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기름 유출 사고로 삼성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싸늘한 가운데 이번에는 기자들에게 향응을 제공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위는 태안에 걸린 현수막.

소문이 사실로 드러났다. 지난해 12월7일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삼성중공업 크레인선과 유조선이 충돌해 최악의 기름 유출 사건이 터진 이후 태안 지역에는 비릿한 소문이 나돌았다. 소문의 핵심은 사건이 터지자마자 삼성중공업 홍보실 임직원이 태안에 상주하며 기자들에게 식사와 숙박 등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시사IN〉 취재진이 현장을 찾았을 때도 이미 소문은 파다했다. 삼성중공업 홍보실 직원과 기자들이 어울려 함께 밥을 먹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주민의 증언이 곳곳에서 나왔다.

하지만 당사자가 입을 열지 않는 이상 이는 뜬소문에 불과했다. 일부 언론이 이 문제를 취재했으나 ‘결정적’ 증언을 확보하지 못해 중도 포기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그런데 최근 한 일간지 기자가 〈시사IN〉 측에 ‘삼성으로부터 편의를 제공받았다’고 털어놓으면서 사건의 실체가 드러났다. 지난 2월28일, 기자와 만난 A 일간지 최 아무개 기자는 사건 경위를 상세히 이렇게 털어놓았다. (취재원의 신분 보호를 위해 언론사나 기자의 실명은 공개하지 않는다).   

 

“수십 만원짜리 스키복도 받았다”

“지난해 12월8일 낮 태안에 도착했다. 현장을 한 바퀴 돌고 해양경찰서 기자실에 갔더니 다른 언론사 기자들이 밥 먹으러 가자더라. 그 중 낯선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삼성 홍보실 직원이었다. 그는 밥값을 계산한 뒤, 터미널 인근 한 모텔의 열쇠를 주었다. 태안에 있던 2주일 동안 그런 식으로 식사와 숙박을 제공받았다.”

 

ⓒ시사IN 윤무영삼성 측이 기자들에게 숙박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태안 터미널 근처의 한 모텔(위).

 

다른 언론사 기자도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나.
“삼성 직원은 비닐봉지에 수십 개씩 모텔 열쇠를 넣고 다니며 기자들에게 나눠 줬다. 삼성 직원에게 다른 기자들도 다 이렇게 숙박을 제공받느냐고 물었더니 다이어리를 보여줬다. 거기에는 누가 어디서 자고 있는지 상황일지 같은 게 적혀 있었다. 그러면서 다른 언론도 제공받고 있으니까 걱정 말라고 했다.” 

식사 제공은 어떻게 받았나.
“주로 갔던 식당이 있다. 복어 요릿집이었는데, 복어매운탕이나 해물탕 따위를 먹었다. 바쁘고 경황이 없다 보니, 식사 정도는 다들 아무 거리낌없이 제공받는 분위기였다. 한 번은 삼성 직원이 잠깐 밖으로 나오라고 해서 갔더니 추운데 고생 많다며 유명 브랜드의 스키복을 하나 주더라. 수십 만원짜리였다. 그 직원의 자동차 트렁크에 열 벌 이상이 더 있었다. 다른 언론사 선배도 나중에 그 옷을 입은 걸 봤다.”

삼성 직원들의 일상생활은 어땠나.
“아침에 해경 기자실에 가면 항상 그들이 먼저 나와 있었다. 김밥·라면 등 간단한 먹을거리를 준비해 아침을 못 먹은 기자에게 나눠줬다. 내가 너무 고생하신다고 말을 건넸더니 ‘상부에서 높은 분들이 수시로 이곳 상황을 체크하기 때문에 우리도 편히 쉴 수가 없다’라며 힘들어하더라. 그 직원은 ‘내가 여기서 받은 기자 명함이 100장이 넘는다, 이게 다 내 자산이다’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태안에서 철수한 뒤에도 그 직원으로부터 안부전화가 온 적이 있다.”
 

ⓒ시사IN 윤무영삼성 직원과 기자들이 어울려 식사한 복어 요릿집(왼쪽).

삼성으로부터 향응을 제공받는다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낀 기자는 없었나.
“일부 기자는 나중에 여관 측에 따로 계산을 하기도 했다고 들었다. 방송 등 규모가 큰 언론사는 단체로 펜션 등을 잡아 숙박을 해결했기 때문에 삼성의 향응을 받을 일이 없었다.”

 


최 기자의 증언은 충격적이다. 그의 증언대로라면 삼성은 사건 초기부터 발 빠르게 돈과 선물을 통한 ‘언론관리’에 나섰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시점도 문제가 된다. 기름 유출 사건이 터진 건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삼성의 광범위한 로비 행태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지 겨우 한 달 남짓이었다. 그럼에도 삼성 측이 ‘자중’하지 못하고 또다시 기자들에게 향응을 제공하는 ‘구태’를 드러낸 건 여러 모로 지탄을 받을 만한 사안이다.  

최 기자의 증언 이후 〈시사IN〉은 당시 태안에 취재를 나갔던 몇몇 기자와 접촉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삼성으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은 점을 인정했다. 모텔과 식당 이름 등이 모두 최 기자의 증언과 일치했다. 최 기자의 증언대로 숙박비를 뒤늦게 지불한 기자도 있었다.

기자의 증언에 등장한 모텔이며 식당이며 현지 관계자의 증언도 일치했다. 관련 식당의 점원은 “삼성 직원들이 여러 사람과 어울려 식사를 했고, 식사비를 계산했다”라고 증언했다. 한 모텔 주인은 “숙박비 계산을 누가 했는지 말할 수 없다”라면서도 “기자들이 소문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라고 말했다.

이같은 삼성의 향응 제공을 ‘보도 통제’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향응을 제공받은 기자들은 “워낙 현지 상황이 열악해 삼성으로부터 취재 편의를 제공받았다고 생각했을 뿐, 보도에 반영하지는 않았다”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시사IN 윤무영기름 유출 사고 직후 삼성중공업 소속 임직원은 태안에 상주하며 현지 상황을 점검했다. 위는 태안군청 인근에 있는 삼성 전용 사무실 모습.

실제로 사고 당시 태안에는 수많은 언론사 기자와 관계자가 몰려들면서 숙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 기자는 “빈 방을 찾아 서산까지 나가야 하는 날이 있을 만큼 방 잡기가 어려웠다. 온종일 과중한 취재에 시달린 탓에 불가피하게 삼성 측의 편의 제공을 받아들였다”라고 해명했다. 다른 일간지 기자는 “당시 취재 여건상 홍보실과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관계자 연락처를 확보하는 등 원활한 취재가 가능한 측면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건 초기 삼성중공업 크레인의 책임 문제를 비중 있게 보도한 언론이 거의 없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던 점에 비춰보면 삼성의 향응 제공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향응을 제공받지 않은 한 언론사 기자는 이 문제를 기사화하려 했으나 윗선에서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겨 취재를 중단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나중에 숙박비를 계산했다’라는 일부 기자의 ‘해명’도 사후에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충분히 인지했다는 방증이다.    

흥미로운 점은 중앙일보의 경우 이런 편의 제공에 극도로 민감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기자는 “중앙일보가 삼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그런지 무척 조심하는 모습이었다. 숙박은 물론 식사도 삼성 직원들과 함께하지 않았다. 기자실 안에서 마주쳐도 서로 인사조차 하지 않을 만큼 주의했다”라고 증언했다.

 

삼성 측 “일부 기자와 식사한 것은 사실”

기자들의 연이은 증언에 대한 삼성 측의 반응은 어떠할까. 삼성중공업 홍보실 관계자는 이를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당시 방 잡기가 어려운 여건에서 우리가 예약만 대신 해줬을 뿐, 숙박비는 나중에 기자들이 따로 계산했다. 당시 우리를 지켜보는 눈이 엄청 많았는데, 섣불리 그런 편의를 제공했겠나.”

본인이 직접 삼성으로부터 향응을 받았다고 실토한 기자도 있다.
“사실과 다르다. 삼성에 적대적인 일부 매체가  이 문제를 취재했지만, 사실 확인에 실패해 중도에 포기했다고 알고 있다. 다만 기자들에게 김밥 등 간식거리를 제공하고, 전부터 알고 지내던 중앙 일간지 기자들과 식사한 적은 있다.”

그러나 최근 이 문제를 취재한 바 있는 한 방송사 기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현지 모텔과 식당 주인으로부터 삼성 측이 비용을 계산했다는 증언을 들었다. 그러나 향응을 제공받은 당사자의 직접 증언을 확보하지 못해 이를 보도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결정적 증거가 없었을 뿐, 심증은 굳혔다는 이야기다. 

삼성 측이 관련 사실을 부인하는 가운데, 당사자의 양심고백으로 소문으로만 떠돌던 삼성의 향응 제공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태안 기름 유출 사태의 가해자라는 비판에 ‘언론 관리’ 의혹까지 더해져 삼성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더욱 싸늘해질 전망이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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