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한국추부길 홍보기획비서관.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인선에 심혈을 기울였다.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라고 자평한 수석비서관은 물론 실무 비서관 인선에도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고 한다. 이 대통령의 한 측근은 “대통령은 자기 의중을 잘 아는 심복 인사를 비서관으로 선택했다. 실세 비서관의 힘이 수석 못지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세 비서관으로 꼽히는 사람 중 한 명이 정무수석실 추부길 홍보기획비서관(52)이다.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출신인 류우익 비서실장과 함께 대운하 전도사로 불리는 추 비서관은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한반도대운하특위 부위원장을 맡아 대운하 사업 홍보를 지휘했다. 대운하 사업을 반대하는 서울대 교수 모임을 향해 ‘비전문가들의 정치적 행동’이라며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인수위에서는 비서실 정책기획팀장을 맡아 대운하 프로젝트에 그치지 않고 대통령의 정책 메시지를 점검하고, 보좌하는 구실까지 수행했다. 그런데 그런 추 비서관의 이력에서 찜찜한 대목이 여럿 눈에 띈다.

추 비서관은 정치 홍보 대행사를 운영하다가 목사로 변신한 뒤 정치인이 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대학 졸업 후 광고 대행사에서 일하던 추 비서관은 1990년 정치광고업에 뛰어들었다. 1992년 2월29일자 한겨레 기사다. “1990년에 정치광고 업계에 뒤늦게 뛰어든 한길마케팅(사장 추부길)은…후보 한 사람당 1억5000만원씩을 받고 있다.”

정치 광고를 하면서 추 비서관은 1992년 이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추 비서관은 “이상득 국회부의장의 14·15·16대 국회의원 선거물을 내가 도맡아서 만들었다. 이명박 대통령과는 14대 국회의원 선거 때 이 대통령의 홍보물을 만들면서 처음 만났다”라고 말했다. 1996년 9월에는 추부길 사장 등이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 기획단’을 꾸려 대권 행보에 나섰으나 이명박 후보의 선거법 문제로 물거품이 됐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추 비서관은 지난해 펴낸 책 〈운하야, 놀자!〉에서 자기를 ‘1987년 김대중 후보 홍보팀장’이라고 소개했다. 또 다른 저서 〈왜 한반도 대운하인가?〉에는 1992년에 김대중 민주당 후보의 홍보팀장을 지냈다고 쓰여 있다. 당시 김대중 후보 진영에 문의했지만 추 비서관을 기억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측은 “모르는 인물이다. 분명 홍보팀장은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추 비서관은 “김홍업씨를 한길마케팅 회장으로 모시고 홍보 업무를 총괄했다. 홍업씨 비자금 사건 때 내 이름도 많이 나왔다”라고 말했다.

1997년 언론에는 김홍업씨의 비자금 수억원이 한길마케팅 추부길 대표의 계좌에 입금됐다는 기사가 여러 곳에 실려 있다. 추 비서관은 그 후 회사 이름을 모스트커뮤니케이션으로 바꿨다.

추 비서관은 뒤늦게 목회자의 길에 들어선다. 1998년 한국가정사역연구소를 만들어 가정 사역에 나섰다. 연구소는 후에 한국가정상담연구소로 이름을 바꿨다. 2003년에는 ‘웰빙교회’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목회를 시작했다. 교회는 후에 웰커뮤니티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교회 관계자는 “목사님은 청와대 비서관에 임명되면서 담임목사직을 내놓고 명예 담임목사를 맡고 있다”라고 말했다.

서울 광화문 파크팰리스 오피스텔 1층에 있는 교회는 여느 교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교회라기보다는 책을 배송하는 회사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무실 책꽂이에는 추 비서관의 책이 가득 꽂혀 있고 직원 네 명의 책상은 사무실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교회 관계자는 “사무실 안쪽에 예배당이 있지만 보여줄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추 비서관의 약력이 적힌 책을 사겠다고 하자 직원은 “소장님이 안 된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현재 한국가정상담소 소장은 추 비서관의 부인 김정희씨가 맡고 있다. 한국가정상담연구소, 월간 〈가정과 상담〉, 태아사랑시민운동본부, 월간 〈행복한 우리집〉 등 추 비서관 경력의 대부분이 이 사무실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뉴시스2007년 6월 서울 여성플라자에서 한반도 대운하 설명회를 갖는 이명박 후보(서 있는 이). 맨 왼쪽이 추부길 비서관.
목사 취득과 관련한 추 비서관의 학력에는 의문점이 많다. 추 비서관은 미국 리젠트 대학(Regent University)에서 석·박사 학위를, 대한신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미국 리젠트 대학에서 석사를 받은 기간(1997년 9월~1998년 12월)과 대한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한 기간(1998년 3월~2001년 8월)이 겹친다. 리젠트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2001년부터 2005년 5월 사이에 미국에서 공부한 것도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고 온라인이나 통신 수업으로 학점을 딴 것도 아니었다. 논문도 한글로 작성했다. 추 비서관은 “미국에 상주하면서 공부한 것은 아니고, (미국에)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미국에서 교수들이 오기도 했다. 정식 등록 학교이고, 돈을 카드로 낼 수도 있고, 졸업식에 가서 사진도 찍었다”라고 말했다.

한국, 미국 대학을 동시에 다녔다?

그러나 리젠트 대학에서 공부한 기간 등에 대해 묻자 “미국에 얼마나 있었는지, 횟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쪽에서 많이 왔다”라고 말했다. 미국 교수들이 와서 강의한 장소가 어디냐는 물음에는 “어떤 때는 교회를 빌리고 어떤 때는 연구소를 빌렸다”라고 말했다. 

대한신학대학원은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 교단 소속이다. 대한신학대학원을 나오면 이 교단에서 안수를 받게 되는데 추 목사는 이 교단에서 안수를 받지 않았다. 웰커뮤니티교회는 초교파 독립교단이다. 안수받은 교단에 대해서 묻자 추 비서관은 “대한예수교장로회 ○○○○”이라며 단어를 흐리게 발음했다. 기자가 대여섯 차례 반복해서 물었지만 유독 그 교단만큼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음 날 추 비서관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진리 측에서 안수받았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안희태지난 2월까지 추부길 비서관이 담임목사로 있던 웰커뮤니티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진리 교단의 총무를 맡은 박중선 목사는 “우리 교단에서 안수를 받은 사람 가운데 추부길이라는 사람은 없다. 한기총에 소속된 우리 교단 말고 합동진리라는 이름을 쓰는 교파가 두어 곳 더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김청 국장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진리 말고 합동진리 측이라는 한기총 소속 회원사는 없다”라고 말했다.

목사 안수를 언제 받았느냐는 물음에 추 비서관은 “대한신학대학원을 졸업한 1년 후인지, 2년 후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그때쯤 받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비서관 인선을 발표하면서 대통령직 인수위는 추 비서관의 주요 경력을 안양대 교수로 소개했다. 하지만 추 비서관은 겸임교수였다. 안양대 대학원 한 관계자는 “2003년부터 가정사역과 관련해 한 과목을 강의하는 겸임교수였다”라고 말했다. 다른 대학원 관계자는 “강사여서 정확한 재직 기간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동아일보의 인물난을 비롯해 여러 인물 정보에 추 비서관은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석사라고 기재되어 있다. 추 비서관은 1987년 중앙대 특수대학원에 입학했지만 석사 학위를 취득한 사실은 없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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