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아이는 막대사탕을 받지 않았다. “이젠 괜찮아. 어서 ‘고맙습니다’ 하고 받아”라고 옆에 있던 마을 어른이 거들었다. 그래도 아이는 “싫어요! 한국 사람이잖아요!”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소리친다. 베트남 전쟁 민간인학살 위령비 옆에서 나무 막대기를 들고 놀던 이웃 마을 아이들도 한국인에게 적대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다 죽였어!”라고 큰 아이가 소리치자 작은 아이가 “왜 죽였어?”라고 물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파헤쳤던 구수정 박사가 올여름 베트남 꽝아이성 빈호아 마을에서 겪은 일이다. 이곳은 10여 년 전 구 박사가 직접 조사했던 곳이다. 당시는 조사를 위해 왔지만 이번에는 베트남 공정여행 참가자들과 함께 온 것이었다. 10년여의 세월이 지났지만 한국인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반감은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재갑 제공민간인학살 희생자 위령비를 가리키는 베트남 아이들(맨 위). 위령비에 헌화하는 구수정 박사(위 오른쪽).
마을에는 ‘한국군 증오비’가 서 있었다. 증오비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하늘에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 이 학살에서 희생된 자의 수가 총 430명이며, 그중 268명은 여성, 109명은 50세에서 80세까지 노인, 82명은 어린이, 7명은 임신부였다. 2명은 산 채로 불에 던져졌으며, 1명은 목이 잘렸고, 1명은 배가 갈라졌으며, 2명은 강간을 당했다. 2가구는 한 명도 남김없이 몰살당했다.”

10년 넘게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 활동을 하면서 구 박사는 다양한 압력과 협박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를 돕는 사람들과 단체도 나타나 피해 마을에 대한 지원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는 “이번에 다시 가보니 지원 활동을 한 곳과 안 한 곳이 확실하게 차이가 났다. 지원한 곳은 공정여행 방문자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여전히 반감을 드러냈다. 새롭게 증오비를 세운 곳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지원한 곳과 안 한 곳, 너무 달라

한국 정부의 사과와 지원은 김대중 정부 시절 가장 활발했다. 1998년 베트남 방문 당시 “양국 간의 불행했던 과거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라고 사과했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2년 한국을 방문한 베트남 국가원수에게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다시 사과했다. 피해 지역에 교실 580개를 지어주기도 했다.

한국-베트남 수교 20주년이 되는 시점에 민간인 학살 문제는 미래의 동반자 관계를 위해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다. 구 박사는 “한국 기업으로부터 막대한 투자를 받고 있는 베트남 정부의 경우 민간인 학살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미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가 5000여 명에 이른다는 1차 조사를 해놓은 상태다. 언젠가는 매듭을 지어야 할 문제다”라고 말했다.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한 미래지향적 해결 방식을 고민하던 구 박사는 2010년 사회적 기업 아맙(A-MAP)을 설립했다. 아맙은 민간인학살 피해 지역에 대한 공정여행을 진행하고 피해 지역에서 생산한 캐슈너트(cashew nut)를 구매해 한국에 판매하는 공정무역을 수행하고 있다. 여러 단체가 피해 지역을 방문하고 있고, 이미 5톤의 캐슈너트가 국내에 수입되었다.(홈페이지 http://cafe.daum.net/doanhnhanxahoi 연락처 070-7554-5670)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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