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잠든 아이들을 흔들어 깨우는 것으로 카렌(셜리 헨더슨)의 주말은 시작된다. 재빨리 두 딸을 옆집에 맡겨놓고, 그보다 더 재빠른 걸음으로 두 아들과 함께 기차역에 간다. 기차에서 기차로, 버스에서 택시로, 갈아타고 갈아타고 또 갈아타서 ‘이제 다 갈아탔겠지’ 하고 아이들이 마음 놓을 찰나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갈아타고 나서야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다. 교도소. 카렌의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빠가 수감된 곳.

이안(존 심)은 주말마다 먼 길 달려 찾아오는 아내와 아이들 보는 낙에 산다. 볼 때마다 고맙고 대견하고 사랑스럽고 뭐 그렇지만, 그래도 역시 미안한 마음이 제일 크다. 5년이나 남았기 때문이다. 주말마다 아이들이 새벽 5시에 눈을 떠야 하는 이 생활이 앞으로 5년. 기차에서 기차로, 버스에서 택시로, 갈아타고 갈아타고 또 갈아타는 강행군도 앞으로 5년. 아빠 없이 어린 아이 넷을 돌보는 고난의 일상이 앞으로도 무려 5년 동안 반복될 것이다.

실제 4남매 아이들 캐스팅

그래서 관객 역시 이안처럼 한숨짓고 카렌처럼 근심하게 되는 첫 번째 면회. 이 낭패롭기 짝이 없는 오프닝을 시작으로 영화 〈에브리데이〉는 한 가족의 5년 세월을 담아낸다. 자꾸 말이 많아지는 막내와 자꾸 말수가 줄어드는 둘째, 작은아이의 호기심이 커가는 동안 큰아이의 반항심도 딱 그만큼 커지는 5년을 세밀화로 그려낸다. 이걸 그냥 그려내는 게 아니라 제대로(!) 그려내기 위해서 감독은 배우와 스태프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누군가는 말렸을 것이다. 누군가는 코웃음 쳤을 것이고 누군가는 화를 냈을지도 모른다. 영화 한 편을 5년 동안 찍겠다니. 영화에서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찍기 위해 5년 동안 실제 아역 배우들이 커가는 모습을 찍겠다니.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가 농담하는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진지한 감독의 표정을 보며 그제야 배우도 스태프도 일순 진지해졌을 것이다.

연기 한번 해본 적 없는 실제 4남매 꼬마들을 캐스팅하고, 그 4남매가 실제 사는 집과 그 4남매가 실제 다니는 학교에서 영화를 찍는 동안, 아이들은 실제로 다섯 살을 더 먹었다. 주말마다 하루 짬을 내 아빠 만나러 가는 영화 속 아이들처럼, 배우와 스태프가 1년마다 몇 주 짬을 내 감독을 만나러 갔다. 홈비디오 찍듯이 영화를 찍었다. 아니, 영화를 찍는 척, 실은 정말 홈비디오를 찍은 건지도 모른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손으로 물을 떠 올리는 행위와 같아서 떠 올린 물에 조금이나마 진실이 담겨 있기를 바라며 그린다.” 일본 만화가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말을 이렇게 바꿔본다. “영화를 만드는 일도 손으로 물을 떠 올리는 행위와 같아서 떠 올린 물에 조금이나마 진실이 담겨 있기를 바라며 찍는다.”

〈인 디스 월드〉(2002)로 베를린 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한 감독 마이클 윈터바텀의 왼손 위에, 〈피아노〉(1993)의 음악으로 유명한 영화음악가 마이클 니먼의 오른손을 포개어 오롯이 5년의 시간을 떠 올린 영화. 인고의 연출과 근사한 음악에 담아 떠 올린 그들의 ‘에브리데이’에는 조금이나마 세상의 진실이 담겨 있다. 아빠 없는 집이, 남편 없는 침대가 영 낯설기만 했던 가족. 하지만 어느새 아빠 없는 집이, 남편 없는 침대가 오히려 더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버리고 마는 곤란한 순간을 포착했다. 우리의 ‘매일’은 그렇게 늘 힘에 부쳐 쉬이 흔들리고 마는 법이니.

그렇다면 나의 매일은? 나의 내일은? 나의 감옥은? 그리고 나의 바다는? 〈에브리데이〉가 두 손으로 떠 올린 한 가족의 5년 위에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들이 둥둥, 흩어진 장미 꽃잎처럼 떠 있었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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