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청렴위가 GOP사업 비리 의혹을 한창 내사 중이던 지난 8월23일 청와대는 이 대외비 공문을 국방부·합참 등에 내려보내 태스크포스까지 구성해 지원한 사실이 〈시사IN〉 자료 입수로 밝혀졌다.
휴전선 250km에 이르는 철조망 주변에 전자 감시·감지 통제장비를 설치하는 이른바 ‘GOP 경계과학화 사업’이 방위산업 분야의 부정 비리 의혹 사건으로 비화할 조짐이다. 국가청렴위원회(청렴위)는 지난 6개월여간 이 사업에 대한 다각적 실태 조사를 벌여 사업자 선정 과정의 문제점과 설치된 장비의 허점, 그리고 이 과정의 로비 의혹 등에 대한 단서를 확보한 뒤 최근 서울 중앙지검에 이관해 수사를 의뢰했다. 아울러 청렴위는 국방부 조사본부에도 관련 자료를 넘겨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이로써 지난해 6월 이후 〈시사IN〉(당시 〈시사저널〉)이 네 차례에 걸쳐 연쇄 추적 보도해온 GOP 사업은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 또 검찰조사 결과 사업 추진 과정의 로비 등 비리 사실이 드러나면 이 사업은 참여정부 방위산업 분야의 최대 스캔들이 될 수도 있다.

삼성그룹 세 계열사인 테크윈, SDS, 에스원이 컨소시엄으로 참여해 따낸 전방 철책선 전자 경계시스템 도입 사업(GOP 사업)은 휴전선 전역에 걸쳐 소총을 든 경계 초병을 후방으로 빼고 대신 첨단 전자 경계 시설로 대체하는 공사이다. 전체적으로 5000억원 이상의 혈세가 투입될 이 사업에서 경계시스템을 직접 설치하는 공사에만도 1400억원 이상이 들어간다. 지난해 6월 중순 시범설치 사업자로 삼성 컨소시엄을 선정한 방위사업청(방사청)은 국방부 예산 60여 억원(2006년 41억원, 2007년 20억원)을 들여 동부전선 5사단 15km 철책 구간에 이스라엘제 광그물망을 설치토록 했다. 이 사업은 지난 2005년 이 지역 전방 철책선이 뚫리는 사건이 여러 차례 발생한 것을 계기로 육군에서 시급히 필요성을 제기해 이뤄졌다. 그러나 사전에 국방 중기계획에 반영되지 않은 사업인 데다 타당성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가운데 서둘러 입찰에 부쳐 삼성 컨소시엄을 선정한 데 대해 관련 업계에서는 ‘삼성 밀어주기 특혜’라는 주장이 끊이지 않았다.

문제의 핵심은 방사청의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원칙과 내부 규정은 물론 상식이 무시된 이상한 결정이 이뤄진 점이었다. 당초 방사청은 입찰 업체들에게 ‘요구성능 충족 기준은 국산 장비’라고 제시했다. 이에 따라 삼성 컨소시엄을 제외한 다른 업체들은 국산 기술로 생산해 성능이 입증된 감시장비들을 제안서에 담아 제출했다. 대부분 광망식과 자력식 첨단 장비들이었다.
그러나 삼성 컨소시엄은 수입 감지 시스템(이스라엘 트랜스 시큐리티 사의 F-5000)을 제출했다. 국내에서 조립 생산할 테니 국산 장비로 인정해달라는 것이었다. 더구나 이스라엘 본사 제품은 에스원이 국내에 설치한 적이 있지만 조립 생산품은 아직까지 선보인 적도 없는 ‘가상의 장비’였다.


결함 있는 제품 서둘러 채택


삼성 컨소시엄에 대한 특혜 의혹은 필수 요구조건이었던 ‘단일 감지 시스템’ 제안 요구를 어긴 데서도 드러났다. 지난해 5월10일 방사청은 입찰 업체들을 상대로 이 사업 제안요청서 설명회를 가질 때 무조건 한 개 기종으로 제안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이에 따라 SK C&C, 데이콤, 넥스원퓨처, 휴니드테크놀러지, S&S에이스, 한전KDN 등 다른 입찰 업체는 감지 시스템을 자력식 또는 광망식 중 한 개 기종만으로 제출했다. 반면 유일하게 삼성 컨소시엄만이 이스라엘 광그물망에 보태 미국 파이버 센시스 사에서 생산한 ‘광케이블 진동센서’도 같이 설치하겠다고 제안했다. 이 회사 대리점을 운영하는 에스원이 휴전선 철조망 본체에는 광망을, 최상단과 철책 아래 땅속에는 광케이블 진동센서를 각각 수입해 깔겠다는 제안이었다. 결국 방사청 요구 기준을 맞춘 업체들은 탈락하고 위배한 업체가 선정되는 이상한 결과가 나왔다.

ⓒ뉴시스5000억원대 혈세가 투입될 휴전선 경계과학화 사업에 부정 비리 의혹이 일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삼성 컨소시엄의 이스라엘제 광망이 이미 국내 군사시설에 설치된 바 있는데, 운영 과정에서 치명적 결함이 드러난 제품이라는 점이다. 에스원은 이 제품을 1998년 충북 중원에 있는 공군 제19전투비행단에 설치했고, 2000년에는 충남 해미에 있는 공군 제20전투비행단에 추가 설치했다. 문제는 이 제품이 하루에도 수십 차례나 오작동해 공군의 골칫거리가 되었다는 점이다.

또 두 공군 비행장에 설치된 삼성 컨소시엄의 제안 제품은 실험에서 침투자가 망을 절단하지 않고 해체한 뒤 침투할 때에는 무용지물이라는 점도 드러났다. 1999년 11월23일에 실시된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시험(국방부 감사 제16130-45)과 1999년 5월12일부터 14일까지 실시된 인천국제공항 공개시험 결과가 이를 입증한다. 당시 국방부 조사에서 에스원이 설치한 이스라엘제 광망은 니퍼·드라이버·절단기 등을 사용해 몇 분 만에 플라스틱 버튼을 열고 망 구멍을 관통하거나 망 하단을 펜스 지지대로부터 분리하거나 망 상부 지지대를 눕히고 침투할 때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결함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휴전선은 국가 안보에서 가장 민감한 지역이다. 방사청에서 이런 지역에 허술하기 짝이 없는 제품을 설치하기로 했다는 것은 ‘도박’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이처럼 방위사업청은 지난해 6월 삼성 컨소시엄을 이 사업 시범사업자도 무리하게 선정한 뒤 지난 1년간 5사단 지역 15km에 걸쳐 시험평가를 수행해왔다. 평가는 지난해 8월28일부터 지난 8월17일까지 약 1년에 걸쳐 진행됐다. 현재는 육본 시험평가단에서 작전 운용과 성능, 군수 지원성 따위 평가를 수행하며 결과를 분석 중이라고 한다.

시범설치 후 평가 과정에서 방사청 실무자들 사이에서도 이 사업에 대한 우려가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방사청 담당 부서에서는 ‘GOP 과학화 경계방안 감지센서 재검토’라는 보고 문건을 통해 “현재 감시센서는 CCTV로, 감지센서는 광망과 광케이블로 구성해 사업기간을 연장해 시험 중이다. 그러나 광을 이용한 센싱은 몇 가지 치명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오경보율이 높았고 결빙에 취약해 체감온도 영하 20~30℃에 이르

ⓒ시사IN 안희태방위사업청(위) 내 일선 실무진은 삼성 컨소시엄의 GOP 사업에 문제가 많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는 지역에서는 운용이 부적합하다. 눈보라 시 결빙으로 신호가 왜곡되고 균열이 발생한다. 신호가 민감해 전문요원이 배치되어야 하고 교육훈련이 필요해 유지 보수 비용이 많다”라고 지적했다. 또 경계 시스템 분야에서 세계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한 캐나다의 센스타 스텔라 사는 이미 광망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다른 제품으로 대체하고 있다는 점도 적시했다. 지난 9월 방사청에서 센스타 사를 방문했을 때 그곳 전문가는 GOP에서 시험 중인 삼성 컨소시엄의 광망과 광케이블이 실패할 것을 예견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관련 부서에서는 삼성 컨소시엄 사업자가 이미 확정된 체계라는 점만 고집하면서 문제점 해결을 위해 삼성 측에 요구 성능기준까지 낮춰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재고해달라는 것이 방사청 일선 실무진 내부 보고서의 지적이다.

그러나 방사청 수뇌부는 시험평가 결과를 오는 10월 중순 국회에 보고하고 부족한 점을 보완해 GOP 사업을 계속 밀어붙인다는 계획이다.
국회 국방위는 여야를 막론하고 이 사업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는 견해이다. 통합신당 국방위원인 김명자 의원은 “조사 결과 GOP 사업은 국민 혈세 낭비 사업이므로 아예 사업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공감대가 국방위원 내부에서 형성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국회 예산심의권을 철저히 무시하는 방사청의 오만한 사업 추진 방식부터 문제라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이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해온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은 “사업을 없애는 것은 물론 그동안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는지 배후 비호 관계를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삼성 컨소시엄 사업의 실효성 논란에도 예산 일부를 승인하는 과정에서 국회 국방위는 단서를 달았다. 시범운용 평가는 계속사업이 아니라 단년도 시범사업이라는 점, 그리고 시험운용 평가 이후 사업 전반을 원점에서 재평가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방사청은 올해도 ‘계속사업’인 것처럼 2008년 예산에 28사단 착수금 40억원을 반영해 국회에 제출했다.


청와대는 왜 개입했나?


방사청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 사업을 계속 밀어붙이는 것은 청와대의 입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시사IN〉이 입수한 청와대 비서실장 명의의 최근 공문은 이를 잘 보여준다. GOP 사업 부정 비리 의혹에 대한 국가청렴위원회의 조사가 한창이던 지난 8월23일 대통령 비서실은 비서실장 명의로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

ⓒ시사IN 안희태휴전선 경계과학화 사업의 시범 사업자로 선정된 삼성 컨소시엄 주간사 에스원.
육군참모총장, 방위사업청장 앞으로 ‘GOP 과학화 경계시스템 사업 추진 태스크포스 구성’을 지시하는 공문을 내려보냈다(67쪽 문서 사진 참조).

청와대는 이 비공개 문건을 통해 팀 구성 범위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 국방부 자원관리본부장을 공동 팀장으로, 국방부 전력정책관을 간사로, 합참과 육군, 방위사업청 관련 부장을 각각 국장으로 보직시키라고 구체적으로 명기하기까지 했다. 또 운용 시기를 2007년 8월부터 체계적 사업 추진이 가능할 때까지 무기한으로 정하고, 팀의 당면 과제는 10월 국회 보고 전에 본사업 추진 관련 종합분석 및 대책 수립으로 정리했다. 그 추진 경과를 9월 말까지 청와대 외교안보실로 보고할 것도 지시했다. 사실상 실패로 드러난 삼성 컨소시엄의 GOP 시범사업을 5000억원대 예산이 투입될 본사업으로 만들어 청와대가 발벗고 나서 태스크포스까지 구성해 지원하는 형국이다.
결국 국가청렴위 조사로 사업 추진 전반의 문제점과 비리 의혹이 드러나 서울 중앙지검에 넘겨진 이 사업에 청와대까지 적극 개입하고 있는 정황이 드러남으로써 검찰이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