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 22사단 철책에서 발생한 북한군 ‘노크 귀순’ 사건으로 비난 여론이 거세자 군은 책임을 통감한다며 장성 5명 등 모두 14명을 문책했다. 그래도 국민의 분노가 사그라지지 않자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조만간 휴전선에 GOP(일반 전방초소) 경계 과학화 장비를 도입하겠다”라고 밝혔다. 이 사업은 155마일에 걸친 남방한계선의 철조망 경계를 과학적인 감시 장비로 대체하겠다는 주요 국방 사업이다.

육군은 지난 1년여 동안 전방 12사단에서 GOP 과학화 경계 시범사업 참여업체 2곳(삼성 에스원 컨소시엄과 SK C&C 컨소시엄)의 장비를 상대로 시험평가를 실시했다. 그 결과 두 곳 모두 잦은 오작동과 침투 취약점으로 성능 기준(ROC)을 충족하지 못해 사실상 탈락될 위기에 처해 있다. 특히 성능 시험평가 과정에서 “방사청과 육군시험평가단이 삼성에 편향된 평가 방식을 쓰고 있다”라며 불만을 품은 경쟁 업체가 한때 평가를 거부하는 등 이 사업 추진의 공정성을 둘러싸고 적잖은 잡음도 일었다. 〈시사IN〉은 이 과정에서 드러난 시험평가 방식의 문제점과, 군과 삼성의 인사교류 커넥션 등을 고발 보도(제249호 커버스토리 참조)하고 투명한 시험을 촉구한 바 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육군시험평가단은 최근 두 업체 모두 ‘성능 부적합 판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우리 입으로 공개할 수는 없지만, 육군이 국회 국방위원들이 요구한 국정감사 자료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GOP 시범사업 장비의 성능 미달이 확인된 꼴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장비의 전투 적합성 여부를 최종 판단하는 곳은 방사청이므로 10월 말까지는 (그런 육군시험평가단의 판정 결과 등을 감안해) 결과를 내놓을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이런 실정인데도 김관진 장관은 마치 시행업체가 이미 선정되어 곧 이 장비들이 휴전선에 깔릴 것처럼 대국민 약속을 한 격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은 “장관이 사과문에서 ‘조만간 도입하겠다’고 한 것은 예하기관에서 돌아가는 사정을 잘 모른 채 경계태세 강화에 대한 굳은 의지를 표현했다고 봐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군 안팎에서는 여전히 군 무기체계 도입의 최종 결정권자들이 사실상 삼성 에스원의 광 그물망을 밀어주기로 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익명을 요구한 방사청의 한 관계자는 “육군시험평가단이 에스원 광 그물망에 성능 미달 판정을 내렸지만 규정상 불합격 사유가 되는 ‘기준 미달’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으므로 ‘장비 성능을 개선한다’는 조건을 달아 통과시켜주자는 말이 나오고 있다”라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로 군 무기체계 획득부서의 한 관계자는 “기준 미달이 아닌 성능 미달은 불합격 사유가 될 수 없다”라고 말했다.


2008년 시범사업 때도 부실 드러나

2008년 실시된 전방 5사단 시범사업 때도 육군과 방사청은 삼성 에스원의 광망 제품을 무리하게 통과시켰다. ROC 규정을 충족하지 못하면 원칙적으로 탈락시켜야 마땅하지만, 당시 군은 ROC 규정까지 바꾸는 무리수를 동원해 삼성 제품을 조건부 합격시킨 것이다. 그 결과 5사단에 설치된 감지 장비는 잦은 오작동을 일으켰고, 악천후 및 겨울철에는 무용지물이 되는 감시카메라 문제까지 겹치면서 GOP 과학화 경계사업은 부실의 나락에 빠졌다는 지적을 받았다.

 부실 장비에 휴전선 경계를 맡기는 것은 제2, 제3의 노크 귀순을 방치하는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아무리 급해도 민간 전문가까지 참여한 공개 성능시험을 거쳐 GOP 감시 장비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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