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한국 최초 여군 헬기 조종사인 피우진 예비역 중령(위)은 군 인사법 개정을 요구하며 싸워왔다.
피우진 예비역 중령은 그야말로 ‘실존’의 고민을 거듭했다. 민주노동당 탈당파가 주도하는 진보신당의 비례대표로 이번 총선에 출마해달라는 요청 때문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의 바람은 군으로 돌아가 명예롭게 전역하는 것이었다. 단지 암 투병을 한 병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27년을 근무한 직장에서 쫓겨난 것도 원통한 일이지만, 명예를 먹고사는 장교가 전역식도 못한 채 내쳐지는 것이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웠다. 

피우진 중령의 문제 제기로 군 인사법이 개정돼 암 발병만으로 강제 전역당하는 군인은 더 이상 없다. 그의 용기 있는 문제 제기가 제2, 제3의 희생자가 생기는 일을 막았지만 정작 본인은 군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국방부의 전역 조처가 합당한 일인가를 따지는 재판에서도 피우진 중령이 승소했지만, 국방부는 그의 복직을 거부했다. 길고 지루한 법정 투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국방부가 더 잘 알고 있듯 이번 사건의 승자는 피우진 중령이 될 것이다. 단지 시간 문제일 뿐이다.

그토록 원하던 복직이 눈앞에 와 있는 상황에서 총선 출마 요청은 곤혹스러웠다. 무엇보다 이제 막 출범한 진보신당의 요청이기에 고민은 더욱 깊었다. 비례대표로 출마한다고 해서 국회의원 자리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진보신당이야 당의 외연을 넓혀서 좋을지 모르지만, 피 중령으로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바보 같은 결정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피우진 중령은 현실적인 셈법보다 원칙을 택했다. 진보신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나서기로 했다. 진보신당으로서는 여성·군인·인권 등 다양한 상징성을 두루 갖춘 피 중령을 영입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눈에 띄는 개가를 올렸다. 피 중령의 진보신당 참여는 결국 진보의 지평을 크게 넓힐 것이다. 진보의 가치라는 게 기껏해야 ‘운동권  언저리’에 몸담았던 경력이 얼마나 되느냐 정도로 평가되곤 하던 악습을 바꾸는 데도 일조하리라 본다.

김장수 전 국방부 장관과 한판 대결 기대

그럼 피우진 중령이 얻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필자가 보기에는 별로 없다. 단지 신생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 3번으로서 당선 여부가 불확실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일단 정치인을 곱게 보지 않는 한국 풍토가 그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군으로 돌아가고 싶다더니, 피 중령도 정치판에 한발 담갔다는 식의 비난이 쏟아질지도 모른다. 오랜 군 개혁 투쟁으로 쌓아온 좋은 이미지를 한순간에 잃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피우진 중령은 그런 염려를 개의치 않기로 했다. 그는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가 자기만의 것이 아니라고 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곳에 쓰일 수 있다면 기꺼이 자신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그것이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느꼈던 ‘부채감’을 덜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말도 했다.

피우진 중령은 상명하복만이 존재하는 군에서상관의 부당한 지시에 저항하고, 부하들 처지에 서서 문제를 해결해왔던 사람이다. 피 중령이 지금껏 해왔던 대로 원칙을 지키고, 사람을 귀하게 여긴다면 그의 선택은 빛을 발할 것이다. 그가 보여주는 리더십은 아마도 기성 정치인의 그것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마침 한나라당은 김장수 전 국방부 장관을 비례대표 후보로 내놓기로 했다. 법원 결정을 무시하고 피 중령의 복직을 거부한 장관과 그 피해자 간의 한판 대결이 펼쳐진 것이다. 피우진 중령 덕분에 ‘신생’ 진보정당은 최소한 국방정책에서는 거대 여당과 맞대결을 벌이게 되었다. 관전하는 처지에서도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기자명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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