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시사IN 백승기 사진 합성:시사IN 이정현
‘손이 가요, 손이 가, 새우깡에 손이 가요~’
새우깡 CM송을 기억하는가. 과자 코너에만 가면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새우깡을 집어 들곤 했을 것이다. 식품첨가물, 트랜스 지방 등 과자의 해악을 알리는 그 어떤 복병이 튀어나와도 잠시 주춤거리기만 할 뿐 과자의 제왕 자리를 내주지 않던 ‘국민 과자’ 새우깡이었다. 그러나 요즘 새우깡과 농심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어휴, 징그러워. 이제 새우깡은 못 먹겠다. 새우깡이 아니라 생쥐깡이네.”
‘노래방용 새우깡’에서 생쥐 머리로 추정되는 이물질이 나왔다는 보도를 보자마자, 초등학교 5학년짜리 딸아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다.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은 딸아이뿐만 아니다. 새우깡 사건에 분노한 네티즌은 새우깡을 ‘생쥐깡’이라고 비아냥거리며 ‘온라인 시위’를 벌였다. 새우깡 CM송은 ‘손이 가요 손이 가 생쥐깡에 손이~’로 바뀌어 불리기 시작했고, 새우깡을 패러디한 생쥐깡 합성 게시물이 잇따라 만들어졌다. 네티즌은 비난을 퍼부으며 불매운동까지 벌였다. ‘쌀 새우깡’에서도 흰색 이물질이 검출됐다는 소식까지 이어지면서 소비자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일부 대형 유통회사는 사건의 발단이 된 노래방 새우깡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새우깡을 매장에서 뺐다. 훼미리마트는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 농심의 다른 스낵 제품까지 받지 않기로 했다. 파장은 국내에서 그치지 않았다. ‘생쥐깡 파동’이 외신 보도로 알려지면서 미국의 슈퍼마켓 매장에서도 농심 새우깡을 치우기 시작했고, 싱가포르에서는 보건당국이 새우깡을 리콜 명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세계 70여 나라에서 라면과 스낵류를 판매하는 농심은 국내외 시장에서 다른 제품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다른 이물질도 아닌 생쥐 머리라는 점이 충격적이었지만, 파장이 이렇게까지 커진 데는 농심 측의 안일하고 불투명한 대응이 큰 몫을 했다는 게 중론이다. 농심은 한 달 전에 노래방 새우깡에서 생쥐 머리로 추정되는 이물질이 발견됐다는 소비자 신고를 받고도 사건을 덮는 데만 급급했다. 소비자로부터 이물질을 수거해 분석한 뒤에도 원인을 명쾌하게 해명하기보다는 ‘탄화물 덩어리’라는 변명으로 소비자를 설득하려고만 했다.

이에 대해 농심 관계자는 “새우깡을 튀기는 내부 온도가 230~240℃인데 그 온도에서는 나올 수 없는 형태인 데다, 이물질을 분석해보니 새우깡 기름과 달라 결론을 유보해놓은 상태였다. 재빨리 별다른 조처를 취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라고 해명했다. 원인 규명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농심과 소비자는 몇 차례 승강이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제3자가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에 제보했다.

식약청은 제보를 받자마자 농심 부산공장과 내부 자료를 조사했고, 단 며칠 만에 ‘노래방 새우깡에서 생쥐 머리로 추정되는 이물질이 나왔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기업 이미지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사건인 만큼 좀더 긴 시간을 갖고 철저한 조사 끝에 발표할 사안이었다. 그러나 식약청은 부산공장과 농심 내부 자료만으로도 충분한 확신을 얻었다고 한다. 이 사건 조사를 맡았던 식약청 한권우 사무관은 “농심 측에서 자사 실수를 인정했고, 이물질 관리 리스트를 작성한 농심 내부 문건을 보니 이물질이 검출된 적이 상당히 많았다”라고 말했다.

지난 6개월간 벌레 검출만 38건

물론 식품업체 특성상 제아무리 만전을 기해도 이물질 사고를 원천 방지하기는 어렵다. 식약청 용역 연구사업으로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수행한 〈소비자 식품안전과 의식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6개월간 각 소비자 단체에 접수된 가공식품 안전위생 고발상담은 1980건에 달했다. 이 가운데 이물질이 1071건(54.09%)으로 가장 많았다.

이 조사 자료에 따르면, 가공식품에서 이물질이 가장 많이 검출된 회사가 농심이었다(표 참조). 농심에서 제조한 가공식품에서 총 58건의 이물질이 신고된 것으로 나타났다. 유통과 식음료 업계를 통틀어 가장 많은 수치였다. 제품 판매량이 많은 1위 업체인 탓도 있지만 이번 사고가 우연만은 아니었음을 뒷받침하는 자료다. 그런데도 농심은 식약청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뒤에야 사과문을 내고 제품을 리콜해 ‘늑장 대응’을 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문제의 새우깡이 국산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중국에서 반제품을 수입해와 국내에서 완제품으로 가공한 것이라는 사실도 소비자의 배신감을 더욱 키웠다.

새우깡 사건은 농심의 사운을 가르는 일대 사건이 되고 말았다. 지난해 농심 전체 매출(1조5000억여 원) 가운데 새우깡이 차지한 비중은 4%(600억원)대이다. 문제가 된 노래방 새우깡은 150억원으로 전체 매출 중 1%대에 불과하다. 노래방 새우깡 생산ㆍ판매를 중지함으로써 농심이 입을 직접 손실은 200억~250억원대로 추산된다. 문제는 리콜에 따른 직접 손실보다는 브랜드 이미지 타격으로 인한 유·무형의 손실이다. 1989년 삼양라면 우지 파동 때 이 회사는 굳건한 업계 1위였다. 그러나 이 파동으로 인해 삼양라면은 농심에 1위 자리를 내줘야 했고, 20년쯤 지난 지금까지도 정상 자리를 탈환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이경주 연구원은 “새우깡 사건은 식품회사로는 매우 치명적인 사건이다. 손해액을 정확하게 추산할 수는 없지만, 무엇보다 브랜드 이미지 손실이 크다”라고 말했다.

가뜩이나 농심은 매출이 4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보여 새로운 성장동력 없이는 더 이상 발전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농심 전체 매출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라면 매출이 부진한 데다 라면·스낵류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져 영업이익률도 갈수록 떨어지는 추세다.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기대했던 해외사업 부문마저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중국 법인의 경우 전년 대비 매출이 11.0% 증가했으나 위안화 절상과 물가상승을 고려하면 저조한 매출실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대신증권 리서치센터 이정기 연구원은 “농심으로서는 이번 사건이 엎친 데 덮친 격이 아닐 수 없다. 대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명운이 갈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생쥐깡 파동’이 일자마자 유통업체들은 매장에서 새우깡을 철수시켰다.
사면초가에 빠진 농심을 지원해줄 ‘우군’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식품업계 1위 업체였던 농심은 식품·유통 업계 안팎에서 ‘콧대가 높다’는 비난을 사곤 했다. 독점 상품이나 다름없는 ‘신라면’과 ‘새우깡’ 등을 믿고 경쟁사나 유통업체에 오만하게 굴었다는 것이다.

한 유통회사 영업담당 직원은 “새우깡 사태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안타깝지만 쌤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동안 농심 측과 거래하면서 적잖이 당했기 때문이다. 그는 “신상품이 나오면 가장 먼저 유통회사에 알려주고 영업 협의를 하는 것이 순서인데, 농심은 광고부터 내보낸다. 각종 행사나 기획 상품전을 할 때도 농심은 거의 응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사건 초기부터 유통회사에서 새우깡 제품 전부를 철수하고, 다른 스낵류 주문까지 중단시킨 데에는 농심에 대한 유통회사의 울분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존슨앤드존슨

무엇보다 가장 든든한 우군이었던 소비자의 마음이 문제다. 수입 쇠고기를 국산으로 둔갑시켰던 일본 최대 유가공업체도 소비자의 신뢰를 잃어 파산한 바 있다. 농심은 뒤늦게나마 사과문을 발표하고, 소비자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소비자의 반응은 냉담하다. 전문가들은 농심이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눈앞의 매출 타격에 급급해할 것이 아니라 더욱 적극적인 태도로 소비자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조언한다.

이정기 연구원은 “1982년 미국의 존슨앤드존슨 회사는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으로 위기를 맞았지만, 적극적인 대응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자기들 책임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고경영자까지 나서서 사과하고 문제 제품을 회수하는 등 신뢰 회복에 주력해 사건 직후 절반으로 뚝 떨어졌던 매출액을 3년 뒤부터 회복시켰다. 농심도 소비자에게 신뢰를 심어줄 수 있는 좀더 구체적인 대책을 다양하게 내놓아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생쥐깡’으로 위기에 몰린 농심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기자명 안은주 기자 다른기사 보기 anj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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