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이재용 전무(위)의 엄청난 ‘재산 증식’에 삼성 구조본이 개입했음이 특검 수사로 일부 확인됐다.
삼성그룹과 이건희 회장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지는 특검 수사 결과가 나와봐야 안다. 그러나 지금까지 겪은 것만 해도 삼성그룹이나 이건희 회장 처지에서는 참을 수 없는 굴욕이며 수치이리라.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한국 경제의 대들보이자 초일류 기업을 표방하는 그룹의 총수 일가가 특검에 나란히 불려가 수사를 받아야 했으니 말이다. 최근 삼성그룹과 이건희 회장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굴욕’의 근본 원인은 ‘무리한 경영권 세습과 지배력 강화’에 있다.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1994~1996년 이건희 회장은 아들 이재용 전무에게 61억4000만원을 주었다. ‘재테크’에 필요한 종자돈이었다. 조승현 교수(방송대·법학) 말대로, 여기까지는 법적으로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부자 아버지가 아들에게 적잖은 돈을 증여했고, 이때 부과되는 증여세도 법이 정한 대로 냈다. 문제는 다음부터다. 이재용 전무는 이 돈 가운데 16억6000여 만원을 세금으로 내고, 나머지 44억8000만원을 가지고 ‘신기에 가까운 재테크’ 실력을 보여주었다.

신도 놀란 이재용씨의 재테크 실력

이 전무는 1994년 10월부터 삼성에스원(주당 1만9000원)과 삼성엔지니어링(주당 5500원) 주식을 사들여 1~2년 뒤에 되팔아 540억원가량 이득을 남겼다. 1996년에는 제일기획 사모 전환사채를 취득했다 되파는 방식으로 140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이 전무는 이렇게 마련한 돈으로 삼성에버랜드·삼성전자·삼성SDS 등 그룹 지배권 확보나 재산 증식에 필요한 계열사 지분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그 결과 44억원이었던 이 전무의 종자돈은 2000년대 들어 2조원대로 늘어났다. 합법적인 재테크로 재산을 수백 배로 불렸다면 아무리 배가 아파도 문제 삼을 수 없다. 그러나 이재용 전무의 신기에 가까운 재테크 실력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발휘된 것이 아니다. 조승현 교수는 “그 과정은 치밀한 기획 아래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연속 범죄행위다”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삼성은 “그룹 차원의 공모는 없었고, 이씨의 개인 판단으로 한 일이다”라고 해명해왔다. 그러나 특검 조사에서는 일련의 행위가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이하 구조본, 현재 삼성그룹 전략기획실)의 주도로 이루어진 사실이 일부 확인됐다.

이학수 부회장을 비롯한 구조본 관련자는 1996년 상속세법 개정에 따른 과세를 회피하고, 적은 자금으로 삼성그룹 지배권을 이재용 전무에게 넘겨줄 목적으로 삼성에버랜드의 전환사채 발행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사회 관련 서류를 조작하는 등의 방법을 동원해 매우 싼 가격에 발행한 전환사채 대부분을 이재용 전무 등이 인수하도록 했다. 구조본 관련자는 삼성SDS 주식을 이건희 회장 일가에게 헐값에 넘기기 위해 삼성SDS 이사들과 공모했다. 주식의 실제 가치보다 현저히 낮은 평가액을 적용해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해 발행 당일 이건희 회장 일가가 인수하도록 한 것이다. 결국 이재용 전무의 재테크는 구조본 도움을 받아 불법으로 이뤄진 셈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삼성 구조본의 이런 행위를 ‘이재용씨로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부의 증식을 위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배임 사건’으로 보았다.

ⓒ연합뉴스허태학(오른쪽)박노빈(왼쪽) 전·현직 삼성에버랜드 사장은 2006년 구속 기소되었고, 2심에서도 배임 혐의가 인정되었다.

그래서 지난 3월25일 핵심 관련자인 이건희 회장, 이학수 부회장, 김인주 사장, 최광해 사장 등 4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재용 전무는 일련의 ‘재테크’를 통해 재산만 증식한 것이 아니다. 에버랜드의 최대 주주가 되면서 삼성그룹의 지배권까지 확보했다. 삼성그룹은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출자구조와 각 계열사의 상호순환출자를 통해 그룹 전체의 지배권을 갖게 된다. 따라서 에버랜드의 최대 주주인 이재용 전무는 자연스럽게 삼성그룹의 지배권을 확보하게 되었다(도표 참조). 삼성그룹은 지배권을 강화하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무리수를 두었다. 삼성그룹은 금융 계열사와 비금융 계열사가 얽히는 복잡한 출자구조로 인해 금산분리와 관련한 금융지주회사법이나 금산법 등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금산분리란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적·제도적 장치다.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로 이용되는 것을 막고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정책이다. 그런데 삼성은 복잡한 출자구조로 인해 금산분리와 숙적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정부, 삼성의 위법 알면서도 도와

에버랜드는 삼성생명의 지분을 19.3% 보유한 최대 주주다. 문제는 에버랜드의 삼성생명 지분 평가액이 에버랜드 총자산의 50%를 넘으면서(2003년 말 재무제표상 기준) 삼성에버랜드가 금융지주회사 규정의 적용을 받게 된 것이다. 현재 규정상 총자산 가운데 금융 자회사 지분의 비중이 50%를 넘으면 금융지주회사로 분류돼 비금융회사 지분은 모두 처분해야 한다. 그러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를 비롯한 비금융 계열사 지분을 모두 처분해야 한다. 금융계열사와 비금융계열사 간 복잡한 출자 관계를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이건희 회장 일가의 경영권 유지 및 승계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삼성은 정부와 입법 관계자에게 광범위한 로비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사왔다. 실제로 정부는 삼성의 위법 사례를 알면서도 제재 조처를 취하기는커녕 오히려 삼성그룹의 요구대로 관련 법을 손질하거나 예외 조항을 신설하곤 했다(표 참조). 2004년 4월 금감위는 삼성에버랜드가 금융지주회사 요건에 해당한다는 것을 인정하고서도, 검찰 고발을 포함한 어떤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삼성에버랜드의 금융지주회사 규정 적용 논란이 일자 정부는 아예 금융지주회사법을 개정하여 삼성에버랜드 등 위법 상태에 있는 기업에 대해 처벌을 면제하는 조항을 신설하기까지 했다.

삼성그룹은 1997년에 제정된 금융산업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24조도 위반해왔다. 금융계열사가 비(非)금융계열사 주식을 5% 이상 보유하는 경우 금융감독위원회 승인을 받도록 규정했지만, 삼성그룹은 지키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는 이에 대해서도 제재를 취하지 않다가 2006년 말에는 삼성그룹에 유리한 방향으로 법률을 개정했다. 초과 보유 지분의 의결권만 제한하고, 5년 이내에 자발적으로 처분하게 한 것이다.

금융계열사의 계열사 의결권 행사를 금지한 공정거래법 11조 때문에 삼성그룹이 주주총회에서 경영권을 행사하는 데 제약을 받자, 정부는 2001년 말 경영권 변동 관련 주총 사안에 대해서는 30%의 내부지분율까지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노무현 후보는 금융 계열사 의결권 행사를 전면 금지하겠다고 공약했으나, 참여정부 수립 뒤 금융 계열사의 의결권 행사 허용 범위를 30%에서 15%로 단계적 축소로 후퇴했다. 그러나 삼성그룹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2005년 6월28일 공정거래법 11조에 대해 위헌심판소송을 제기했다.

보험업법도 삼성에 유리하게 개정?

삼성그룹은 보험법과도 적잖이 충돌했는데, 보험업법 역시 삼성그룹에 유리한 방향으로 개정되는 추세다. 재벌 소속 금융기관의 시장점유율이 급속히 높아지자 1999년 정부는 보험사와 투신사의 자기 계열사에 대한 주식투자 한도를 축소했다. 이 조처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그룹은 삼성이었다. 그러나 겨우 2년 만에 정부는 증시 활성화를 명분으로 보험사와 투신사의 자기 계열 주식투자 한도를 모두 원상 복귀시켰다.

 
삼성그룹은 에버랜드의 금융지주회사 적용을 피하기 위해 보험업법상 보험지주회사 제도를 활용할 수도 있다. 2007년 하반기 들어 정부는 보험업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우연인지, 보험지주회사의 자회사 소유규제 완화 등을 골자로 한 정부의 보험업법 개편 방안은 삼성그룹으로 하여금 현재의 소유 지배구조를 유지한 채 은행업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듯하다. 

이번 특검 조사에서는 삼성에버랜드가 금융지주회사 논란을 피해 그룹 지배권을 유지할 수 있는 또 다른 길을 보여주었다. 특검 조사 결과, 삼성생명 전·현직 임원 11명 이름으로 된 삼성생명 주식 16.2%가 이건희 회장 소유의 차명 계좌임이 드러났다. 이 주식이 이건희 회장 이름으로 실명 전환된다면 삼성생명의 최대 주주는 삼성에버랜드가 아닌 이건희 회장(20.74%)이 된다. 그러면 삼성에버랜드는 금융지주회사법의 적용을 받지 않게 된다.

새 정부의 기조를 들여다봐도 삼성그룹은 금산분리와 관련해 그룹 지배권을 제재당할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 금산분리 규제가 새로 도입되거나 강화되면 이건희 회장 일가의 그룹 지배권에 장애가 되겠지만, 이명박 정부는 금산분리를 완화하겠다는 방침이다. 금산분리가 완화되면 삼성그룹은 현재의 소유 지배구조를 그대로 둔 채 이건희 회장 일가의 지배권을 유지·승계할 수 있는 길을 열 가능성이 높다. 만약 금산법 24조마저 완화된다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현재의 7.21%에서 15%까지 늘릴 수도 있다.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은 “현행 금산분리 제도 아래서도 삼성그룹은 금융 계열사를 동원해 불법행위를 저질러왔다. 그런데 금산분리 규제가 대폭 완화된다면, 이건희 회장 일가에게 그룹 지배권과 함께 금융 계열사 자산을 사적으로 유용할 기회까지 선물로 주는 것이다. 그만큼 금융투자자의 이익과 금융 산업의 건전성은 희생되고 말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검토 중인 ‘비은행 금융지주회사 제도’ 역시 삼성 그룹 처지에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하다. 금융위가 가닥을 잡은 대로 비은행 금융지주회사 제도가 도입되면 삼성그룹은 현재의 출자구조를 그대로 유지한 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승계구도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개혁연대는 ‘금융위원회가 비은행 지주회사 제도 도입을 추진하는 배경에는 결국 삼성그룹이 기존의 규제를 회피하면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 개입된 것이 아닌지 강한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는 논평을 내기도 했다.

특검 고비만 넘기면, 삼성그룹은 경영권을 세습하고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더 이상 불법과 탈법을 넘나들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기자명 안은주 기자 다른기사 보기 anj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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