국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중국 대신 일본을 선택하는 것을 보면서, 이 대통령에게 ‘역시나’ 했다는 것이다. 이 얘기는 곧 ‘친중은 안 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뉴시스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표가 탕자쉬안 중국 국무위원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때부터 베이징에서는 후 주석이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 극언을 했다는 얘기가 유력 인사 사이에 떠돌았다. 즉 “한국이 지금, 미국·일본만 있고 중국은 없다는 건가? 그렇다면 내가 이 자리 있는 동안 한국은 나한테는 없는 거야. 두고 봐라.” 지난해 10월15일 제17차 공산당 대회를 통해 집권 2기에 들어선 후 주석의 임기는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와 정확하게 겹친다. 따라서 자기가 최고 책임자로 있는 앞으로 5년간 한국과의 관계는 없다는 얘기가 중국 최고 지도자 입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갑갑할 노릇인데, 아쉽게도 ‘점층법’의 끝은 여기가 아니다. 그 다음이 더 껄끄럽다. 이명박 대통령 방미 과정에서 있었던 한·미 간 협의 내용에 대해 중국이 어떻게 인식해왔고, 그 결론이 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한국이 미국의 대중국 적대 정책의 앞잡이가 되었다’, ‘한국이 중국을 적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대통령 방미 전까지만 해도 중국 측이 긴가민가했는데, 방미 과정에 대한 나름대로의 면밀한 정보 수집과 분석을 통해 ‘확증을 잡았다’고 한다.

한국이 중국을 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베이징 측이 그 유력한 근거로 제시한 게 바로 MD(미사일 방어) 문제다. 한국 정부는 대통령 방미 기간 중 MD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고 했지만, 중국 측은 이명박 대통령이 이미 미국에 MD 가입을 약속했다고 단정한다. MD 외에 다른 군사 요구 사항에 대해서도 거의 대부분 들어주기로 했다는 게 중국 측 내부 판단이라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이 중국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는 사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고민해온 아주 민감한 문제다. 노무현 정부 시절 외교안보 현안에 밝은 전문가에 따르면, 2005년 1월 경주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상기됐던 것도 바로 이 문제 때문이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중국을 한·미 공동의 전략 대상에 포함시키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그러면 일본도 넣자고 응수했다. 부시 대통령이 ‘일본은 왜?’라고 묻자 노 대통령은 ‘우리는 일본으로부터도 위협을 느낀다’고 답했다. 부시가 난색을 표하자 노 대통령은 ‘일본을 넣지 않겠다면 중국도 빼자’며 몰아붙였다. 당시 미국 측은 노 대통령에 대해 서운해하긴 했지만, ‘국익을 위한 행동이다. 일리가 있다’며, 나름대로 평가하기도 했다.

이와 연동된 또 하나의 현안이 바로 ‘작계 5029’ 문제다. 북한에서 내우외환의 급변 사태가 벌어졌을 때 한국과 미국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규정하는 작계 5029에 대해 미국은 한미 연합사의 공동 대응을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노무현 정부는 이 경우 주권 침해 문제가 발생한다며 더 이상 논의를 중단했다. 그러나 내밀한 이유는 한미연합사가 출동할 경우 1950년의 한국전쟁 때처럼 중국군이 맞대응해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염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노무현 정부는 중국을 적으로 규정하는 한·미 간 협의에 대해 매우 신중한 태도를 견지해온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작계 5029에 대한 재논의 분위기가 한·미 간에 감돈다. 또 방미 기간 중에는 한·미 동맹을 21세기 전략동맹으로 격상하자고 거듭 제안하기도 했다. 물론 우리 측은 전략동맹의 내용에 대해 ‘가치동맹, 신뢰동맹, 평화구축 동맹’ 등 비군사 분야 협력을 강조했지만, 중국이 볼 때는 공동의 적으로 중국을 설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할 소지가 있다. 중국이 오해하는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그런 것인지는 좀더 두고 봐야겠지만, 이 정권 주변의 이른바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그동안 무분별하게 쏟아냈던 한·미 동맹 강화, MD·PSI 가입, 작계 5029 재검토 따위 말들이 이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미국과는 광우병 파동, 중국과는 ‘후진타오의 분노.’ 그리고 그 다음은? 불길한 것은 이것이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단 두어 달 만에 10년의 외교안보 성과가 이렇게까지 무너져내릴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기자명 남문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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