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3월18일 경기도 시흥시 군자천 주변에서 실종된 우예슬양의 시신 일부를 경찰 관계자가 수습하고 있다.
온 국민의 기원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실종된 두 여자아이는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제주도 사건과 마찬가지로 범인은 이웃이었고, 초동수사에서 많은 것을 놓쳤으며, 간신히 범인을 잡았다. 모든 비난의 화살은 경찰에게 돌아갔고, 경찰은 또다시 ‘잘 하겠다’는 예전의 약속만 되풀이했다. 과연 우리 실종 시스템에 무슨 문제가 있기에 자꾸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전문인력과 시스템의 부재 : 요즘 유행하는 미국 드라마를 보면, 실종 사건 전문가가 손쉽게 실종자를 찾아내는 모습이 나온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실종 사건 전문가가 있을까? 전문가로 불리는 분이 몇 명 있지만, 실종 전담반이 따로 없어 일선 경찰서에 배치되어 업무를 본다. 실종 사건이 발생해도 서로 다른 서를 관할하는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이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수사 인력이 아닌 여성청소년과가 실종 사건을 전담하는 현재 시스템에서는 초동수사가 늘 허술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부터 시행되는 ‘실종아동 앰버 경보(Amber Alert) 시스템’도 비판의 대상이다. 이 시스템은 실종 아동이 발생했을 때 고속도로 전광판이나 각종 방송, 지하철 TV 등에 실종자나 용의자의 인상착의, 사진을 게재해 최대한 빨리 실종자를 찾도록 고안된 것이다. 2004년 미국 전역으로 확대된 이 시스템은 2500만 달러(약 250억원)의 엄청난 예산을 지원받아 100%에 가까운 실종자 찾기와 범인 검거 실적을 자랑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예산은 확보하지 못한 채 시스템만 서둘러 받아들이는 통에 지상파 방송 등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지 못하고 매뉴얼 구축도 더디는 등 큰 효과가 없다.

보건복지부와 경찰청 주도권 잡기 경쟁 : 우리나라에는 2005년 5월 제정된 ‘실종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서 실종 아동 찾기의 주무 관청이 보건복지가족부로 지정되어 있다. 대부분 경찰청이 담당한다고 알지만, 법률상으로는 아니다.

‘실종 아동 전문기관’은 보건복지가족부가 민간 복지법인에 위탁해서 운영한다. 그런데 경찰청에는 실종 아동 찾기센터(182센터)라는 곳이 있다. 이 기관은 실제로 실종자를 신고받고 찾도록 지시하는 일을 한다.

법률에 따르면, 아이를 ‘찾는’ 일은 경찰청이 담당하고, 아이를 찾기 위한 총괄적인 일과 자료 구축, 실종 가족 지원 등은 복지부 몫이다. 덕분에 각종 실종 아동 찾기 포스터에는 신고 전화번호가 둘로 나뉘어 적혀 있다.

과연 이 두 기관의 업무 협조는 원활할까? 여태까지 실종자 관련 단체와 실종자 가족을 여럿 면담해보았지만, 한결같은 반응은 ‘두 기관이 서로 싸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법률 제정 이전에 주도권을 가졌던 경찰청에는 수많은 자료가 쌓여 있고 지금도 신고받는 즉시 늘어난다. 하지만 자료를 관리하는 임무가 복지부에 있다 보니 이 자료가 100% 공유되지 않는다. 두 기관의 홈페이지만 접속해봐도 상황을 손쉽게 알 수 있다. 기본 데이터 수치도 다르거니와 사진 상태 등도 차이가 난다. 나아가 실종 아동 배너나 동영상을 배포하는 시스템을 살펴보면, 정보 제공자가 경찰청인 것도 있고, 복지부의 위탁기관인 것도 있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실종 아동 앰버 경고 시스템’(위)
장기 실종자 위한 ‘나이 변환 기술’ 따로따로 : 세계적인 미국의 실종자 단체 NCMEC(National Center for Missing & Exploited Children)에서는 오래된 실종자의 경우 현재 모습을 추정한 가상의 사진도 같이 제공한다. ‘나이 변환 기술’이라 불리는 이 기법은, 현재 모습을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통해 재현하기 때문에 매우 효과적이다.

우리나라 경찰청과 보건복지가족부도 나이 변환 기술을 적용한 사진을 같이 배포한다. 문제는 두 기관이 사용하는 나이 전환 기법이 다르다는 점이다. 경찰청은 자체 기술인 컴퓨터 몽타주 기법에 따라서 작업한다. 이에 반해 보건복지가족부가 사용하는 NCMEC의 기술은 포토샵을 이용한 것이다. 실종자의 옛날 사진, 가족 사진, 해부학 지식, 얼굴 변환에 대한 수많은 데이터가 함께 적용되어야 하며 수작업에 의존하므로 많은 연습과 경험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보건복지가족부 위탁기관에서는 미국에 직접 가서 1주일씩 교육을 받아왔으며, 올해부터는 그 기술을 전파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렇지만 경찰청에는 아직 이 기술이 전달되지 않은 상태다. 장기 실종자를 찾는 데 결정적인 나이 변환 기술도 두 기관이 따로따로 개발하는 셈이다.

이번 안양 초등생 사건의 경우 경찰에서 앰버 경고(실종 경고)를 발령했는데도 보건복지가족부 위탁 실종 아동 기관의 홈페이지에는 며칠이 지나서야 실종자 데이터가 게재되었다. 경찰청과 보건복지가족부는 현재 서로 전혀 ‘소통하지 않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실종은 잠재적인 내 문제 : 실종자 가족은 한결같이 말한다. “내가 이런 일을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느 날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아이. 어린이집 소풍을 갔다가 사라진 아이. 갑자기 행방불명된 아버지…. 실종은 ‘미래의 내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남의 일이 아니다.

십수년째 실종자 찾기에 매진하는 ‘전국 미아?실종 가족찾기 시민의 모임’ 나주봉 회장은 현재의 문제점을 이렇게 말한다. “실종이라고 하면 어린이 실종만 생각하지만, 성인 실종도 많이 발생한다. 따라서 어른 아이 가릴 것 없는 종합적인 실종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당장 실종수사청을 신설해서 전문가를 한곳에 모으고 육성해야 한다. 요즘 영화가 너무 잔인해서 그런지 그것을 모방하는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도 뭔가 대책이 있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종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도록 국가가 대국민 홍보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다.”

실종 어린이 찾기 포스터.
이름 밝히기를 싫어하는 한 실종자 가족은 ‘실종’으로 인해 또 다른 ‘실종’을 겪고 있다고 했다. 남은 가족의 삶이 황폐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잃어버리지 않은 아이마저도 그동안의 소홀함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가족 한 사람의 실종이 가족 전체를 해체하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통일된 전문기관 설립 절실 : 실종자 부모들은 왜 실종자를 찾지 못하는지 잘 안다. 심지어 어떻게 하면 찾으리라는 해법을 논문 수준으로 정리한 분도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두 기관 어디에서도 귀담아듣지 않는다.

심지어 실종 아동 배너를 효과적으로 개선해달라는 구체적인 요청에도 복지부동이다. 쉽게 실적을 낼 수 있는 일에만 예산을 집중하는 모습에 분통이 터진다는 소리도 들린다. 장기 실종자의 경우, 누군가에 의해서 입적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최소 10년 동안 입적된 사람을 포함해서 검색하게 해달라는 기초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DNA 검사로 손쉽게 혈육을 찾을 수 있는 법적 근거까지 마련하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있다. 실종자 부모의 DNA 채취가 홍보 부족으로 더디게 진행된다는 소리도 나온다.

실종자 가족의 애타는 절규가 국회에 전달되는 데 십수 년이 걸렸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법률이 또다시 ‘알력 다툼’ 탓에 실종자 가족의 가슴를 태운다. 하루빨리 하나의 독립 기관을 설립하고 모든 역량을 한곳에 집중해서 실종자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고, 소 잃기 전에 외양간을 점검해야 한다.

기자명 정광현 ('미디어 한글로' 블로그 운영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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