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공된 지 2년이 지난 제주 돌집은 내게 특별한 집이다. 계획해서 완공한 첫 집이기도 하고, 건축주가 한국에 거주하지 않아서 대지 선정과 계획·시공, 완공 후 관리와 사용까지, 건축가 역할뿐 아니라 건축주 노릇도 겸한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제주 돌집의 건축주는 미국에 사는 내 고모와 고모부다. 은퇴를 몇 년 앞두고 한국에 은퇴 후 거주할 집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고모네는 20년 전 신혼 여행지였던 제주도에 터를 찾아 설계를 해달라고 의뢰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인인 고모부가 아내의 고국에 무언가를 남기고 싶은 뜻도 담겼다.

두 분의 요구 사항은 무척 간단했다. 제주의 토속 재료를 쓸 것, 가족이 모여 앉을 벽난로가 있을 것, 전망을 보며 둘러앉을 자리를 둘 것. 그리고 대지 매입비용과 건축 예산을 최선을 다해 경제적으로 운용해줄 것. 그 외에는 내게 모든 것을 일임했다. 처음에는 마냥 좋았다. 요구 사항이 간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을 설계하고 완공하는 사이 수많은 자아분열을 거듭해야 했다.

제주 돌집은 일상의 집이 아니라, 세컨드 홈이다. 우리가 집에 무겁게 지우고 있는 일터나 아이들 학교와의 근접성, 관리가 필요 없는 편리성, 그리고 재산으로서의 교환가치 등등을 비워냈다. 잠을 깨서 멍하니 있고 밥을 먹고 잠이 드는 일상의 순간순간에 영향을 주고받는 거주공간은 어떤 것일까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탐구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내 자신의 일상공간에 대해 더 예민한 관찰을 하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툇마루, 돌집의 가장 극적인 공간

집짓기의 시작은 땅을 고르는 것이다.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여러 곳을 돌아다닌 끝에 현무암 위로 자라난 소나무가 인상적인 현재의 대지를 찾았다. 귤나무와 잡목을 헤치고 대지 끝단에 이르니 인접한 땅과 5∼6m 차이의 경사로 사이로 시야가 열리며 발아래로 넓은 귤 밭과 멀리 한라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풍경이 일품이었다. 건축주에게는 위치 정보 외에 큰 도로에서 필지로 진입하는 길의 풍경, 필지와 주변 땅의 모양·식생·향을 설명하는 사진과 지도 자료를 첨부해 상세히 설명했다. 건축주는 울퉁불퉁 솟은 현무암 지형과 소나무·귤나무에 반했고, 최대한 기존 식생을 그대로 지켜주기를 요청했다.

도시에 지어지는 집과 달리, 자연 속에 집터를 골라 지을 수 있는 대지에서는 어디에 어떻게 집을 앉힐 것인가가 중요하다. 이 작업이 좋은 집 계획의 반 이상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약 1160㎡(350평)의 필지 안에서 가장 역동적인 지형의 변화가 생기는 대지의 동쪽 끝, 인접 대지와의 경사가 가파른 언덕에 약 100㎡(30평)짜리 집을 앉히면서, 땅의 모양을 최대한 그대로 두기 위해 필로티(건물을 받치는 기둥)로 집을 띄웠다. L자형의 끝이 동쪽으로 힘차게 뻗어나가 공중에 떠 있는 끝은, 이 집의 가장 극적인 공간이 되었다. 전망을 보며 둘러앉을 수 있게 해달라는 건축주의 요청은 이곳에 35㎝ 높이의 마루로 현실화되었고, 그 마루는 외부 테라스까지 이어져 깊은 처마 밑의 툇마루 노릇을 해 궂은 날에도 나가 앉을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 되었다.

멋진 풍광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창을 어디로 어떻게 낼 것인지도 무척 중요하다. 의자에 앉거나, 서거나, 바닥에 앉아서, 혹은 움직이며 창에서 보게 될 아침과 저녁, 봄으로부터 겨울의 빛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며 각각의 창을 구상했다. 나는 에너지 절감을 위해 주택 창의 크기는 작아야 한다는 일반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복을 한 겹 더 입더라도 사계절마다 다른 빛을 들이는 한 개의 창이 물들이는 일상의 풍부함은 욕심 낼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물론 창이 아름다우려면, 벽과 균형을 이뤄야 하고, 빛이 드는 양지만큼, 빛을 바라보고 앉을 음지도 중요하다.

제주의 토속적인 재료를 써달라는 건축주의 요청대로 집의 전면은 현무암 자연석을 쌓아 마감했고, 제주에서 흔한 방풍림인 삼나무를 내부 마감재와 가구의 재료로 사용한 것은 그 향기 때문에 집을 사용하는 내내 큰 만족감을 주기 위해서다. 건물이 완공된 후에도, 제재소에서 삼나무를 사서 몇 달을 말려 아일랜드 식탁을 제작했고, 침실과 거실의 가구를 차례로 디자인해 서귀포의 목수에게 맡겨 제작을 완료하기까지 1년이 더 걸렸다.

누구나 한번쯤 자신을 닮은 집을 짓고 싶다고 꿈꾼다. 좋은 디자인은 정답이 없다. 건축주와 건축가가 함께 그 그림을 드러내고 구체화하는 과정이다. 완공되고 나서야 집을 처음 본 건축주들은 맡겨 두기만 해서 미안하다 하시면서도 무척 만족해했지만, 오히려 나는 제주 돌집이 건축주보다 나를 닮은 집이 되어 있는 듯해서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후로 건축주는 ‘흰 벽이 너무 모던하다’며 따뜻한 장식을 하고, 창이 많아 무서울 때가 있다며 반투명 필름을 붙이고 블라인드를 달았다. 그렇게 집은 또 살아가는 사람을 닮아가고 변하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그것을 허용할 수 있는 넉넉함이 있어야 한다. 집짓기는 ‘집’이라는 완성품을 얻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과 가족의 정체성을 꿈꾸고 실현할 수 있는, 삶을 짓는 여정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기자명 조재원 (도시건축연구소 0_1스튜디오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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